근래 군사정권의 민정이양을 둘러싼 우리의 현실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현실정치적인 여야의 격돌, 미묘한 대외관계, 국민의 심려 등 심각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이런 표면적인 현실적 문제 이상, 무엇보다도 우리의 불우했던 4천년 역사를, 더욱이 망국적인 조선의 역사를, 그리고 우리의 국민성격과 정신연령을 똑똑히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해방 후 그 추잡했던 자유당 정권에서도, 더러웠던 민주당 정권에서도, 심지어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도, 그래도 무엇이 되겠지, 우리의 자각을 위한 하나님의 쓰라린 채찍이겠지, 이제 우리도 사람 노릇 할 날이 오겠지 하고 20년 세월을 바보같이 속아온 나의 부끄러운 환상을 이제 완전히 포기할 수 있어 나 자신 무엇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아니, 시원하게 되었다. 나는 지난 20년을 더러운 국수주의자로, 거짓 애국자로, 정치광(狂)으로, 현실주의자로 살다보니, 신자로서 늘 마음이 무겁고 꺼림칙했던 것이다. 또 나의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조선조 말기의 격동하던 국제정세 아래에서 나라를 팔아먹던 시절에도 우리의 형편이란―제 버릇 개주랴―요즘과 똑같았을 것이다. 권력이라고 한번 쥐면 찰거머리 같이 제 몸이 끊어져도, 나라가 결딴나도 놓지 않으려고 하다가, 권력을 정적(政敵)에게 넘기느니 차라리 타국(他國)에 팔아먹고 말지 않았던가. 일전 어느 정치인의 국외에서의 발언에 접해 나는 우리야말로 망국 인종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제정세는 차치하고, 무서운 38선을 코앞에 둔 우리 처지에서, 만일 이 땅에 미군이 없다면 과연 여야가 이런 격돌을 벌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이 사태란 결국 외세의 등에 업혀 하는 철없는 부끄러운 철면피의 행동이 아닌가? 게다가 미국의 달러와 식량에 추파를 보내며 이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요새 삼군(三軍) 참모가 연일 정사로 분주한 것을 볼 때 무서워서 밤에 잠이 잘 안 온다. 공산군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거짓말과 불화와 권모술수와 욕심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 무서워서이다. 세대교체라고는 하지만, 이는 전날 노론, 소론, 사색당파의 현대판이 아니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혁명을 했는데 무슨 신분보장이고 생명보장인가? 모두 다 추잡스러운 정치놀음이 아닌가?
국사에 임하는 자 오로지 사심 없이 거짓말을 말고 정직하게 하라. 거짓은 양심에 대한, 아니 하나님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칼라일 말에 “거짓말 위에는 벽돌집 하나 못 짓는다”고 했다. 하물며 거짓말 위에 국가를 세우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공연한 말이 길어졌다. 아마 설교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와 상관없는 비인격적인 한국의 정치가, 군인, 저들에게 나는 아무런 미련도 희망도 없다. 나는 오직 남은 생애를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과 양심의 지배자 그리스도를 열심히 믿어 거짓말 않는 진실한 인간되기를 노력할 뿐이다. 이것이 나의 최대의 애국이다.
나는 사실 이때까지 돼지같이 정치인들에게 밥투정이나 해왔다. 그것도 떡을 달라는 백성에게 돌만 주는 저들을 향해. 아, 나의 우매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