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행복을 어디에서 구하고 있는가? 정치와 문화, 문명에서 찾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문명이라고 하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현대인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결국 물질적인 것으로서, 결국 그들은 행복을 인간 밖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우주시대, 우주과학이라고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현대 문명, 그리고 인류의 행복 추구가 인간 자체와 거리가 무한히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행복이란 사람 안에서, 사람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외계나 물질이 아니라, 종교 신앙으로, 영혼과 도덕 생활에서, 양심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질주의적인 현대인이 무관심하기로는 종교 신앙 이상 가는 것이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더욱 개탄할 것은, 현대인은 종교마저도 정치화하고 사업화하고 의식화(儀式化)한다는 사실이다. 작금 미국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인의 추태, 파벌적인 종파 대립, 주도권 쟁탈, 그리고 개신교 자체의 의식화 등을 보라. 이들이야말로 영의 종교를 정치화하고 물질화하는, 실로 악마의 하수인들이다.
그러나 사람이 개나 돼지가 아닌 이상 정치나 문화나 물질 정도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오늘날 미국에서의 정신병자의 창궐, 북유럽 복지국가에서의 자살자의 속출, 유물주의의 나라 소련 중공 등에서의 인간의 기계화 노예화를 생각해보라. 물질문명의 극단인 핵폭탄에 의해 자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는 이제 정치만능주의와 물질주의에서 정신문명, 도덕추구, 양심의 각성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대인들이 우주의 생성 등을 자연철학의 견지에서 논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천체보다는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설파하면서 도덕철학의 길을 열었다. 근대 초기 천박한 과학만능의 계몽주의에 대해, 칸트의 관념 철학 역시 같은 길을 제시했다. 인류의 실존을 추구한 키에르케고르는 인류를 죽음의 병자로 진단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외적 노력, 즉 저들이 열중하는 정치, 전쟁, 스포츠, 예술, 경제, 사냥, 향락 등 모든 행위가 자신의 파멸적인 운명에서 눈을 돌리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그렇다, 기독교야말로 모든 종교, 철학, 사상과는 전혀 달리, 인간의 본질, 양심과 도덕의 배후에 이를 거역하는 죄악이 실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제거하여 인간을 도덕적으로 신생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와 복음이 엄존하고 있음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나는 이 죄악에서 해방되어 양심의 권위를 회복하고 불사의 생명에 옮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의 절대적 정의에서 사는 사람의 도덕적 상태야말로 인간의 유일 절대적인 행복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 문제 해결의 궁극적인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