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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인간 개조란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것이 특히 정치와 결부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가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단 밀인가? 로마 속담에 ‘황제도 문법은 못 고친다’는 말이 있지만, 하물며 정치가 인간을 개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학자고, 종교인이고, 온 국민이 정치만 잘 되면 이 민족 4천 년의 모든 문제와 죄악이 간단히 봄날의 눈처럼 풀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안이한 생각은 있을 수 없다. 위정자나 국민의 이런 식의 안이한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 민족적 난관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대체 해방 후 오늘날까지 정치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진부한 소리 같지만 이는 결국 어느 몇 사람의 책임이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의 정신 상태, 도덕 상태, 양심 상태와 깊이 관계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종교 문제를 생각해보라. 오늘날 누구나 기독교도의 부패와 타락을 곧잘 욕한다. 물론 이는 다 사실이며, 기독교 측에서도 할 말이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로서 한마디 하란다면, 그래, 우리에게 현재의 기독교만 썩었는가를 묻고 싶다. 과거 우리 역사에서 유교는 훌륭했고 불교는 굉장했던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과거의 불교도 유교도 우리에게는 모두 제대로 활짝 피지 못하고 지지러지기만 했던 것이다.
이웃 일본의 그것과 비교해 보아도 이해, 소화, 독창, 발전, 국가와 민족에 미친 영향 등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것이었다. 더욱이 그것이 우리를 통해 그들에게 간 것인데도, 그리고 우리의 원효와 퇴계가 그들의 불교와 현대 국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정작 우리에게 불교와 유교는 순수하게 소화되지 못했다. 이것은 깊이는 국민 성격의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부족한 정신이 오늘날 다시 기독교를 망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역사와 민족의 성격이란 시간 공간을 통해 깊이 연관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사람의 정신, 도덕, 양심 상태와 결정적으로 관계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4천년 우리의 이 천박한 생각과 구린내 나는 양심은, 이러한 종교적 실패와 천박성에 기인한 역사적 고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서구 문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각 민족의 기독교 신앙이 꽃 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하나만 해도 이를 단순한 제도만으로서 제대로 수용할 수 없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양심을 지배할 수 있는 산 종교 신앙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개조도 오직 이로써만 가능하다. 그리고 종교는 정치와는 달라서, 몇 사람의 기도와 신앙만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양심의 존재인 이상, 개개인, 국민 전체가 이에 참가하여 종교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 없는 자의 양심은 저가 어떤 인간이건 간에 믿을 것이 못 된다. 종국에는 자신마저도 이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성서연구> 제94호 (196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