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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주 지 회 축복과 소식 스크랩 한국교회가 회복하여야 할 것들
경주지회 추천 0 조회 198 17.11.17 12:3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교회가 회복하여야 할 것들

 

1. 한국사회의 성장주의

지난 70년대를 거쳐서 8,90년대를 이어오는 동안 한국사회의 목표는 상장주의에 목표를 둔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목표 때문에 국가경제는 상당히 성장하였고 국력도 신장되어 지난해 우리나라는 3천억불을 수출하는 경제부흥과 GDP 전 세계 200개 국가중 10위를 기록하는 기적을 일구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거기에 산업재산권 출원 4위의 나라, 월드 국제특허 출원 7위의 나라, IT계통이 수출 전체의 30% 를 차지하는 나라로 발전하였다. 사회발전도 이루었고 상당한 민주화도 이루어 냈고 성숙한 시민정신도 발휘하고 국제안목도 상당히 높아진 나라로 발전하였다.  
              
2.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 사회의 발전과 경제발전은 덩달아 한국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지난 30년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기적과 같은 양적성장을 이루었다. 오늘 한국이 세계에 자신있게 내 놓을 것은 기독교뿐이라고 말할 정도가 가독교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외형적 위용이나 급상승한 수치의 발전은 마침내 선교학에서 한국교회를 연구대상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한국 기독교의 세계선교 동참률도 또한 괄목할 만큼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 두번째 규모의 선교사를 파송한 국가로 기록되었다. 2006년도 기준으로 173개국에 16,616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아프리카 대륙 61국에, 유럽 42국에 파송되었고 아시아 33국에 파송된 선교사 수만 9천여명에 이른다. 그리고 아메리카 25국과 태평양권 12국에 파송되어 현재 파성된 선교사 수치는 영국의 두배이고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수치일 뿐 비공식 수치까지 합하면 그 배가 될지도 모르며 여기에 단기 선교팀까지를 포함하면 가히 세계적일 수 있는 놀라운 성장이다.

3. 성장의 그늘

성장이 있는 곳에는 늘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성장에는 얻는 것이 있지만 또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을 때가 문제가 된다. 우리 한국사회도 성장주의로 나아가는 동안 얻고 성취하고 국력이 신장되고 이룬 것도 많지만 동시에 잃은 것도 쉽게 간과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동안 내면적인 것에는 등한하게 된다. 그 결과 평소에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들을 우리는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고 잃고 난 후 우리는 그 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우를 한국의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범하고 말았다. 각 교단 교회들마다 성장주의로 치닫는 동안 우리 사회가 그랬듯이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잃고 말았다. 교회의 외적인 성장과 확장 그리고 건축 붐을 이루고 있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교회는 오로지 짓고 헐고 또 짓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 30여년동안 교회들은 호화롭게 지어졌고 교회들은 전에 없이 화려해졌으며 이 화려함은 교회간의 빈부격차를 불러오고 목회자간의 갈등과 반목은 더 벌어져 갔다. 그리고 교회의 급 성장에서 나타나는 교회내의 불협화음과 갈등은 한국 기독교로 하여금 씻을 수 없을 만큼 사회에 어두운 모습을 보여 주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사회로부터 관심 밖으로 비켜나게 되었고 냉소적 그룹으로 전락하였고 그 영향은 곧 바로 교회성장의 침체로 마이너스 성장의 수치로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마이너스는 단순한 마이너스로 끝나지 않고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와 정부 그리고 우리의 이웃의 신 불신인을 막론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4. 회복해야 할 것

위기의 때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넘어졌을 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때이다. 그리고 실패의 순간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바로 그 시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들이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되찾고 우리 주위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을 변명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챙기고 과감하게 수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1) 경외심 회복

종교가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경외심이다. 경외심을 잃은 종교는 그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종교의 삶은 신념의 삶이다. 무소유, 초월, 초지일관, 구별, 경외심이 있기에 종교인 것이다. 오늘 기독교가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와같은 경외심의 내용들이 모두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 보다 못하다”라는 비난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그 위험수위가 지금까지는 말로만 나타났었는데 이제부터는 활동으로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교회 내에서 그리고 교회밖에서 무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쏟아지고 있다.


목회자들이 은퇴후 사역하던 교회를 과감히 놓치 못하고 떠나지 못하고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며 관여하는 동안 교회는 온갖 갈등에 휩싸여 마침내 교회의 분규사태로 세상에 보여졌다. 그리고 교회를 떠난 선임 은퇴자의 흔적을 빨리 지워버리기 위해서 안달하며 비인격적 행동을 서슴치 않는 후임 목회자의 조급증, 교회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끊임없이 갈등을 야기하는 당회의 불협화음 등은 교회가 지녀야 할 구별과 경외심을 상실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들이라 하겠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는 차제에 뼈를 깎는 아품을 감수해 가면서 성스럽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이미 상실하고 잃어버린 교회가 지녀야 할 경외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목회자들은 순수한 목회자로 무소유와 구별의 삶을 회복하고 교회운영에 투명성과 재정으로부터 맑고 순수한 면모를 갖추고 교회가 지녀야 할 세상과 함께 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세속인들로부터 교회가 세속집단과 구별이 없어 보인다는 인식을 고치지 않는한 한국의 기독교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2) 교회의 역할 회복  

일제시대 때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3만명 밖에 안되는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였던 민족행쟁이었다. 3만명의 그리스도인 속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지도자들을 배출하였고 시름에 빠져있던 우리사회를 힘있게 이끌고 나갔다. 그 당시 고아원, 양로원, 문맹퇴치운동, 항일운동, 금주운동, 영적부흥운동을 주도했다.  


오늘은 전국민의 3분의 1이나 되는 천 200만명의 그리스도인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이렇게 무력할 수가 없다. 오늘은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는 120년 역사가운데 가장 위기의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교회의 존재가치 유지에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서 무관심 하던 보응이 오늘 급기야 터지고 말았다. 교회의 경쟁적인 사치, 대형 화, 분파, 독선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오늘 한국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아프칸 사태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어 사회로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물밀듯 비난이 쏟아지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일어난 일이고 카톨릭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교회의 대다수 중소교회들은 지극히 건강한 목회로 지역사회에 크게 이바지 하면서 공감과 호응을 받는 교회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 건강한 교회들은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대형교회들의 스캔들과 세습문제 그리고 분쟁과 문어발식으로 늘어놓은 지성전 또 버스로 신자들을 흩어가는 오늘의 비 목회적 양식에 우리 모든 교회들은 한 묶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시정해 보려는 움직임도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자조적인 탄식과 미래의 암담함과 언제까지 지탄받고 매를 맞아야 정신 차릴 것인가를 뼈아프게 생각하는 것이다.  

3) 교과서적 선교 회복

우리나라는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전래 받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받았으면 주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교회가 그래도 미래가 있는 것은 열정을 가진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나아가 있다는 것이고 또 선교사 지원자들이 많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훌륭한 자산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선교는 경쟁적으로 할 일이 아니다. 또 선교는 경쟁의 대상도 아니다. 오늘 각 교파별로 치열한 경쟁을 이루고 선교단체들 간의 양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어쩌면 열심이 좀 약한 것 보다 더 해악적일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선교는 너무 경쟁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선교를 사업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는다. 그리고 선교를 모두 돈으로 하려고 하는 경향이 너무나 강하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가 가는 곳이면 먼저 건물부터 세우고 건물을 사 들인다. 선교지에서는 “선교사는 곧 돈 많은 사람“으로 통하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선교사들이 테러의 대상이 되고 강도들이 주시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는 건물로 하는 선교와 시설 위주의 물량적 선교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제는 헌신적 선교로, 섬기는 선교로, 그리고 선교지의 문화이해와 실제적 적용으로 삶과 함께 하는 선교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파송교회의 업적 중심선교도 지양해야 한다. 같은 도시에 여러개의 신학교를 짓고 운영하는 선교의 비능률적 중복투자는 하나님 앞에 반드시 심판 받아 할 선교의 암적 존재다.
그리고 선교에서 독선적 선교방식 및 목표지향은 차제에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번 아프칸의 사태는 독선적 선교방식에서 발생된 불행한 사건이다. 우후죽순 격으로 세워진 선교단체들도 문제이고 특히 스타의식을 가진 목사들의 절제된 선교관 정립이 시급하게 느껴진다. 2004. 4월 한국인 목사 7명이 전쟁중인 이라크에 선교한다고 입국하다가 무장단체에 납치된 사건, 지난해 8월 카불광장에서 평화대행진을 거행한다고 15,00여명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입국을 시도하다가 추방당한 사건은 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그 후유증이 이번사태로 까지 연결되었다. 이번 사태도 사전에 정부가 탈레반이 수감자 동료들을 석방시키기 위해서 한국인을 납치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여 출국을 만류하였지만 소송불사로 맞서서 결국 아프칸에 들어가서 이번 참극을 빚어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인질문제가 해결되자 마자 “이슬람 국가에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겠다, 300명이 아닌 3천명의 배형규가 나와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작태는 신념도 아니고 선교도 아닌 오만이다. 하나님을 위한 선교인가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인가를 묻고 싶다.  


이제는 선교단체들의 선교 마케팅을 지양하고 위험지역에 들어가 선교함으로 마케팅에 성공하여 선전효과를 극대화 하고 모급의 확대로 이어지게 하려는 무분별한 선교방식 그리고 독선적인 선교방식도 이제는 교과서적인 선교방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독선적 선교방식은 상대 국가의 문화와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고 단기선교 팀들의 상대국가 중심지에서 집단적으로 찬양하고 소위 땅밟기 식의 시위적인 행동은 우월감에 도취되어 자국민을 얕잡아 보는 행동으로 이해되어 테러나 충분한 충돌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4) 학위 지상주의 편승

오늘 학위위조 사건이 대 사회적인 잇슈로 치부되고 있다. 학원가, 문화계, 예술계, 대학을 불문하고 모든 분야에 학위위조 사건이 두루 퍼져있다. 우리사회의 학벌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희극이다. 이 문제가 한국 기독교계에도 불가불 볼똥이 튀고 말 것이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2003년 1월에서 2007년 7월까지 재단에 신고된 박사학위는 모두 943개 대학에 7765건이다. 그중 미국에서 받은 학위는 54%인 4,199명, 그중 미인증대학 학위는 276명이다. 그 276명중 기독교의 목사가 받았다는 학위가 140명이나 된다. 여기에 문서로 논문을 써 보내서 학위를 받은 학위나 명예박사학위까지를 포함한다면 모두가 놀랄만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가박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오늘에도 여전히 많은 목회자들이 박사학위에 상당한 미련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학벌 컴풀렉스가 있다는 말들을 한다. 대학에 가서 단기 연구과정을 마치고도 정규대학을 마친 것 처럼 확대 선전하는 일에 절제없이 이루어졌다. 거기에 오늘은 박사학위 열풍에 휩싸여 있다. 단기간 내에, 한두번 학교를 방문하는 과정을 통해서 학위가 주어지고 대개의 경우는 우편으로 간단하게 학위가 주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돈으로 학위를 사는 격이 된다. 그리고 그 학위를 과시하는 기회로 삼고 박사까운을 입고 설교해야 스스로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는 오늘의 풍조를 만들었다. 조건과 외모와 외형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마침내 문화계, 예술계, 학계는 물론이고 이제는 교회에 까지 그리고 교회의 강단에 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이제는 이 외형적 풍조에 휩쓸리는 물결에 목회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강단을 오염시키지 말며 일반 평신도 신앙인들에게 더 이상 웃음거리와 실망을 끼치지 않는 정제된 자기극복이 절실히 요청된다.        

5) 탈 정치적 위치회복

선거철 만 되면 정치권에 이름을 대고 줄을 서며 한쪽으로 편향적 태도를 타나내거나 지극히 정치적 행동을 서슴치 않는 정치지향적 목회자들의 모습이 정치계?을 맞이해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극복되어야 할 지역감정에 불을 댕기고 파벌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고 극좌와 극우로 갈라지는 행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한국 교회 전체와 목회자들이 극렬하게 나뉘어질 공산이 크다. 교회는 이점에서 지극이 중도적 입장을 취했으면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그 시대에 조용히 예언자적 소임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6) 교계 선거문화의 회복

선거는 사람을 만나고 내편으로 끌어 들이는 일에 집중하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그 세계에는 불가불 막대한 돈이 뿌려지고 세속적인 온갓 방법들이 동원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들이 한국 교계에도 사회보다 더 혼탁한 선거문화를 능가하는 방법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교단마다 선거가 종료되면 얼마의 돈이 뿌려졌다는 미확인 소식들의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뿌려졌다는 금액이 확인되지 않으나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같은 내용들이 언젠가는 자세하게 우리 사회에 그대로 공개되는 날이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그 날에는 한국기독교의 숨어있던 치부들이 그대로 세상에 알려질 것이고 그때 한국 교회는 그야말로 회복불능 사태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해마다 선거가 끝난 후 들려오는 소식들을 종합해서 교계 신문 기자들이 선거자금을 들추려고 시도했다가 그냥 덮어버렸다는 후문을 들을 때 마다 한국교회가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5. 결  론

우리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대 부흥을 이루었다. 국가의 위상도 급상승하는 발전도 이루었다. 그에 힘입어 한국교회 역시 급성장의 축복을 이루어냈다. 오늘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나라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한국을 제 2의 성지라고 거침없이 이 고백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남다른 자부심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된다. 분명 이 성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성장의 그늘에 가려 도취해 있는 동안 너무 안일했고 진정성을 상실하였고 더 소중한 원리나 진실을 잃어버린 채 한국교회는 지금 세속적인 물결에 휩싸여 흘러가고 있다. 그 결과 이제 한국교회는 갈수록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급기야 한국 기독교의 안티 그룹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고 기독교 내의 안티 NGO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다. IMF 사태가 한국 경제질서를 일순시킨 것 처럼 그래서 IMF의 물결이 순기능의 역할도 한 것 처럼 이번 사태로 인하여 한국교회가 바로잡히는 계기가 되고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 한국 기독교는 오늘의 현실을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고 잃은 것을 회복하고 소홀히 한 부분을 보강하고 외면한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 오히려 더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은 결코 손해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을 믿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오늘의 안일을 깨우치지 않고 수정도 하지 않으며 자기성찰에도 계속 둔감한 채 머물러 있는 다면 이제는 사회로부터의 돌팔매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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