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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첫 국기는 태평천국(太平天國, 1851~1864)과 연을 맺는다. 서구 열강은 태평천국의 난으로 곤경에 처한 청(淸)에 군함을 팔 궁리부터 했다. 영국은 함정을 이용해 난을 제압할 시간표까지 제시했다. 1861년 계약을 체결하면 이듬해 9월 군함을 인도한다. 해군을 조련해 1863년 4월 작전에 투입하면 하루 안에 태평천국의 수도 난징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청을 유혹했다.
청은 이를 믿고 7척의 군함과 1척의 보급선을 샀다. 자연히 군함에 달 국기가 필요했다. 중국 최초의 국기인 삼각황룡기(三角黃龍旗)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황색 바탕에 남색 용을 그려 넣었다. 1862년의 일이었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오성홍기는 1949년에 제작됐다. 중국 정치협상회의 준비위원회가 공모한 결과 2992점의 후보작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상하이 일용품 회사에 다니던 쩡롄쑹(曾聯松)의 도안이 낙점을 받았다. 바탕의 홍색은 열정, 즉 혁명을 상징한다. 다섯 개 별의 황색은 중국인이 황색 인종임을 뜻한다. 별 다섯 중 가장 큰 별은 공산당을, 나머지 네 개의 작은 별은 노동자와 농민, 소자산가, 민족자산가 등 네 계급을 나타낸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인민민주전정을 논함(論人民民主專政)'이란 글에서 인민으로 위의 네 계급을 언급한 데 착안했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 사(士).농(農).공(工).상(商)의 의미가 담겼다. 작은 별 네 개의 한쪽 끝은 모두 큰 별의 중심을 향한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혁명 인민이 단결한다는 뜻이다. 별 다섯이 왼쪽 위에 자리한 것은 광활한 대지를 고루 비추게 하기 위함이다. 첫 오성홍기는 중국 건국일인 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 의해 천안문(天安門) 광장에 게양됐다.
중국연구소 유상철 기자
2.왜 위안화로 부르나??
'폴슨 효과'란 말이 있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 위안(元)화 가치가 오르는 것을 가리킨다. 무역역조 시정을 위해 미국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귀하신 몸이 된 위안은 이제 달러.유로 등과 함께 세계를 삼분할 태세다.
중국 돈 인민폐(人民幣)의 단위인 위안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여러 가지 설 중 당(唐) 고조 이연(李淵)이 발행한 '개원통보(開元通寶)'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개원통보는 동그란 동전에 네모 구멍을 내고 글자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순서를 바꿔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읽어 '개통원보(開通元寶)'라고 했다. 이 때문에 명(明)대와 청(淸)대에 쓰인 금.은의 덩어리 화폐는 '원보(元寶)'라는 이름을 얻었다. '위안(元)'이란 글자가 화폐라는 개념을 얻게 된 계기다. 청 말엔 '은원'(銀元) 주조와 함께 '동원'(銅元)을 기계로 찍어내기 시작했다. 위안이 화폐 단위로 공식 등장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8년 12월 1일 처음 인민폐를 발행하면서 그 단위로 '위안'을 계승했다.
인민폐 형태는 지금까지 다섯 차례 바뀌었다. 현재 유통되는 인민폐는 99년 고안된 것이다. 2005년엔 위폐 방지 기능을 강화했다. 위안 아래 보조 단위로는 1위안의 10분의 1인 '자오(角)', 100분의 1인 '펀(分)'이 있다. 중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선 통상 위안은 '콰이(塊)'로, 자오는 '마오(毛)'로 바꿔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고액권인 100위안부터 1펀까지를 모두 더하면 188위안8자오8펀이 된다는 점이다. 돈을 번다는 뜻의 '파차이(發財)'의 '파'와 발음이 비슷해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인 8이 줄줄이 들어가 있다.
중국연구소 신경진 연구원
3.공산당원 신분 … 공산당 당원증은 취업 보증수표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대학을 갓 졸업한 천(陳) 선생은 최근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극심한 대졸 취업난 속에서도 직장 두 곳으로부터 동시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베이징 국유 기업을 갈지, 칭다오 독일계 기업을 선택할지 저울질이 한창이다. 천 선생의 취업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답은 '공산당 당원증'에 있다. 당원은 중국 정부기관뿐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서도 채용 0순위로 꼽힌다. 공산당이 보증한 엘리트라는 이유에서다.
1921년 창당 당시 중국 공산당원은 57명. 2006년 말엔 7239만1000명으로 늘었다. 세계 최대 정당이다. 아무나 마구 끌어들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당원이 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대학생의 예를 들자. 우선 학교 당지부에 입당원서를 낸다. 이때 기존 당원 두 명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당지부는 성적과 성실성.국가관.희생정신.리더십 등을 꼼꼼히 심사한다. 이 중 남을 위한 봉사가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1년 이상 계속되는 심사에서 합격하면 예비 당원이 된다. 1년 정도의 예비 당원 기간엔 수시로 토론회에 참가해 소견을 밝히고, 입당 마음가짐을 적은 '사상회보(思想匯報)'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우면 신청 약 2년 만에 정식 당원 자격을 얻는다. 직장인의 경우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중도 포기, 또는 탈락자가 많다. 천 선생과 함께 입당원서를 낸 20명의 학우 중 4명만이 입당했다. 최고 엘리트만이 당원의 영예를 안는 것이다. 과거엔 18세 이상의 중국 노동자나 농민, 군인, 지식인, 기타 혁명분자만 입당 신청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젠 '기타 혁명분자'가 '기타 사회계층의 선진분자'로 바뀌었다. 기업가도 당원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한우덕 기자
4.중국인들의 송편 `월병`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원나라 전복을 위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할 때다. 그는 8월 15일을 결전의 날로 잡았다. 문제는 원나라 감시망을 피해 각 지역에 어떻게 군령을 전하느냐였다. 고심 끝에 '월병(月餠.둥근 모양의 작은 케이크)'에 착안했다. 월병 속에 '8월 15일 밤 봉기(八月十五日夜起義)'라고 적힌 쪽지를 넣어 선물이라며 돌렸다. 군령은 신속하게 전달됐고 봉기는 성공했다. 중국인이 중추절 때 월병을 선물로 돌리게 된 유래다.
순금으로 만들어 뇌물 성격이 짙은 황금 월병 |
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는다면 중국인은 월병을 즐긴다. 월병은 오리알이나 과일.팥 등을 넣은 일종의 떡이다. 송편이 반달 모양인 데 비해 월병은 보름달 형태다. 중국인이 월병을 먹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로 알려졌다. 환하고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면 보름달처럼 둥근 월병을 만들어 달님에게 제사를 지낸다.
또 이날만큼은 둥글게 모여 앉아 월병을 나눠 먹으며 무병 장수를 빈다. 북송 시기 문헌인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중추절 달을 깨물어 먹듯 작은 떡을 먹는다(小餠如嚼月)'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월병은 둥근 모양은 비슷하지만 지역에 따라, 또 맛과 재료에 따라 수백여 종으로 나뉜다.
그러나 현재의 월병은 중국 부정부패의 단면을 비춰 주기도 한다. 황금으로 만든 월병이 등장하는가 하면 월병 세트에 보석을 끼워 돌리기도 한다. 청탁이 목적이다. 과거 이민족 타도라는 애국적 대의를 위해 봉사했던 월병 선물이 이젠 중국 사회를 갉아먹는 뇌물로 전락한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돈만 보고 달려온 중국인의 씁쓸한 자화상이 배어난다.
한우덕 기자
5.이웃국가 세계 최다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에는 '십전기(十全記)'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청(淸) 건륭제(1711~1799)가 신장.대만.미얀마.베트남.네팔 등 열 번의 대외원정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영토는 이때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중국은 육지로 14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세계에서 인접국이 가장 많은 나라다. 육지 국경선의 총 길이는 2만2000여㎞다. 2006년 말까지 12개 국가와 국경 조약 및 협정을 맺은 상태다. 90% 정도의 국경선이 확정됐다. 인도.부탄과는 아직 국경 조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신중국 성립 후 중국은 저우언라이 총리의 '평화공존 5원칙'에 따라 인접국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국경 문제를 한동안 거론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국경선 확정에 들어가 미얀마.네팔.몽골.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북한과 조약을 맺었다. 90년대부터는 러시아.라오스.베트남.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과 차례로 조약을 체결했다.
14개 국경선 중 몽골과의 국경선이 4710㎞로 가장 길다. 당초 중국과 가장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던 소련이 붕괴된 데 따른 결과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와는 동부 4300㎞, 서부 54㎞를 맞대고 있다. 둘째로 긴 국경선이다. 69년 무력충돌까지 빚었던 중.소 국경 분쟁은 91년 동부국경 협정을 맺으면서 해소됐고, 2004년에는 보충 협정까지 맺은 상태다. 가장 짧은 국경선은 아프가니스탄과 접하고 있는 92.45㎞다. 북한과는 64년 3월 국경선 1334㎞의 국경 조약을 체결했다.
한국과 일본.필리핀.브루나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6개국은 중국과 바다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신경진 연구원
6.공산주의 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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