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방송/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좋은 이름` / 황상순 시인
좋은 이름
황상순
할무이, 진지 잡솼능겨
응, 누고
옆집 상철 아범 아임니꺼
점심때쯤 다시
할무이, 밭에 가시니껴
응, 누고
바로 옆집 상철 아범 아임니꺼
저녁나절 또 누구냐고 묻자
상철 아범 그만 큰일 났다 싶어 얼굴 바짝 들이대며
딱 보이 이제 알겠능겨
할머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설핏 미소 지으며
응, 딱 보이구나!
상철 아범 그 이후로 멀쩡한 제 이름 놔두고
딱 보이로 불린다
딱봉이, 쌀 댓 말은 족히 주었어야 할
할무이 치매도 고치는
참 좋은 이름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집안의 제일 큰 어른 몫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학에 조예가 있는 이웃에게, 혹은 점쟁이에 달려가 집안의 돌림 항렬 자字와 아기 사주팔자를 내밀고 이름을 지어온다.
이름이 여자 이름 같다며 바꾸어 달라고 떼를 썼더니 ‘야가 이마며 눈매며 나를 꼭 빼 닮았구나’ 할아버지가 선뜻 쌀 두 말을 내고 지어온 이름이라 했다.
순할 순順이 아니고 임금 순舜이라고. 임금은 되지 못했지만 이름 덕분에 남 신세 안지고 그냥저냥 살았다.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이제 수생 목, 목생 화, 화생 토, 토생 금이며 사주팔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젊은 아빠 엄마는 부르기 쉽고 의미도 좋은 순 한글로 아기 이름을 짓는다. 가람이라 짓기도 하고 달래, 꽃님이라고도 짓는다.
예쁘고 좋은 이름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 딱 보이, 딱봉이 – 하루에 딱 열 번씩만 이 이름을 부르면 할머니 치매도 곧 나을 성 싶다.
▶약력
1999년 《시문학》 등단
2002년, 2007년 문예진흥기금 2회 수혜, 시문학상
시집 『어름치 사랑』 『사과벌레의 여행』 『농담』 『오래된 약속』
『비둘기 경제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