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일본 역사가들에게 친일 공로상 후보를 선정하라고 하면 단연 친일 공로대상은 여운형에게로 갈 것이다. 실로 우리 민족 중에 여운형만한 친일파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인들이 저지른 가장 악질적인 범죄가 있다면 그것은 일본 전범을 구하기 위해 한국인들에게 전범 누명을 씌워 대신 사형당하게 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일본을 미워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것이다. 1904년 러시이가 한반도를 침략하였을 때 일본이 만주에서 막은 것에 대해서, 1930년대에 스탈린이 다시 한반도를 침략하려고 하였을 때 관동군이 소만 국경지대에서 막은 것에 대해, 1930년대 후반에 동북항일연군이란 이름의 중국공산당 군대가 동북공정 논리를 가지고 졸개 가짜 김일성을 앞세워 보천루를 습격하였을 때 일본이 우리나라 국경을 사수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자 말자의 논의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네 전범을 구하기 위해 한국인에게 전범 혐의를 뒤집어 씌운 것은 일본인의 흉악한 모습이다.
그런데 일본 전범을 구하기 위해 한국인에게 누명씌우는 일을 여운형이 완벽하게 거들어주었기에 일본인들 눈에는 친일 공로상 대상 후보는 단연 여운형일 것이다. 사실, 일본 편에서는 한국의 친일 청산 열풍을 환영한다. 그것은 한국에서 친일 청산 열풍이 거셀 수록 일본은 전범국의 혐의를 벗어나게 되며, 일본이 한국인에게 대신 전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거나 종신형에 처하게 한 것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일본 전범들은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고 7명만 사형을 받았을 때 한국인은 23명이나 전범으로 몰려 사형당하였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한국인들이, 더구나 군인도 아니라 민간인 신분으로 징용되었던 한국인 노돌자들이 수십 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전범기록으로만 보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전범국이 된셈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일을 여운형이 해 주었다.
종전 직후 일본인들은 일치 단결하여 전범 구명 운동에 나선 반면 한국인 중에는 이승만 박사만 한국인 전범 구명 운동에 나섰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가 억울한 전범 누명 구명운동에 나서자 여운형 등 좌익에서는 친일파 구명 운동을 하는 것은 친일이라며 비난의 포격을 가하였다. 한국인 전범 혐의자에 대한 미군정청에서의 입장은 이승만 박사와 여운형씨 입장이 상반되었는데, 미군정청은 여운형씨 주장이 한국인의 여론을 대표한다고 판단하였다.
아마 드라마 서울1945에 등장하는 박창주의 모델은 일본군인의 신분으로 판단한다면 홍사익 장군인 듯하다. 그런데, 홍사익 장군은 드라마에서처럼 항일운동가 잡는 일본군인이 아니라, 항일운동가를 수호하는 일본군인이었다. 한 장면을 서술하면 이러하다. 항일운동 혐의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이든 일본군 장교가 조선인을 체포하려 병력을 인솔하는 곳에 홍사덕 소장이 불쑥 나타난다. 그러면 일본군 장교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입술을 부르르 떨며 부동자세로 서서 경례한다. 홍사덕 장군은 "야! 풀어줘!" 한마디 던지고 지나간다. 그러면 일본인 장교들은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은 그 자리에서 풀려나 안전하게 된다. 이처럼 일제시대 때 홍사익 장군은 항일운동가들의 구명 운동을 하소연할 수 있는 은은한 희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일본 군부 내의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일본육사 동기 이청천은 조국이 한일합방되자 탈출하여 청산리대첩을 이끈 독립군 대장이 되었으며, 훗날 광복군 사령관이 되었는데, 홍사익은 일본 군부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이청천의 독립군 활동을 지원하였고, 자기 봉급을 쪼개 독립군 가족의 생계를 도맡았다.
열우당은 얼마전 친일청산법을 만들어 홍사익에게 친일반민족행위 낙인을 찍었는데, 사실 그는 고종황제에 명령에 복종하였을 뿐이었다. 홍사익은 열여섯살 때 고종황제가 자주국방의 동량을 육성하기 위해 세웠던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국권침탈 1년 전인 1909년, 일제에 의해 육군무관학교가 폐쇄됐다. 그는 고종의 명에 따라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육사 예비학교)로 적을 옮긴다. 그것이 왜 친일인가? 구한말에 나라를 지키려면 먼저 군사력을 키워야 했고, 그래서 고종의 명에 따라 일본육사에 입교한 것인데 그것이 왜 친일이었다는 말인가?
하지 중장은 "고양이 털색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냐? 털색이 달라보아야 고양이기는 매한가지니 친일 색깔을 따지지 말라"고 하여 현지국가 역사에 무지한 군정사령관으로서 미국 역사가들에게 빈축을 사고 있다. 그런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하지 중장은 가방끈이 짦았으며, 군대 업무에는 유능하였으나 사회과학적인 두뇌는 없었던 어른이었다. 그래서 좌익 진영이 제기하는 친일 색깔 논쟁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좌익이 말하는 친일이나 친일파는 영어로 번역이 안되는 용어이다. 본래 친중파니, 친러파니, 친일파니 하는 것은 나라의 주권이 있을 때 외교적 성향을 나타내는 정치외교학적 용어인데, 여운형 일행은 한일합방 이후에 태어나 자기 분야에 식견이 있거나 전문 경력을 갖춘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하였으므로 그 의미가 영어로 번역될 수 없었다.
드라마 서울1945에서는 통역이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지만 해방정국 때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일본인 영어선댕들 발음이 아주 나빴기 때문에 한국인 영어 발음이 아주 나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친일파가 Japanese 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큰 혼동을 일으켰다. 좌익 진영에서는 아주 긴 명단을 가져와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Japanese 이니 군정청 직원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하니 하지 중장이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가 일본인이고 누가 한국인인지 골치 아프게 따지지 말고 전문 경력만 보라는 말을 "고양이 털색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냐? 털색이 달라보아야 고양이기는 매한가지니 친일 색깔을 따지지 말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말 때문에 주둔군 역사에 뭏식한 군정사령관이었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런데, 친일파를 Japanese 로 번역한 이 엉터리 영어가 전범 재판에서는 일본인의 편을 들어 주었다. 강제노동 부역자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승만 박사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일본인 일본군이란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거나 수십 년 징역형에 처해졌다. 일본인들은 자기네 전범을 구하기 위해 처형 범위를 포로수용소 관련자들로 좁혀 달라고 하였고, 친일파가 Japanese 로 오역되다보니 강제노동 징병자들은 아무도 변호해 주는 이 없이 억울하게 사형당하거나 종신 징역형에 처해졌다. 조국이 해방되었으나, 이들은 조국의 무관심 속에 그늘에서 사라져갔다. 단지 포로수용소에서 강제 근무했을 뿐이었으나, 나치 포로수용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네델란드 군검사는 아주 중형을 언도하였던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 계열에서는 독립군이 한 명도 없었다. 동북항일연군이란 명칭의 중국공산당 마적대 졸개가 중국인 상관 지시로 우리 국토를 침범하여 민가를 약탈하고 동포를 죽인 것은 항일운동으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것이 공잔주의 계열에서 내놓는 항일운동의 전부이다, 드라마 서울1945 의 내옹은 순엉터리다. 공산주의 계열에서는 독립군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친일청산한다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죽일 때 일본이 손해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친일청산 열풍이 거셀 수록 일본의 한일합방 문서는 정당화되고, 한국인 징용부역자들이 일본인 전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일본인 전범들은 구명된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친일청산 열풍이 거셀 수록 그것이 외국에서는 어떻게 들리는가? 그것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다수 의사에 따라 일본 통치를 초청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친일파 개념을 너무 확대하거나 오역하여 태평양전쟁 강제 부역자들이 전범 누명을 쓰고 사형당하거나 종신형에 처하게 한 것이 친일 청산이란 말인가?
영화
2차 대전 영화(2부 3편)/ 해방된 나치 포로수용소
http://study21.org/movie/Pearl-Harbor.htm
KBS의 역사왜곡/ 뭐? 문동기가 마적단 두목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