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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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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의 진실탐구마당 칼럼 윤한봉의 위장구호에 낚인 인요한과 조갑제
역사학도 추천 0 조회 2,733 13.05.21 06:37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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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5.21 10:56

    첫댓글 저 윤한봉의 구술녹취문의 출처는 2006년 518기념재단에서 출간한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5ㆍ18의 기억과 역사' 2권에 있는 내용이죠.
    http://pr.hankyung.com/newsRead.php?no=176982

  • 작성자 13.05.21 13:42

    천추님 소중한 정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13.05.21 13:27

    아.. 빨리 사 봐야 되는데.. 아직... 이번주 내로 택배시켜야 될듯..... ㅎㅎ
    윗 글에도 나오지만......... 보십시오......... 저게 바로........... 통일전선전술식 심리전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멍청한 것들이... 겉과 속을 동일시 합니까? 이런 전술기법은....... 초등, 유아기적 왜곡기법입니다만............ 중등, 고등 선동질로 들어가면.......... 겉과 속을 전혀 이완시켜 따로 가게 만듭니다. 그래야.. 개대가리든, 닭대가리든, 고기대가리든... 다 걸려드는것 아니겠습니까?

  • 13.05.22 19:21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갔을까요? 민주화 유공이란 단어 맞지않습니다.

  • 작성자 13.05.22 19:31

    편집이 잘 되어 일베에 오른 글 http://www.ilbe.com/1263285820

  • 작성자 13.05.26 07:58

    시스템클럽 논객 한반도님의 댓글:
    내가 이 글을 보고 주목한 것은 광주에 침투했었다는 안창식 대위의 내연의 처라고 밝힌 탈북여성의 증언이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녀의 증언내용의 신빙성을 나름대로 따져볼 수 있는 검증키워드를 나는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증언내용은 서울 소재 대학가 운동권 지하조직과 연관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증언을 통하여 학창시절 운동권에 대하여 늘상 품었던 의문을 풀 수 있는 확고한 단서를 찾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제서야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증언은 그만큼 신빙성이 큰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작성자 13.05.26 08:00

    탈북자의 증언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숨겨진 이면을 밝히는데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몸소 깨닫고 나는 전율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때로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2&wr_id=42910

  • 13.05.29 15:08

    그래서 북한 특수부대원이 털었다는 소리지? 그러면 그 특수부대가 어떻게 왔는지 말 좀 해보시지?

  • 13.05.31 14:35

    윤한봉이 말한 지도부분은 " 당시에는 만 오천분지 일 지도를 가지려면 신분이 확실한 사람 외에는 그걸 못 사게 되어 있었어" 만오천분의 일지도가 아니라 오천분의 일지도를 잘못말한거 같습니다.
    당시 나와있던 민간인이 살수있던 지도는 2만오천분의 일지도랑 오만분의 일지도 (미군이 군용도로 만든)였는데.. 75년에 국립측지원에서 오천분의 일지도를 제작해서 만들었는데 (국립지리원 출범하면서) 이건 일반인이 못구하던 지도였죠.

  • 작성자 13.05.31 15:20

    오만분의 일 지도를 민간인 살 수 있었던 것이 확실한가요? 제가 알고 있던 바로는 오만분의 일 지도를 소지한 분이 화순 북면에 있었고, 그 외의 오만분의 일 지도는 미8군이 보유하였으며, 한국군은 미군의 협조로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알고 있었기에 윤한봉이 오만분의 일 지도를 만 오천분지 일 지도라고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1996년에 출판된 그의 자서전 "운동화와 똥가방" 54쪽에도 만 오천분지 일 지도라고 기록되어 있더군요.

  • 13.06.05 17:03

    네 확실합니다. 1차 5개년 경제계획때 미군이 만든 5만분의 일지도를 민수용으로 만들기위해 국립건설연구소에서 61년부터 시작해 63년에 완성해서 출판사들도 이걸 모델로 민간에서도 이걸 모델로 썼었는데 5만분의 1지도가 정확도나 이용도가 떨어져서 한화협동사업으로 2만5천분의 일지도를 66년부터 71년말까지 제작했었죠. 즉 둘다 민간용으로 쓰기위해 제작된 지도였죠. 70년대 중고등학교 지리부도봐도 서울시 지도는 5만분의 1지도였고요. (7만5천분의 1이나 10만분의 1지도도 있었슴)
    5천분의 1지도는 74~79년인데 도로망이 모두 다 나와있는 지도라 민간시판이 안되던거였다가 이게 풀린게 82년도였죠

  • 작성자 13.06.05 16:20

    유익한 정보입니다. 5.16 혁명직후 5만분의 일 지도도 민수용으로 공급되기 시작하였군요. 만 오천분지 일 지도 역시 군사작전용 지도라고 합니다. 윤한봉이 당시로서는 민간인은 구하기 힘든 지도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 점은 사실인 듯합니다.

  • 13.06.05 19:41

    만오천분의 일지도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존재하는지 조차 의문입니다. 한국경우는 일단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국가기본도가 지금도 5천분, 1만분, 2만5천분, 5만분 25만분, 60만분, 100만분, 300만분의 1지도죠
    한국 군사지도역시 미군UTM체계 따라간건데 military grid는 1:12,500(시가전용), 1:25,000, 1:50,000, 1:십만, 1:25만, 1:50만, 1:100만단위로 나갑니다. 만오천분의 일짜리도 있는데 용도가 Nautical Set (해상지도용) 이고요.
    지금도 만오천분의 일지도 찾을려해도 임상도나 오리엔티어링용지도들이고요.

  • 13.06.05 16:52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4290009921102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4-29&officeId=00009&pageNo=11&printNo=4969&publishType=00020

    82년도 기사인데 안보상 이유로 민간에 판매안되다가 민간에 판매된다는 기사죠. 휴전선과 해안선 취약지구는 국립지리원장 사전승인받아야만 구입가능하고요.

    5만분의 1지도경우는.5만분의1지도 구해서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어느 특정건물을 지도상에 표기해도.. 남이 그 지도만보고 그 특정건물 찾는다는건 힘듭니다.. 대략 어느동 어느부근에 있다는정도만 알수있으니까요.

  • 작성자 13.06.05 16:28

    잘 보았습니다. 광주사태 때 목포 해안이 뻥 뚫렸습니다. 윤한봉이 구한 지도가 해안선 취약지구를 표시한 지도였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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