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8일 덩리쥔은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하였는데 온전히 21년이 흘렀다. 덩리쥔의 명곡을
마치 나지막히 조용히 부르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세월에 거리낌없이 우리들과 함께 인생을
느끼며 삶을 되돌아 본다.
1-12까지 클릭을 하면 화면이 나옵니다
1995年5月8日 덩리쥔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한지가 온전히 스무한해가 지났다.
그녀의 노래는 중화인 중에 널리 퍼져 있는 지명도와 오래도록 스러지지 않고 널리 불려지어서
"10억명의 박수소리"
라는 명예를 차지하였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덩리쥔의 노랫소리와 멋진 자태가 함께 중국어 가요계의
커다란 흐름속에 새겨져 있어,
늘 사람을 감동시키고도 있고 ,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덩리쥔의 전설적 명곡들은 마치 구구절절 가사를 나지막히 속삭이면서, 시공과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와 더불어 인생을
깨우치며 삶을 되돌아 보는 것 같다.
“有位佳人,在水一方。”点击试听《在水一方》
덩리쥔의 예술성은 어릴 적부터 온전히 나타났다.
덩리쥔 백일 기념 사진
덩리쥔 1953年1月29日에 대만 云林현에서 태어 났으며 본명은 丽筠(리윈)이다.
어릴 적 발레 무용 사진
어린이 덩리쥔이 《小放牛》을 공연을 하고 있다.
1965년 덩리쥔이 받은 가수증명서
1965년 첫 개인 앨범을 발간하였는데, 나이가 겨우 열두 살로, 덩리쥔의 노래 인생의 전성기는
1970년과 1980년이었으며,
이 시기의 그녀의 노래 사업이 최전성기에 이르렀다.
중화인이 사는 곳에는 덩리쥔의 노래가 있다.
“今宵离别后,何日君再来”点击试听《何日君再来》
今宵离别后,何日君再来”클릭을 하면 《何日君再来》을 들을 수 있습니다
1967년 덩리쥔의 첫 앨범
70년대 초기에 동남아에서 이미 대 스타이었던 덩리쥔은 일본 폴리도 음반 회사의 사장 舟木稔의
마음에 들어서 도쿄로 가서 활약을 하였다.
제2 싱글 《空港》이 일본 음반 대상 신인상을 차지하였는데 이는 그녀가 일본에서
차지한 첫번째 상이었다.
덩리쥔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때 젊고 아름다운 모습
덩리쥔이 어릴 적부터도 대만 군 위문 공연을 하였는데 이미 당시에는 중국 홍콩 대만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지만,
여전히 도리상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가 인도네시아 여권을 소지하고 일본에
입국하여, 그녀가 추방되어
일년 간 다시는 일본에 들어 오지 못했는데 그녀는 미국으로 가기로 정하였다.
이 시기에 덩리쥔의 노래는 중국대륙에서 점점 더 인기가 올라가고 있었 다,
덩리쥔의 “十年春光”
1979년 덩리쥔은 대만 金鐘賞“最佳女歌星奖”을 차지 하였다. 2년 뒤 그녀의 5장의 CD가
홍콩에서 동시에
백금음반상을 차지 하였다.。
1984年3月28日 덩리쥔이 "10대 걸출 젊은 여성"에 선발되었다.
한시대 여성의 아름다움과 애수
“任时光匆匆流去,我只在乎你。”点击试听《我只在乎你》
클릭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노래 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랑의 선율을 불렀지만 그녀 자신은 오히려 끝내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감동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모두다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덩리쥔과 첫사랑 린쩐파, 운명적 장난
18살의 덩리쥔은 첫사랑 린쩐파를 알게 되어 빠르게 사랑의 물결에 빠져들었으며,
한때 결혼을 이야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하늘이 장난을 하여 린쩐파가 갑자기 심장병이 생겨서
싱가포르에서 사망하였는데,
불과 30여 세의 덩리쥔은 묘비 앞에서 울다가 쓰러졌다.
덩리쥔과 청룽, 끝내 아쉬움을 남겼다.
1979년 말, 덩리쥔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부를 하던 시기에 청룽을 우연히 만났는데
두 사람은 비밀 연애를 시작하였다.
나중에 이 감정은 오히려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사라지게 되었는데, 덩리쥔은 청룽의
젊고 혈기 왕성한 것을 참기가
어려웠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성격이 맞지 않아서 제각기 헤어졌다.
덩리쥔과 자기보다 14살 어린 프랑스 남자 친구
1995년 5월 8일 덩리쥔과 프랑스 국적의 남자친구 파올로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휴가를 보내는 기간에,
급성 천식이 발작되어, 중화인 세계에서 명예를 얻었던 덩리쥔의 아름다운 모습이 스러졌는데 나이가
겨우 42 살이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이처럼, 웃는 모습만이 마치 남아 있는 듯 하고 노래소리는 여전하다.
이제껏 우리들은 여전히 대 스타 덩리쥔의 깊고 바른 사람됨과 아름다운 자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삶을 잊지 못하여 다시금 그녀의 순진하고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기리고 있는데,
덩리쥔의 그 완벽한 목소리 만이야 말로 진정 "하늘이 내린 목소리"라고 할 만하다.
첫댓글 감사하게 잘보고 갑니다.
늘 우리 카페에 도움을 주시는 진캉시앤님의 숨은 조력앞에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읍니다.
오늘도 우리 鄧麗君님의 알토란 같은 자료를 올려주시어 많은 지식을 터득하고 갑니다,
내용 잘일고 보고 갑니다.
애 많이 쓰셨읍니다.
좋은자료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귀한 자료와 영상을 제공해 주셔서...감사 드립니다...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대 스타 이전에 가난했던 국민당군의 군인의 외동딸로
그 어렵던 시대에
중학교를 중퇴하며 노래 불렀어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감추지 못하였던....
개인적으로는 외로운 삶의 여정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麗筠百歲留念
려균백세류념
여기서
百歲는 百日이 되면
백세를 맞을 정도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의미로 붙이는
중국식 표현인데
아쉽게도 불혹을 갓 넘기고 서세하였네요
挺好
프랑스 파올로
나쁜 ㄴ~
덩리쥔을 결국 사망하게만든 ㄴ이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