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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계명을 지키는가 /김용천/2004.09.11.
수운대신사님이 지으신 <도덕가>의 마지막 단락에 다음과 같은 경계의 말씀이 있다.
어질다 제군들은 이런말씀 본을 받아
아니잊자 맹세해서 일심으로 지켜내면
도성덕립 되려니와
번복지심 두게되면 이는 역시 역리자요,
물욕교폐 되게되면 이는 역시 비루자요,
헛말로 유인하면 이는 역시 혹세자요,
안으로 불량하고 겉으로 꾸며내면 이는 역시 기천자라.
뉘라서 분간하리 이같이 아니말면
경외지심 고사하고 경천순리 하단말가
위의 말씀 중, 중간 부분 4행(고딕부분)을 4대 계명(四誡命)으로 정하여 교단에서는 정심(正心)으로 수도하는 교인들에게 신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실천덕목으로 권장하고 있다. 60년대 말, 최 덕신 교령이 취임하여 교단중흥을 위하여, 온 교회와 교인의 힘을 합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독실한 신앙생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상생활에서 사계명을 지켜 존경받고 타인에 모범이 되는 천도교인이 되자는 취지에서 사계명을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과 교당 전면에 게시하여 항상 마음속으로 새기고 실천에 힘쓰도록 했다. 그 후 일부 교구에서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강화하기 위하여 시일식순에 넣어 시일식 참석 교인들이 모두 입을 모아 병창하게 되었다. 지금은 식순에서 주문 21회 병창과 함께 사라졌다.
필자의 실험적인 풀이. - 매사에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쫓아 자신만의 이익을 얻으려고 변덕스런 마음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은, 천리를 거스르며 사는 사람이고, 세속적 욕망(재물과 명예 등등)에 싸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과 행동을 고상하게 하지 못하여, 품위가 없는 천박(淺薄)한 사람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온갖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교묘히 속여, 해치는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천리를 속이는 사람이고, 안으로는 한없이 불량하면서 겉으로는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꾸며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한울님을 속이는 사람이다.
사계명이 담긴 「도덕가」 전편(全篇)에 담겨 있는 수운의 정신은, 이 세상 사람들은 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연이치인데, 오랜 세월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경천순리(敬天順理)를 잊고 살아 세상이 어지러워졌음을 개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도인들은 지난 세월의 사람들이 천리를 거스르며(逆天命逆天理) 살아, 세상이 황폐(荒弊)해지게 된 이치를 깨달아 잘못된 생각과 행실을 버리고, 올바른 생각과 실천을 통하여 성현에 가까운 군자 즉 품위가 있고 도덕적이며 인간다운 인간, 바로 한울의 성품(天賦의 天性/稟性을 갖고 태어나 그 성품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는 한울 사람이 되자는 것에 있다.
이 시점에서, 사계명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혹시 우리들 중에 남에게는 당당하게 천도교인이라고 큰소리치면서, 돌아앉아서는 흔해빠진 타락하고 천한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 웃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만약 있다면, 그를 어떻게 동덕이라 부르며 우리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가? 거짓된 삶을 살면서 참된 삶을 사는 척 교묘하게 꾸며대는 그런 사람이 진정 신인간인가? 선천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는 타락한 사람인가? 내가 본받고 싶은 올바른 삶과, 남을 감동시킬 언행일치가 그립다. 원론적이고 솔직한 심정으로 말한다면, 모든 종교에 있어서 제시하고 있는 계명준수(誡命遵守)로 말한다면,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그 모든 계명을 완벽하게 준수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계명은 어디까지나 상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실천궁행(實踐躬行)하여야 할 덕목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나 오래된 종교(旣成宗敎)일수록 고대사회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 가치에 상반된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복잡하고 다원화되어 있는 현실사회에 있어서 계명준수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의 사계명도 이런 기본적인 범주(範疇)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후천개벽에 앞장설 천도교인은 계명준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실천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無窮我)가 될 수 있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농경사회에 있어서 모든 것을 천리에 따라 살아가던 시대에선, 사계명의 준수는 가능한 부분이 많지만, 오늘과 같은 복잡하고 다원화된 기술, 산업사회에선 사계명의 준수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러므로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사계명의 준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어 신앙에서 멀어지고, 심한 경우 종교를 떠나 편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찾는다. 그러나 거짓되고 교활하며, 매사에 의도적으로 남을 기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면서 준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것도 못 지키느냐"고 비아냥거리며 나만이 진정한 교인이라고 큰 소리쳐 남을 부끄럽게 한다. 사계명을 어디서나 언제나 끝도 없이 어기면서도 탁명교인(托名敎人)이 아닌 척 꾸며대는 사람들의 의도가 천도교 발전을 위한 대안인지, 진정 그들이 가고자 하는 세상이 지상천국인지 묻고 싶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자리에 시천주(侍天主)가 있고, 오심 즉 여심(吾心卽汝心)의 마음으로 인내천의 참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시시 때때로 자신에게 편리하고 유리한 대로 수도 없이 사계명을 어기며 살면서, 자신도 기만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거짓된 것이라고 비웃기까지 하면서 독실한 천도교 교인 척하는(아주 교활한 탁명교인) 거짓된 삶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천부적(天賦的)으로 타고 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다 같이 각자 자신들을 돌아보고 반성해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사계명을 지킬 생각이 있어야 하며, 사계명을 온 정성을 다하여 몸소 실천궁행하겠다는 것을 다짐해야 한다. 사계명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매사에 말과 행동을 한결같이(言行一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행일치가 되었다는 것은 도성입덕(道成立德)의 군자 사람(道人 또는 독실한 천도교인)의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며 한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리석게도 사계명의 참 뜻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남 앞에 서서, 가장 독실한 신앙자이며 교단의 지도자라고 허풍을 떠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 애당초 사계명을 지킬 생각도 없으면서 천도교는 이런 종교이며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천도교인이라고 떠벌리는 사람을, 우리는 눈여겨보고 경계해야 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직접 그런 사람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하나하나 사계명 준수여부(遵守與否)를 꼼꼼히 살펴 스승님의 이름으로 거짓되고 꾸며진 삶을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 다시는 독실한 신앙자이며 지도자란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다시는 교단과 교인들 앞에 서서 잘못된 교인이나 지도자가 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 속에 아주 교활한 탁명교인과 지도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교단은 날로 황폐해지고, 역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부분 수정 보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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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유명인들의 기독교(西學)에 대한 평가들./參考 應用. -1.만 인용하고 -2.는 생략함.
인터넷에서 발췌한 글들로, 오늘날과 같은 빛나는 인류문화를 이룩하도록 세계를 이끌어 온, 동서양 인류의 최고 지성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오늘의 종교는 어떻게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이며 올바른 신앙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대표적인 글들을 모은 것이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일부의 평가는 출전이 밝혀지지 않은 글이 있다는 점이다. 출전이 명확히 밝혀져 전후 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의도를 두로 살펴, 그 평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되어 인류가 모두 힘을 합쳐 현재와 미래에 대한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간에 행복한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여 인류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사례를 주로 다루는 것은, 한 종교를 비판하려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오고 신앙해온 기록인 세계사와 종교사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함으로서 막대한 영향을 끼쳐 오늘날의 세계사와 종교사의 주축으로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사례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논의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건방진 확신에 차게 만드는 것이 종교이다. 종교는 지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나 극히 해롭다. 기독교 근본 교리는 수많은 윤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어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러셀
정확하게 읽는다면, 기독경(바이블)은 무신론을 확신하게 만드는 안내서이다. -아시모프
한사람이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하고,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종교는 집단망상이다. -프로이드
정치는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갔지만 종교는 그 보다 열배는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숀 오케이시
바이블은 유치하고 야만적인 전설의 집대성이다. -아인슈타인
기독교인들은 미개한 최면술과 기만 속에 살고 있다. -톨스토이
우리 학교에는 신학교수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인류가 만든 가장 타락한 시스템이다. -토머스 제퍼슨
나는 신의 본질, 개념을 믿지도 않으며 존중하지도 않는다. -토인비
기독경을 볼 때 나는 항상 장갑을 낀다. 추잡스러운 기독경을 만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믿음이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니체
종교는 아편이다. -맑스
종교는 인민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사회를 퇴보시킨다. -모택동
모든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무신론자들이다. -헤밍웨이
차라리 등대가 교회보다 훨씬 유익하다. -프랭클린
종교 없는 세상이 최고의 세상이다. -존 아담스
종교란 평민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인들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에게는 유용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세네카
신앙이란, 증거가 없이도, 심지어는 반대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다. 종교는 선한 사람들조차 악한 일을 하게 만든다. -스티븐 와인버그
모순도 믿는 자들이라면 결국 극악무도한 일도 저지르고 말 것이다. 상식이 있는 자라면 기독교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볼테르
종교란 피에 흐르는 독이다. -살만 루시디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위한 행위에 매진할 때 보다 더 완벽하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 -버나드 쇼
(인도의 <우파니샤드>를 읽고 나서) 아 이렇게 내 마음에 붙어 있던 유대인의 미신을 깨끗이 씻어주다니! -쇼펜하우어
지식과 역사는 종교의 적이다. 그러나 종교는 반대자들을 잠잠하게 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나폴레옹
종교는 어리석은 것인 줄로 알았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종교는 악한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
종교가 인류를 퇴보시키고 있다. 인류의 장래를 위하여 종교(특히 기독교)는 제거해야 한다. -에드워드 윌슨
내 아버지가 무신론자였다는 사실이 내게는 최고의 행운이다. -제임스 왓슨
신앙이란 거짓을 억지로 믿는 것이다. 만일 예수가 지금 산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절대로 기독교를 믿지 않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
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정의를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가장 결정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명실상부하게 인류의 노예화를 초래한다. -미하일 바쿠닌 <신과 국가>
마을마다 시대를 밝히는 횃불(교사)과 그 불을 끄는 놈(종교업자)이 있다. -빅토르 위고
종교, 특히 기독교는 사기이며, 종교조직은 사기조직, 범죄조직에 가깝다. - 보통사람들 생각
루터는 '이성은 창녀'라고 했다고. 결국 종교는 무지와 무조건적 믿음이라는 가면을 써야 한다. 요즘 종교는 탐욕공동체로서 서로의 이익과 욕심을 상부상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무늬만 천도교 교인/2008.08.12.
/부제 ; 나는 천도교를 올바르게 알고 신앙하는 교인인가?
지금 교단내외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일련의 사태로 인하여, 마음 아파하시는 전국에 계신 모든 동덕님들께서 그간 한울님을 모시고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에 자주 들려 자료를 이용해주시고, 저에 대한 염려와 격려를 해주시는 덕분에, 건강하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도교는 어떤 종교인가?”란 대 명제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21C에 걸 맞는 종교로 재탄생하여, 새 역사의 창조와 선구자가 되기 위한 자질향상과 대안을 설정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급변하는 역사의 길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천도교의 위상은 어떻게 정립되어 있는가를, 그리고 천도교가 21C에 걸 맞는 종교이며 급변하는 역사의 수례를 이끌고 나아갈 선도자적인 우리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가를?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특히나 우리들 중에, 동학과 천도교에 대해서 잘 알고 신앙한다고 호언장담하고 계신 동덕님들께서는, 나는 동학과 천도교를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는가를, 스스로 자문자답해보고 자신이 올바른 천도교를 신앙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나는 ‘동학과 천도교가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가? 와 “인내천의 의미와 인내천이 천도교의 종지가 된 이유와 천도교의 종교적 4 대 목표설정의 의미와 구체적인 실현방향과 강령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신앙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혹시나 나는 동학과 천도교를 잘못 알고 수련수도하고 신앙하며,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내 나름의 잘못된 잣대로 다른 동덕들을 비난하거나 비하한 적이 없었는가? 를 돌아보십시오. 만약에 위에서 주어진 문제들의 진실에 대한 확고한 답을 알지 못하고 수련수도를 하고 오관실행을 했다면, 그 동덕은 ”무늬만 가진 천도교 교인“일 것입니다.
註 000 ; 布德 46(1905)年 12月 1日의 大告天下의 全文. 大告天道敎出顯 道則(雖)天道 學則東學이니 卽 古之東學이 今之天道敎라. 宗旨는 人乃天이요, 綱領은 性身雙全 敎政一致요, 目的은 輔國安民 布德天下 廣濟蒼生 地上天國建設이요, 倫理는 事人如天이요, 修行道德은 誠敬信이다.’
그런 부류들은 스스로의 잣대로, 자신의 주장과 논리에 찬동이나 동조를 하지 않으면, 천대하고 인간취급도 하지 않으면서 인내천을 말합니다. 성, 경, 신을 말하면서, 비 종교인들도 하지 않는 입에 답지 못할 욕설과 위아래가 없고,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도 없으면서 인신공격을 밥 먹듯이 하고도, 자신만은 진정한 동학의 후예이고 천도교인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런 분들은 수도수련의 후덕(厚德)함도 없고, 이론(異論)과 반대자의 대한 폭 넓게 수용하는 도력(道力)도 없고, 오직 있는 것은 적과 나(敵, 我)에 대한 기막힌 분별력(分別力)과 적개심(敵愾心)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인내천(人乃天)이고 적군들은 드디어 인내천(人乃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동귀일체(同歸一體)를 말하고 균형(均衡)과 조화(調和)를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천도교의 모습인가요. 다음은 현재의 천도교와 미래의 천도교에 대한 깊은 사념(思念)에 빠져 고민하시는, 어떤 중견 교역자에게 토로(吐露)한 내용입니다. 동덕 여러분께서도 자신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자문자답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중견 교역자에게 토로한 내용 요약.
제가 경전을 통해 공부한 결과 스승님께서 후학에게 물려준 진정한 동학과 천도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천도교에 대해 말하고 믿고 있는 것은, 허상이란 뜻입니다. 단적으로 지금의 천도교가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동학과 천도교라면, 경전에 담겨진 사상이 뚜렷하게 발로되어야 하고, 천도교의 종교적인 종지와 4 대 목표와 강령이, 현실의 절대절명(絶對絶命)의 궁극적인 목표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천도교는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을 스승님의 의도와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동학과 천도교가 아닌 유사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단이나 교역자들이 모여 천도교의 종교적인 종지와 4 대 목표를 깊이 토론하고, 이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마다 다른 천도교를 말하고 있는 해괴(駭怪)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종단 원로나 교역자들에게 인내천의 의미와 종지가 된 이유와 천도교의 종교적 4 대 목표설정의 의미와 구체적인 실현방향과 강령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면, 묵묵부답(黙黙不答)이거나 횡설수설(橫說竪說)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이런 분들이 어떻게 원로가 되고, 교역자가 되며, 연원의 우두머리가 될 수가 있는 것인지 걱정이 앞 설 따름입니다.
또 각 종 동학관련 학술 발표와 토의 또는 토론회에서 동학 천도를 잘못 연구하여 발표하는 학자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허다하고, 잘못된 것을 몰라 질문이나 항의를 하는 교역자들이 없고, 아예 모르니까 학술발표회에 참석하지 않는 중앙총부의 교역자는 물론, 일반교역자가 태반입니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동(東)’자나 ‘천(天)’자만 들어도 동학과 천도교라고 알아듣는 놀라운 교역자들의 태반은, 학자들의 잘못된 연구발표를 무조건 수용하고, 발표 논문에 노예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단 내의 몇몇 안 되는 연구자들의 연구에 대하여 아예 무시하거나 그 사람의 성향을 바탕으로, 논문내용과는 관계없이 뒤에서 패거리를 지어 비난하는 한심한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주체적(主體的)인 인간(人間)이 되라’고 누누이 말씀하고 강조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의존적(依存的)인 인간으로도 모자라 추종적(追從的)인 인간이 되었는지 매우 개탄(慨嘆)스럽습니다.
한 조직의 중심인물들이 그 조직의 종지와 종교적 목표와 강령을 횡설수설할 뿐만 아니라 모른다면, 그 조직은 살아 있는 조직이 아니며,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조직으로 수없이 변화하는 조직이 되어 발전의 탄력(彈力)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이런 조직은 죽어가는 조직이 되는 것입니다. 천도교가 바로 죽어가는 조직의 대표적인 조직이라고 단언해서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더욱이나 천도교에서는 ‘사람을 한울님처럼 모시라’고 떠벌리면서 교인들 간에 인간관계는, 사람대접도 하지 않는 막가는 무리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순간에, 그들의 신앙연한과 수련과 교단의 직위와 관계없이 천도교 교인이 아닌 시정잡배에 불과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하 생략.
어떤 사태를 수습할 때에는 수습방안도 좋아야 하지만, 수습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견과 이에 대한 해결방안도 같이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성패가 조직의 사활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의에 대한 오해와 반대와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이용하는 무리들을 경계하는 것도 함께해야 합니다. 수습안(收拾案)에 대한 찬성과 반대에 대한 주장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반대이론은 숨어 버리고 찬동일색일 때는 편중(偏重)된 경향인가? 아닌가? 를 심사숙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의와 다르게 순수성이 어느 편의 찬동이나 반대의 행태로 이용당하면, 그런 수습안은 실패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골이 깊게 파히는 양분(兩分)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진정한 천도교 교인이라면, 수운심법에 참뜻을 이해해야 하고, 그 사상위에서 언행(言行)을 해야 하고 신앙을 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에 오른 갑론을박의 논쟁은, 천도교의 균형과 조화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찬, 반 양론의 주장을 하는 동덕들이 모두 다 훌륭한 천도교 교인이라고 대접을 받으면서, 웃으며 대하는 것이 수운심법의 본질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언행에 조심하는 분들이 진정한 천도교 교인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수습중이거나 수습된 후에, 이 일로 인해 서먹서먹해지거나 만나고 싶지 않고, 적, 아로 구분해서 패거리를 짓는 일들이 동덕 간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찬, 반을 떠나 웃으면서 서로 간에 안부를 묻고, 천도교의 장래를 걱정하는 열정적인 동덕으로 껴안았으면 합니다.
끝으로 잘못된 말이나 주장이 있으면, 넓으신 도량으로 이해해 주시고 모든 동덕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멀리서 한울님께 진심으로 심고를 드립니다. 끝./수정보완을 하였음.
지금 천도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지금 천도교는 이돈화이후 새로운 교의정립을 하고 있으며 하였는가?
2. 교단의 공식 입장을 밝힌 경전의 해설서나 신간도서 출간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3. 교단의 유일한 교역자 양성기관으로서 종학대학원의 교과과정이나 역할에 대하여 반성해본 적이 있는가? 각 지역에 설립되어 있는 10여 개의 수도원들이, 총부가 결정한 교단사업의 실현과 수도연성이 수도원 일과와 통일되게 운영하고 있으며, 긴밀한 논의위에서 운영되고 있는가? 종학대원과 수도원에서 해당과정을 이수나 수료한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나 지도력을 갖춘 교역자나 신실한 교인이 되어 있으며 그들의 노력들이 교단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 지 해당 기수별, 연도별로 파악하고 분석해본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
4. 필자가 교단을 떠난 1973년 이전에 총부가 문공부에 매년 교역자와 교인수를 보고할 때, 수년간 필자가 하였는데 교단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해에 교역자 수 1만여 명이었고 교인수는 100여만 명으로 보고하였다. 지금의 교역자 수와 교인수를 대비해 보면 천도교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운회관을 지으면 마치 중흥의 시기가 도래했고, 찬연한 중흥이 될 것이라고 기뻐했던 그 이후, 교령들과 원,주직을 맡았던 교역자들은 매년 줄어드는 교단의 사정을 보면서 무엇을 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물러났을까? 매우 궁금하다. 1만여 명의 교역자와 100여만 명의 교인들이 불과 반세기만에 사라졌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없이, 인계 인수도 할 것 없는 퇴행(退行)한 교단을 물러주면서 부끄럽고 참담했다는 교령이나 교역자가 있었다는 풍문이라도 들은 바가 없다. 지금 2022년 여름을 지나면서 교역자와 교인 수는 얼마인가? 없는 교단의 재산을 나누어 먹어 엄청난 빛만 남겨놓고 초연(超然)히 사라졌다는 것일까?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인가?
5. 필자가 본, 1989년 12월에 간행된 『韓國社會와 宗敎』/韓國宗敎協議會 篇 PP.328-339.의 최동희 교수가 집필한 「내일의 韓國社會와 天道敎」에서 교단 최초로 종교관련 서적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하게 1989년 4월에 발표한, 천도교단의 주요과제와 방향 및 지침(안/PP,333-339)을 인용하고 있는 데, 여러분들 중에 금년도나 내년도(2023년도)의 총부사업계획안이 있다면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오늘에 이르러 무엇이 달라졌으며 사업내용이 확대되었는지, 축소되었는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서 적나라(赤裸裸)하게 천도교의 퇴행과 발전의 진면목(眞面目)이 보일 것이고 미래로 갈 수 있는 꿈이나 망상(妄想)이 있을 것입니다.
■ 참조 ; 천도교회의 주요과제와 방향 및 지침(안/PP,333-339) 요약
수도연성의 시행지침(안) - 13개 항으로 세분됨.
포덕, 교화지침(안) - 5개 항으로 세분됨.
종학원 운영지침(안) - 3개 항으로 세분됨.
교리, 교사 연구 및 출판문화 활동지침(안) - 14개 항으로 세분됨.
생략.
생략.
민족통일과 전위조직 및 부문단체 부설기관 육성지도지침(안) - 5개 항으로 세분됨/이어 1980년대의 신앙과 수도의 방향, 전교와 문화활동의 방향, 민족통일의 방향에 대하여 활동과 전망에 대하여 짧게 기술하고 마무리를 지었다./1989년 7월 7일 탈고.
===============================================大尾/포덕 163(2022)년 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