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04시 30분 기상.
< 사진 : 21일 밤을 편안히 묵은 미타팝 호텔 >
새벽 5시 30분에 있는 탁밧 구경을 하러 나오며 위 사진을 찍었다.
탁밧은 스님께 공양을 드리는, 또는 스님이 공양을 받는 일이다. 국민들의 80%가 불교 신자여서인지, 스님들을 대하는 정성이 지극하다. 우리 팀원 중에 탁밧 체험을 신청한 사람들은 돈을 얼마씩인가 냈는데, 탁밧에 쓸 음식을 호텔 식당에서 그만큼 준비해 주는 것이었다. 더운 지방이라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다소 한기를 느낄 정도의 날씨다. 얇은 패딩이 딱 어울릴 정도의 날씨라면 맞을까?
5시 30분이 가까와지자 절 안에서, 또는 어딘가에서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하나 둘 공양을 준비한 신도들 앞으로 걸어나온다. 맨발이다. 길에 유리조각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되지? 괜히 걱정이다. 스님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스님께 음식을 드리러 나온 사람들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스님들이 찻길 옆 인도에 자리잡은 탁밧 체험객 앞 까지 왔다. 신도들은 앞으로 지나가길 기다려서는 주먹밥 모양으로 뭉친 찰밥과 사탕 등을 하나나 둘씩 스님의 그릇에 담아준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연중, 아니 평생을 그렇게 하자면, 참 극락왕생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사진 : 탁밧을 하는 스님과 불자들 >
사진 설명 : 맨발로 탁밧에 나온 스님들의 행렬. 물론 탁밧 체험 신자들도 모두 맨발이다. 우리 팀원 중의 체험객들은 도로 옆 인도 바닥에 각자 가지고 온 매트를 깔고 목욕 의자 비슷한 걸 놓고는 그 위에 앉아 있다. 현지인 불자들은 매트 위에 맨발로 무릎 꿇고 앉아서 탁밧을 한다. 스님과의 대화는 금지돼 있지만, 어떤 현지인 아주머니는 안면이 있는 스님인 듯 이야기를 했다.(아마 자기 아들인가?) 새벽이라 빛이 부족해서 그런지 사진이 많이 흐리다. 불이 켜진 건물은 사원의 일부.
준비 된 찰밥이 좀 많아 우리들의 다른 일정 시간이 돼 가는데도 찰밥이 남는다. 그러자 우리의 영리한 탁밧 체험객들은, 관람객인 우리들에게 막 나눠 준다. 맛있다며, 먹어 보라며. 나는 숙소에서 못 나온 아내 갖다 주려고 주먹 찰밥 세개를 비닐 주머니에 챙겼다. 탁밧을 잘 못 알고 많은 사람들이 탁발로 쓴다. 심지어 여행사의 홈페이지에서조차 탁발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정확하게 탁밧(Tak Bat)이다. 언제부터 어떻게 탁발로 잘못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탁밧이다.
이어서 새벽 재래시장 구경을 간단다. 아직 어두워서 물건들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다. 과일 중의 왕이라는 잭프룻을 폰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 사진 : 새벽 재래시장에서 만난 과일 중의 왕 잭프룻 >
가이드는 아주 작은 바나나를 산다. 마음 속으로, 음, 아마 우리 팀원에게 줄 선물인가보다 했다. 나는 충동구매를 정말 잘 하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물건 구입이 망설여졌다. 물가가 너무 싸서 많이 사면 어쩌나 걱정하였는데, 오히려 싼 만큼 더 싸게 사려는 경쟁심이 생겨서 반대로 구매를 안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재래시장 구경을 하고 호텔로 오니 혼자 남아 있던 아내는 심심하고 궁금했던지 호텔 식당께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마음이 짠~하다. 아침은 볶음밥과 죽이 주메뉴였다. 현지 음식인데도 입맛에 딱 맞아서 잘 먹었다.
아침 8시, 방비엥을 향하여.
고산지대를 통과하여 라오스 중부 쯤인 방비엥으로 이동한다는 가이드의 안내. 이동 도중에 몽족들의 생활상을 많이 볼 수 있다고. 우리 팀들은 스타렉스 차량 두 대에 8명씩 나눠 타고 갔다. 15인승이었나? 맨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차가 워낙 털털거려서 몹시 힘들었을 거다. 나는 이 시간에 이동할 때는, 다행히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서 편안한 이동을 하였다. 한 번은 맨 뒷자리에 앉아서 이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내심 공평한 자리 배정이다 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뒷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들의 '불평 아닌 불평'이 살짝 들렸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계속되는 가이드의 설명 _ 산비탈에 희끗희끗한 마른풀처럼 생긴 것들이 벼이삭을 거두고 난 벼의 줄기라는 거다. 라오스에서는 산비탈에도 모내기를 한단다.
< 사진 : 그냥 이동 중에 찍은 산. 이런 산에도 모를 심는다니 . . . >
그리고보니 모내기를 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산비탈에 있었다. 그런 '논' 중에 일부에는 집을 나온 소들이 짚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산비탈에 모내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산비탈의 토양이 모두 진흙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니 우기에 비가 오면 그 수분이 마를 새도 없이 또 다음 비가 오고, 또 땅은 진흙이라서 물을 잘 보관하기 때문에 늘 땅이 젖어 있으므로 비탈진 산에서도 벼가 생육이 되는 것이다.
라오스의 소들은 신기하게도 고삐가 없다. 코뚜레 또한 없다. 그러니 당연히 고삐가 없는 것이다. 고삐가 있는 소는 한 마리도 못 봤다. 도로에서 지나가는 소들의 행렬은 더러 보았지만 모두 야생의 소처럼 그냥 소다. 이 라오스의 소들은 아침에 대문을 열어주면 대문 밖으로 출근해서 천지를 돌아다니며 짚풀이랑 풀을 뜯어 먹다가 저녁에 집으로 퇴근을 한단다. 거 참 영리한 소들이로고.
도중에 가끔 장례식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노지에서 바로 화장을 하는 것이었다. 길다란 나무를 얼기설기 얽어놓고는 그 위에 시신을 얹고 태우는 모양이다. 불을 지핀 장례식은 우리의 이동 시간과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보지 못하였다. 불교문화권이라 그런지 장례식의 엄숙한 분위기가 차 안까지 전달이 되는 것 같았다. 슬픔 같은 것은 전해오지 않았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라오스는 겨울인데도 따뜻한 기후 덕분에 건기인 지금 평지의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곳도 두어 군데 있었다. 어쩌면 참 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매체에서 선정했는지 여행 버킷리스트 1번에 라오스가 선정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 1번에 라오스가 선정되었다는 것.
산으로 산으로 오르막길만 치닫던 차가 드디어 산 능선을 넘는 고개에 다다른다. 오전 10시경, 2000 고지. 부비앙파라는 곳이다. 두어시간을 달렸으니 화장실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화장실은 유료란다. 1인당 2천킵. 1불 8천킵이니 1불로 4명이 화장실을 갈 수 있다. 내가 1불을 내고 일행과 팀원 중 1명 등 4명이 소변을 했다. 유료여서인지 화장실은 나름대로 깨끗했다. 우리나라의 유료화장실 시절이 생각난다.
< 사진 : 부비앙파 고지의 유료화장실(흰색 지붕) >
사진 설명 : 휴게소인듯 휴게소 아닌 휴게소같은 부비앙파
우리 팀은 위 사진을 찍은 사진사의 등 뒤쪽에서 이곳으로 올라왔다. 유료화장실 뒤쪽에 이 고개를 넘어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동을 하는데 채 10미터도 안 내려가서 우기에 도로가 떠내려가버려서 우회도로를 낸 구간이 나온다. 보수공사 중인 곳은 아찔한 비탈이다. 거의 절벽 수준의. 그로부터 또 2시간을 구불구불 구비구비 돌고돌아 내달린 끝에 마침내 방비엥에 도착하였다. 루앙프라방->방비엥 간의 신도로로 이동한 것이다.
< 사진 : 라오스 국내에서의 이동 경로 >
11시 50분 드디어 하차. 스타렉스를 떠나 이번에는 화물차 적재함에 승객석이 만들어진 툭툭이를 타고 이동한다. 버기카, 짚라인, 카약 등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 것이다.
< 사진 : 툭툭이에 앉은 일행 >
사진 설명 : 화물차 적재함에 지붕을 씌우고 바닥에는 양쪽에 길게 한줄씩 의자를 놓았음. 이런 사양의 차는 우리나라 우시장에서 소를 실어나르는데 많이 쓰인다. 툭툭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