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많다고, 안 읽는 책은 버려라, 이제는 버리고 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냐.
내 방 책장을 볼 때 마다 아내가 하는 말이다.
아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버려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버려라'를 '비워라'로 듣고 싶다.
그러나 비우거나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대로 두고, 내 손만 떼면 될 일을, '버린다'는 행위를 꼭 해야만 버리는 것으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나처럼 하는 일이 많지 않은 사람을 보고 '버려라 버려라' 하는 사람들에게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다.
정말 그들이 버린 것은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진심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내 좁은 식견으로 생긴 근시안적이고 아전인수 격인 해석인지 모르겠으나, 버려라, 비워라 하는 사람들이 버린 것은 무엇이며, 그들은 정말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얼마나 버리고 비웠는지 궁금하다.
오랫동안 수양을 해서 경지에 오른 스님이야 물론 비울대로 비운 분일 게다. 또한 비슷한 경륜의 신부님들 또한 비울대로 비운 분이리라 믿는다.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이면서도 남 몰래 비울대로 다 비운, 그래서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는 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지식이나 과학적인 판단에서야 '이렇다, 저렇다' 라며 강하게 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래라, 저래라'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평생을 교단에 서면서도 내가 과연 저들을 가르칠만 한 그릇인가 늘 자문해 온 터라 교단을 떠난 지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는 하지 않았다. 나에게 행동의 방향을 물어오지 않는 한 그러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가르치려 든다. '버려라, 비워라, 비우며 살아가야 된다' 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