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文貞公)은 말한다
/ 만은(晩隱) 김종원(金鐘元)
내 아들딸들아!
삼복더위도 이기고 찾아와
너무 반갑고 고마워.
올해는 무술년(단기 4351년, 서기 2018년)
나 태어난 지 팔백칠 년, 이승을 버린 지 칠백사십 년
동성동본(同姓同本)은 백대지친(百代之親)이야
1대(代) 30년이면 100대(代)는 3000년
그 긴 세월도 한 할아버지에서 나왔지.
수백 촌수(寸數)가 되어도 모두 가까운
일가(一家)들이 되지
너희들은 팔백 년 밖에 안 된
사랑스런 내 아들딸
나는 전라도 부령현(扶寧縣) 농촌
한미해진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 벼슬 따라 개경(개성)에서 자랐지.
훌륭한 스승을 찾아
양식과 책을 싸 들고
몇 백 리 길
서경(평양)까지 달려갔어.
진땀이 흐르고 지치고 너무 힘들었지만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었어.
지금 생각하니 팔백 년 뒤 너희들에게
자랑스런 조상이 되고 싶었나 봐.
열두 살에 성균시(진사시)에 급제
신동(神童) 소리가 들려왔을 때
세상에 내가 제일인 것 같았어.
스승은 나를 차분하게 다독였지
“기다려라, 서두르지 마라.”
그 때 나는 알았지.
가르치고 기른다는 것은
격려하며 술독의 술 익는 날 기다리듯
기다려 주는 일.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듯
아들딸도 재능이 달라 그렇다는 것.
다시 미친 듯 배움의 칼을 가니
동양 고전(古典)의 갈대밭은 옥토로 변해
글짓기 농사를 십 년 더 정성껏 지었지
지성이면 감천,
학문의 탑은 우뚝 솟고 익어
하과(夏課) 때마다 글짓기에 나를 이길 사람이 없었어.
“김구(金坵)가 반드시 장원급제할 것이다.”
글벗들은 외치곤 했지.
스물두 살에 문과에 2등으로 급제
과거시험관 정숙공(貞肅公, 金良鏡)이 말했어.
“여보게, 사실은 그대가 장원이야,
내 의발(衣鉢)을 전하려 2등으로 한 거야.”
의발전수(衣鉢傳授) 고사(故事)의 꽃
고려 개경에 눈부시게 피었지.
나는 큰 뜻을 품었어
정숙공처럼 재상이 되어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살맛나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
제주판관 시절 돌을 모아
밭둑 경계를 확실히 쌓는 일도
강화도에 삼랑성을 쌓고 임시대궐을 짓는 일도
외교문서에 정성을 들이는 일도
몽골 침략에 분노하는 시를 쓴 것도
통문관 설치로 외국어교육을 처음 실시한 것도
모두 배달겨레 기 펴고 살게 하려는 뜻
내 아들딸들아,
스스로 재능을 발견해
어떤 분야든 나처럼 한 십 년 파고들면
세상을 꽃피우는 전문가가 될 거야.
인생은 농사야
그대들은 인생의 봄
봄에 부지런히 씨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김매야
가을에 거둘 게 있지.
사람다운 입신(立身)의 길
효제충신(孝悌忠信) 예의염치(禮義廉恥)
책상 위에 써 붙여놓고 날마다 명심하면
훗날 세상 사람들이
“문정공 지포 김구 선생 자손들이야!”라고
일컫게 되리.
아득한 훗날 그대들은
인류문명을 찬란히 밝힐
배달민족의 큰 조상이 되리
만 년을 꽃피우고 열매 맺힐
거목의 뿌리가 되리.
내 아들딸들아!
삼복더위도 잊고 찾아와
더욱 고마워.
(2018.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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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공(文貞公) : 고려 후기의 문관이자 문인 지포(止浦) 김구(金坵, 1211∼1278)의 시호.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이규보, 최자, 김구(金坵) 세 사람을 고려후기 3대 문인으로 일컬음. 저서에「지포집(止浦集)」이 있음.
* 이 시는 필자가 부안김씨서울종친회(회장 김삼철) 요청으로 2018년 8월 11일부터 8월 12일까지 1박 2일 동안 청소년 뿌리교육생을 인솔하고 부안김씨 중시조인 문정공 지포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 김종원, 1949년 전북 장수 출생, 호 만은(晩隱), 연세대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 석사, 서울특별시 중등 국어교사, 교육청 장학사, 대영고 교감, 신화중 교장, 경동고 교장 역임 국가교육공무원직 정년퇴임. 시, 시조, 수필 등단,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 부이사장, 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감사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성동문학」창간,「한국시조문학」주간. 강서문학상, 세계시가야금관왕관상,문협이사장상,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장상 수상,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 국가유공자 등록 수훈, 시집「당신을 알고부터」등 6권, 저서「金坵詩文硏究」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