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庵禪師 舍利塔碑
諸相이 虛妄하다고는 하나 釋迦佛이 涅槃하신후 많은 五色舍利가 나와 分布 奉安 되고 있다. 그 뒤로부터 佛門에서 戒定慧로써 6 바라밀을 다하고 가신 大德 들께서도 舍利는 어쩌다가 나오곤 하였다. 마음에 걸림이 없이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衆生을 敎化 하셨던 동암선사께서는 道人의 無說說이라도 하듯 여러 모습의 사리 132顆를 남기셨다.
本是 一切色은 물론 諸法 조차도 空하다고 하겠지마는 後學들은 禪師의 法問을 되새기며 行을 본받을려는 애틋한 마음에서 사리탑비를 세워 길이 獻香하기로 하였다.
禪師께서는 1904년 7월 26일 平北 熙川 元興里에서 父 密陽 朴씨 鳳梧 母 崔慶吾氏의 次男으로 出生 俗名은 承洙 法名은 性洙 法號는 東庵이다.
남달리 聰明하여 普通科程의 新敎育을 마치고는 日帝와의 抗爭에 加擔하였다가 묘향산 普賢寺에 隱居함이 佛門을 두드린 因緣이 되었다.
1921년 3월 15일 楊洲 奉先寺에서 成印 潭老師를 恩師로 得道 하였으며 翌年 서울 大覺寺에서 白龍城 禪師로부터 法號를 받으셨다.
日帝 彼侵의 暗黑이 連續된 1925년 이후 10년간을 한때 金剛山 長安寺에서 震虛율사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한 후에는 줄곧 祖國의 獨立運動으로 上海 北間島 日本등지에서 젊은 義國 心血을 傾注 하셨음은 特記할 일이다.
奉先寺에서 大德 法階를 받은 1934년 後로는 解放前까지 江華 普門寺 住持로 있으면서 그後로는 主로 後進養成과 함께 輪廻前生極樂과 地獄 아미타 經譯 등 著作을 남기셨다.
드디어 所望이던 1945년 光復을 맞이하여 大覺寺에서 禪師가 主動이 되어 겨레의 脈搏이었던 臨時政府의 奉迎會를 結成 會長으로써 애쓰셨다.
1050년 6.25사변 후로는 李曉峰 河東山 李靑潭 和尙과 協力 淨化佛事에 기우린 貢獻은 크다.
한편 속리산 법주사 金泉 直指寺 서울 봉은사 양양 洛山寺 영주 浮石寺 等 많은 大刹의 住持를 歷任하면서 平生 佛日중휘와 祖國統一을 念願 致力하였으며, 末年에는 善山 桃李寺에 계시다가 上京 1969년 11월 2일 음력 9월 23일 정릉 鹿野院에서 入寂하시니 歲首 66 法臘(랍) 48년이다.
이에 다비를 마치고 靈骨을 모았으나 이제 13週期를 맞이하여 後學과 弟子 檀越들의 至誠으로써 鹿野院 舍利부도 奉安碑를 세워 길이 禪師의 德을 기리며, 訓을 받들고저 한다.
1982년 11월 22일
惠原 姜顯夏 撰(찬)
金井沙門 昔珠 書
設計 昔泉
出家弟子
용택 道安 昔泉 大仁 海眼 超安 道泉 寂照 法眼 光徹 天觀 石雲 鳳黙
在家제자 : 희찬 일석 청석 혜천 대안 법천 공철 심철 도철 철안 병철 춘명
孫上座 : 知玄 智學 知日 慧雲 法城 春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