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암 대선사 께서는 1969년 음력 9월 23일 (2008년도는 10월21일 화요일)열반 하신 것이 사리탑 비문에 나와 있으며, 삼각산 녹야원이 동암 대선사님의 창건사찰이며 열반지로서 매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 왔습니다.
김도안 스님이 미국 들어 가시기 전인 1975년 까지 제사를 지냈으며, 이어서 광철스님이 지냈고, 법안스님이 지냈으며, 지학스님이 지냈고, 석천스님이 지냈으며,
형사재판의 당사자인 도천(본명 김출장)스님이 지내오다가 절이 폐사 됨으로써 한 3년간 못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봉산 석굴암에서 동암스님의 1대 제자이셨던 초안스님께서 제사를 지내오다가 열반 하신후 도일 현재 주지스님이 지내 온 것은 잘 알고 있으며, 이 제사에는 대각사의 흥교스님 등 참석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3년 제사를 못 지내는 동안에, 박동암 스님이 본명이 박승수 이며 저희 함경숙 함재수 함재룡 하고는 외삼촌의 관계로서 저희 어머님 박일순이 박동암(본명 박승수)의 여동생 입니다. 함께 평북 희천이 고향으로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박승수 님이 이천에 내려와서 보호자로서 저희 기와집과 초가집을 팔아서 녹야원 법당 건립에 사용하였다는 것은 제가 어렸을 적에 낙산사에서 동암 대선사님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 인데, 어느날 서울에 다녀와서 나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 휴 ! (한숨쉬시는 소리) 내가 녹야원 땅과 법당 건립에 한 최대로 하면 50%이며 최소는 40% 까지 공헌 하였으니 앞으로 공헌이 없다는 소리는 못하리라! "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삼남매가 녹야원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3년의 기간중에, 오봉산에서 스님의 제사에 참여 하게된 동기 입니다. 물론 딱 1번 입니다. 이 부분에서 왜 제사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지난번 2008년 5월 10일 꾸지람을 하시니 저희들로서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먼저 누님이 무릎 수술로 거동이 불편하여 집 밖을 여간해서 나가지 않습니다.
그 다음 제사일이 음력 주기로서 일요일이 아닌 경우가 있고, 공무원으로서 근무중이라 참여하기 어려우며, 형님이나 누님을 제 자가용으로 태워서 가야 하는 데, 이런 사정으로 모시고 올라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형님은 동암스님 제사 주기에는 반드시 상을 차려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이런 제사는 최해안스님도 도봉사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직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해안 스님의 이야기로는 자기가 문장으로서 동암스님의 문중어른이며 내가 제사를 지내는 곳에 다들 참여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이야기 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어디서 지내든 이제 녹야원이 폐사된 마당에 동암스님의 직계제자나 손상좌 등이 지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며, 모여서 지내면 좋은 일이나 화합이 되지 못하면 각기 나누어서 지내는 일에 저희는 개의 할 바가 없는 일 입니다. 다만 저희 3형제의 참여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논의 할 사항이 아니고, 사석에서 조용히 이야기 할 내용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2008년 5월 10일날 동문회장과 회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어디까지나 운영위원 임명의 문제와 민사재심 청구 문제 등이 중요한 의제 였으므로, 제사 문제는 별개의 사건으로 다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식석상에서 이 문제가 거론됨으로써 마치 우리 삼형제가 동암스님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그 동안의 보살펴준 은혜도 모르는 사람으로 비추어 지고 있으니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낭독하며 동문들의 오해를 불식 하고져 합니다.
녹야원 동문신도회 사무총장 함재룡 (원복)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