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nk of History
고구려 마을
일본 사이타마(埼玉縣) 현 히다카정(日高町)에는 ‘고마(高麗)’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일본과 고구려(히다카)에, 고려(고마)라니, 한국과 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마을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고구려 마을, 고마현에 담긴 이야기.
글, 사진 안수련 기자
도쿄에서 전철을 타고 40분여를 달리면 히다카의 고마 에끼(高麗驛, 고려역)에 도착한다. 히다카 내에 있는 또 하나의 역 이름은 ‘고마가와 에끼(高麗川驛, 고려천역)’. 인구 5만의 작은 시골마을에 단 두 곳뿐인 역에 모두 고려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초, 중, 고등학교의 이름도 고마다. 고마무라(고려촌), 고마혼고(고려본향)이란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지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면, 친근하게 ‘안녕하세요.’라 되받는다. 일본에 이런 곳이 있었네? 기분이 꽤 괜찮다.
일본 속의 한국, 히다카
짐작했겠지만, 히다카는 오래 전 고구려인들이 대거 이주해 와 만든 고구려 마을이다. 서기 668년 경,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다수의 고구려 유민이 일본으로 옮겨왔는데, 그중에서 보장왕의 막내아들인 약광(若光)은 1,799명의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죠몬과 야요이, 아스카 시대를 넘어, 710년 경 일본이 서서히 국가의 꼴을 갖추면서, 약광은 당시 집권 세력으로부터 왕의 호칭과 고마 지역의 통치권을 부여 받는다. 이곳은 이후 천년 이상 ‘고마촌’과 ‘고마가와촌’이라는 지명을 유지해 오다가, 명치(明治)유신 때인 1897년 사이타마현 이루마군(入間郡)에 편입되었고, 1955년 히다카정으로 통합됐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 히다카(日高)에는 한국과 일본이 공존한다. 그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도라이진 협회’다. 이 모임은 사이타마 전 시장과 고구려 후손 30여 명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저녁 시간, 도라이진 협회 회원들이 마을의 한 식당에 모였다. 상에는 닭고기, 돼지고기, 우엉, 곤약, 두부, 우유, 사케, 김치 등 히다카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들을 몽땅 넣어 만든 고마 대표 요리 ‘고마나베’가 차려졌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가게 주인인 하시모토 씨가 말했다. “우리는 고마 사람입니다. 결국은 히다카 전체가 고마입니다. 고마는 일본 속의 한국입니다. 이 마을에는 여전히 고마(高麗), 고마이(高麗井)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살고 있고, 고구려와의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두 나라의 관계에 있어 구심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고구려의 혼을 기리다, 고마신사
고마역에서 3킬로미터 거리에 약광 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고마신사(高麗神社)와 승락(勝樂)이 세웠다는 쇼텐인(聖天院)이 있다. 일본의 신사는 모시는 신과 그 성격이 각기 다른데, 고마신사는 특히 출세를 돕는 신을 모신다고 해 정치가와 사업가들이 많이 찾는다. 오카스키 데이지로, 하토야마 이치로, 고이즈미 총리의 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 체신장관 등이 이곳을 방문했다.
건립 이래 고마신사는 약광 왕의 3남인 쇼오운과 그의 손자 고오진을 시작으로,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궁주로 봉직하고 있다. 현 고마신사의 궁주는 약광의 60대손 이다. 그는 22세 때부터 신관으로 일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일이기에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방문객들 중 한국인이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1년에 2만 2천 명의 한국인들이 이곳을 방문합니다. 한 번은 한국에서 태권도 선생님이 방문하셨는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도복을 보내오셨어요. 한국에는 지금까지 10여 번 방문했습니다. 한국어에 능숙치 않아 글씨로 교류를 했죠.” 그는 매 주 한국어 개인 교습도 받을 정도로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다.
그런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수 세기가 흐른 지금도 그를 고구려인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그는 자신을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할까? “물론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궁주의 주된 업무는 축제와 제사의 주관. 큰 제사는 1년에 세 번 정도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매년 10월 19일 열리는 우지꼬(같은 씨족 신을 모시는 일족) 축제의 규모가 가장 크다. “고마 신사 이야기는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나옵니다. 교과서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공부한 학생들이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히다카를 많이 찾습니다.” 고마신사를 안내해 준 다나카 씨의 말이다. 히다카에서 ‘고마김치’ 회사를 운영하는 안영자 씨는 예전에 신사에서 열렸던 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고마 다이스키, 니혼 다이스키, 강코쿠 다이스키’라 외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날 뻔 한 적도 있단다.
신사 아래쪽에는 1596년에서 1615년 사이에 지어진 옛 가옥이 남아있다. 불과 40년 전까지만 해도 대가족이 거주했던 곳이다. 고마신사 옆 승락(勝樂)이 세웠다는 쇼텐인(聖天院)이 지어진 언덕을 오른다. 입구를 지키고 선 사천왕상을 지나니 커다란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2000년 관동대지진과 2차대전 때 희생된 무연고자 재일동포를 위해 세워진 위령탑이다. 언덕 아래로, 수천 년간 고구려의 얼을 지켜온 히다카가 묵묵히 새로운 아침을 맞고 있었다.
비온 후 피는 꽃, 상사화
고마역에서 10분 거리에 완만한 U자형을 그리며 흐르는 강이 있다. 강이 휘돌아가는 땅은 고구려 유민들이 농지로 개척했던 곳으로, 매년 10월경엔 대규모 상사화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내내 지천으로 펼쳐진 붉은 빛 장관을 보기 위해 하루에도 수천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만주샤게(상사화)는 소나무 그늘 아래 피는 꽃입니다. 여름이 지난 비온 후에 날이 차가워지면 피어나는 강인한 꽃이죠. 붉은 꽃이 무리지어 만발해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습지에 피는 꽃이라고 해, 이전에는 이미지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규모의 상사화 축제를 열만큼 인식이 좋아졌습니다.” 매년 상사화 축제에 참가해온 다나카 씨의 말이다. 그는 다리를 가리키며 “만주샤게(상사화) 색이라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한국의 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만주샤게처럼 붉다.
자연과 도시가 맞닿는 마을
히다카는 가공하지 않은 시골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히다카에 가려면 고마 역이나 고마가와 역에 내려야 하는데, 하루에 단 두 번 열차가 다닌다. 히다카 인근의 한노 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히다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한노에서 히다카까지는 20여 분이 걸린다.
히다카 근처에는 세이부 그룹이 운영하는 온천과 호텔,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도쿄 인근에서 골프장이 가장 많다고 한다. 신 무사시가오카에는 2개의 골프장이 함께 있다. 30분 거리에 세이부라이온즈 프로야구장과 세이부 유원지가 있어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도 많이 찾는다. 83년 개장한 무사시가오카는 매년 여자 프로골프 토너먼트를 주최한다. 타이거우즈가 일본에서 첫 경기를 펼친 곳이라고 한다. 69년 개장한 쿠니(Kuni) 컨트리클럽은 역사가 긴 골프장답게, 회원제로 운영된다.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숙소는 많지 않다. 한노 시의 프린스 호텔 한노(Hanno)가 비교적 큰 호텔이다. 인근에 높은 건물이 없어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평지에서 산지로 이어지는, 히다카는 도시와 자연이 자연스레 맞물리는 곳이기도 하다. 산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한다.
사이보쿠의 꿈
사이보쿠는 1946년 오픈한 돼지 테마파크다. 단순히 돼지를 사육하는 데서, 1976년에는 미트피아로, 1991년부터는 아그리토피아(Agritopia)로 발전했고, 앞으로는 라이프피아(Lifepia)로의 변혁을 꿈꾸고 있다. 현 92세의 사이보쿠의 회장은 사이보쿠가 도시와 시골, 콘크리트와 자연의 연결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양돈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차대전 후. 미국인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앞으로는 동양인들도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게 될 것이라 내다봤다. 독일의 미트피아를 모델로 만들어진 이 마을은 이제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축산업계에 성공적인 롤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첫댓글 앞으로 고마가 한국인이 찾아서 가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을 것 같네요. 아마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명소로 부상할 것 같습니다. 안명자 장인은 그곳에 우뚝선 한국인으로 빛을 발하리라 믿습니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몸담은 고마를 위해 기사가 나오도록 애쓴 장주님께 격려의 박수 보냅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찾아 중국으로만 찾아 가는데 마지막 뿌리인 이곳 히다카도 분명 고구려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기사가 나오도록 애쓰신 안수련 기자에게 감사 드리고, 옮겨 준 하야니님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