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작가 소개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충남 부여(扶餘) 출생. 단국대학 사학과를 거쳐 건국대학 대학원을 수료하고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가 당선되어 데뷔하였다. 그 후 아사녀(阿斯女)의 사랑을 그린 장시 “아사녀”, 동학 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서사시 “금강(錦江)” 등 강렬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詩化)하였다. 시론(詩論)과 시극(詩劇) 운동에도 참여하며, 시론으로는 “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 등이 있고,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은 시극동인회에 의해 상연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삼월(三月)”, “발”, “껍데기는 가라”,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 “4월은 갈아엎는 달”, “우리가 본 하늘” 등이 있고, 유작(遺作)으로 통일의 염원을 기원하는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이 있다.
시 전문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참여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저항적. 현실 참여적. 직설적. 관념적
표현 : 반복법. 상징법. 은유법. 명령형 종결.
특징 : 반복을 통한 주제 의식 강조.
어조 : 순수함에의 강한 열정을 지닌 의지에 찬 어조
심상 : 비유적. 상징적 심상
구성 :
1연 4.19 혁명의 순수성만 남고 모든 허위는 가라.
2연 동학 혁명의 외침만 남고 모든 허위는 가라.
3연 순수한 마음과 몸을 가진 아사달과 아사녀의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위한 혼례
4연 통일된 조국의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무력으로 억누르는 세력은 가라
제재 : 외세의 지배에서 탈피해야 할 민족 현실
주제 : 진정하고 순수한 민족의 삶 추구
이해와 감상
신동엽은 4.19 혁명에 대하여 남다른 집념을 보인 시인이다. 그를 흔히 60년대의 대표 시인으로 꼽고 있는 이면에는 4.19 정신의 문학적 성과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4.19 정신의 정수로부터 획득한 이념적 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1960년대 불의와 부정 부패, 그리고 독재 체제라는 시대적 상황 앞에서 순수의 열정으로 이런 현실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참여시이다. 현재 있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는 미래에 있어야 할 것, 즉 정의, 자유, 민주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4.19 혁명과 동학 혁명을 통해 시인은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과 민주에의 열망을 확인하고 이것을 억압하는 모든 비본질적 요소들이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든가, '중립의 초례청' 같은 구절을 보면 외세의 간섭이 없는 통일의 그날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17개 행 가운데 6개 행이 '껍데기는 가라'이다. 이 시인이 없어지기를 열망하는 '껍데기'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연(聯)의 '쇠붙이' 말고는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은 상대적 의미를 지닌 어휘를 통해 짐작해 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것은 4월 혁명의 '알맹이'이며, 동학년의 '아우성'이고, 초례청 앞에 선 아사달, 아사녀의 '부끄럼'이거나 향기로운 '흙가슴'에 상대되는 개념일 것으로 이해된다.
4.19혁명의 체험이 이 시의 창작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혁명을 통해 확인한 민중적 역량을 과거 동학 혁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미래의 통일에서도 그 역량이 발휘되기를 시인은 열망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4월 혁명의 정신은 퇴색해 가고 동학 혁명의 민중적 열기도 사라져 가며 통일에 대한 염원도 군사 정권과 무력을 앞세운 외세의 질곡 때문에 전망이 흐려져 가고 있다. 시인이 안타까워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래서 시인은 모든 허위와 맞설 것을 외치며, 우리가 성취해야 할 민족적 과제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다.
끝으로, 이 시가 반제국주의와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가 응집되어 있는 참여시의 절정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서,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 이육사의 “절정”에 닿아 있는 기념비적인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데, 김수영은 이 작품에서 '참여시에 있어서 사상이 죽음을 통해 생명을 획득하는 기술이 여기 있다'고 하며 김소월의 민요조와 이육사의 절규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현실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예술성과 상상력을 추방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원칙을 고수하는 소박한 모사론(模寫論)의 한계에 빠질 위험성이 언제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립의 초례청에서 아사달과 아사녀가 혼례식을 치르는 것은 분단 극복, 곧 통일이라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동학 농민운동과 4.19혁명이 지닌 반봉건 내지 반제국주의를 분단 극복의 역사적 과제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