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
유리왕(瑠璃王)
翩翩黃鳥 훨훨 나는 꾀꼬리는
雌雄相依 암수 다정히 즐기는데,
念我之獨 외로울사 이 내 몸은
誰其與歸 뉘와 함께 돌아갈꼬.
<삼국사기(三國史記)>
시어, 시구 풀이
翩翩(편편) : 펄펄. 훨훨 가볍게 나는 모양
黃鳥(황조) : 꾀꼬리
雌雄(자웅) : 암수. 암컷과 수컷
相依(상의) : 정답구나. 서로 의지함. 여기서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놂을 뜻한다.
念我之獨(염아지독) : 나의 외로운 마음. 이 때 ‘獨’은 임을 여읜 절망감 등을 표현한다. ‘之’는 여기에서는 소유격으로 쓰임
誰其與歸(수기여귀) : 그 뉘에 더불어 돌아갈 것인가. 또는, 함께 살아갈 사람이 없다는 뜻
翩翩黃鳥(편편황조) : 숲 속에서 펄펄 날아다니고 있는 저 꾀꼬리는. 서정적 자아의 서정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되는 제재인 꾀꼬리의 모습을 묘사하여 자신의 외로운 처지와 대비시키고 있다.
雌雄相依(자웅상의) : 암컷과 수컷이 잘 어울려 정답게 노닐고 있구나. 꾀꼬리의 정다운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고독하고 슬픈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제 1구와 함께 이 노래의 배경 역할을 한다.
念我之獨(염아지독) : 나는 사랑하는 임을 잃었으니 외롭기 그지없구나. 여기에서의 ‘獨’은 임을 여읜 서정적 자아의 심정이 단적으로 집약된 단어이다. 시상이 객관적 상관물인 꾀꼬리에서 서정적 자아의 세계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誰其與歸(수기여귀) : 이제 나는 누구와 짝을 하여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함께 돌아갈 사람을 잃은 데서 오는 슬프고 고독한 감정이 절정에 이른 구절이다. 제 3구와 함께 꾀꼬리와는 달리 짝을 잃은 자신의 외로운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문 풀이
숲 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저 꾀꼬리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정답게 노닐고 있구나. (암수 꾀꼬리의 정다움)
사랑하는 임 잃어 외로운 이 내 몸은
이제 나는 누구와 짝을 하여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짝을 잃은 나의 외로움)
핵심 정리
지은이 - 유리왕(琉璃王, ? - A.D. 18) 고구려 제 2대 왕. 동명왕의 아들. 이름은 유리(類利), 유류(孺留) 부여에서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가서 왕위를 계승하였음
갈래 - 4언 4구의 한역가(漢譯歌)
연대 - 유리왕 3년(B.C. 17)
성격 - 개인적 서정시
표현 - 자연물을 빌려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 대조법, 의태법
주제 - 짝을 잃은 슬픔(외로움)
의의 - 현전(現傳)하는 최고(最古)의 개인적 서정시,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 가는 단계의 가요임
작품 해설
‘황조가’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의 설화에 나오는 삽입 가요다. 4언 4구로 한역된 이 노래는 시경(詩經)의 고시체(古詩體)와 비슷하다. ‘구지가(龜旨歌)’가 주술적(呪術的)인 집단 무요(巫謠)의 성격을 띤 시가임에 비하여, 이는 고대인의 사랑과 별리(別離)의 고뇌를 그린 서정시이다. 의미와 구성은 극히 단순하지만, 사랑하던 짝을 잃은 고독과 슬픔을 자연물인 ‘꾀꼬리’를 매개로 하여 우의적(寓意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상심(傷心)에 잠긴 자신 앞에 짝을 이뤄 정답게 놀며 즐기는 꾀꼬리는 돌아갈 사람이 없는 서정적 자아의 외로움과 비애감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작품의 짜임은 극히 단순하나 완벽한 대칭 구조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짝을 이루고 즐거이 노니는 꾀꼬리와 홀로 있는 사람, 하늘을 나는 가벼움과 외로운 심사의 무거움,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의 쓸쓸한 여운이 서로 대립하고 중첩되면서 그리움의 간절함과 깊이를 보여 준다.
짤막한 이 한 편의 노래에서 우리는 제왕으로서의 유리가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유리왕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그에게서 흐르는 따뜻한 정감에 공감하게 된다.
이 노래는 신화적 질서가 흔들리고 자아(自我)와 세계의 동질성(同質性)이 상실되는 시대의 감정 표출의 표본이라 하겠다.
배경 설화
고구려 제 2대 왕인 유리왕 3년 7월, 왕은 골천(鶻川)에 이궁(離宮)을 지었다. 10월에 왕비 송씨(宋氏)가 돌아갔으므로, 왕은 다시 두 여자를 계비로 맞았는데, 하나는 골천 사람의 딸인 화희(禾姬)였고, 하나는 한인(漢人)의 딸 치희(雉姬)였다. 두 여자는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매, 왕은 양곡(涼谷)의 동서(東西)에 두 궁전을 짓고 그들을 각각 살게 하였다. 훗날 왕은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서 이레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여자는 서로 싸움을 벌였다. 화희가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한가(漢家)의 비첩(婢妾)으로 무례함이 어찌 그렇게 심한가?”하니, 치희는 부끄럽고 분하여 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좇아 갔으나, 치희는 노여워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일찍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나뭇가지에 꾀꼬리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왕이 그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노래 황조가를 불렀다.
첫댓글 시조를 습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좋은 자료 감사드리며 펌 합니다.^^
발행인님, 날마다 좋은 공부합니다. 연재로 매일 올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또, 배우고 갑니다. 감사드리며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