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사에서의 나흘, 더덕 공양의 힘
“행자야, 더덕을 거두어라!”
주지 스님은 아침 공양을 마치자 행자에게 이르고는 암자를 나서서는 밤이 이슥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수령 육백 년이 넘은 은행나무 옆에서 스님이 내려간 산길을 아득히 내려다보았다. 마당가에는 노란 유채꽃 물결이 흔들렸다.
4년 전 봄, 해발 380미터의 조그마한 암자에 나흘간 머물렀다. 열흘 안에 중편 한 편을 써내야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내장산 자락의 구암사. 싱글맘으로 현실에서 열흘의 시간과 공간을 도려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궁지에 몰린 쥐처럼, 마감에 쫓긴 내 머릿속은 온통 ‘소설을 위한 열흘’에 사로잡혀 있었고, 아이를 조모의 손에 맡긴 채 길을 떠났다.
한 달을 바쳤지만 제목도, 첫 문장도 잡아내지 못하고 속만 숫검댕처럼 시커멓게 타버린 상태였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해 목포로 방향을 잡았다. 그해 겨울 목포해역사령관으로 재직하던 큰오라버니의 배려로 하룻밤을 묵었던 바닷가 휴양소가 떠올랐던 것이다. 열흘까지는 아니어도, 그곳에서라면, 아니 그곳이 아니더라도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고립된 공간이라면 완성까지는 아니어도 초는 잡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꽉 막혔던 숨통이 확 트이면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듯했다. 큰오라버니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는 간략하게 내 사정을 듣고는 휴양소보다는 암자가 나을 거라며 선운사 주지 스님과 친분이 있으니 그분의 배려로 글을 쓸 만한 좋은 곳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아, 미당의 「선운사 동구」와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 이문재 시인이 취기가 오르면 눈을 감고 조용히 시작해 우렁차게, 또 애절하게 부르곤 하던 선운사…. 나는 가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운산의 한 작은 암자를 떠올리며 이제야 비로소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나만의 방을 찾은 듯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쏜살같이 달려 소설의 무대 중의 하나로 구상하고 있던 서산 해미 읍성에 들렀다가 목포행 하행선으로 접어드는 톨게이트에서 큰오라버니에게 다시 전화를 넣었다. 곧장 내달리면 고창, 그리고 선운사에 닿을 것이었다. 그런데 선운산 암자에 기대를 품고 있던 내게 큰오라버니는 작전 변경을 명하듯 내장산, 구암사로 가라고 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지도를 잃어버리고 생판 처음 가보는 길로 접어들 듯 막막한 심정으로 구암사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해미 읍성에서부터 흐려지던 하늘이 잔뜩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어스름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 반, 행자(行者)의 미숙한 예불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밖은 아직 어둠, 내가 누워 있는 곳은 구암사 ‘인욕(忍辱)’의 방이었다. 행자의 낭창한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지난밤, 어떻게 그곳을 찾아왔는지 꿈만 같았다. 습기를 머금은 구름은 빗방울을 뿌렸고, 초저녁인데도 사위는 유난히 어두웠다. 빗속 초행길이라, 또 어둠 속 산길이라, 멀고 험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지도도 없이 이 길인가 저 길인가 갈팡질팡 헤매며 찾아온 암자, 여름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빗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맞아 준 것은 바로 나를 잠에서 깨우는 저 소리의 주인공, 행자였다. 처음에는 비구니인가 깜빡 속을 정도로 그는 몸매와 두상이 수려했다. 나는 마치 날개를 다쳐 퍼덕이는 가엾은 새처럼 암자에 거두어져 행자가 차려 주는 밥을 삼시 세끼 먹었다.
육백 년이 넘은 은행나무 뿌리 근처에는 더덕이 울울하게 자라고 있었고, 행자는 아침마다 더덕 몇 줄기를 밥상에 올려놓아주었다. 공양이 끝나면 나는 유채꽃이 피어 있는 마당가를 열 번, 스무 번 거닐다가 방으로 들어갔고, 행자는 암자 입구 허름한 옛 승방으로 들어갔다. 더덕의 힘이었을까. 나는 그곳에 머무는 나흘 동안 중편의 초고를 마쳤고, 처음으로 산 아래로 내려와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 갠 산야는 나른한 봄기운을 떨치고 상쾌한 초여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암자를 행자에게 맡긴 채 사흘이 지나도 오지 않던 주지 스님은 점심 공양을 먹고 떠나려는 순간 산길을 올라오셨다.
“마음먹은 것은 다 이루셨는지요.”
주지 스님은 멀리에서도 나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듯 유쾌하게 물으셨고, 나는 대답 대신 삼 시 세끼 내 공양을 차려 주었던 행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옛 승방 앞 고목에 몇 조각 남아 있던 목련 꽃잎이 후두둑 떨어져 있었다. 행자는 내 차 앞 유리에 떨어져 있던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주었다. 합장을 하고 차에 타려는데 코가 시큰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서 물기가 솟구쳤다.
가을에 다시 와도 되느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집으로 돌아와 초고였던 중편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소금 한 줌」이라는 또 한 편의 단편을 썼다. 이 단편에는 그해 늦봄 구암사에서의 나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해진 시간에 행자와 마주 앉아 삼 시 세끼 공양을 먹던 나흘간, 돌이켜보니 서른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그렇게 호강하기는 처음이었다.
함정임(咸貞任)_이화여대 불문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26세 데뷔 때부터 강렬한 미학적 문체와 새로운 소설 형식으로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단편 「자두」로 200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문예지와 인문학 전문 출판사 편집자로도 활동했고, 국내외 예술기행과 미술, 번역 작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현재 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와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소설 『행복』 등이 있다. 이 밖에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미술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이 있다.
첫댓글 觀世音 普薩...남순 동자 /백의 관음은 설한바 없이 설하고...동자는 들은바 없이 듣네...그림 좋다 ...圓昭
그 행자의 주인공이 잘 생긴 구산스님!
그런가 쉽군요 사무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