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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입법계품 제49강 (枝末法會, 彌伽長子)]
(2) 衆生의 依支處인 菩薩
善男子야 應知菩薩의 所作이 甚難하야 難出難値요 見菩薩者는 倍更難有라 菩薩이 爲一切衆生恃怙니 生長成就故며 爲一切衆生拯濟니 拔諸苦難故며 爲一切衆生依處니 守護世間故며 爲一切衆生救護니 令免怖畏故며 菩薩이 如風輪이니 持諸世間하야 不令墮落惡趣故며 如大地니 增長衆生善根故며 如大海니 福德充滿無盡故며 如淨日이니 智慧光明普照故며 如須彌니 善根高出故며 如明月이니 智光出現故며 如猛將이니 伏魔軍故며 如君主니 佛法城中에 得自在故며 如猛火니 燒盡衆生我愛心故며 如大雲이니 降霔無量妙法雨故며 如時雨니 增長一切信根芽故며 如船師니 示導法海津濟處故며 如橋梁이니 令其得度渡生死海故니라 彌伽가 如是讚歎善財하사 令諸菩薩로 皆歡喜已하고 從其面門하야 出種種光하사 普照三千大千世界한대 其中衆生이 遇斯光已에 諸龍神等과 乃至梵天이 悉皆來至彌伽之所어늘 彌伽大士가 卽以方便으로 爲開示演說分別解釋輪字品莊嚴法門하시니 彼諸衆生이 聞此法已하고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得不退轉하니라
오늘 화엄경공부는 미가장자(彌伽長子)선지식의 중간부분인 84쪽부터이지요. 선지식으로서는 다섯 번째인데 이름이 미가장자이고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등 오십이 위(位)의 보살 수행절차에 배대를 하면 네 번째인 생귀주(生貴住) 선지식이라 합니다. 십주(十住) 중에 네 번째 住의 이름이지요.
오늘 공부할 차례는 ‘중생(衆生)의 의지처(依支處)인 보살(菩薩)’부분입니다.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또 보살이 하는 일은 어떤 것인지를 여기서 많이 밝히고 있지요.
'중생(衆生)의 의지처(依支處)인 보살(菩薩)'이라고 제목을 그렇게 달았습니다.
많은 의미가 있지만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중생의 의지처이다, 하는 그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대개 보살님들이 모였으니까 다 중생의 의지처이다, 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선남자(善男子)야 응지보살(應知菩薩), 선남자야 꼭 알아야 된다. 무언고 하니 보살의 하는 일입니다.
소작(所作)이 심난(甚難)하야, 보살로서 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살이라고 하는 말은 저 위의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님으로부터 절에 다니는 모든 분들, 특히 여성 불자들을 보살님이라고 일컬어요.
각각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수준에 따라서 보살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경전 상에 나오는 그런 훌륭한 보살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못된 사람들도 보살이 되려고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보살이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누가 그러길 보사(補寺)다, 보사(補寺)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는데 그거 다 엉터리 소리, 틀린 소리입니다.
스님에게도 보살이라고 하고, 거사님에게도 보살이라고 하고, 여성불자님들에게도 다 보살이라고 하지요.
아무래도 여성불자들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님의 자비의 마음에 더 가깝고, 자비의 마음을 더 많이 쓰는 그런 의미로 봐도 좋아요. 그래서 여성불자를 보살이라고 한다고 봐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불자를 막론하고 인생의 꿈이 보살행이기 때문에 그래서 보살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보살이라 불릴 적마다 보살이 되려는 마음의 자세를 다지고, 또 앞으로 보살행을 잘 하겠다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괜찮은 호칭이에요.
‘아이구, 나는 보살이라는 호칭을 듣기에 거북하다, 자격이 없다.’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처라고 불려도 상관없는 그런 도리도 불교 안에는 있어요.
육조스님 같은 경우는 모든 사람을 선지식이라 부를 정도니까요. 선지식이라 불려도 거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부처님이라 불려도 충분히 이유가 있는데 보살이라고 불리는 데야 크게 그렇게 짐스럽게 생각하고 부담스레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 대해서 그렇게 알아야지 도울 보(補)자 절 사(寺)자 보사(補寺)라며 어줍잖은 불교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수가 간혹 있지만 다 틀린 소리입니다. 잘 몰라서 그래요.
그런 이야기가 오고가면 제대로 배운 분들이 일깨워 드려야 합니다. 문수원불교경전대학은 보통대학이 아닙니다. 이런 곳에 다니는 분들이 그런 것을 일깨워 드려야 합니다.
사실은 그동안 스님들만 가르쳤는데 어쩌다 보살님들이 인연이 되어서 같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쨌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 경전 속에 나타난 제대로 된 보살님들이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할 일 이런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지요. 사실은 심히 어려운 것이라 했어요.
난출난치(難出難値)요, 난출난치라 그랬어요. 보살이 하는 일에 나아가기가 어렵다, 또 그 보살이 하는 일을 제대로 만나기가 어렵다고 그랬어요.
견보살자(見菩薩者)는, 예를 들어서 지장보살을 만났다, 관세음보살을 만났다 할 때 눈으로 본 그것이 보살의 세계가 아니에요. 눈으로 관세음보살을 봤다고 해서 그것이 친견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관세음보살이라 하면, 관세음보살의 그 깊고 높은 자비를 볼 줄 알아야 되는 거지요.
보살의 마음과 보살이 하는 일을 볼 줄 알아야 그제서야 보살을 봤다고 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을 봤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꿈에 부처님을 봤다는 것은 부처님의 형상을 보고 부처님의 얼굴을 봤다는 거지 정말 부처님 속을 본 것은 아니지요.
부처님을 제대로 보려면 부처님의 수준이 되어야 되고, 보살을 제대로 보려면 보살의 수준이 되어야 된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견보살자(見菩薩者)는 배갱난유(倍更難有)라, ??가 어렵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보살을 봤다는 것은 곧 그 보살의 정신과 그 보살의 보살심과 보살의 원(願)을 봤다는 그런 뜻으로 이해를 해야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보살이 하는 일이 어렵고 보살을 친견하기가 어려운지에 대해 이 다음부터 설명이 나옵니다.
보살(菩薩)이 위일체중생지시호(爲一切衆生恃怙)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믿을 시(恃), 믿을 호(怙), 믿고 의지한다, 시호(恃怙)는 그런 뜻이에요. 일체중생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보살이 되는 게 어려운 것이지요. 보살이 하는 일도 어렵고요.
생장성취고(生長成就故)며, 중생들의 의지가 되고 중생들의 믿음이 되어서 중생들을 키워내고 또 중생들을 성숙, 성취시키는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위일체중생증제(爲一切衆生拯濟)며 발제고난고(拔諸苦難故)며, 건질 증(拯) 건질 제(濟)에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그런 의미가 있으며, 모든 고난으로부터 빼주고 건져주기 때문이다.
또 위일체중생의처(爲一切衆生依處)니, 일체 중생의 의지하는 곳, 장소가 된다. 저 위의 시호(恃怙)는 의지, 믿음이지만 이것은 의지하는 장소, 곳이 된다.
왜냐하면 수호세간고(守護世間故)며, 세간을 수호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세상을 지켜서 보호하지요.
위일체중생구호(爲一切衆生救護)니, 일체중생의 구호가 된다는 말은 보살은 일체 중생을 전부 구호한다는 그 말이지요. 어려운 일이 있든지 병을 앓든지, 별별 구호가 필요한 그런 상황에서 보살은 일체중생을 구호한다는 거지요.
이런 것을 바꾸어 말하면요, 중생들을 구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살이며, 세간을 수호하는 사람들이 보살이며, 또 사람들의 든든한 믿음이 되는 사람은 보살이다, 이렇게 해석해도 좋지요.
그래서 영면포외고(令免怖畏故)며, 두려움을 면하게 하며,
지켜주고 보호해 주면 두려움이 없지요.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들은 어머니가 옆에서 지켜주면 마음을 턱 놓지요. 아이들은 부모만 믿고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살은 모든 사람들의 두려움을 면하게 해 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는 보살이 어떤 사람인지 비유를 듭니다. 대체적으로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살(菩薩)은 여풍륜(如風輪)이니, 바람과 같다.
지제세간(持諸世間)하야, 세간을 전부 지탱해 가지고서
부령타락악취고(不令墮落惡趣故)며, 악취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불교에서 세간이라는 것은 이 지구가 있고, 그 지구 밑에는 땅이 있고, 땅 밑에는 물이 있고, 물 밑에는 바람이 있다고 되어있어요.
말하자면 바람이 물을 받치고 물이 땅을 받치고 그 땅위에 모든 중생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풍륜(風輪)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 둘레이지요. 바람이 회오리치는데 보살이 바람 대신 돌므로 해서 이 세간을 받치고 있고 그래서 세간을 유지시켜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또 보살은 여대지(如大地)니, 큰 땅과 같다. 왜냐?
증장중생선근고(增長衆生善根故)며, 중생들의 선의 뿌리를 증장시킨다. 자꾸 키워낸다는 거예요. 보살들은 사람들을 악한 길로 끌고 가지는 않지요. 그러면 보살이라 할 수가 없지요.
사람 사람들에게는 모두다 선의 뿌리가 있어요, 착한 면이 다 있다고요. 착한 면이 있는데 보살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 악한 뿌리를 키우게 되고, 보살을 만나게 되면 그 마음 속에 있는 착한 것을 키워내는, 자라나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되지요.
예를 들어서 공부를 하게 한다, 염불을 하게 한다, 마음을 닦게 한다, 수행을 하게 한다, 경을 읽게 한다, 아니면 어디 가서 복을 짓게 하는, 이런 일을 권하는 것을 권선(勸善)이라 하거든요. 그 선근을 자꾸 증장시켜 자라나도록 하는 거지요.
우리 마음에 선의 뿌리가 다 있는데 그것이 자라나도록 권해 주는 것, 그거 참 좋은 일이거든요. 우리는 누가 권하지 않으면 잘 안된다고요. 대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면 옆에서 권해야 비로소 하고 싶은 마음이 나고, 마음이 나도 권하지 않으면 용기가 안 나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자라게 해 주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가끔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낼 것인가? 이것을 연구를 좀 해 보셔야 돼요. 무턱대고 하라, 하라 윽박지르면 오히려 마이너스예요. 그건 공부 하지 마라, 하지마라 하는 것과 똑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낼 것인지 이것을 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생각이 잘 안 떠오르거든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요. 머리가 둔해 가지고 잘 안 떠오를 수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물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가지고서라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게 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생각해서 현명하게 가르쳐야지요. 그냥 하라고 하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과 똑 같아요.
내 경험으로 봐서 꼭 그래요.
공부를 하려고 딱 마음먹고 있는데 공부 하라고 하면 그만 하기 싫어요, 그날은 그만 공부를 안 해요. 하려고 딱 마음을 먹고 있는데 하라고 그러거든요. 공부 왜 안하냐고. 그러면 그 길로부터 최소한도 두 시간, 세 시간 정도는 놀아야 돼요.
두 세 시간을 더 놀아야지 그 마음이 생기지 안 된다고요, 공부가.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그런 심리가 있다는 것을 부모들은 잘 알고 잘 살피고 해야지요.
착한 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착한 일 하라, 착한 일 하라 하면 누가 합니까? 하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조그마한 착한 일을 하면 그것을 북돋워 줘야 돼요.
증장중생선근(增長衆生善根), 착한 일을 북돋워 주는 거, 선근을 키워 주는 거 그게 보살이에요. 그래서 보살은 대지와 같다고 했잖아요.
여대해(如大海)니, 보살은 큰 바다와 같다고 했어요.
왜 그러냐? 복덕충만무진고(福德充滿無盡故)며, 복덕이 충만하여 다함이 없다고 했어요.
바다 속에는 없는 게 없거든요. 모든 것이 다 있어요. 식물이며 동물, 어류, 패류, 온갖 보물들이 있지요. 그 안에서 석유도 나오고 다이아몬드도 나오지요. 온갖 복덕이 충만하지요. 그래서 큰 바다와 같다.
여정일(如淨日)이니, 또 깨끗한 해와 같으니, 밝은 태양과 같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
지혜광명보조고(智慧光明普照故)며, 지혜 광명을 늘 비추기 때문이다.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마음이 아주 현명해요. 슬기로워요. 슬기로워서 가정사 일이라든지 자녀의 교육이라든지 아니면 세상사를 보는 눈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아주 환하게 밝은 광명이지요.
지혜광명 지혜광명이라고 내가 늘 이야기 하지요. 광명, 세상의 빛은 우리 마음의 지혜를 뜻하는 것으로 그렇게 알면 돼요.
내 마음이 밝아져 모든 사물을 환하게 분별하게 되어 어디에 물으러 갈 것도 없이 앞으로 뭘 하면 좋겠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환하게 다 알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요.
그것도 안 되니까 어디에 물으러 가고, 여기는 발길도 뜸하고, 어디가 좋다하면 또 쫓아가고 그렇지요. 그게 다 답답해서 그런 거에요. 그건 보살이 아직 못 되니까 그렇지요. 보살은 밝은 태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보살은 여정일(如淨日)이니 지혜광명보조고(智慧光明普照故)며.
여수미(如須彌)니, 또 보살은 여수미라고 했어요. 보살은 수미산과 같아요. 뭐냐?
선근고출고(善根高出故)며, 착한 일을 한다하면 보통사람들보다 아주 뛰어나요. 여기 고출(高出)이라는 것은 높이 빼어났다는 그런 뜻이지요. 착한 일을 했다하면 우리 동네에서 누구다, 그렇게 되어야 돼요. 그게 선근고출(善根高出)이에요.
어디서 누가 좋은 일을 했다더라 하면 ‘아, 그거는 우리 동네에서 누가 했을거야, 그 사람 아니면 그런 일 할 사람 없어.’ 이렇게 딱 드러나 버려야 돼요. 드러나는 것을 고출(高出)이라 합니다.
여명월(如明月)이니, 또 보살은 밝은 달과 같다.
지광출현고(智光出現故)며, 지혜광명이 항상 나와요. 명월의 빛하고 태양의 빛하고는 또 다르지요. 태양은 밝지만은 뭔가 운치가 적지요. 그런데 달은 밝으면서도 뭔가 운치가 있고 태양빛에서 못 보던 것을 달빛에서는 또 볼 수가 있어요. 물론 달빛에서는 못 보던 것을 태양빛 아래에서는 볼 수가 있지만요.
여맹장(如猛將)이니, 보살은 아주 용맹스런 장군과 같아요.
복마군고(伏魔軍故)며, 마구니의 군대라는 것은 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온갖 부정적인 것, 그게 마구니거든요. 무슨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그런 무리가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부정적인 것,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마음이 마구니입니다. 그런 것들을 전부 꺾어서 항복 받는다고 그래요.
‘그렇게 될 것이다, 좋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행복할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내용을 마음에 떠올려야 돼요.
사람인 이상 혹 ‘안 된다’ 라든지 부정적인 것이 생각이 나지요.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 그건 머리를 흔들어서 털어버려야 돼요.
그리고 그런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그 반대로 긍정적인 만남을 떠올리든지 아니면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명호를 부른다든지 하면 되지요. ‘관세음보살’ 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의 모습을 떠올리든지요. 관세음보살님의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미소, 자비의 그 행위, 이런 것들을 떠올리는데 그것이 제압?마구니라. 무슨 군대가 와서 정말 용맹스런 장군이 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지요.
또 여군주(如君主)라 그랬어요. 보살은 임금과 같다고 했어요.
불법성중(佛法城中)에 득자재고(得自在故)며, 불법의 성 가운데에서 자유자재하다 이 말이에요. 옛날에는 군주라고 하면 일개 성을 차지해서 그 주위를 지키는 사람이 군주거든요. 작은 성주이지요. 불법의 성 속에서는 자기 마음대로야, 그래서 보살을 군주와 같다고 했어요. 보면 그렇게 표현해도 좋지요.
여맹화(如猛火)니, 아주 활활 타는 불과 같다.
소진중생아애심고(燒盡衆生我愛心故)며, 나에 대한 어떤 애착의 마음을 전부 다 태워서 없앤다, 맹화가 일어나면 온갖 것 다 태워버리지요. 그렇듯이 우리들 마음 속에 애착하는 바, 지나치게 애착하는 마음을 다 태워 버린다.
이번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났지요. 그 참 만나는 것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난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만나고 싶어 만났지마는 만났을 때보다 헤어질 때 더 많이 우는데요. 가슴이 더 아픈거예요. 이건 애착을 좀 더 가볍게 하지 않고는 해결책이 없다고요.
어떻게 하더라도 이런 부처님 성인의 말씀을 많이 들어서 애착을 줄여야지요. 자기 자신, 자기 가족, 형제 이런 것은 우리가 부정할 수가 없는 거지요. 가족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애착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정말 껌뻑 넘어갈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겁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이제 나보고 ‘스님은 있는 부모도 다 버리고 왔으니까 그런 생각할 지도 모른다’고 하겠지만 아, 있는 부모도 다 버리고 온 사람도 있는데 무슨 없는 부모를 뭐 하러 그렇게 찾을 것이 있느냐는 거지요. 부처님은 있는 부모, 처자식까지도 다 버리고 갔거든요.
그렇다고 애착이 영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정신없이 영 기절할 정도로 그러는 것은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봐야 되는 거지요.
여기 나오는 중생아애심(衆生我愛心)이라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 애착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애착, 남에 대해서 애착하는 것도 그 근본은 내가 어떻게 되었다는, 이게 전부 나를 염려해서 생긴 마음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까 그게 염려스러워서 자식에 대해서,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부모에 대해서 그렇게 애착하는 거예요.
왜냐? 내 세계를 그 당시 그 사람들이 전부 점령하고 있으니까요. 그 사람이 없이 산다는 것은 내 세계가 그만치 잘려 나간다는 그런 의미가 됩니다. 내 팔이 하나 잘려나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일단은 드는 겁니다.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절대 그 사람을 위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 사람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내가 상처 받는 것이고, 내가 없어지는 것이고, 나의 한 부분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슬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운대요, 사람들이.
사실이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보살은 맹화(猛火)와 같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같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애착의 마음을 다 태워버렸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더 큰 자비의 마음이 일어나는 거지요. 관세음보살님과 같이 모든 중생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드넓은 마음이 일어나는 거지요.
돌아가신 데레사수녀 같은 이들은 정말 이 시대의 관세음보살님이지요. 그런 이들은 자기의 혈족 때문에 그렇게 울고불고 하지는 않거든요. 그러면서 그것을 보다 더 승화시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그런 자세가 되지요.
부 여대운(부如大雲)이니, 큰 구름과 같다.
말하자면 비를 내리고 있는 그런 구름이지요.
강주무량묘법우고(降霔無量妙法雨故)며, 한량없는 미묘한 진리의 비를 사정없이 쏟아낸다.
이것은 이제 진리의 가르침이라고 해도 좋아요. 진리의 가르침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그것이 말하자면 보살의 행위이다.
여시우(如時雨)니, 시우(時雨)라는 말은 수호지에 보면 급시우(及時雨)라고 백팔두령 중에 제일 두령이 급시우(及時雨) 송강인데 때에 맞추어서 내리는 비라는 말이에요.
비가 또 지나치게 오면 해를 끼치고 또 와야 할 때 안 오면 그것도 크게 해가 되거든요. 시우라고 하는 말은 참 좋은 말이에요. 때에 맞춰 내리는 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증장일체신근아고(增長一切信根芽故)며, 믿음의 뿌리를 증장시킨다. 시우가 때에 맞춰서 오는 비라 했듯이 음식도 맞춰서 먹어야 되고, 말도 그 경우에 맞게 그렇게 해야 그게 좋은 말이 되고 그렇지요.
얼토당토않게 무슨 저팔계시리즈인가(사오정시리즈)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하기 있지요. 그런 식으로 되도 않게 하면 안되지요.
이번에도 보니까 모 보살이 모임 하나 올라갔는데 (북한에서 온)아들이 대학교 교수라면서 자꾸 “장군 덕에, 장군 덕에...” 하니까 이 어머니가 하도 듣기 싫어서 이젠 그만하라고 그래버리더라고요. 내가 들어도 듣기 싫은 거야. 그런데 오십년 만에 만난 아들이 하는 말이라면 하나하나 전부 단비처럼 들릴텐데 하도 하니까 듣기 싫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탁 끊어버리더라고요. 그거 아마 보신 분 계실 거예요.
시우에 맞게 말도 때에 맞춰서 적당하게 해야지요. 그 자리에 안 맞는 말, 그 경우에 안 맞는 말, 또 지나친 말, 너무 여러 번 하는 말, 또 해야 할 말을 안 하는 것, 그것도 시우가 아니에요. 절대로 해야 된단 말이에요.
시우(時雨)란 말이 아주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때에 맞는 비이지요.
불교의 축원에 보면 우순풍조 (雨順風調)라는 말이 있거든요. 비가 순조로워야 하고 때에 맞게 와야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일체신근아(一切信根芽), 일체 믿음의 뿌리를 증장시키는 것이다.
또 여선사(如船師)여, 선장과 같다.
시도법해진제처고(示導法海津濟處故)며, 법의 바다마루, 법의 항구에다가 인도한다는 거지요. 그게 선장의 할 일이지요. 보살은 선장과 같다는 겁니다. 왜냐? 진리의 항구에 배를 정박시킬 줄 아니까요.
배를 몰고 가다가 아무 데나 정박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항구, 가르침의 항구에다가 정박시킬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보살이다.
그 다음 여교량(如橋梁)이니, 보살은 교량과 같다고 했어요. 다리와 같다는 거지요.
영기득도도생사해고(令其得度渡生死海故)니라,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생사의 바다를 건너도록 한다.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려면 다리가 되어야지요. 그러니까 보살은 삶의 문제뿐이 아니라 이 가장 절박한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는 분입니다.
그런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는 사람이 말하자면 보살입니다.
미가(彌伽)가 여시찬탄선재(如是讚歎善財)하사, 미가장자가 이와 같이 선재동자를 찬탄합니다. 말하자면 찬탄수급이라고 하는 과목에서 선재동자는 법의 그릇, 법기(法器)가 된다는 것을 찬탄하는 내용을 지난 시간까지 했지요.
여기에서는 또 다른 입장으로 이제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발하는 보살이고, 보살은 보리심을 당연히 발해야 한다는 그런 뜻에서 선재동자를 보살로써 이와 같이 찬탄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장가가 이와 같이 선재동자를 찬탄하사
영제보살(令諸菩薩)로, 모든 보살로 하여금
개환희이(皆歡喜已)하고,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선재동자를 멋지게 찬탄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찬탄 받는 것하고 같으니까요.
종기면문(從其面門)하야, 그 얼굴이, 면문(面門)이라고 하는 것은 얼굴이에요. 얼굴로부터
출종종광(出種種光)하사, 가지가지 빛이 나오도록, 빛이 발하게 했다. 출종종광(出種種光), 여러 가지 광명을 내어 가지고서
보조삼천대천세계(普照三千大千世界)한대, 삼천대천세계 온 세상을 널리 비추는데
기중중생(其中衆生)이, 그 가운데 있는 중생이
우사광이(遇斯光已)에, 이 광명을 받고 나서
제용신등(諸龍神等)과, 모든 용과 신과 내지범천(乃至梵天)이
실개내지미가지소(悉皆來至彌伽之所)어늘, 미가의 처소에 모두다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미가장자가 선재동자를 찬탄하고 자기 얼굴에서 광명을 보이니까 그 광명을 본 모든 중생들, 용과 신과 범천들이 그 광명을 따라서 미가장자의 처소에 왔다.
그러니까 미가대사(彌伽大士)가, 여기에서 대사(大士)라고 하는 선비 사(士)자는 보통 스님들을 부를 때 쓰는 서산대사(西山大師), 사명대사(泗溟大師) 할 때는 이 선비 사(士)자를 쓰는 것이 아니고 스승 사(師)자를 씁니다. 모든 대사(大士)는 보살이라 했습니다.
보살을 번역하면 대사(大士)에요. 큰 선비라는 뜻입니다.
미가는 장자인데 보살의 경우로 봐서 또 대사(大士)라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이방편(卽以方便)으로, 미가대사가 곧 방편으로서
위개시연설분별해석륜자품장엄법문(爲開示演說分別解釋輪字品莊嚴法門하시니, 열어 보이고 연설하고, 또 분별하고 그리고 해설했다. 무엇을? 륜자품장엄법문을.
비로자나경에 있다고 하는데 이 내용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구요, 그저 문자품장엄법문에 대해서 개시하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해석해 주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피제중생(彼諸衆生)이, 저 중생이
문차법이(聞此法已)하고, 이 륜자품장엄법문을 듣고 나서
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모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
득불퇴전(得不退轉)하니라, 불퇴전 하니라. 물러서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화엄경 공부를 듣고는 ‘아, 계속 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불퇴전이에요.
잘못 가르쳐서 그런가, 잘 가르쳐서 그런가, 반(班)은 가득 차는데 계속 딴 사람이 와요. 어떻게 된 건지. ^^*
삼등분을 하면 삼분의 일은 계속 오던 사람이고, 삼분의 일은 가끔 바뀌는 사람이고, 삼분의 일은 계속 바뀌는 사람입니다.
어디에 해당되는지 스스로 잘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절마다 다 그래요. 교회도 그렇고 성당도 그렇고 다 그래요.
불퇴전이라는 게 쉽습니까? 사실 어려운 거예요.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도 처음 만났을 때의 좋았던 그 감정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계속 죽을 때까지 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요. 아마 보통사람들은 감정에 없을 거예요. 다시는 보기 싫다고 했다가 또 좀 좋다가 그러다가 또 보기 싫다가 좋다가 늘 그러고 사는 거지요.
한 번도 싫은 생각이 없이 계속 좋은 감정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거지요. 보살의 지위에 오르기 전에는 안 되는 거지요. 안 된다고 봐야지요.
그러니까 그저 마음에 안 드는 점들, 보기 싫은 점들을 내가 얼마나 감싸주고 이해하면서 사느냐 거기에 삶의 성패가 달렸어요. 생각 같아서는 금방 하루에도 몇 번씩 퇴전하고 싶지만 그래도 다 감싸주고 이해하고 용서해주고 또 받아들이고 해야지요. ‘나도 잘못이 있는데’ 하고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고 해서 얼마나 잘 용납할 수가 있느냐는 것, 결국 사람 사는 것은 그거에요.
뭐 부모자식 간의 문제도 그렇고 부부 간의 문제도 그렇고 형제 간의 문제도 그렇고 스승 제자 간의 문제도 그렇고 전부 그거예요. 결국 그걸 우리가 못 배겨나면 그걸 계기로 견뎌내지 못하면 그때는 할 수 없는 거지요.
(3) 音聲陀羅尼
彌伽가 於是에 還昇本座하사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我已獲得妙音陀羅尼하야 能分別知三千大千世界中諸天語言과 諸龍夜叉와 乾闥婆와 阿修羅와 迦樓羅와 緊那羅와 摩睺羅伽와 人與非人과 及諸梵天의 所有語言하며 如此三千大千世界하야 十方無數와 乃至不可說不可說世界도 悉亦如是로라
그 다음은 음성다라니(音聲陀羅尼)라는 내용입니다.
미가(彌伽)가 어시(於是)에
환승본좌(還昇本座)하사, 본래 앉았던 자리에 돌아가서.
본래의 자리에 돌아갔지요. 선재동자를 보려고 법상에 있다가 내려왔다고 했잖아요. 저 앞에 보면요. 법상에 있다가 얼른 쫒아 내려와서는 선재에게 합장을 하고 선재동자를 크게 생각하고 스승 모시듯이 그렇게 했지요.
여기까지가 선재동자를 그렇게 맞이했었고 다시 이제 자기 자리에 올라간 거지요.
고선재언(告善財言)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아이획득묘음다라니(我已獲得妙音陀羅尼)하야, 나는 이미 묘음다라니를 획득했다. 아름다운 소리 다라니지요. 다라니의 이름이 묘음다라니예요.
능분별지삼천대천세계중제천어언(能分別知三千大千世界中諸天語言)과, 삼천대천 세계 중에 있는 모든 말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말, 영어이고 스페인어이고 독일어이고 할 것 없이 일체 말을 모두 분별해서 안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제용야차(諸龍夜叉)와, 용의 말, 야차의 말,
건달바(乾闥婆)와, 건달바의 말을 알지요. 예를 들어서 귀신의 말, 짐승들의 말, 새의 말소리, 개의 말소리, 말의 말소리, 소의 말소리 등 일체의 그런 것들과
아수라(阿修羅)와 가루라(迦樓羅)와 긴나라(緊那羅)와 마후라가(摩睺羅伽)와
인여비인(人與非人)과, 인과 비인과
그리고 모든 급제범천(及諸梵天)의 소유어언(所有語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말들, 언어를 능히 분별해서 다 안다.
이거 알면 좋을란가 모르겠네요. 소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울음 소리를 다 분별해서는 배가 고프다고 하는지, 어디 가시가 찔렸다고 하는지 이런 것을 다 안다는 거지요.
여차삼천대천세계(如此三千大千世界)하야, 삼천대천세계에서와 같이
시방무수(十方無數)와, 시방에 있는 무수한 그런 중생들,
내지불가설불가설세계(乃至不可說不可說世界)도, 내지 불가설불가설세계에 있는 그런 이들까지도
실역여시(悉亦如是)로라, 전부다 그와 같이 알아들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묘음다라니지요. 음성다라니이고, 묘음다라니의 자재(自在)를 얻었다고 했어요.
말소리뿐만 아니라 짐승의 소리까지도 그 뜻이 뭔지 전부 알아듣는 그런 경지를 얻었노라고 이 미가장자가 선재동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이분은 참 대단하지요.
첫댓글 화엄경 입법계품 49강을 올리는 것으로 저에게 주어진 10회 분의 녹취를 회향올립니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염화실 큰스님과 무우수님, 마니주님, 명성화님, 그외 여러 법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나중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나아진 모습으로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잘 읽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은우님. ()
은우 님! 너무 열심히 정성껏 올려주셔서 공부 아주 잘 하고 갑니다..^^*
은우님 고맙습니다 _()()()_
은우님 공부 잘 했답니다 감사 드립니다 ,,_()()()_
무우수님께서 올려주신 주옥같은 녹취는 공부할 인연이 적어서인지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무우수님이 불편하신 몸으로 녹취하셨다니 짠한 마음도 들구요. 얼른 완쾌되시길 저 아래 깊은 마음으로 염원해 봅니다. 저는 은우님이 올려주신 녹취로 인해서 공부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계속해서 이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저의 속내를 숨기 수가 없네요. 그 수고로움은 말씀드리기가 송구합니다. 참으로 읽기도 좋고 감동도 많이 받았습니다 ..._()()()_
은우님, 수고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또 수고해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_()()()_
은우님, 덕분에 공부 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_()()()_
은우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菩薩은 如淨日이니 智慧光明普照故며....은우 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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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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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중생의 의지처이다...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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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
菩薩은 爲一切衆生恃?...보살은 일체중생의 믿고 의지하는 의지처다.._()()()_
은우님! 감사함을 미처 표현도 못하고 지났네요. 죄당만사이옵니다. ^^ 오늘 올리러 들러 훑어보는 중에 인사도 제대로 못 갖췄음을 알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음은 어마어마 고마움을 품고 있는데 여유없는 제모습이 그대로 드러났군요. 죄송하고 감사하고... ^^ 제가 중간중간 병원에 들어갈 때 다시 부탁드려도 될른지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_()()()_
菩薩燒盡衆生我愛心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발심하고 불퇴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화엄경 만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어 너무 행운입니다. 여러분들게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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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제대로 보려면 부처님의 수준이 되어야 되고, 보살을 제대로 보려면 보살의 수준이 되어야 된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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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중생의 의지처, 女君主, 如大雲, 와 같다..._()()()_
일체신근아(一切信根芽), 일체 믿음의 뿌리를 증장시키는 것이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안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머리를 흔들고 떨쳐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관세음 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관세음 보살의 자비로운 모습을 생각해라
마구니는 내 마음속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다.그것들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돌리고 부처님 관세음 보살의 명호를 불러서 바꾸라
마음에 안드는 것들,보기 싫은 것들을 내가 얼마나 감싸주고 이해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에 인생의 성패가 걸렸다
보살이 하는 일에 나아가기 어렵고 보살이 하는 일을 만나기도 어렵고 보살을 보기도 어렵다
;왜그런가
보살
;일체 중생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된다--중생들을 생장,성취시킨다
;일체 중생을 건진다-모든 고난을 제거한다
;일체 중생의 의지하는 곳이 된다-세간을 수호하기 때문
;일체 중생을 구호한다-두려움이 없게 한다
보살이란-비유
;바람과 같아서 모든 세간을 지탱해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대지와 같아서 선근을 증장시킨다
;큰 바다와 같아서 복덕이 충만하여 다함이 없다
;깨끗한 해와 같아서 지혜광명이늘 비춘다
;수미산과 같아서 선근이 높이 빼어났다
;밝은 달과 같아서 지혜 광명이 나온다
;용맹한 장수와 같아서 마군을 항복받는다
;군주와 같아서 불법 성중에 자재롭다
;활활 타는 불과 같아서 나에 대한 애착을 태워 버린다
;큰 비와 같아서 진리의 비를 내린다
;때 맞추어 내리는 비와 같아서 믿음의 뿌리를 자라게 한다
;선장과 같아서 법의 항구로 인도한다
;다리와 같아서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한다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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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문(륜의 오자)자품장엄법문에 대해서 개시하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해석해 주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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