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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09.16.PM7시)
유마경 불국품
보적의 게송, 불국토, 보살의 정토행
시간이 되었다. 반갑다.
벌써 그동안 다른 것 가지고 이리저리 연구하고 하는 날짜가 여러 날 지났고 유마경만 가지고 한 것도 오늘이 7일째다.
내일 월화수목까지 하고 금토일은 예습 복습하는 날로 정했다는 사실을 잘 아시리라 본다.
오늘 유마경 공부 시작하겠다.
*
보적의 게송,
장자의 아들 보적(寶積)이 여기 불국품에는 주인공이다.
<5>
계수십력대정진(稽首十力大精進)하며
큰 정진으로 열 가지 힘을 얻으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십력(十力) 부처님을 표현할 때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열 가지 힘이다. 앞에서도 십력이 나와서 읽어드린 바 있다.
이런 정도 불교 용어는 요즘 핸드폰에서 네이버나 다음 같은 데에 들어가서 검색하면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인터넷에 없는 정보가 없다.
거기서 찾아서 읽고 또 읽어서 숙지하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십력은 부처님에 대해 표현할 때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표현할 때 키가 크다 얼굴이 어떻다 32상 80종호 같은 특징도 나오지만, 우리가 부처님을 존경하는 것은 부처님의 능력, 지혜, 특히 지혜의 힘, 자비의 힘 때문이다.
부처님이 가진 열 가지 힘, 십력도 부처님을 표현하면서 상당히 거론된다.
계수이득무소외(稽首已得無所畏)하며
이미 두려울 것 없음을 얻은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여기 무소외는 4무소외다. 불교에는 법수(法數)라고 하는 책이, 상당히 두꺼운 법수사전이 따로 있을 정도다. 숫자로써 진리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부처님의 덕을 표현한다.
불교에 들어오자 마자 삼보(三寶)니 사홍서원(四弘誓願)이니 삼귀의(三歸依)니 사성제(四聖諦)니 팔정도(八正道)니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니 6바라밀(六波羅蜜)이니 십바라밀(十波羅蜜)이니 십력(十力)이니 사무소외(四無所畏)니 숫자로 표현하는 불교 교리를 상당히 많이 만난다.
우리 어릴 때 강원에 있을 때는 ‘십력하면 뭐다’‘사무소외 하면 뭐다뭐다’ 그런 것을 줄기차게 외웠다.
부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데 ‘네 가지 두려움 없음’ 이것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계수주어불공법(稽首住於不共法)하며
특별한 법[不共法]에 머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이 불공법도 18불공법이라고 해서, 불공법(不共法) 같이 하지 않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법, 그래서 특별한 법이라고 해석을 한다.
‘특별한 법에 머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이것도 앞에서 한 번 읽어드렸는데, 이런 법수들이 네이버 같은 데 다 잘 정리되어 나와 있다.
‘18가지 특별한 법, 그것 때문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네 가지 두려움 없음, 그것 때문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열 가지 힘, 그것 때문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존경하고 따를 때는, 나보다 낫고 훌륭한 점, 글씨를 잘 쓰던지, 말을 잘 하던지, 아니면 불교경전에 아주 해박하던지 뭔가 이유가 있어야 된다.
‘금강경에 도사다’‘법화경에 도사다’ 아니면 ‘화엄경의 대가다’‘능엄경에 대가다’‘원각경에 대가다’ 그야말로 요즘 표현으로 ‘한 칼씩’ 이 있어야 된다.
특히 불교의 프로인 스님들은 그런 한 칼씩이 있어야 된다.
‘이 한 가지 경전만은 부처님이 와도 내가 양보하지 않는다’그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좀 좋은가?
예를들어서 ‘나는 금강경이다’ 하고 금강경을 가지고 설법을 하고 모든 불교 교리도 금강경과 연결시켜서 다 해석을 하는 것이다. 또 능엄경이면 능엄경, 원각경이면 원각경 좋은 경전이 많지 않은가?
평생을 능엄경만 읽는 스님도 있다. 그래서 화엄경산림에 법문하라고 올려놓으면 능엄경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좋은 현상이다. 최소한도 그 정도의 특징이 있어야 하겠다.
스님들이 평생 부처님 밥을 얻어 먹으면서 그런 것 한 가지 갖추지 못했다면 좀 그렇다.
스님들은 모두가 그런 것 한가지씩은 있어야 된다.
계수일체대존사(稽首一切大尊師)하며
일체대중에게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은 일체 대중에게 전부 큰 스승이다.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하고는 비교가 안돼서 아주 훌륭한 스승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계수능단제결박(稽首能斷諸結縛)하며
능히 모든 결박을 끊은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여러분들은 불교에 대해서 ‘어떤 점에 감동을 해서 불교에 예경을 드리는가?’ 이런 것도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결박(結縛) 결(結)이나 박(縛)이나 전부 속박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니까 번뇌를 뜻하는 것이다.
번뇌가 있으면 다 얽혀있다. 속박되어 있다. 번뇌 때문에 옴짝달싹 못한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또 각자가 맺어놓은 인연 때문에 그 인연에 속박이 되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은 일찍이 출가를 했고, 출가했다고 해서 속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은 진정 마음으로부터 모든 번뇌가 사라졌다.
많은 가족들과 함께 살아도,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사는 수가 있고, 연꽃이 진흙탕에 있더라도 진흙 물이 들지 않듯이 그렇게 사는 도리도 있다. 그것이 속박을 다 벗어났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속박을 다 벗어났다는 것 ‘그런 점에 대해서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보적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에 대해서 세세하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어떤 면을 뜯어보더라도 부처님은 참 머리 숙여 예배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다.
계수이도어피안(稽首已到於彼岸)하며
이미 저 언덕에 이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피안에 이르렀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두고 얘기 할 때, 차안은 문제투성이, 온갖 것이 전부 나에게 문제로 남아있는 것, 그리고 피안은 어떤 문제도 다 해결이 된 상태, 그런 상태를 우리가 저언덕, 피안이라고 한다.
피안에 건너갔다. 도피안(到彼岸), 바라밀을 그렇게 해석한다.
계수능도제세간(稽首能度諸世間)하며
능히 모든 세간을 제도하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세간을 제도하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세속적인 문제들과 거기에 얽혀 사는 사람들을 부처님은 다 가르치고 거기에서 헤어나게 하는 교화와 제도의 능력을 갖추신 분이다.
그래서 불교에는 ‘교화한다. 제도한다. 사람을 성숙시킨다. 철들게 한다’ 등등의 비슷한 표현들이 많다.
부처님은 세상사람들을 전부 그렇게 교화하고 성숙시키고 제도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그래서 보적이라고 하는 장자의 아들이 ‘머리숙여 예배합니다’라고 한다.
계수영리생사도(稽首永離生死道)하사오니
영원히 생사의 길을 떠난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은 영원히 생사의 길을 떠났다. 삶과 죽음에 초탈했다. 해탈했다.
삶과 죽음에 까지도 해탈했다.
해탈한 상태에서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런 모든 문제에서 다 벗어난 상태다.
부처님은 그런 점에 있어서 우리가 머리 숙여 예배할 만하다, 그런 뜻이다.
보적(寶積)이라고 하는 이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을 잘 알고 표현도 잘 했다. 거기다 게송으로까지 시형식을 빌려서 표현했다고 하는 것이 참 부럽다.
실지중생래거상(悉知衆生來去相)하고 선어제법득해탈(善於諸法得解脫)하며
중생의 가고 오는 모습을 다 알고 모든 법에서 해탈을 잘 얻었으며
중생의 오고가는 모습을 다 알고 모든 법에서 해탈을 잘 얻었으며
불착세간여연화(不着世間如蓮華)하고 상선입어공적행(常善入於空寂行)하며
세간에 집착하지 않음이 마치 연꽃과 같고
항상 공적한 행에 잘 들어갔으며
여기는 게송이 조금 연결이 된다.
불착세간여연화(不着世間如蓮華) 세간에 집착하지 않음이 연꽃이 진흙에서 피지만 진흙이 묻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부처님은 살고 계신다.
연꽃의 특징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이
처염상정(處染常淨)이다. 연꽃은 더러운 물에 있지만 항상 자신의 깨끗함을 유지한다. 거기에 물을 끼얹거나 비가 떨어져도 연꽃은 말할 것도 없고 연꽃잎 마저도 물이 또로록 굴러서 절대 묻지 않는다. 굴러서 탁 떨어지고 떨어지고 한다.
연꽃은 식물 중에서도 특별한 성질을 가진 식물이다.
또 연꽃은 화과동시(花果同時)라. 꽃과 열매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연꽃이 필 때 봉오리는 꼭 우리가 합장하는 손과 똑같다.
합장 할 때 굳이 연꽃처럼 둥글게 손을 오므려서 하는 합장도 있다. 티벳 스님들, 특히 티벳 불자들은 그렇게 연꽃 봉오리를 흉내내서 합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굳이 그렇게 안 하고 손바닥을 딱 붙였을 때 아주 좋은 합장이다 라고 말한다.
또 연꽃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나라에서 한 700년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꽃을 피운 연씨가 있어서 굉장한 뉴스거리가 되었다.
2010년 7월 7일자 신문과 각 각 TV에서 “700년 만에 핀 연꽃”이라는 제목 하에 경남 함안군 함안박물관 수족관에 심어진 아라가야시대의 홍련(紅蓮)이 7개의 꽃대와 함께 활짝 꽃을 피워 눈길을 끌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당시 7월 7일 현재 7개의 꽃대가 꽃을 피웠다.
연꽃씨는 연씨라고 해서 우리가 염주도 만들고 한약재로도 쓰고 식품으로 먹기도 하고 효능이 좋다고 야단이다.
그런데 그 씨는 신기하게도 잘 썩지도 않는다. 그래서 700년 동안 있다가 발견이 되어 그것을 키웠는데 꽃을 피웠다.
‘누가 속인 것이 아닌가?’
천만에 굳이 그런 일을 뭐하려고 속이면서까지 하겠는가?
모든 증빙 자료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다.
또 연꽃이라고하는 성질 그 자체는 과학적으로 분석을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를 연꽃에 비유를 하고 불교의 꽃은 연꽃이다 라는 것은 너무나도 진부한 이야기다.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이야기다.
*
지금 80명이나 들어와서 이렇게 동참하고 계신다.
많은 분들이 동참하셔서, 누가 축원해주는 부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
달제법상무가애(達諸法相無罣礙)이시니 계수여공무소의(稽首如空無所依)니다
모든 법의 행상을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허공과 같이 의지함이 없으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법의 행상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다. 그것이 부처님의 살림살이다. 모든 법의 형상에 통달해서 걸림이 없는 것, 그다음 말이 의미심장하다.
‘허공과 같이 의지함이 없으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우리는 온통 모두 의지해서 산다.
그런데 부처님은 의지함이 없다.
무엇처럼?
허공처럼.
‘모든 사물은 전부 허공에 의지하고 있고, 허공은 의지한 데가 없다’ 그렇게 불교에서 이야기 한다.
부처님은 허공처럼 의지하는 데가 없으면서 모든 것들의 의지처가 되신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제자들에게 아주 간곡하게 부탁한 것이 있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
자기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기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라.
그리고 그 외에 귀의처로 삼지 말라.
또 자주(自洲) 법주(法洲)라는 표현도 있다.
주(洲)는 섬이라는 표현인데 피난처, 쉴 곳, 안식할 곳, 안주할 곳 이런 의미다.
자기 자신을 쉴 곳으로 삼고 진리를 쉴 곳으로 삼아라.
다른 것을 쉴 곳으로 삼지 말아라.
*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부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자신, 자기 자신이라는 말 속에는 의미심장한 깊은 뜻이 있다. 섣불리 그렇게 해석할 일은 아니다.
진리의 가르침, 법으로써 의지처로 삼고 귀의처로 삼아라 하셨다.
이 보적이라고 하는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을 그렇게 찬탄하는데 무엇으로써 찬탄할까?
부처님은 찬탄할 거리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그중에서 선별해서 소개한 것이 지금까지 읽어드린 내용이다.
8.불국토(佛國土)
그다음에 불국토라는 제목이 나온다.
우리가 유마경에서 지금 공부하는 첫 번째 품이름이 불국품이다. 그런데 불국토라고 하는 소제목으로써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시(爾時)에 장자자보적(長者子寶積)이 설차게이(說此偈已)하고 백불언(白佛言)하되 세존(世尊)이시여 시오백장자자(是五百長者子)가 개이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皆已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며 원문득불국토청정(願聞得佛國土淸淨)하나이다 유원세존(唯願世尊)은 설제보살정토지행(說諸菩薩淨土之行)하소서
그때에 장자의 아들 보적이 이 게송을 설하여 마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있는 500명의 장자의 아들들이 모두 이미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었으며 불국토의 청정함을 듣기를 원합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께서는 모든 보살의 정토행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보적이라고 하는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불국토에 대해서 이렇게 묻는다.
불언(佛言)하사대 선재(善哉)라
보적(寶積)아 내능위제보살(乃能爲諸菩薩)하야 문어여래정토지행(問於如來淨土之行)하니 제청제청(諦聽諦聽)하야 선사염지(善思念之)하라 당위여설(當爲汝說)하리라
어시(於是)에 보적(寶積)이 여오백장자자(與五百長者子)로 수교이청(受敎而聽)하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훌륭하구나. 보적이여, 능히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여래의 정토행을 묻는구나.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그리고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이에 보적이 장자의 아들 5백 명과 함께 가르침을 받고 들었다.
글 내용 그대로다.
불언(佛言)하사대
보적(寶積)아
중생지류(衆生之類)가 시보살불토(是菩薩佛土)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보적이여, 온갖 중생이 보살의 불국토니라.”
중요한 말씀이다.
온갖 중생이 보살의 불국토니라.
보살의 불국토는 중생이 불국토다. 중생이 불교의 화두다.
중생이 부처님의 화두고, 중생이 보살의 화두고, 모든 불법의 화두가 중생이다.
여기서도 또한 온갖 중생이 보살의 불국토다.
중생을 위해서 있는 종교가 불교다.
그 모든 어마어마한 불법이 전부 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중생을 위해서 사는 일, 중생을 위해서 하는 행위 그것이 수행이다.
여기 첫마디가 ‘온갖 중생이 보살의 불국토니라’
소이자하(所以者何)오 보살(菩薩)이 수소화중생(隨所化衆生)하야 이취불토(而取佛土)하며
“왜냐하면 보살이 교화할 바의 중생을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느니라.”
‘교화할 바의 중생을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느니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불국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소조복중생(隨所調伏衆生)하야 이취불토(而取佛土)하니라
“조복할 바의 중생을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느니라.”
교화나 조복이나 제도나 성숙이나 조금씩 뜻이 달라서 그렇지 같은 의미다.
중생을 교화한다, 조복한다 그래서 불국토가 필요하다.
이런 말이다.
유마경의 이런 점이 좋다.
저는 경전을 이것저것 많이 봤는데 특히 화엄경하고 유마경하고 애착을 갖는 것이 이런 점이다.
수제중생(隨諸衆生)이 응이하국(應以何國)으로 입불지혜(入佛智慧)하야 이취불토(而取佛土)하며
“모든 중생이 반드시 어떤 국토로써 부처의 지혜에 들어가는가를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며”
모든 중생이 반드시 어떤 국토로써 부처의 지혜에 들어가는가를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며
수제중생(隨諸衆生)이 응이하국(應以何國)으로 기보살근(起菩薩根)하야 이취불토(而取佛土)하니라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어떤 국토로써 보살의 근본을 일으키는가를 따라서 불국토를 취하느니라.”
부처님이 불국토를 취하는 것은 중생을 위해서다.
그리고 ‘보살의 근본을 일으키는가’를 따라서 부처님은 불국토를 취한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보살(菩薩)이 취어정국(取於淨國)은 개위요익제중생고(皆爲饒益諸衆生故)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청정한 국토를 취하는 것은 모두가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왜 불국토 불국토 청정한 국토 청정한 국토 좋은 집 좋은 땅 좋은 세상 좋은 자연 좋은 환경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려고 불보살들이 꿈꾸는가?
그것은 오직 중생을 위해서다.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좋은 집이 필요하고 좋은 환경이 필요하고 좋은 국토가 필요하다.
쉽게 표현하면 그런 것이다.
자나깨나 부처님은 그저 중생이다. 중생이 화두고 그저 중생을 위해서 부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생 때문에 부처가 되었다.
중생이 아니었으면 부처가 안됐다. 보살도 되지 않았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한 번 그것과 견주어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비여유인(譬如有人)이 욕어공지(欲於空地)에 조립궁실(造立宮室)이면 수의무애(隨意無礙)어니와 약어허공(若於虛空)이면 종불능성(終不能成)하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텅 빈 땅에 집을 세우고자 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아무런 장애가 없지만, 만약 허공에다 세우려고 하면 마침내 이룰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땅에 집을 세우려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 의지할 데 없는 허공에 세우려고 하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것과 같다.
보살(菩薩)도 여시(如是)하야 위성취중생고(爲成就衆生故)로 원취불국(願取佛國)하나니
“보살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을 성취하고자 하므로 불국토를 취하기를 원하느니라.”
중생을 교화하고 중생을 성취하고 중생을 성숙시키려고 불국토가 필요하다.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안락한 집이 필요하고 안락한 가정이 필요한 것과 같다.
원취불국자(願取佛國者)는 비어공야(非於空也)니라
“불국토를 취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하는 것이 아니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불국토를 취할 까닭이 없다.
중생이 있어야 불국토를 취한다.
불국토, 좋은 국토, 좋은 세상, 중생을 어떻게 하더라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마음에서 그런 것을 취하는 것이다.
대승경전, 그 중에서도 유마경 같은 것은, 대승불교가 활발하게 꽃피우고 나서 대승경전이 많이 쏟아졌을 때, 그중에서도 정제되고 정제되고 아주 뛰어난 보살들, 깨달음을 성취한 보살들이 결집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빈틈없이 경전이 설해졌다.
대단하다. 읽을수록 훌륭한 경전이다.
9. 보살의 정토행(淨土行)
<1> 세 가지 마음
보적(寶積)아 당지(當知)하라
직심(直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불첨중생(不諂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보적이여, 마땅히 알아라. 정직한 마음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속이지 않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보살의 정토행 하면서 세 가지 마음이 나온다.
첫째는 직심(直心)이다.
제가 번역을 하기를 ‘정직한 마음이 보살의 청정국토다’라고 하였다.
직심(直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다.
직심(直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다.
직심(直心) 곧을 직(直)자 마음 심(心)자
정직한 것이 그와 같이 소중하다.
뉴스에 정치인들이 싸우는 내용들이 전부 정직하지 않아서 그 진실을 밝히려고 얼마나 그렇게 싸우는가?
서로가 다 정직하다면 따로 밝히려고 할 까닭이 무엇인가?
여기 보살 정토(淨土)에서는 직심이 있다.
불국토(佛國土)나 보살의 정토(淨土)나 말이 좀 달라서 그렇지 같은 뜻이다.
직심(直心)이 보살정토(菩薩淨土)다
이것은 유마경에서 명언이다.
보살이 성불할 때에 속이지 않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세 가지 마음중에 또 한가지는
심심(深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구족공덕중생(具足功德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깊은 마음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공덕을 갖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공덕을 갖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깊은 마음, 사람이 깊다는 말을 한다.
사람이 깊다는 것은 마음이 깊다는 것이다.
심성이 굳다 이런 표현도 쓴다.
아주 깊은 마음, 공덕이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심심(深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다.
이것을 한 100번 200번 읊조리면서 읽고 또 읽어야 좀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한다.
‘심심(深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공덕을 갖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이렇게 한 두 번 읽는 것을 가지고는 그저 조금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맛을 느낄까 말까다.
부디 많이 읽어서 가슴에 와닿도록 해야 한다.
보리심(菩提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대승중생(大乘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보리심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대승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보리심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리심은 뭔가?
이타자리(利他自利) 자리이타(自利利他)
남을 먼저 위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보리심이다. 그 속에는 지혜와 자비가 당연히 들어있다.
보리심 하면 지혜와 자비, 그리고 이타심, 남을 위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보리심이다.
그런 마음이 보살의 청정국토다.
보살이 성불할 때에 대승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대승이라는 것이 뭔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대승이다.
우리가 택시 타고 왔다 하면 ‘아 소승타고 왔다’고 한다. ‘니 뭣 타고 왔노?’ 그러면 ‘아 소승타고 왔다’ 그러면 택시타고 왔다는 뜻이다.
소승은 자기 혼자만을 제도하기 위해, 자기 혼자만의 안락을 위해, 자기 혼자만의 정신적인 안녕을 추구한다.
참선을 한다든지 위빠사나를 한다든지 이것은 따지고 보면 자기 혼자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거의가 그렇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승적인 마음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보살이 성불할 때 대승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것이 보리심의 힘이다.
여기에 덧붙여 열반경에 있는 글을 제가 인용을 했는데 한 번 읽어보겠다.
“첫 발심과 성불이 다르지 않으나
이러한 두 가지 마음 중에 첫 발심이 어려우니
자신은 아직 제도되지 못했으나 남을 먼저 제도하니
그러므로 처음 발심한 이에게 예배합니다.
처음 발심하면 이미 인천의 스승이니
성문과 연각보다 수승하도다.
이와 같은 발심은 삼계를 지나갔으니
그러므로 ‘가장 높은 이’라고 부르도다.”
발심필경이불별(發心畢竟二不別)
여시이심선심난(如是二心先心難)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
시고아례초발심(是故我禮初發心)
초발이위인천사(初發已爲人天師)
승출성문급연각(勝出聲聞及緣覺)
여시발심과삼계(如是發心過三界)
시고득명최무상(是故得名最無上)
대단하다. 이것은 열반경에 있는 말이다.
발심필경이불별(發心畢竟二不別)
여시이심선심난(如是二心先心難)
그것을 좀더 길게 인용을 하면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
아주 유명한 말이다.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
자신은 아직 제도되지 못했으나 남을 먼저 제도하니
시고아례초발심(是故我禮初發心)
그러므로 처음 발심한 이에게 예배한다.
자신이 제도 안 되고 어떻게 이런 마음을 내겠는가?
자신은 이미 다 제도됐다. 그러나 표현을 이렇게 한다.
자신은 아직 제도되지 못했으나 남을 먼저 제도하니
그러므로 처음 발심한 이에게 예배합니다.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
대승불교는 바로 이것이다.
자기는 제도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찬물 한 바가지를 먹고 자식에게는 ‘나는 부엌에서 많이 먹었다. 니나 먹어라’ 하고서 음식을 주는 마음이다.
부족한 음식을 자식에게 내주고 자기는 찬물 한바가지로써 배를 채우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
자기는 배가 곯지만 먼저 자녀들을 준다.
우리들 마음에 그것이 다 있다.
불보살님들은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그런 마음을 끌어내어 실천에 옮기시고, 그런 것을 우리에게도 일깨워 준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아 우리에게도 본래 있었는데 부처님은 그러한 것을 잘 아시고 우리에게 일깨워주는구나’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초발이위인천사(初發已爲人天師) 처음 발심하면 이미 인천의 스승이다. 이쯤 마음을 낸다면, 자미득도선도타하는 마음을 내어 자기는 아직 제도를 얻지 못했지만 남을 먼저 제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이나 천상의 스승이다 라는 것이다.
승출성문급연각(勝出聲聞及緣覺)
성문과 연각보다 수승하다.
성문이나 연각은 우리가 소승이라고 말한다.
성문이나 연각보다 훨씬 수승하다. 인천의 스승이다.
여시발심과삼계(如是發心過三界)
이와 같은 발심은 삼계를 지나갔으니
욕계 색계 무색계를 훨씬 뛰어넘은 수준의 사람이다.
시고득명최무상(是故得名最無上) 그러므로 ‘가장 높은 이’라고 부르도다.
처음 보리심을 제대로만 발한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불자들이 그렇게 발심(發心) 발심 발심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발보리심하라 발보리심하라’
우리는 식은 죽먹듯이 발심을 말로는 하지만 그 진정한 발심을 나의 살림살이로 하기에는 참 어려운 단계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사람이 그러한 마음을 가슴속에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을 믿고 이러한 말에, 이러한 성인의 가르침에 수긍을 하고, 환희심을 내고 거기에 감동을 하고 ‘야 근사하다’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아 근사하다 근사하다.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어려운 일이지만 참 훌륭한 말씀이다. 성인의 말씀답다. 훌륭하다’ 이렇게 긍정하고 감동만 해도 거의 가까이 간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그런 단계에 다가서지 못했다고 너무 실망할 것도 아니고 포기할 것도 아니다.
절대 포기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서는 안된다.
포기할 것도 아니고 ‘아 이것도 내 가슴속에 있는 마음인데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되리라’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떠올리면 간단한 것이 아닌가?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것을 확대하는 것이다.
유오유(幼吾幼)하야 이급인지유(以及人之幼)라
어린아이를 내 어린아이 위하듯이 이웃집에 있는 어린 아이까지 그렇게 생각해서 발전한다.
노오노(老吾老)하야 이급인지노(以及人之老)라
우리집 어른들을 생각하듯이 이웃집 어른에게 까지 그 마음이 발전하는 것이다.
맹자도 그런 소리를 할 줄 안다. 성인들에게는 다 갖추어진 마음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성인의 가르침에는 다 있는 이야기다.
시간이 꽤 됐다.
*
왔다갔다 많이 다녀가시고도 88명이 지금 이시간에 동참하고 계신다.
밑에서부터 동참하신 대중들 이름을 한 번 읽어보겠다.
‘배옥금 금강지’ 아주 야무지게 썼다. 내가 자꾸 배금옥이라고 하니까. 저는 경전도 앞 뒤바꿔가면서 읽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게 실수다. 사람은 실수투성이다.
지금은 90명이 됐다.
다 낱낱이 법당에서 우리가 축원 읽듯이 이름을 읽어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하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더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쉬임 없이 항상 굴러가서
중생들의 미몽을 하루빨리 일깨워지이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_()()()_
直心 深心 菩提心...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부처님은 虛空처럼 의지하는 데가 없으면서 모든 것들의 依支處가 되신다.
~ 自燈明 法燈明, 自歸依 法歸依 ~
자기 자신을 쉴 곳으로 삼고 眞理를 쉴 곳으로 삼아라. 다른 것을 쉴 곳으로 삼지 말아라.
眞理의 가르침, 法으로써 依支處로 삼고 歸依處로 삼아라.
~ 衆生之類 是菩薩佛土 ~
온갖 중생이 보살의 불국토니라
菩薩의 淨土行 :
直心이 是菩薩淨土
深心이 是菩薩淨土
菩提心이 是菩薩淨土
~ 自未得度先度他 ~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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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는 집을 지을 수 있다...를 제가 없다...로 쓴 것 알려주신 분이 계셨어요. 미안해 하셨지만 저는 정말 당연히 '교정'해 주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내용이 완전히 달라는 지는 거니까, 생각하면 식은 땀이 나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런 훈련은 많이 됐고, 그것은 당연히 감사한 일인 줄을 알았고...우리들은 내용까지 다 쭉쭉 그어져서 '피바다가 됐다' 이런 말들을 수업끝나고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놀러나가곤 했죠(스무살 아이들의 되도 않는 '숙제'에 선생님이 붉은 글씨로 교정을 해주셔서 ㅎ).....모두가 함께 하는 참 아름다운 시간들입니다.^^ 생기발랄~~
아...추억에 잠겨서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을 놓쳤습니다.< 틀린 글자 보시면 리플달아 주셔요^^>~~ 그리고 제가 오늘 듣고 밑줄 그은 좋은 말을 회향합니다.
시인님께 들었어요.
'삶이 아름다운면 그게 시입니다'....ㅋㅋ 큰스님을 두고 우리가 시라고 부른 아침!!~~^^
*부처님이 특별하신 이유
十力, 四無所畏, 十八불공법. 稽首一切大尊師 일체대중에게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장자의 아들 寶積이 옛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의 대표입니다.
*佛國土 ㅡ 如來淨土
부처님 나라 아닌 때, 아닌 곳이 없습니다.
衆生之類가 是菩薩佛土 ㅡ 直心, 深心, 菩提心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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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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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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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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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