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목욕가~
가끔씩 이 한마디를 남기고 길을 떠나곤 한다. 몸을 씻기 보다는 마음을 씻으러 떠날 때 하는 말이다. 세월은 참 빠르다. 내가 흙을 만지기 시작했던 게 20년 전부터 이지 싶다.. 쉬임없이 수련만 시키고 사는 나에게 일주일에 하루라도 쉬면서 흙을 만져 보는건 어떠냐고 권하는 회원이 있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이천 나들이를 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서둘러 '취백당'으로 차를 몰았다. 도예 수업을 이라기 보다는 나에겐 소풍이었다. 손으로 빚어 자그마한, 때론 좀 큰 그릇을 만들고 다음주에 가면 깎아 칠을하고 그 다음주에 가면 하나의 그릇이 완성되어 있었다. 취백당 선생님이 만들어 주던 음식은 맛깔났고, 도예 이상의 작품을 대하는 것 같았다. 매주 취백당을 드나들면서 회원전에 작품을 내기도 하고, 사발 공모전에 출품을 하게 되면서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스가마에 구워내는 그릇과 망뎅이가마에 구워내는 그릇은 많은 차이가 난다는걸 듣고 망뎅이가마를 보고싶었다. 그해 목욕의 행선지는 문경으로 정했다.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보면 망뎅이가마의 불꽃을 볼 수 있을테고, 이번엔 물이 아닌 불 목욕을 하자.
닥터황의 부모님이 계시는 점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도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닥터황의 어머니는 아는만큼 자세하게 일러 주었다. 망뎅이가마에 불을 때는걸 보려면 문경 한바퀴를 돌아보자고 했다. 문경 분들은 대부분 다도를 즐긴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잘 정리되어 있던 말차 잔 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 주며 작가를 알려주고, 설명을 해 주시던 닥터황의 어머니. 우선 많은 가마들을 하나씩 찾아보자고 했다. 첫번째 들렀던 곳이 [영남요] 였다. 김정옥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난 아무것도 몰랐다. 반갑게 맞아 주시던 김정옥 선생님. 무명 작업복을 입으시고 작업을 하고 계시던 선생님. 망뎅이가마에 불 때는것을 보고싶어 문경에 왔다고 말씀을 드리니, 이틀 후에 불 때는 날이니 시간맞춰 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영남요를 다시 찾았다.
흙을 만지는 공방이 이렇게 깨끗 할 수가 있을까? 정말 먼지한알 없이 깨끗한 작업장. 밥알이 떨어져도 집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정갈함, 주눅이 들 정도였고 법정스님의 공양간 생각이 났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 뭘 하냐고 물으셔 氣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기에관해 관심을 가지시며
"조카뻘 되는 사람이 기를 하는데 그릇에도 기가 나온다는데 그래요? 나 기분좋으라고 하는말인지 뭔지 모르는데 여러 사람들의 그릇을 놓고 기를 운행해보니 내 그릇이 기가 강하다고 하는데 그런게 있나요?"
아직 사물에 기 운행을 해 보지 않아 잘 모르긴 한데 제가 한번 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날 밤, 닥터황 어머님은 그릇은 내어 놓으신다.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다. 난 처음으로 사물의 기운을 측정 해 보기로 했다. 신기했다. 사람을 위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운을 운행하라 가르치신 선생님의 분부(?) 대로 난 사람 에게만 수련을 시키고 기운을 운행했고 사물에 기운을 운행하는건 처음있는 일이다.
아니다. 생각 해 보니 딱 한번 급히 공중전화를 써야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가진건 마그네틱이 손상된 전화카드랑 동전몇개. 그런데 카드전화기만 있었다. 난감해 하며 동전용 공중전화기를 찾았지만 없었다. 그때, 사람도 변화시키는데 한번 해볼까? 카드를 손바닥에 놓고 기운을 운행하고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났다. 딱 한번. 얼마나 신기해 했던지.
사물에는 두번째로 기운을 운행 해 보고 측정하는 날이다. 그릇마다 기운이 다르다. 정말 신기했다. 작가마다, 그릇의 크기마다 기운이 달랐다. 강도도 다를 뿐 아니라 부드럽고 억센 것 까지 감지가 되었다. 아하!!!!! 뭔가 번쩍 생각이 떠 올랐다.
다음날 영남요에 도착했을 때, 김정옥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래 도자기를 만들다 보니 어깨가 아프시다고. 수련을 시켜드렸다. 한참을 하시고 난 이후, 찻사발 하나를 나무상자에 담아 내어 놓으신다. 그냥 가게 할수 없다고. 도움을 받았으니 사발하나를 선물 하신거다. 거절을 했다. 이 귀한걸 받아갈 수 없다고. 그때 사발은 넣으시고 문화생으로 받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문경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보름정도 되니 그 시간만이라도 열심히 배워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지금까지는 생각없이 흙을 조물락 거리고 있었지만 그릇에 기운이 들어있는걸 안 순간, 도자기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날, 내가 만든 도자기를 남겨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에 문화생으로 받아달라는 간청을 드렸다.
다음날, 망뎅이가마에 불을 지폈다. 새벽4시부터 불을 지피면 10시간 이었던가? 어쨋든 그 불은 오후까지 때게 되는데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불을 보고 계셨다. 불꽃의 모양을 보시며 장작을 넣고, 또 기다리고, 그렇게 하루종일 불꽃이 피어 올랐다. 가끔씩 가마 아랫부분에 막아놓은 흙덩이를 꺼내면서 그릇들이 잘 구어지고 있는지를 보시는것 같았다. 처음보는 망뎅이가마의 불때는 광경이니 뭘 하는건지 알수 없었다. 단지 지금 기억나는건 막걸리랑 과일, 북어 등의 음식을 준비하고 고사를 지내고 모여든 사람과 음식을 나눴던 기억만 날 뿐. 그릇의 기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옥 선생님의 그릇과 아드님이신 김정식 선생님의 그릇 기운이 다랐다. 그대로 말씀 드렸더니 " 흙도 똑 같고, 작업도 같이하는데 달라요? 참 신기하네.." 사람의 기운이 다르니 당연히 그럴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앞치마를 입었다. 9시부터 6시까지는 일을 하고, 저녁식사 이후부터 공부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작업장에 일을 도우는 사람이 세명 이상이면 식사를 스스로 해결 해야하고 두사람 까지는 따로 식사 준비할 필요없이 여기서 함께 먹는다고 하신다. 다행히 작업장에 일을 하는 사람은 나와 젊은 청년 한사람 뿐이어서 식사는 자연스레 해결이 되었다. 내일 이라야 방을 줄수있는데 오늘은 방이없다고.
언제든 차박을 할수있는 준비가 되어있어 하룻밤을 영남요 마당에서 차박, 다음날 방 하나를 내어주셨고 일을 시작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일이 선생님의 그릇에 도장을 찍는 일이었다. 문화재 선생님이 만드신 그릇에 도장을 찍는데 덜 마른 기물이 망가질까 얼마나 떨었던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떨었던 기억이 난다. 평생을 이어오신 일이라 끝이 없다. 정말 힘든 작업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작업장 퇴근시간이 되면 앞치마를 입은 채 문경 온천으로 간다. 지역사람과 외지인들의 목욕비가 달랐지만 앞치마에 흙 투성이로 간 나에게 지역사람 목욕비를 받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ㅎㅎㅎㅎ 저녁 식사후면 할 수 있는한 물레를 돌렸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선생님 작업장에서 보낸 보름. 뭔가를 이룬분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하신 분이신데 너무나 겸손하신 선생님. 흙을 만지는 사람은 선량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을 뵈면 당연히 그럴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모님께서 서울에라도 다녀오시면 버스 정류장에 태워드리고 모셔오는 것도 손수 하셨다. 본인이 할 수 있는일은 모든걸 혼자 해결하시던 선생님. 도예뿐만 아니라 글씨도 정말 명필이셨다. 그리고 일본어를 일본인처럼 하시는걸 들었다.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선생님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본어 공부를 하셨단다. 당시 문경에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데가 없어 독학으로 일본어를 이만큼 하시게 되었다며 웃으셨다. 당시, 일본어 공부를 하고있던 터라 선생님의 일본어 실력을 알 수 있었다. 곁에서 뵙는 김정옥 선생님은 모든게 존경스러웠다. 또 한번 생각했다. 뭔가를 제대로 이룬사람은 겸손하며, 성실하며, 부드럽다는걸. 정말 잘난 사람은 잘난 척이 아니라 그낭 잘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보름이 지났다. 작별인사를 했다. 나무로 깍아 만든 도구들을 챙겨주셨다. 항아리를 만들 때 쓰게되는 기물, 사발을 만들 때 써야하는 기물들 이것저것을. 인사를 드리는 나에게 선생님께서 하신말씀은...
"이 힘든 일을 이렇게 해 낼줄 몰랐어요. 서울사람이 와서 며칠을 못버티고 포기하던데, 며칠 하다 그냥 갈줄 알았는데 약속했던 날 까지 견뎌내서 좋아요. 처음엔 며칠 못버틸 줄 알았는데..."하시며 웃으셨다.
-정말 도예를 하려하면 물레를 먼저 준비하고, 하루도 빠지지말고 물레를 돌려라. 단 몇개를 만들더라도 쉬임없이 해야한다. 그래야만 해 낼수가 있다. -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
한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문경을 떠나왔다.
일단 돌아와 물레를 준비했다. 집에서 흙을 만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방을 알아보고 물레를 공방으로 옮기고 시간이 되는한 물레를 돌렸다. 10년 정도를 꾸준히 하다보면 뭔가 되어질거라 생각하고...내가 없어도 그릇을 남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데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나이 쉰 셋에 김정옥 선생님을 뵈었고, 난 도예에 빠지지 못했다. 선생님을 만나 사물에 기운을 운행시켰고, 그에 대한 공부를 한것 은 나에게 있어서 큰 깨달음이라 여긴다. 지금 나는 내 길을 가고있다. 김정옥 선생님을 뵈오면서 같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를 배웠다. 지금의 나는 내가 가는 이 길에 내 삶을 바치려 한다.
지금도 김정옥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