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4남 2녀중 막내인데 둘째형과 나만 유산으로 약간의 토지를 받게 되었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82년에는 별가치도 없었던 토지가 지금은 도시확산으로 가치가 상승되었다.
당시 부모님은 두 누님에게 유산을 준다는 생각은 없었고
공부를 못시킨 둘째형과 나에게만 생전에 토지를 이전해 주셨다.
퇴직이후 그 땅을 가꾸기 위하여 다니다 보니 둘째형수와 만나게 된다.
(둘째형은 2004년 작고)
농촌에서 자란 둘째형수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형이 있는 동안에는 형제 모두가 왕래도 하고 소통이 잘 되었는데
형이 세상을 떠난 후에 형수는 독자적 행동으로 모든 형제들을 배척하여 왔다.
서로 연락하지도 않고 왕래하지도 않고 심지어 길가다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지나치는 성격이다.
다만 나는 토지가 붙어 있어서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었고
형수의 반응이 없더라도 인사를 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멀뚱하게 쳐다보기만 하여 마음을 상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둘째 형님은 1남2녀를 두었다.
어느 순간 부터는 조카들도 소통이 없는 사이로 변하여 10년 정도는 그렇게 살았다.
어느날 의사인 조카에게 볼일이 있어서 전화를 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바빠서인가하여 문자를 해도 회신이 없어 직접 병원에 찿아 간 일이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냉대를 받았을 때는 정말 인연을 끊고 싶기도 하였다.
형수는 조카들에게 삼촌과 고모들을 나쁜 사람으로 각인시켜 놓아 우리를 멀리하여 왔던 것이다.
2) 나는 이 시기에 마음공부를 하게되고 이어서 우리 수련을 하였다.
형수와 조카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가 도리를 지키고
하늘이 원하는대로 하다보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게 되었다.
형수를 보면 내키지 않지만 조카들에게 손수 키운 건강식품을 보내주곤 하였다.
인사를 받든지 말든지 선의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만은 도리있게 사는 것이 조상이 원하는 일이고 하늘이 바라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고
형제들에게도 항상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형수는 그러하여도 우리는 도리있게 살자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일어나는 서운한 감정은 지울수가 없었다.
내가 도리있게 사는 것은 선업을 쌓는 일이지만 선의를 받아주지 않는 형수는
악업을 쌓는 것이 아닐까하면서 이겨가는 수밖에 없었다.
3) 며칠전 나는 농장의 컨테이너 안에 있는데 갑자기 조카가 나타나 인사를 하였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주고 돌아서는데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동안 그들에게 냉대받은 일들이 떠올랐다.
마음공부를 하고 수련을 통하여 바르고 도리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한 마음이
드디어 하늘에 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을 하고 마음을 다스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상황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련을 통하여 참고 견디며 바르게 살다보니 기적같은 일도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