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출생, 양반, 최여겸(마티아:복자)의 조카, 전주에서 40세 순교
거주지는
전주(?)로
불분명함
(한국천주교회사2.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04~105쪽)
『여기에 전라도의 몇몇 다른 증거자들의 이름을 덧붙이기로 하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사정이 남아있지
않고,
또한
그들이 순교한 정확한 날짜도 보존되어 있지 않으나,
같은 시기에 고통을 당하였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이들은 아래와 같은 사람들이다.
李화백 이 사람은 靈光 고을의 양반이요 崔汝謙 마티아의 제자로 자기 고향에서 斬首당하였다. 같은 (최여겸)마티아의 조카로, 흔히 「금노」라고 불리는 최일안이란 사람은 영광스럽게 신앙을 증거한 후 전주에서 당한 형벌로 죽으니,
나이는 40세 였다. 靈光 고을 복산지의 양반으로 참수당한 吳氏라는 교우,
끝으로 錦山 고을 솔티에서 붙잡혀 전주에서 참수당한 元氏라는
또 한 사람의 교우이다.』
(한국천주교회사 上, 샤를르 달레著 522쪽, 천주교 전주교구사 1269쪽, 광주대교구 50년사 64쪽)
* 참고 -최여겸의 조카 : 무장에 사는 최수천(崔壽千. )과 최일안이 있음
[고창개갑성지순교지자료]
최여겸 마티아 ‘개갑성지’
고창
향토문화유산 제1호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복자
최여겸 마티아 순교자는 1763년 고창군 공음면 갑천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이다.
진산
땅의 첫 순교 복자 윤지충 바오로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충정도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를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최여겸 마티아는 고향에서 고창, 흥덕, 무장, 영광, 함평 등 서남해안 지역에 전교를 하였다.
최
마티아 복자가 입교시킨 사람은 무장의 최수천(횡성에 유배), 최일안(전주에서 형벌로 옥사),
흥덕의
김처당(청도에 유배), 영광의 이화백(영광에서 순교), 함평의 남중산(평산에 유배) 등
기록에
있는 사람만 28명이다.
신유박해(1866, 음력 4,13 )때 처가인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 전주 감영을 거쳐
한양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였다.
형조에서는
중죄인은 고향에서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는 해읍 정법(該邑正法)의 명을 내려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개갑 장터에서 1801(병인)년 장날인 7월 19일(음) 참수형을 받아
38세에
순교하였다.
복자 최여겸 마티아의 전주 최 씨 후손은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물증을
찾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 더 연구할 과제라는 백원철 교수의 얘기이다.
순교자
최여겸 마티아는 2014. 8.16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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