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향약서 작성자 홍상조 선생 이 향약서는 대명(명나라) 신종황제 만력 31년 계묘(1603년, 조선 선조 36)에 산양현 웅연동에 건사(建社, 임란 때인 1593년 왜구가 불지른 산양향약소 및 서당을 복원)한 수계소를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 운영하고자 쓴 서문이다. 산양현의 사문 부로들과 영가(永嘉 : 안동) 권공(權公)의 집에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바, 전례에 따라 향약의 실천강목인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을 수계소에서 다시 시행한다는 내용이다. 조선 영조 28년 신미(辛未年은 양력으로 1751년 영조 27년인데, 음력으로는 1752년 壬申年 영조 28년임) 윤5월 삭(초하루) 통훈대부(정3품) 전행 봉상시정 남양 홍상조 재배 근서 #홍상조(洪相朝, 1690~1756) : 본관은 남양(南陽 : 중랑장파), 자는 서일(敍一), 호는 만송(晩松)이다.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3)의 문인으로, 권상일(權相一, 1679~1759), 정간(鄭榦, 1692~1757) 등과 교유하였다. 1723년(경종3)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28년(영조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조정랑, 고부군수(古阜郡守)를 거쳐 1742년 박천군수(博川郡守)가 되었는데, 군수로 있을 때의 행적이 역모에 연루되어 1745년에 무안(務安)으로 원찬(遠竄)되었다가 1748년 2월에 무고가 밝혀져서 풀려났다. 청대 권상일이 쓴 제문(祭文)에 의하면, 말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상주 산양녹문리(山陽鹿門里)로 낙향하여 현리(縣里) 부벽정(浮碧亭) 옆에 함취정(含翠亭)을 세우고 후진(채헌 등등)을 양성하며 학문에 몰두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淸臺集 卷10 祭晩松洪相朝文, 韓國文集叢刊 續61輯》, 《國朝文科榜目》, 《承政院日記》.
#산양수계안 천天, 지地. 상권인 천편에는 산양향약소를 창건한 수계 계원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첨지 황사웅, 사맹 변종번, 별좌 변종범, 첨지 서흔, 부장 변안인, 유학 박인창, 유학 박지창 등등...
산양수계소 임원록 인, (義), 예, (智), 신
경진년庚辰年 3월에 개장한 산양수계소 완의 경로회안목 상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