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햇빛은 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후텁지근한 날씨입니다.
오늘은 들깨 모종 낼 밭에 풀을 뽑기로 했습니다. 거충이 부부는 소풍 가는 기분으로 도시락을 챙겼습니다.
쌈장은 꼭 가지고 갑니다. 무공해 고추랑 오이를 따서 찍어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입니다. 그리고 컵라면은 빠지면 안 되는 필수품이죠. 배낭에 먹을 것을 챙겨 넣을 때는 학교 다닐 적에 소풍 가던 생각이 나서 마음이 달뜨고 흐뭇합니다.
팔부거충이는 반거충이에게 얼굴에 썬 크림을 바르라고 권합니다. 평상시 얼굴에 크림도 잘 바르지 않은 반거충이입니다.
"괜찮아, 오늘은 햇빛이 구름에 가려서 안 발라도 돼."
"구름 속에 햇빛이 가렸지만 얼굴은 타요."
반거충이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싶어 팔부거충이를 쳐다봅니다.
"발라요!"
"안 발라!"
"말 들어요. 나중에 후회해요."
"후회 안 해!"
반거충이는 팔부거충이 말을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반거충이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합니다. 한번 고집을 피우면 미련스럽게 꺾지 않으려고 합니다.
팔부거충이는 반거충이의 성질을 아는지라 더 이상 권하지 않았습니다.
반거충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발갛게 익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얼굴 익은 것 좀 봐. 내가 바르라고 했잖아요!"
반거충이 얼굴은 평소에도 조금 검은 편입니다. 햇볕에 그을렸으니 붉으면서 검게 보였습니다. 발갛게 익어 검게 탄 얼굴로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면 십중팔구 교통경찰이 음주운전이라고 음주 측정을 할 것만 같았습니다. 반거충이는 공연히 심통이 나서 팔부거충이에게 신경질을 부립니다.
"힘들다. 그만 내려가자!"
"조금 더 하고 가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밭떼기에 목숨 걸 일이 있나.
"……."
팔부거충이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일을 합니다. 반거충이는 성질이 급해서 실수가 잦은 편이지만 팔부거충이는 어떤 일을 할 때 계획적으로 차분하게 추진합니다.
팔부거충이는 마느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을 이따금 했습니다. 쓸데없는 말이라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러 보냈습니다. 오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팔부거충이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말을 안 들으면 한두 번 더 권해보지, 이 철딱서니 없는 마누라야.’
말을 하면 팔부거충이를 인정해주는 꼴이 되므로 속으로 화풀이를 했습니다.
팔부거충이가 저녁에 오이로 마사지를 해 주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오이를 얼굴에 올려 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화끈거리던 얼굴이 시원해집니다.
"바르라고 할 때 발랐으면 고생은 하지 않잖아요. 당신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요."
"그려, 다음부터는 바르지 뭐."
"화낼 일도 아닌데 당신은 화부터 내요. 화내고 나면 머리 안 아파요?"
"머리 뿐 아니고 속도 쓰려."
"화내면 건강에 엄청 나쁘대요. 건강을 생각해서 술도 적당히 마셔요."
"......"
"말을 할 때는 상대방 기분도 헤아려야 하는데 당신은 아무 말이나 해서 기분 상하게 하는 것도 알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가만있어요. 오이 떨어져요."
말도 못하도록 하면서 야무지게 훈육을 합니다.
팔부거충이는 마사지를 해주면서 평소 서운했던 감정을 작정하고 늘어놓았습니다.
‘그려, 마사지란 빌미로 당신 하고 싶은 말 다 하구려. 내가 조용히 들어보고 새길 말이 있으면 새기리라.’
반가충이를 생각하는 진심어린 충고가 자장가처럼 들려 잠이 옵니다.
"이 양반이 남은 정성 들여 말하는데 잠을 자요."
하면서 볼을 꼬집습니다.
오늘 얼굴은 그을렸지만 나름대로 팔부거충이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어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팔부거충아, 앞으로 말 잘 듣도록 노력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