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포용하는 믿음의 성도
- 이효준 장로 (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모든 사명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수행하시고, 무결하게 다 완성하셨습니다. 3년이란 세월 속에 오직 사랑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질문이나 말을 할 때도, 주님께서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들을 포용하며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저들을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주님은 대화 속에서 상대방에게 불편을 느낀다든지, “너희들이 하는 말은 틀렸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충분히 설명하셨고, 육하원칙에 의해 다 설명하셨습니다. 최종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설명하시고, 죽음으로 긍정과 소통을 완성하셨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너희 생각이 틀리다”, “너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습니다. 이럴 때 쉽게 감정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를 떠나, 오랜 세월 동안 정립된 자신의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 않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의 깊이만큼 경험에 따른 지혜가 생겨나고 주관이 뚜렷해져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반면, 내 뜻과 다른 상대방이 약자이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내 뜻이 옳으니 따르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나, 개인이나 국가 권력의 강요나 속박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는 비록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상대방 안에 머무르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신앙의 표현 방식이 서로 다르다 해서 비판하거나, ‘갑’과 ‘을’의 관계라 해서 ‘갑’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어느 새 다양성은 사라지고 자유마저 빼앗깁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살아 온 환경의 차이가 있고 영향을 미친 인물이 다르다 보니, 사회적 갈등을 해석하는 법도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했으면 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사회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의 성공과 효율적 가치보다 복음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예수께서 그러하셨듯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먼저 끌어 안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서로의 ‘다름’에 속앓이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섬세함과 다양한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는 인내가 필요하며, 나의 생각과 더불어 서로 소통하며, 믿음을 함께 나누는 조용한 사랑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문화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남녀노소, 빈부와 직분에 연연하지 않는 많은 의견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는, 아름다운 찬송의 논쟁이 되었으면 합니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