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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하나님 나라
알래스카주 미국 알래스카주 시민들은 해마다 주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다.그 주에 오랫 동안 터박고 살아온 사람만이 아니라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금액을 매년 받는다.1982년부터 시작된 이 '시민배당금 제도'는 이제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82년 첫해엔 일인당 1천달러를 받았고, 2008년에는 3,269 달러를 받았다. 이 제도는 1974년부터 연거푸 두 차례 주지사를 지낸 헤몬드의 주도하에 추진되고 시행되었다.알래스카주에서는 1967년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헤몬드는 그 석유개발 수익금으로 공공기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금으로 해마다 시민들에게 균일한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조건없이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배당금을 '기본소득'이라고 한다. 지금 알래스카주는 미국의 주들 가운데 가장 평등한 주다. 실업률도 가장 낮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온 미국은 최근 불평등이 갈수록 매우 심화되고 있지만 알래스카주는 평등하고 활기차다. 사실 미국에서는 지난 1960년대에 '기본소득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었다. 그 운동에 앞장선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다. 그는 흑백차별철폐운동과 흑인인권운동만 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소득운동에까지 나아갔다. 인권운동으로 흑인이 백인들만 갈 수 있는 식당에 갈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흑인의 주머니엔 돈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한 단계 상향된 그 운동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자들의 행진'이라는 대대적인 사회운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 운동을 전개할 채비를 하던 중 그만 암살당하고 말았다(1968년). 그 행진을 앞두고 미국 CIA의 협박이 있었다. 비록 킹목사는 비명에 갔지만 기본소득운동은 미국 학자들과 정치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암살 직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새무엘슨을 비롯한 미국의 경제학자들 천여명이 기본소득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파장은 정치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법을 제정하는 차원까지 가다가 그만 아쉽게 좌절되고 말았다. '기본소득'은 우리에게는 좀 생소하지만, 그동안 지구촌 여기저기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개념이다.우리에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학자들 가운데 기본소득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은 에리히 프롬이다. 사회심리학자인 그는 이미 1960년대부터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 등에서 기본소득을 소개하며 주장했다. '보장소득의 심리학적 측면'이란 그의 글도 있다. 또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도 기본소득을 지지한 사람들이 꽤 있다. 이제까지 그 상을 받은 사람들 70여명 중에서 10명이 넘는 학자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 역대 수상자들 가운데 10명 이상이 지지한다는 것은 매우 높은 비율이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 2013년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정책 도입을 위한 국민발의가 발의되었다. 전체 국민 800만명 중 12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은 발의안이 스위스 연방의회에 제출된 것이다. 이 발의안의 핵심 내용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라는 헌법조항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국민 모두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2014년 스위스는 이 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했다. 아쉽게도 부결되었지만 이 기본소득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이 운동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추세다. 유럽연합 19개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정책 도입을 유럽연합진행위원회에 촉구하는 100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적극적이다. 이미 10여년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독일은 머지않아 이 안을 법제화할 조짐이 보인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도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주최한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가 지난 6월 서울서 열렸다. 내년(2016)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세계대회'가 서울서 열릴 예정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은 매우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자못 크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 개인에게 아무 조건없이 돈을 지급한다. 각 개인에게 매달 현찰로 지급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급한다. 그러니까 보편성(남녀노소, 빈부귀천 등 어떤 차별도 없다), 무조건성(노동을 요구하는 등 조건이 전혀 없다), 개별성(개개인에게 직접 ), 이 3가지가 기본소득에서는 중요한 요소다. 물론 부분적인 기본소득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연령층( 노인,아동, 청년 등)이나 일정 기간만 주는 경우다. 사실 '기본소득'이란 표현은 좀 미흡한 측면이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이란 흔히 무엇인가 돈이 주어지는 가시적인 노동을 한 대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의 근본정신에 충실한 표현으로 '시민배당금'이나 '국민배당금'이 더 나은 면이 있다. 여기서 배당금은 그 사회 구성원이라면 기본적으로 마땅히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 누구나 받는 제 몫을 말한다.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다른 대부분의 공약들과 마찬가지로 파기되었다. 아마도 애당초 지킬 의지나 철학도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국민을 속였다. 아무튼 모든 노인들에게 무조건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던 그 약속이 바로 기본소득에 해당된다. 비록 부분적인 기본소득이지만 말이다. 사실 그의 당선에 이 공약이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부분적인 기본소득정책을 내세운 것만 갖고도 선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보면 앞으로 대선에서 기본소득정책은 뜨거운 선거 이슈가 될 가능성이 많다. 어쩌면 당락을 좌우하는 뜨거운 정책이 될 수도 있다. 누구라도 사기성 공약이 아니라 진정성이 있는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내걸고 성실히 추진하면 일반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물론 극렬하게 반대하는 검은 기득권 세력 그리고 부자들을 염려하는, 오지랖 넓은 어리석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성남시 최근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부분적이나마 기본소득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지자체로서는 처음이다.이른바 '청년배당금' 정책이다. 노령연금을 주듯이 청년들에게 배당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인구 100만명 정도 되는 성남시에 사는 젊은이(가령, 20대)들 모두에게 해마다 얼마씩 지역화폐를 지불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그 지역화폐는 한시적이다. 그러니까 그 화폐로 배당금을 받으면 일정 기간 안에 성남시 안에서(대형마트 등은 제외) 써야하는 것이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우선은 적은 금액부터 (가령, 일년에 10만원 정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이시장은 재원은 공공재로 인해 생긴 수익금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시장을 연임하며 시살림을 직접해본 그는 부정과 부패만 없애도 복지정책을 충분히 펼칠 수 있다고 말한다. 투명하고 알뜰한 시 살림으로 취임 3년만에 시 부채 7,000여억원을 모두 청산하고 무상급식, 무상교복,공공산후조리원,시공공의료원을 실시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그의 청년배당금정책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한 질문 기본소득을 사람들에게 말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일도 안 했는데 돈을 왜 주나? 기본소득을 주면 사람들이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는가? 부자들에게도 줄 필요가 있는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 이러한 질문들을 손에 쥐고 ,먼저 성경 말씀을 음미해보고자 한다.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마20:1-16)를 보자.이는 예수께서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 비유들 가운데 하나로서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한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비유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을 구해 포도원 일을 시켰다.품꾼들을 구하다 보니,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도 있고, 점심 때쯤 와서 일한 사람도 있고, 일을 마치기 직전에 와서 일한 사람도 있었다. 일을 다 마친 후 주인은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었다. 미리 약정한대로 주인은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막판에 와서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임금을 준 것이다. 일찍 와서 일한 사람들의 불평이 쏟아졌다.이에 대해 주인은 '나는 그대들에게 약정한대로 행했을 뿐'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이 비유는 매우 낯설고 난해할 것이다.보통 비유는 그 해석의 폭이 넓지만 ,이 비유가 말하는 알맹이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행위(doing)를 뛰어넘어 존재(Being)!' 이게 이 비유의 알맹이라고 본다. 지금 여기서부터 야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경영하시는 새로운 세상인 하나님 나라에서 사람을 대하는(보는) 기본 원리를 이 비유는 잘 드러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사실 doing의 차원에도 못미친다. 즉 품꾼들에게 저마다 일한만큼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관통하는 사회 아닌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절반 품삯을 받는 비정규직이 천만명에 육박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 아닌가. 경제적인 상식으로 볼 때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돈이 왕노릇하는 사회에서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착취로 인해 주기적인 공황과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날로 심화된다. 여기서 말한 착취란 단지 심정적인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이다.아무튼 이윤의 원천을 창출하는 노동자들은 철저히 소외되는데 반해 독점자본과 그에 짝한 부류들의 배는 날로 부풀어오른다.최근 15년 동안의 우리 나라 경제통계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 시기 가계소득은 제자리 걸음인데 비해 대기업(300인 이상 기업)들은 나라 경제성장율보다 갑절의 이윤을 얻었다. 같은 시기 가계의 빚은 눈덩이처럼 늘었는데(현재 가계 빚은 천조원이 넘는다), 대기업들의 저축은 대폭 늘었다. 이는 일한만큼 대가가 주어져야하는 doing의 차원을 역행한 결과이다.
공정한 자유경쟁? 공정한 분배?정당한 사유재산? 우리 사회에 그런 거 희박하다. 이런 야만적인 사회보다 행위 즉 수고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는 지금 우리 상태보다 분명히 더 나은 세상이다. 제발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수께서 위 비유에서 가르친 세상은 그보다도 질적으로 더 진보한 새 세상이다. 어느 사람의 행위, 수고, 업적, 공로를 뛰어넘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마땅히 누릴 몫이 있다는 진리에 입각한 새 세상이다. 누구나 아무 조건없이 기본적으로 누릴 마땅한 몫이 있다는 가르침(실천적 가르침)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 마땅한 몫,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받을 몫을 받아 누리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선물)가 충만한 삶이다. 기본소득개념은 바로 이 은혜와 맞닿아 있다. 버틀란트 러셀은 대안사회를 꿈꾸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즉 그는 '모든 사람에게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소득이 무조건 지급되고, 그 이상의 소득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는 대안 사회'를 제시했다. 이 말에서 앞부분은 이 땅에 존재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받을 몫을 말하고, 뒷부분은 그에 더하여 자신이 일하고 수고한만큼(doing) 더 얻는 몫을 말한다. 기본소득을 말할 때 또한 우리는 일(노동)이라는 것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잣대로 계량되지 않는 일이 우리 주변엔 얼마든지 있다.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지만 소위 '무불노동'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가사노동이나 육아노동이다.이런 노동은 어느 노동 못지 않은 중노동이다. 나름 전문성도 필요하다. 특히 태어나 5세까지 아동의 육아와 교육은 그 아이의 일생을 좌우하는 바탕요소로서 사실 고도의 전문적인 노동이다. 그러나 그런 노동에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다. 또한 갓난아이가 누워서 방긋 웃는 짓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웃음은 부모가 직장에 나가 활기차게 일을 하도록 하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세상은 그물처럼 얽혀있다. 종적으로,횡적으로 촘촘이 얽혀있다. 역사적으로 수만년 전부터 수천년 후까지, 지리적으로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얽혀있다. 이 세상의 모든 열매는 사실 공동 작품이다.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좀 다른 각도지만 유명한 성경구절 하나를 곁들여 살펴보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살후3:10). 바울이 한 이 말은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 시대는 노예제사회이기에 이 말은 당시 대다수였던 노예들에게는 해당이 안된다. 노예들은 일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골병이 들거나 일찍 죽었던 사람들이다.이 말은 노예주 -귀족계급에게 우선적으로 해당되는 말이었다. 대다수 노예들이 밤낮없이 일한 열매를 불로소득으로 취해 배부르게 먹고 살던 부류들을 겨냥한 말이라는 것은 당시 어린아이들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성구를 단순하게 끌어다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안된다. 더구나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아무튼 성경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을 말한다. 마치 누구에게나 내리는 햇빛과 비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자신이 수고한만큼 받을 삯도 가르친다. 그러나 땅과 같은 공유재를 사유화하거나 독점하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경계한다. 불로소득을 죄악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본소득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강남훈교수(한신대 경제학)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국민에게 처음 지급해볼만한 기본소득을 월 30만원으로 산정했다.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한 가족이 매월 12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다. 이 정도를 기본적으로 받고 능력에 따라 부지런히 일하며 살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사회가 되지 않겠는가.깨어있는 국민의 합의와 결단을 통해 기본소득을 확대해(일인당 월 60만원 정도까지 ) 나간다면 보다 더 살맛나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이는 단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공유사회를 만들어가는 문제다. 죽지(마지) 못해 하는 '노예노동'에서 벗어나서 생활노동,살림노동(살리는 노동), 그야말로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을 하는 즐거움이 더욱 생길 것이다. 노동이 고통이 아니라(우리나라 노동시 간과 노동 강도 그리고 산재사망율은 오이시디국가들 중 가장 높은 편이다) 기쁨이 되는 세상을 더욱 맛보게 될 것이다. 불건전한 일자리는 줄고 건전한 일자리는 늘 것이다. 젊은이들은 결혼은 물론 자식을 낳고 싶어하고 , 안정된 노후생활을 즐기는 어르신들은 자식 하나 더 나으라고 아들, 며느리들을 부추길 것이다. 생활고 때문에 세모녀가 자살하는 비극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가난 때문에 자살하는 노인들과 청년들(우리나라 노인 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도 줄지 않겠는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연극을 굶주림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생을 일찍 마감하는 젊은 연극인이 또한 줄지 않겠는가.
기본소득이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력은 크다. 당장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다.요즈음 그리스가 부도가 날 지경이다.주류 언론에서 과도한 복지비 지출이 나라를 거덜나게 했다는 기사를 마구 쓰고 있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독점자본의 편에 서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는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서 복지비 지출이 낮은 나라에 속한다.그 나라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큰 이유는 우선 상류 계층의 막대한 탈세와 부패에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요인은 글로벌자본주의의 약탈적 금융시스템에 있다. 병든 먹잇감을 뜯어먹으려고 달려든 하이에나 같은 ‘트로이카’즉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은 그동안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임금 삭감, 사회복지의 축소 등 소위 긴축정책만을 강요해왔다. 그리고 그리스 정부가 원하는 부유층에 대한 중과세나 군사비 삭감 정책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리스경제를 망가뜨린 으뜸 요인은 이런 강요된 정책때문이다. 지금 그리스를 살리는 길은 오히려 무엇보다 일반 국민들의 가계 소득을 올려주고 복지비를 늘려주는 데 있다. 그래야 소비가 늘어나고 내수 경기가 회복된다. 바닥경제가 활성화되고 고용이 늘 것이다.막힌 혈이 뚫리고 사회구석구석에 피가 돌 것이다. 한편 기본소득은 행정비와 인력을 대폭적으로 줄여준다. 기존의 모든 복지급여를 통합하여 단일화하기 때문이다.(물론 건강의료보험이나 장애인 소득 등은 그냥 둔다.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복지급여 지급대상을 분야별로 선별하고 관리할 때 드는 행정비가 엄청나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금액이 지급되기에(온라인 통장에 넣어준다) 그런 심사,선별,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나 인력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선택적 복지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낙인효과'인데, 기본소득은 그것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 이는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가난함과 낙오자임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느낄 모멸감 같은 것을 없애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게을리할까? 그렇지 않다는 실험들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를 위한 사회적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뉴저지,게리, 매니토바(캐나다)에서 3년 동안 1,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시애틀 덴버에서 509가구를 대상으로 20년 동안 실험을 했다. 노동시간이 크게 줄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독일에서는 재미있는 길거리 실험을 했다.기본소득에 대한 다큐물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물었다. 먼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게을리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응답자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뒤이어 질문을 바꾸었다. 만약 당신이 받는다면 어떨까요? 하고 물은 것이다. 그러자 응답자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아도 자신은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했다.
재원 마련 끝으로 돈 마련을 알아보자. 강남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모든 국민(5천만)에게 월 3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를 가정하여 산정했다. 일년에 대략 180조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기존의 기초생활보장제도 즉 기초노령연금, 보육료 지원 등은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160조 원이면 된다고 한다. 기본소득운동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의 경제규모나 능력으로 봐서 그 정도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국민의 의식과 의지에 달려 있다. '더불어, 함께' 진보,성장하려는 공동체 의식과 결단(정치적 의식과 결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재원 마련 방안은 이런 것들이 있다.크게 보아 3 가다. 첫째는 조세 수입 ,둘째는 불로소득을 거두어들이는 것, 셋째는 공공재로 인한 수입이다.
1) 조세 수입 강남훈교수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우리나라 총조세부담률은 약 25%이다. 우리는 세금을 적게 내고 복지 혜택도 적게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10% 정도 낮고, 북유럽 복지국가들보다는 20%나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GDP는 약 천3백조원 정도 된다. 때문에 조세부담률을 조금 조정하면 160조 정도는 쉽게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강교수의 지론이다. 물론 누진세를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부자들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세금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한 편이다. 걷은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거나 불공평한 징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매달 현찰로 지급할 경우 세금 납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 2)불로소득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분야다. 이를 수입으로 잡는다면 꿩먹고 알먹는 효과를 얻는다. 대표적인 것 2가지가 있다. 첫째는 토지가치세(Land Value Taxes)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토지세(Land Taxes)와는 다른 것이다. 토지가치세는 토지 소유자에 의해 토지에 가해진 수고와 관계없이, 인구증가나 사회발전 등 외부효과에 의해 늘어난 토지가치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을 말한다. 외부효과에 의해 생긴 토지가치를 개인이 독식하는 것은 맹백한 불로소득이다.그것은 공유가치를 가로채는 죄악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토지가는 전체 GDP의 5배나 되기에 이 불로소득 규모는 엄청나다. 좀 다른 각도의 이야기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이런 불로소득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며 감사하는 경향이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미신도 그런 미신이 없다. 이런 불로소득을 노리는 미신(기복신앙)을 이용하여 돈을 걷고 교회건물이나 부동산을 키운 목회자와 교회가 허다하다. 기독교라는 간판 아래서 기복적 종교심을 이용하여 종교장사를 하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오를수록 기복적인 교회들은 점점 소멸할 것이다. 기본소득만 시행되어도 그런 교회들은 상당히 쇠퇴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복신자(목사)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돈(특히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자리이다自利利他가 아니라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욕망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기복신앙을 이용하여 교회건축을 한 적이 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지었지만, 마음의 성전은 황폐해졌다. 사실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레25:23). 인간은 단지 청지기로서 토지의 사용권이나 관리권만 가질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한 것은 돈이 왕노릇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범한 원죄같은 것이다. 그 중에 특히 인간과 토지를 상품화한 것은 중대한 죄악이다. 물론 그 죄의 삯은 엄청난 불행과 비극으로 쉼없이 엄습한다. 인간과 토지의 상품화는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일을 철저히 방해할뿐 아니라, 서로 늑대처럼 해치고 적대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토지가치세라도 제대로 걷는다면 하나님의 뜻에 조금 더 접근하는 일이 될것이다. 토지의 개인 소유를 허용하더라도 , 토지가치세는 철저히 걷어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 둘째는 자본거래 이득세를 걷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파생금융상품시장 규모가 대단히 크다고 한다.연 6경원 정도라고 한다.그러나 증권양도소득세 같은 경우 매우 낮게 걷고 있다. 자본거래 이득세를 소위 선진국들의 수준만큼만 걷어도 막대한 수입이 생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3)공공재로 인한 수입 알래스카의 석유개발 수익금처럼 우리나라도 공공재로 인해 얻을 수익금이 많다. 예를 들어, 화폐가 있다.우리나라는 화페발행을 은행을 통해 한다. 그러나 일본 같은 경우 일본정부가 직접 발행한다. 만약 우리도 정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면 엄청난 수익이 생긴다. 소수의 사람들 주머니에 들어가던 막대한 돈이 국민의 공금으로 전환된다.
구원과 기본소득운동
성경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한다.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아는 것인가. 인정하는 것인가. 시인하는 것인가. 의지하는 것인가?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아니라면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수를 힘입어 부자되고 남보다 높아지는 데 필요한 것이 믿음인가? 믿음은 탐욕적 소원을 이루는 주술적 능력인가.돈이 왕노릇하는 세상을 긍정하는 힘이 믿음인가. 적극적 사고방식이 믿음인가.내세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을 얻는데 필요한 게 믿음인가. 생활의 방종을 합리화시켜주는 게 믿음인가. 광야의 이스라엘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처럼 교회에서 물신-돈신을 만들어 놓고 뜨겁게 기도하고 춤추는 게 믿음인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믿는다'는 말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다른 표현은 '영접한다'는 말이다.(요1:12)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Lord)로 모시고 사는 것을 말한다. 모시되 하인이나 들러리, 악세사리나 수단이 아니라 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다시 말해 나의 주권자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주권자가 되시려면 이제까지 나의 마음과 삶에서 주권자 노릇을 하던 것들은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이나 탐욕 등은 물러나야 한다. 이런 것들을 물러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께 자백하는 것이다. 날마다, 그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주님께 자백한다. 예들어, 생활하면서 돈이 자신을 주장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을 자백한다. 그리하면 성령이 임하시고 나의 마음의 주권을 그리스도가 쥐게 된다.(요일1:9) 마음을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이신 그리스도가 지배하면 삶이 달라진다. 돈이 왕노릇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 기본소득을 생각하면서 예수를 믿는다는 일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해보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왕노릇하는 새로운 세상 건설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돈이 왕노릇하는 병든 세상에 잘 적응하고, 그 세상과 짝한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병든 인간일뿐이다.건강한 사람은 병든 세상을 변혁하는 선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구원은 바로 '주권의 전이'(Lordship Change)라고 단언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오늘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가장 뜨겁게 기도하며 행동해야 할 제목은 바로 이 '주권의 전이'가 아닐까? 나의 마음과 사회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바꾸는 것... 기본소득운동은 주권의 전이를 위한 큰 발걸음이 될 것이다.
김달성목사 (평안감리교회 '예수 믿지 않는 기독교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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