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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에 와서 처음 맞는 주말, 토요일.
10시 반까지 설악산 배움터에 모여 백두대간 트레일 코스인 ‘아침가리’로 트레킹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트레킹이라 마음이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두근거렸습니다. 아침운동을
하지 않아 평소보다 느긋하게 일어나 빨래도 하고 방청소도 하였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편안하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조금 헤맨 뒤에 길을 찾았습니다. 흙, 낙엽, 나무, 바위 위, 아침가리의 모든 곳에
눈이 내려 쌓여있었습니다. 눈들이 한파경보의 추위 탓에 얼어서인지 전혀 뭉치지 않았습니다.
옷과 신발에 묻은 눈들이 몇 번의 손짓에 쉽게 털렸습니다. 앞서 걸어가신 분들의 발자국을 찾고
따르는 것은 때때로 혼란스럽기도 하였지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모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습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미묘하게 느낄 수 있었던 얼음의 깨질까 말까 하는 밀고 당김,
얼어있는 계곡 위를 건너는 일은 근래 해 본 경험들 중에서 가장 심장이 쫄깃한 일이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을 때 생각하였습니다. 혼자였다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까?
‘다 같이’였으므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리가 당기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오르막을 오르며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숨찬 길을 오르다 평평한 길이 나타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춥고 그늘진 길을 걷다 밝은 햇살을 만나면 얼마나 따뜻할까. 사람살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뭇가지에 눈을 찔리기도 하고, 계곡의 얼음 두께가 얇은 곳을 밟아 비명도 질렀습니다. 약 6시간 30분 동안 걸으며 힘들면 노래하고, 서로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었습니다. 썰매도 탔습니다. 썰매 타는 모습, 그러다 넘어지는 모습도 제 각기 달랐습니다. 다양해서 즐거웠습니다. 세상살이에서도 나와 타인의 다름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얼마나 즐겁게, 풍부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시원하다 못해 청량감까지 느껴졌던 아침가리의 공기, 퐁퐁 깜찍한 효과음과 함께 흐르던 계곡 물소리, 저 멀리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보이던 노을 지는 하늘의 색감. 오감만족의 트레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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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시골사회사업 선배님이자, 김동광 선생님의 후배인 송미 선배님, 한나 선배님의 지지
방문이 있었습니다. 포옹인사 하였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강원도 원통까지 찾아와주신 것도 감사하였는데 원통팀 세 명의 자기소개서까지 꼼꼼히 읽고 오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겨울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가는 곳마다, 머무르는 곳마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어묵국과 카레였습니다. 재료를 다듬고 수저를 놓고, 밥을 짓는 상차림의 과정이 따뜻하였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아침가리에서 따라온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추위를 녹여내는 맛이었습니다.
후식으로 귤과 군밤을 까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회사업에 대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쉽지 않은 길을 함께 걷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첫 만남이었음에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꼬집어내며 재미를 좇는 대화가 아닌 서로 세워주고, 강점을 인정해주는 대화 하였습니다. 헤어지며 또 포옹인사 하였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웠습니다. 연락처를 여쭙지 못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월요일에 김동광 선생님께 여쭤봐야겠습니다.
날씨가 차도 마음이 따뜻하면 그 추위 이겨낼 만합니다. 원통에서의 겨울, 패딩 때문도 기모 때문도 아닌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맞아요^^ 혼자였다면 걷지 못했을 길! 혼자였다면 아무 의미 없었을 길! 함께여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선배님들의 편지를 받았을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연락처를 잊지 않고 챙겨받겠다 기록까지 한 규림이 마음 참 고마워요.
사람을 귀하게 대하는 자세가 규림이 면면에 배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