惟墓道而惟有郡 面阡則失焉등 일부는 확실하지 않아 부족하나마 억측으로 번역해봅니다.
지금 먼 후손이 나라의 거의 모든 곳에 퍼져있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히 그런 것이겠는가? 아마도 공이 음으로 비호할 만한 덕이 있었을 터인데 족보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대개 그 신분이 왕족에 속하여 겸회(자신의 재주나 덕을 낮추고 숨김)로 일생을 마쳤기 때문에 당시에 아는 자가 없어서 후세에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후손들이 조상에게 보답하는 것은 묘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인데 묘역만 있고 묘자리는 실전되었기 때문에 매번 세시와 상설을 당하여 사람마다 선영에 제사를 올리는 데도 첨소봉영(瞻掃封瑩)하여 제사할 곳이 없으니 자손들이 한으로 맺힌 지가 수백 년이었으나 각지로 흩어져 거처하여 지성을 합치할 수가 없었다.
금년 여름에 강선과 강호가 “족보를 만들 수단을 거두고, 이를 계기로 단을 세워 이곳에서 제사를 행할 것을 발의하니 뜻을 함께 하여 주십시오.”라 하는 지라 사람들이 모두 기꺼이 따랐다. 마침내 고양군 원당면 원흥리 송산공의 묘 오른쪽 간좌(뒤쪽은 간방) 곤향(앞쪽은 곤방)에 나아가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고 상석을 설치함을 묘제와 똑같이하여 영세토록 제향을 올리는 장소로 삼고서 나 기완에게 비문을 짓기를 위촉하였다.
내가 붓을 잡고 생각하자니 기쁨과 슬픔이 각각 반이다. 지금 세태가 변하여 날로 나빠져서 백성들이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데 오직 우리만이 같은 조상을 추원(미루어 추념하는 것)할 것을 함께 도모하니 이것이 참으로 기쁨이요. 공이 돌아가신지 해가 지나길 수백년에다 또 십수년인데 이제야 단을 세워 제향을 드리니 과연 신을 이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참으로 슬픈 것이다. 그러나 조상과 후손이 한 기이니 자손이 끊이지 않으면 조상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제 이 단이 참으로 천백후손의 정성을 모으는 장소이니 신이 감응하지 않을 리가 없다. 오직 이것으로 황홀히 단을 설치는 뜻으로 삼는다. 내가 늙고 병들어 인간 세상에 바랄 것이 없고 오직 후인들에게 바라노니 “혹시 ‘단이 묘보다 (중요성) 못하다.’하지 말고 더욱 더 경건과 공경을 다하여 마차 계시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라.”
至今雲仍이 幾遍國中하니 此豈徒然哉아 盖公之德이 有足以陰庇어늘 而譜不槩見하니 盖其身處宗室하여 謙晦以終故로 時無知者하여 而後無傳焉이라
後孫之所以報先者는 惟墓道어늘 而惟有郡하고 面阡則失焉일새 每當歲時霜雪하여 人皆有事扵先塋이나 而惟公瞻掃無處하니 子孫之齎恨이 數百年矣이로대 散居各地하여 無可合致러라
今年夏에 康善과 康豪가 發議修譜하고 因以設壇行祀此所하니 同義하소서하는 故로 人皆樂從하여 乃就高陽元堂面元興里松山公墓右坐艮向坤하여 起土爲壇하고 樹碑奠床홈이 一如墓儀하여 以爲永世設享之所하고 囑起完記之碑陰하니라
執筆以思컨대 樂與哀半이러라 今世變日下하여 民不知本이로대 而惟我가 同祖를 合謨追遠하니 是可樂也요 公之歿也가 年過累百世更十數이어늘 而今設壇亨[享]하니 其能致神之來格耶아 是可哀也라 然이나 祖孫一氣니 孫之不絶이면 祖必存焉이라 今玆壇也가 寔千百孫聚精之所니 則神無不應之理라 惟是爲怳忽而設壇之義也라 余老且病일새 無所望扵人世하고 惟望後人하니 無或謂壇讓扵墓하고 而益加䖍恭用致하여 如在之誠云爾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