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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둥근달
거짓신앙체계의 실체와 영적전쟁
우리의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세워지지 않으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과같이 무너지게되고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본인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지만 자기가 하나님을 떠난 줄도 모르게 됩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 결과
1)결핍이 찾아옵니다.
2)하나님의 약속이 거두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
출19:5-6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본질 가운데 거할 때 만 이루어집니다.
사울왕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삼상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엘리제사장
(삼상 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이 여기리라
3)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세워질 때 그곳에 하나님의 모든 생명이 넘치며, 하나님과의 친밀함, 보호, 인도, 도우심,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의 확장 등 모든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다림줄에 꼭 맞추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는 성막에도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것은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로서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왕상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사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하나님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삼고 거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막을 이스라엘 진 한 가운데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운행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막이건 성전이건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그곳에 영광으로 임하셨습니다.
출40:34-35 “34-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왕상8:10-11 “10-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셔서 거처 삼고 거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맞추어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성막이나 성전을 지을 때,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식양과 기준에 맞추어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점을 지겨울 만큼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들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 가운데 행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나타내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영적인 분별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타락하면 영적 분별력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다림줄이 가리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왜곡되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신앙에 대한 그릇된 이해인 거짓 신앙체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것, 믿는 것, 사랑하는 것)
이처럼 거짓신앙체계란? 신앙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거짓신앙체계는 신앙을 왜곡되게 이해함으로써 전혀 신앙이 아닌 것을 올바른 신앙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타락하면 항상 전면에 나서는 것이 거짓 신앙체계입니다.
거짓신앙체계란 교리가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신앙체계가 신앙에 대한 왜곡된 이해라고 말하니깐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한다. 교리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어요. 문제는 거룩하게 지키는 의미가 왜곡되었다는 겁니다.
또 신앙이 미성숙한 어린 상태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예배를 철저하게 드렸으며, 많은 희생을 드리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금식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결코 신앙이 미성숙한 어린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문제였습니다.
바리새인을 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신앙이 어린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신앙이 어린 자들을 위한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일하게 신앙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 가지입니다. 거짓신앙체계는 소위 어린성도들만이 빠지는 함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 신앙체계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목회자, 신학생, 장로, 안수집사등 소위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가가하는 사람들입니다.
거짓신앙체계는 성경적인 지식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에 대한 왜곡된, 그릇된 이해라고 할 때 이것은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거나 지능이 부족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신앙체계는 영적인 분별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분별력은 성경적인 지식이나 지능에 관련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각자의 마음 자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거짓 신앙체계의 근원은 사탄입니다.
먼저 우리는 거짓 신앙체계의 배후에는 항상 사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성경은 이점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요8: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말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이 의식적으로 사탄을 섬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다 침을 뱉어도 비비지 않았는데, 당연히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이해의 배후에 사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사탄의 목적을 이루는데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반대하며, 끝내 예수님을 죽인 것만 보아도 그러한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서신서에 나오는 거짓 사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거짓신앙체계인 율법주의 가치관을 교회에 퍼뜨린 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 배우에 사탄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11:13-15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여기서 “꾀다”라는 말은 창세기 3장에 뱀(사탄)이 하와를 꾀던 것과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이와같이 거짓 신앙체계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사탄의 가장 큰 공격은 거짓 신앙체계를 통한 공격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성도와 교회를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환경을 통하여 대적하기도하고, 핍박을 통하여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 중에서 가장 큰 공격은 거짓 신앙체계를 통한 공격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바울을 통해서 쓰여진 서신서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지나간 자국마다 곧 바로 거짓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뒤따라가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거짓 신앙체계로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거짓신앙체계를 통해서 교회를 공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교회를 거짓신앙체계로 오염시키는 것
사탄은 교회를 거짓 신앙체계로 오염시킴으로써 교회를 대적합니다.
초대교회 시대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마다 사탄이 거짓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거짓 사도나, 선지자들 모두 자신들이 위대한 사도요 선지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에 의해 그렇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에 대한 이해가 거짓 신앙체계였고 실제적으로 그들은 사탄의 도구로서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일을 위해 사탄에 의해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고후11:13-15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에 대한 대표적 예가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사도바울이 몸이 아파서 쉬러 갔다가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도라는 사람이 병이 들어 자칫 불신자들의 눈에는 시험거리가 될 만한 요소가 있었지만 그 당시 갈라디아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놀랍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사도 바울을 위해 눈이라고 빼어 주려고 할 만큼 사도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갈4:13-15 ‘13-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15-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그런데 그러한 갈라디아 교회가 사도 바울이 떠난 뒤로 거짓 사도들의 영향을 받아 거짓 신앙체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갈라디아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매우 강력한 어조로 그들에게 다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권면라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신앙체계란? 신앙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거짓신앙체계는 신앙을 왜곡되게 이해함으로써 전혀 신앙이 아닌 것을 올바른 신앙이라고 이해합니다.
길라디아 교회의 거짓신앙체계 - 구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조상 아브라함의 축복은 할례를 행함으로.. 이것이 거짓 신앙체계입니다.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여러분 거짓신앙체계에 빠지면 나타나는 현상이 의식을 남용하게 됩니다. 의식이 본질을 대체하게 됩니다.
예)여러분!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었을까요 아님 언약궤를 믿었을까요?
삼2;12-17,22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블레셋이 이김(삼상4:2)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놓은 전략은?(삼상4:3)
그 전략은 실패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느냐? 성경을 믿느냐? 성구액자를 믿는가? 예배를 믿느냐?
사탄이 거짓신앙체계를 통해서 교회를 공격하는 방법 두 번째
2.사탄은 거짓 신앙체계를 가진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대적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갈4장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22-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여기서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십자가의 복음과 율법주의를 상징으로 표현하면서 하갈과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고 대적했던 것처럼 거짓 신앙체계를 가진 자들은 항상 성령의 역사를 대적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나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실 때 가장 강력하게 대적했던 무리들은 불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거짓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던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가는 곳 마다 그를 따라다니며 가장 많이 그를 핍박하고 대적했던 자들은 불신자들이나 이방종교를 믿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사도바울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가장 많이 대적하고 핍박했던 자들은 그 당시 거짓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회복과 부흥에 관한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하반부의 이 약속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하반부에 나오는 약속들은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있는 무리 혹은 교회를 통해서 이 약속을 지속적으로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갈4장은 예수님 안의 무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삭의 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놀라운 유업이 십자가의 복음 위에 선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약속이 항상 ‘이삭의 무리’를 통해서 성취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이스마엘의 무리’를 통해서는 절대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살펴봐도 하나님의 부흥을 보내실 때마다 한 번도 예외 없이 ‘이삭의 무리’ 즉 십자가의 복음과 신앙의 본질 위에 선 자들을 세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