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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년 1 월 26 일 화요일 맑음
얼마전 귀농통문 편집부에서
갈무리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 왔다.
이리저리 마음 바쁜때이기도 하였지만
무언가에 얽매여 규정을 지어야하는 일들에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풀천지의 성격상
난색을 표하였더니 인터뷰를 요청해온다.
순간 서른이 넘어가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는 농촌 총각의 문제가
어느덧 풀천지 자식들의 문제가 되고보니
이번 인터뷰 기회를 이용하여
하소연이나 해볼 속셈으로 응하게 되었고
1 박 2 일로 이어지는
짧지 않은 인터뷰 시간내내
폭포처럼 쏟아지는 풀천지의 말폭탄을
전부 녹음하였을테니
참으로 오랜시간 다시 듣기 하면서
좋은글을 완성하려다보니
얼마나 고심하였을지 미안할 정도이다.
미리 여유있게 원고를 보내주었으면
뒤늦게나마 정성스럽게 교정해주었을텐데
시간에 쫓기어 이미 인쇄된 원고를 보내주었고
풀천지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들만
수정 보완한 전체 글을 올려본다.
풀천지는 글보다 말을 좋아한다.
말은 실수해도 잊어버릴수 있지만
글은 쓰는이와 보는이에 의해서 마음대로 규정되니
돌이킬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풀천지의 삶을 아끼는 마음으로
먼길 달려와준 귀농통문 김수정 편집장과
윤희 은모 간사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며
무엇보다 좋은글을 쓰느라
고심이 많았을 김수정 편집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네들이 추구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귀농의 앞길에
자연의 축복이 가득하길 바래본다.
한 해 갈무리, 삶의 갈무리
- 봉화 추성수 님
편집부
풀천지 추성수 님 댁을 찾아간 것은 지난 12월 초였다.
저녁 6시 정도 도착했는데도 산 아래쪽은 벌써 어둑어둑했다.
경북의 시베리아로 불린다는 봉화 춘양골의 초겨울 날씨는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리 춥지 않았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추성수 씨와 가족분들의 미소는 맑고 밝았다.
온가족의 힘만으로 직접 만드셨다는 2층 손님맞이 방은
넓은 공간인데도 따뜻한 느낌의 나무와 황토타일로 둘러싸여서인지
온화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풀천지의 기본 정신
짐을 풀고 집에서 직접 담그신 식혜를 한 잔씩 하며
풀천지의 기본 정신 이야기가 먼저 시작되었다.
“귀농해서 시골에 내려오면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놀아라.
놀다보면 시골에서 뭐하고 놀게 되겠는가? 흙만지고 놀게 되어있다.
몸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처음부터 잘하려고 무리하면
시골살이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모든것을 알고 내려오려고 하지 말고
그냥 와서 실천하고 살아가며 동네 농부님들에게 배워라.”
먼저 알려고 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귀농하기 전부터 무언가 알기 위해 분주하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이사람 저사람들의
솔깃한 일리있는말에 헷갈리기만 한다.
금쪽같은 세월에 하루빨리 귀농하여
평생 농사짓고 살아오신 동네 어르신 농부님들을
정성스레 대접해드리며 이웃간의 정을 쌓으면
지식을 뛰어넘는 가장 정확한 삶의 지혜를 배울수 있다.
귀농초기 귀농인들의 정착이 힘들어지는 중요한 요인중 하나는
얼른 돈을 벌고 싶은데 도시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시골생활의 실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천천히 제대로 알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성급히 환금작물이나 시설등에 욕심을 부리다가 실패하는 것이다
.
“잘하려고 하지 마라. 그냥 하다 보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깨닫게 되고, 제대로 알게되는 법이니
자꾸 하다 보면 잘하게 되며
세월이 우리를 성장하게 해준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직접 경험한 일이기에 자신 있게 다른 이들에게도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건강의 기연을 만나다
귀농하고자 마음먹기 시작한 것은
2001년보다 5년 전인 마흔 살 때였다고.
평생을 도시에 살며 잘 먹고 잘산다고 생각했었고
돈버는 일로만 머릿속이 가득차 있던 시절,
우연히 읽게 된 건강책 한권이
그와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건강 공부의 기연을 만나게 된것이다.
안현필 선생의 건강법 책 4 권을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성경적인 충동이 밀려왔다고.
내가 그동안 도대체 무얼 하고 무얼 먹고 살아온 것인가?
그렇게 맛있게 먹어댔던 모든 먹거리들이
우리 몸의 건강과 정신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쓰레기같은 돈벌이 음식에 불과하고
그렇게 맹렬히 추구하던 돈버는 일과
편안하다고 느꼈던 화려한 생활들이
매연으로 가득찬 수용소에서 사는것처럼 답답해진 도시생활을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고, 혼자만 알고 있기 괴로워 주변에 이야기했지만
‘ 혼자만 천년만년 살라고 그러냐 ’ 는 핀잔밖에 돌아오는것이 없었다 한다.
날이갈수록 점점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만 간절해진 그는
건강공부의 기연을 접하게된 처음부터
온가족이 모두 함께 공부했는데
무엇보다 반드시 가족과 함께 하는 건강공부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하였다.
큰애가 초등학생, 작은애는 학교도 들어가기전이었지만
자칫 따분해질수 있는 건강공부를
성인인 엄마보다 아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몰입과 성취율이 아주 높았다 한다.
장사 수완이 좋아 아이들과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시골에 내려가 살자는 그의 말에 처음엔 한사코 반대했던 아내에게,
잘안보려 하는 건강책을 하나하나 읽어주며 설득하는
그의 정성에 감복하여 5년여의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2001 년 3월, 경북 봉화로 귀농하게 된것이다.
한 달 만에 아토피를 고치다
도시에 살 때 큰애가 아토피가 심해
피아노 학원에 보내면 선생님들이 다시 돌려보낼 정도였던
큰 아이를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고 한다.
제대로된 건강공부를 하기전에는
고칠 방법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현대의학으론 도저히 고칠 수 없었다 한다.
아토피는 인스턴트음식등 잘못된 먹거리 때문에 생기는 병이니
부모가 안 좋은 음식을 계속 먹어왔다면
아이가 그 영향을 천형처럼 고스란히 받게 된다.
귀농하기전 도시에서 안현필 선생의 건강법대로
철저하게 생활습관을 바꾸고 식단을 조절하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아토피를 기적처럼 깨끗하게 고치게 됐고
마침내 그의 인생은 건강하고 행복한 자연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게 된것이다.
좋은 먹거리를 구하기 힘든 도시 생활이었지만
새벽시장을 다니는 수고로움과
바쁜 일상속에서 거치른 현미 잡곡밥을
100 번이상 씹어먹기위해 1시간여가 걸리는 식사시간을
감내하는 정성을 기울인것도 큰 요인이지만,
한창 호기심도 많고 먹고 싶은것도 많았을 아이들의 나이에
부모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의 의지로
아이스크림 하나 음료수 한방울 과자 한조각등
금기가 되는 불량식품들을 일절 먹지 않으며
거친 현미밥을 100 번이상 씹어야 하는 껄끄러움을 이겨내기란
온 식구가 건강공부를 각자 스스로 하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을 성과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엔 산으로 들로 강으로
등산도 하고 낚시도 하며 자연을 마음껏 즐기게 해주며
비가 와서 야외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대형 서점에 아이들을 데려가 많은 책들을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히게 해주었다.
그런 건강한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
시골로 함께 내려온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농부의 길을 온가족이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당당히 걸어가고있는 풀천지 가족의 모습이 많은것을 느끼게 해준다.
귀농 후 익혀야 할 기술들
생태귀농학교 15기인 그는 수료 선물로 호미를 받았으나
호미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던 그가
지금은 훌륭한 농부로 성장한 두 아들과 함께
못 하는일이 없을 정도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가장 중요한 직업은 무엇일까.
바로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의식주를 생산하는
농부와 목수와 노동자란 직업이다.
가장 중요한일이고 가장 중요한 직업인데도
대부분 자신의 자식들은 시키지 않으려 하고
농부 목수 노동자와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좋은 음식 먹고 싶어 하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고, 좋은 물건 쓰고 싶어 한다.
시골에 귀농한다는것은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일과 직업을
온몸으로 가지는 것이다.
도시에서 머리로만 생각해온 일들을
평생 몸으로 실천해 나가야 하는데
평생 교육의 습관에 얽매여 공부와 배움의 틀에
또다시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은 달라서
더 잘하고 조금 못하고의 차이가 있을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다보면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다.
진정한 자급자족의 가족농
지난 16년 동안 풀천지에서는 올곧은 신념을 지키며
가족의 힘만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농약, 비료는 물론 비닐도 안 깔고 기계도 안 쓰는
옛날 농법을 고집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자연의 보상만으로
시골 생활을 즐기고 살아가는 가족.
오로지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아침부터 밭에 나가 땀 흘리며 일하고
저녁에는 그날의 수확물을 갈무리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가족.
이런 모습의 가족농이야말로 이상적인 소농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가족 모두가 농사 베테랑이지만,
당연히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손으로 풀매기가 너무 힘들어 비닐을 안 깔아주면
내년엔 밭일을 안 하겠다고 협박하는 아내 때문에 큰 위기도 겪었다 한다.
남자에겐 집을 잘 지을수 있는 본능이 있고
여자에겐 밭을 잘 매는 본능이 있다 한다.
그도 귀농한 이후에야 절감한 일이지만
기계도 안쓰고 비닐도 안깔면서 온가족이 함께
자급자족 전업농으로 평생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남정네들 세 몫을 거뜬히 해내는
풀향기 아내로 불리는 밭 잘매는 아내의 협박을 무시할수 없었다 한다.
고집센 그도 별수 없이 내년에는 비닐을 깔자고
거짓 약속으로 위기를 넘기고 내년 파릇한 봄이 시작되면
연초록빛 생명의 밭에 차마 비닐을 깔수 없어
다시 또 비닐을 안깔고 한해 한해를 보내다보니
놀랍도록 밭이 부드러워지고
온가족이 훌륭한 농부로 성장하는 세월에 힘입어
오늘의 풀천지를 지켜올수 있었다 한다.
농사를 시작한 첫해, 처음으로 밭에 일을하러 가던날
전설처럼-군포 봉소골까지-전해오는 그 유명한
‘파라솔 농법’을 최초로 고안해냈다고 한다.
호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가
겁 없이 농부의 길을 선택하고보니
눈앞에 닥쳐오는 몇천평의 너른밭에 어찌나 겁이 나는지
처음 풀을 매러가야하는 땡볕 내리쬐는 날
밭으로 가지않고 영주 시내로 달려가
가장 큰 파라솔과 시원한 맥주와
푸짐한 먹을거리들을 잔뜩 사와 강아지를 앞세우고
마치 소풍가는 웃지못할 행렬로
온가족이 바리바리 싸들고 집 바로앞에 있는 밭으로
풀을 매러 가는 광경은 가뜩이나 풀을 키운다며
속터지는 마을 농부님들을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않고 쨍쨍 내려쬐는 뙤약볕 아래서
전혀 적응이 안되는 평생 처음해보는 풀매기를
온가족 모두 고생스레 시작하는것보다
즐거운 놀이로 승화시켜 첫번째 힘겨움을 무난히 극복하고
과연 몇 달후에 차츰차츰 몸이 적응하게 되고
급기야 가장 힘든일이 파라솔을 이리저리 옮기는 일이었음을 알게되어
결국 부드러운 가을볕이 시작되면서 파라솔을 접게 되었는데
엉뚱하게도 여기저기 농부님들의 밭에서
하나둘씩 파라솔이 세워졌다가 한참후에 없어지는 진풍경도 있었다 한다.
두려움으로 땡볕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 귀농인들에게
단지 파라솔 하나 꽂아놨을 뿐인데 시원한 그늘아래
새참도 즐길수 있는 파라솔 그늘은
오아시스 이자 파라다이스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파라솔 농법’ 이야기를 들으니
그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고
진정으로 농사를 즐기는 사람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갈무리를 위한 준비 작업
시골생활을 잘 해나가려면
전원주택처럼 집모양 가꾸기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농가생활을 편리하게 해 줄
기반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편리한 농가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우선 수확물을 손질한 후 말리거나 보관할 곳을 마련하는 일이다.
날씨의 영향을 덜 받고 마음 놓고 갈무리 작업을 할 수 있는 곳.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기와지붕의 오래된 집 한 채와
옆에 허름한 창고 하나와 화장실이 전부였다.
수확물을 가져와도 갈무리 하고 저장, 보관해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한다.
그래서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고 작업장겸 창고부터 마련했다 한다.
지붕 아래는 마늘 양파 우거지 시래기등의 수확물들과
다양한 물건을 매달 수 있게 C형강을 촘촘하게 걸어
쇠고리만 있으면 간단히 물건을 걸수있게 했다.
양파 농사지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갈무리 하는 방법을 몰라 갓 수확한 양파를 줄기채로 묶어
지붕 아래 가로대에 정성껏 매달아 놓았지만
싱싱했던 양파 줄기가 썩기 시작하더니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더란다.
양파농사를 많이 짓는 농부님들에게 여쭤보니
양파를 수확하면 담배 한 개피 정도의 길이로 양파 줄기를 잘라내고
꼭지가 고슬고슬하게 마를때까지만
햇볕에 적당히 말려 양파망에 담아 보관하면 된다는걸 알게 되었고
햇볕에 너무 많이 말리면 양파가 매워지기도 한단다.
실패가 가장 좋은 지혜의 스승인 셈이다.
농사용 비닐 하우스와는 별개로 만든
건조용 비닐하우스도 편리한 농가생활을 위한 공간 중의 하나다.
이것 또한 온 식구의 힘만으로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컴프레서나 작은 평상 같은 것도 농가에 필요한 도구이다.
컴프레서를 이용해 하루 일과가 끝난후
흙먼지 투성이 작업복 등을 깨끗하게 하고
각종 공구들을 청소할수 있고,
집지을때 쓰는 에어 공구들에 사용할수 있는
참으로 요긴하고 편리한 컴프레서는
망설이지 말고 가장 큰 것으로
일찍 장만할수록 좋다고 한다.
작은 평상은 그 위에 무언가를 올려둘 때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는 역할 도 하고
이런저런 작업대로 쓸수도 있고
여름철엔 개울가에 간단한 평상으로도 활용한다.
도시에서는 돈만 벌면
무엇이든 손가락 하나로 충족될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돈만으로 할수없는
온몸의 기술로 애를 써야만이 충족될수 있는
삶의 조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해 갈무리, 삶의 갈무리
작물 하나하나를 다루는 직접적인 갈무리 방법도 중요하지만
농가생활에 필요한 기반조성을 잘해 두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갈무리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열심히 농사짓고 갈무리하는 일이 쌓이면
이것이 곧 가장 멋진 삶의 갈무리가 되지 않을까.
오랜 기간 비닐 한 번 친 적 없는 밭의 흙은
추운 초겨울 날씨에도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이 무척 부드러웠다.
이 부드러운 흙이 자급자족 소농 가족의 힘을 조용히 말해주었다.
바리스타 큰 아드님, 기타 연주가 작은 아드님,
끼니마다 만찬을 준비해주신 셰프 사모님,
그리고 끝없는 열정으로 말폭탄을 안겨주신
풀천지 추성수 님. 고맙습니다.
가족분들의 맑고 밝은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추성수
경북 봉화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태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16년 차 유기 농부.
오랜 시간 길러온 땅의 힘, 가족의 힘, 삶의 힘으로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한다.
최근엔 마을 이장을 맡게 되어 한층 바쁜 나날을 보내며
화합하는 마을을 위해 애쓰려 한다.
다음카페 ‘풀천지’에 삶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