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12 월 19 일 수요일 맑음
나이가 들수록 눈이 안좋아진다.
저만큼 멀리서 반가운 사람이 나타나는데
얼른 알아차리지 못할때가 많다보니
눈이 밝은 상대방은 서운할때가 많았을 것이다.
실은 상대방보다 내 자신이 더 서글퍼지는 세월탓을 하기엔
아직도 마음은 철없는 청춘이니
그저 딱하기만 한것이다.
그러다보니 남이 안볼때면
지그시 눈을 감는 혼자만의 버릇이 늘어만 간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머언 시절의 그리운 조각들이
토닥토닥 비어가는 마음을 달래어 준다.
어린시절 풀천지의 고향은 바닷가였다.
아버님은 박봉의 공무원이셨고
어머님은 주렁주렁 일곱남매의 생계를 위해
육지와 섬을 오가는 연락선의 선장들을 관리하는 선주이셨다.
어쩌다 한번씩 어머니가 보고싶어 선착장에 나가면
왼종일 거치른 바닷바람에 검게 그슬린 까만 얼굴을 하얗게 웃으시며
배에서 막 내린 섬아낙의 물동이에서
시퍼렇게 꿈틀대는 세발낙지를 대차게 꺼내시어
품속에서 꺼낸 풋고추에 검게 탄 손으로 죽죽 훑어낸 세발낙지를 칭칭 감아
내 입에 물려 주셨는데 그 쫀득한 맛의 기억은 아직도 평생 잊을수가 없다.
요즘 세상은 왼통 요리 천국이다.
TV를 켜면 사람수보다 더 많을것 같은
온갖 종류의 요리들을 허겁지겁 먹어대기 바쁘기만 하다.
심지어 끝없이 먹어치우는 먹방 프로에 나오는 예쁜 여자들을 볼때면
그녀들의 마음속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을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요리가 없었던 소박한 시절에
검게 그슬린 어머님의 투박한 손에서
맛나게 받아 먹었던 어린시절의 세발낙지는
평생 그리움으로 가슴을 적셔오는데
모든게 풍족한 요즘 세상에
배터지게 먹어대는 화려한 요리의 향연들을 볼때마다
그 아련한 그리움 대신 서글픈 염려만 더해질 뿐이다.
화려한 먹방의 쇼가 끝나면
어김없이 전해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움푹한 뱃가죽의 처참한 영양실조는
또 얼마만한 참담함인가?
나이가 들고 자꾸 눈이 멀어져 가는데
어린시절 꿈틀거리며 목젖을 넘어오던
세발낙지의 짭짜름한 기억만으로도
나는 언제나 행복할수 있었다.
그때는 모두들 가난을 천직으로 여기며
정직하게 살았던것 같다.
모두가 가난하면 아무도 더이상 가난하지 않고
모두가 정직하면 누구나 두려움없이
그리움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언젠간 싫증 나지만
그리웠던 맛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되어 평생 행복한 선물이 되어준다.
오늘은 유난히 어머님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