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흠 시인은 미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이민자 시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가 고향과 모국어와 지난날을 향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시를 쓸 때마다 그는 제 몸과 다름없었던 고국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야 했던 분노의 체험을 다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될 수 없는 “경계인”의 삶을 늘 자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 어머니는 없다”, “심장이 없는 존재는 우주인이다”(「어머니」)라는 진술에서 그 비애와 증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시를 쓰는 일은 늘 “비장한 결심”이며 성한 몸이 없는 귀향이며 “황홀한 죽음”이 된다. “고향이란 얼마나 멋진 말인가 모진 말인가”(이상 「붓자리」)라고 그가 모순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고향이 들끓는 애증 없이는 발음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시를 통해 연어처럼 모국어와 고향으로 돌아온다. 귀향이 생살의 아픔과 상처를 부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귀소본능의 강력하고도 운명적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물도 불타고 있다”(「연어의 눈물」)고 느껴질 만큼 강렬하게 역류를 거스르는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것이다.
(김기택/ 시인)
천불사天佛寺 가는 길
천근같은 발이 꾸욱 꾹 지문을 찍는다
땅의 창자에서 잘 마른 똥들이 머리를 내민다
외줄타기 하듯 매끈한 돌은 조심조심 피해가고
온몸의 세포들은 우르르 쏠리며 중심을 잃는다
언제부터 그 많은 인장 찍힌 돌들이 길 위에 있었을까
삼보일배로 수양한 크고 작은 눈 속의 돌무덤
한 가지로 모두 득도한 성자의 모습이다
머리수염 없는 염주알을 닮아서인지
산채로 공중부양 하는 염불소리로
맑은 징소리를 이웃들에게 보여준다
수련한 득음得音 속에 핀 씨알 소요유
보리수 나뭇잎 아래를 스쳐 지나가는
큰 바람도 절을 하고 천불도 절을 하고
시냇물도 쥐똥나무도 떨기나무도
아기동자승도 겨울 틈새를 쓸며 가며
온통 절을 하는데/번뇌 한소끔 뿌릴 때마다
나는 온종일 천불동 중머리에 앉아
툭툭 몸 지르며/흔들린다
-「천불사 가는길」 전문
박민흠
1954년 서울 출생. 국제시인협회(ISP) 미국시인협회(ASP) 회원. 시집 『쏙독새 애가』 『간큰고등어』 등이 있음.
주소: 2980 Valentine Ave., #307, Bronx, NY 10458 USA e-mail : parkmeenhe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