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에 이르러 후회하지 않으면 집착이 없어 좋은 곳에 날 것이다.
어떠한 부귀영화도
결국은 사라지게 마련이고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도
질병에 시달리게 마련이며
젊음이라도
끝내는 늙음으로 돌아가고
어떠한 목숨이라도
죽음 앞에 무너지게 마련이니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정법을 닦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임종에 이르러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요,
임종에 이르러 후회하지 않으면
집착이 없어 좋은 곳에 날 것이다.
(잡보장경)
중아함찬 잡비유경에 '아자타사투루왕의 임종시 성냄으로 인한 과보'에 대한 대목이 나옵니다.
한 도인이 길을 가는데 뱀이 나타나 말했다. “도인은 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아자타사트루 왕입니다.
원컨대, 날 위해 설법하여 이 몸을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사문들에게 공양한 공덕이 훌륭하므로 천상에 날 것인데,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되었소?”
“내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 곁에 있던 시종이 부채를 내 얼굴에 떨어뜨려 나를 성내게 하였기 때문에 나는 뱀의 몸을 받았습니다.”
도인은 곧 그를 위해 설법했고, 뱀의 몸을 받았던 왕은 일심으로 설법을 듣고는 이레 동안 먹지 않다가 목숨을 마치고 하늘에 났다
그러므로 목숨을 마치려 하는 사람을 곁에서 모시는 사람은 그 병자의 마음을 잘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염불을 해줍니다.
임종을 맞이 하는 순간에 한 마음을 어떻게 쓰는냐에 따라서 사후의 처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들은 세속적인 사정들을 가지고 임종을 앞둔 이의 마음을 흐리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크게 삼가야 할 일입니다.
중생의 삶은 금생으로 끝나는 단멸의 삶이 아닙니다. 생전에 지은 업력으로 나고지고 나고지는 윤회의 수레바뀌를 끝없이 굴리는 존재입니다.
오늘 보다는 내일이, 금생 보다는 내생이 더욱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소망입니다.
그러하기에 다음 생을 결정짖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임종을 맞이하는 분에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받드려야 할 최선의 의무이며 도리입니다.
현자는 말합니다. "중생이 세 가지 업으로 악을 지었더라도 죽음에 임박하여 여래의 공덕을 생각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악한 갈래의 세계를 떠나 천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설령 극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염불을 한 까닭에 또한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설한당에서 장곡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