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친구의 딸내미 영세식에 대모로 참석했다가 우연히 오래전에 친했던 성당후배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에 얼싸안고 이런저런 소식을 묻다가 나름 열심히 레지오 활동을 하던 20대
시절 같은 팀은 아니었어도 레지오 활동에 열중하던 동기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동기들이 가끔씩 궁금해서 서로 아느냐고 물어보곤 했던 그 친구.. 엄삼용 알로시오..
얼핏 어느 수도회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휴대폰번호를 알게 되어 안부 메세지를 보내게
되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답신을 받게 되었고 산청성심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성심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둘러보던 중 성심원이 올해 51주년을 맞이하고 성심원을
후원하는 ‘미라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라회’라는 이름을 눈으로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운명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장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4월 이산저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무렵 암으로 1년을 투병하다 35세의
짧은 삶을 접고 떠난 막내 동생의 이름이 ‘미라(美羅)’였다. 넉넉지 못한 생활이면서도
어려운 이웃 그냥 지나치는 일없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던
동생인데... 죽는 그 순간까지 남은 가족에게 자기를 위해 울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아달라고 부탁까지 해 주위사람을 감동하게 만들었던 동생의 이름이 바로 ‘미라회’ 명칭과
한자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마치 미라가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고 있는 나를 위해 미라회
피정까지 인도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청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피정이라고는 머리털 나고 처음 참석하는 것이어서 피정은
어떤 것일까? 라는 약간의 두려움과 오랜만에 만나게 될 엄수사님 때문에 설레이기도 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큰딸과 함께 성심원에 도착해서 만난 수사님은 오랜 세월
때문이었는지 약간은 서먹한 느낌이었지만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건강한 웃음으로 반겨주니
어색함이 사라지고 고맙기까지 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면서도 나의 생각은 오히려 자유롭게 만들었다.
날씨는 여름 의 한가운데여서 그랬는지 정말 무척 더웠다. 열성적으로 강의 해 주신
오!신부님. 중간 중간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강의내용은 완벽하게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지만(죄송~)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을 바치더라도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바치라는
말씀과 무엇이든 주어진 여건에서 감사함을 찾으라는 말씀은 잊지 않으려 마음에 새기고 있다.
피정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 30년 넘게 후원하고 계신분도 있고 보통은 10년 넘게 후원하고
계시다고 하니 내 자신이 너무도 작게만 느껴졌다. 예전의 성심원을 떠올리시면서 해주신
얘기는 가슴 아픈 역사들이었는데 현재는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마을길이며
대부분 새 건물처럼 보이는 이곳의 과거가 돼지우리보다 못한 곳이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성당 내부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으로나마 과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 참으로 내 자신이
한심하고 안일하게 살아왔음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정사를 방문할 때는 무더운
여름에 한센인들에게 번거로움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한센가족들을 뵙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상에서의 나의 생활은 늘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그 뭔가를 찾아
헤매는 생활이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직장인으로서 그 어느 것 하나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으면서도 그 누구도 나의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늘
불평하고 화내고 속상해 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비워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이 이번 피정에서 얻은 결실
중에 큰 결실이었다. 그리고 미라회원들의 피정을 위해 성심원의 모든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무엇보다도 성심원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그립고 눈 감으면 떠오르는 녹색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성심원 풍경이 그립고
조용히 흐르는 것 같지만 힘찬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경호강이 그리워지는 건.. 그.곳.에
내가 흘리고 온 버거운 삶의 조각이 있어서인가?
-2010년 9.9발행 제118호 성심원 소식지에 실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