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홍도야울지마라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다음 정책이 바뀌고 카카오 계정과 연동하라고 하는 바람에
연동이 안되어 신규가입 형태로 가입이 되어서
부득히 카페에 다시 가입되어진 마포종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이전의 홍도야울지마라 필명 쓰던 사람임을 참고 바랍니다.
어째뜬 연천 사건의 경우에는 북한군의 당일 기습 공격이 맞다고 결론이 내려져 있는 것이 당연한데요
그렇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분명 기무사령부를 해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에서는 진실을 감추고 있는데요
일단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밝히고 8명의 숭고한 목숨에 대한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국방부를 통하여 어언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군교도소에서 김동민 일병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와
왜 사형수를 18년째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도 문의하여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형집행 중지가 단순히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온
사형집행 미집행 정책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숨은 의도가 있는지
질의를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1983년에 벌어진 허원근 일병 사건의 경우에도 20년이 지난 시점에 진실이 드러난 만큼
연천 사건의 경우에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아직도 언론에 제보를 통하여
노력을 경주할 생각입니다.
저는 본 카페에 가입하고 현충원 참배시에 유가족들과도 상면한 만큼 그때의 약속대로
아직까지 8명의 후배 군인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중단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묘지에서 그들과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어제 토요일(4월 22일)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고 아침에 이런저런 여유가 있어서 대전현충원에 다시 다녀 왔습니다.
갈때 성남에서 수원까지 분당선을 타고 가서 수원역에서 서대전역까지 무궁화호를 탔구요
돌아올때에는 대전역에서 수원역까지 무궁화호를 타서 수원역에서 다시 분당선을 타고 성남으로 돌아왔네요
일단 가서 참배를 하면서 한번 가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화질이 좋지 못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일단 국립대전현충원에 가서 현충탑에서 여기에 잠들어 계신 모든 분들에게 참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병 1묘역에 잠들어 있는 지난 1997년 6월에 군에서 지병으로 쓰러져 사망한 친구의 묘지를 찾아가
친구 묘지 앞에 앉아서 10여분간 넋두리를 했네요.
같이 군대를 입대했는데 저만 살아돌아와서 친구에게는 한평생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저만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원통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동을 하여 독립유공자 묘역에 묻혀 있는 고모부 묘지를 들렀습니다.
가서 평생 좋아하셨던 담배 한대를 불붙여 드렸구요
잠시 넋두리를 하다가 다시금 이동하여
연천 용사들의 묘지로 이동했습니다.
아 그게 제가 속칭 편한 말씀으로 먹고 사느라 바빠서 인지 물론 그것도 변명이겠습니다만은
5년만에 현충원에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어제 갔을때 8명의 태풍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물론 그전에 갈때까지 본인들의 비석 앞에 놓여져 있던 애장물들이 치워진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도 이 모든 시설물 설치 및 조정이 국립대전현충원과의 협의를 통한 일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 찾아가서 경례를 올리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비록 나이도 저보다는 어리고
군대에서는 군번으로 보아도 한참으로도 후배이지만
군번과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았던 같은 국민으로써 그저 친구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처음 현충원을 찾았을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춘으로 시간이 멈춘 사이에 18년째 이 자리에 잠들어 있는 후배들이 너무나도 미안하더군요.
저는 그래도 군대에서 살아서 돌아왔는데 누구는 못돌아 왔으니
물론 저는 이들이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지금도 국방부는 너무 철옹성이라서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국립묘지도 어느 정도 들러보면서 성남으로 돌아가야할 기차시간을 맞추느라
연천용사들의 묘지에도 한 10분 정도 앉아서 이들과 그러니깐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넋두리를 했었습니다.
너희들은 비록 육신은 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나는 물론이고 국민들에게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았다라구요
제가 아무생각 없이 이들을 만나러 가느라
그 어떤 물품도 가지고 가지 못해서
소주한병 못가지고 가서 부어주지 못했네요.
역시 이들에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서 담배한대 불 붙여주고 왔습니다.
(물론 화재 방지를 위하여 당연히 꼼꼼히 재를 털고 불을 껐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은 저도 살아 있음으로하여 고통인데
다같이 군대가서 저만 혼자 살아돌아온 사실이 너무나도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차라리 저 자리에 내가 누워 있고 저 숭고한 영혼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면 어땠을까...
돌아나올때 현충일에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대전역을 거쳐서 성남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여 유가족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성남에서 거주중이구요.
다만 저에게 의사소통이 필요하시면 쪽지나 메일 주세요.
하도 국방부가 어찌 나올지 알 수 없는지라
여기도 지켜볼 수 있다는 저 나름의 우려로 전화번호 공개가 망설여 집니다.(여태까지의 국방부 행태를 보면 뻔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밤이 늦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이만 글을 마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