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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날 잡아 괴나리 봇짐을 쌌습니다.
바다가 그립거나 정스러운 시골이 그립거나 그런것 보다도,
도시의 냄새가 싫고, 어디선가 만날지도 모르는 인간의 정이 그립기 때문이죠.
여수의 어느 바닷가를 서성이면서 지나가는 바람에도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먼길 달려온 여친은 피곤할 듯도 한데 뭔가 기분이 좋아서 계속 수답니다.
바다 저쪽으로 선소유적이 보이는데, 우측건물은 병장기를 갈고 다듬었던 세검정이고, 좌측건물은 군기고입니다.
병장기를 갈고 닦으며 잡다하게 떠들어대는 병졸들의 모습이 시간을 뛰어넘은 공간에서 마주칩니다.
굴강.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께서 거북선과 판옥선을 건조. 이곳 앞바다에서 진수한 곳입니다.
거북선 두척을 대피시키고 건조할 수 있는 규모의 넓이인데요. 조선을 하기위해서는 주변에 구조물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왜놈들이 다 훼손하고 문화재는 반출했다는군요.
광각의 카메라가 없어 사진이 이 모양인데 바다로 면한 조그만 입구가 있고 (좌측)
그 수로를 따라 들어오면 넓은 바다에 딸린 연못 같은 것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거북선이 건조됐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쨋든 풀뭇간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전함을 손 본 곳만은 확실합니다.
풀뭇간. 아마도 현재의 이것보다 규모면에서 많이 컷겠죠?
세검정인데, 洗자가 우측으로 가야 하는 것 같네요.
조선시대에는 우측에서 좌측으로 현판을 썻었기 때문이죠.
계선주라는 것인데 높이는 140cm로 이 계선주에 거북선과 판옥선을 매어 두었다고 구전되어 왔으며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해안 벅수로 추정하기도 한답니다.
벅수란 장승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경계표시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것인데 이 지역에서 부르는 호칭입니다.
여친은 회덥밥을 저는 짱어탕? 을 먹고 진남관으로 와서 어슬렁 거립니다.
망해루.
여수 앞바다가 멀리까지 조망되는 언덕에 위치한 이 망대는 아마도 적의 동태를 감시하거나
호시탐탐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기 위해 건립됐겠죠?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를 부르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통제문을 들어서서 진남관에 이릅니다.
진남관 전경. (남쪽을 진압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랍니다.)
관을 쓰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의 이 석인상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등의 조선이 한창일 때
왜적들의 공세가 심하자 그 침공을 막아내기 위하여 의인전술의 일환책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원래 7 구가 만들어졌다는데 현재 이 친구만 남아있답니다. 진남관 들어서면 우측으로 진남관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진남관. 이 집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에 임진왜란 뒤인 선조 32년
삼도 수군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객사입니다. 이 객사는 원래 역대 임금의 궐패(임금을 상징한 궐자를 새긴 위패)를
봉안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망궐례를 지내던 곳으로 건물 폭이 14m 길이가 54,5m로서
둘레가 2,4m 의 큰 기둥이 68 개나 서있는 큰 건물입니다.
필자를 보시면 기둥의 크기가 비교되죠?
매화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비석거리인데요. 웃기게도 쇠비석도 있네요.
그걸 뭐라고 하죠? 거푸집? 저걸 만들기 위해 모형을 만들었을 것이고 또 틀을 만들었을 것이고,
거기에 쇳물을 녹여부어 저걸 뽑아냈을거 아녜요?
돌멩이에 그냥 파내면 될것을......아마도 쇠가 엄청 귀하고 좋으니 그랬던 모양이죠?
장군의 장검 한자루. 명나라의 왕이 선물했다는 검인데,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척서천산하동색 일휘소탕혈염산하)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도 빛이 변한다 크게 한번 휩쓰니 피로써 산과 강을 물들인다.
우리가 알고있는 이충무공의 쌍검중 한자룬가 하여 보았으나 아니었습니다.
길게 세로로 된 검을 가로로 눕혔습니다. (이게 엿장수 맘인거죠)
자산공원의 일출정. 저길 올라가려고 하다가 그만 유람선이 출항한다는 방송을 듣고 달려가서 유람선을 탑니다.
한려수도를 한바퀴 돌아서 오동도에 내려 준다고 하는데 8000 원 입니다.
전라좌수영성고지도.
오동도 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수군연병장으로 사용하다가 1935년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했으나 일본군사기지창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일반인들의 휴식처가 된 섬 남쪽에는 오동도등대가 있습니다.
동백관광하면 항상 여수 오동도가 일순윈데 삼천그루 정도의 동백이 1 월부터 꽃이 피어나는 까닭입니다.
일단 방파제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나면 걸어들어갈 수도 있고, 동백열찬가 뭔가 길다랗게 연결한 차를 타고 들어가도 됩니다.
아니면 우리처럼 한려수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타고 들어가셔도 되고요.
여수 세계박람회를 위해서 건립중인 제 2 돌산대교를 지나갑니다.
세계각지의 사람들이 2012년에는 이곳으로 집결하여 우리의 기술과 해양과학을 한 수 배우게 될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본 진남관입니다.
그나마 지금은 저렇게 보수를 하고 앞에 집들을 없애서 저런 모양이 보이는 것이고,
현재에도 유물전시관 앞쪽의 건물을 비워 철거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앞으론 전경이 더 좋아지겠죠.
실물크기로 복원한 거북선. 이제 곧 여수 세계박람회가 2012 년에 이곳에서 열립니다.
외국인들에게 홍보할 문화재를 복구하기도 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도 하며 뚱땅거리고 바쁩니다.
장군도. 이섬이 장군도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시대 연산군 때 여수에 부임한
좌수사 이량 장군이 장군도와 돌산도 사이의 바다에 석성을 쌓은 후
왜적을 크게 격퇴시키고 임진왜란 시에도 이 수중성이 있어 왜적의 침입에 크게 공헌하여 이름 지어졌다 합니다.
장군도는 참경도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데 옛날 이 일대에서 고래를 많이 잡았던 관계로
고래를 잡은섬의 뜻으로 참경도라 하였던 것입니다. 참경(고래를 베다)
유람선이 오동도를 한바퀴 돌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인 것이 수녀님들의 머리수건.
영혼을 예수에게 팔아버린 순한 양? 의 상징. 휴~~~
손짓해 갈매기를 부릅니다.
그러나 필자는 어떤 소설에서 (모레였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음)갈매기가 영혼을 훔쳐가고 퍼나르고?
좌우가 그 뒤로 이새가 싫습니다. 그 눈도 교활해 보여서 싫고요.
여기 저기에, 온통 여수 세계박람회의 안내판입니다.
수녀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분수를 감상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운명교향곡이 나오고 있었고,
아주 잠깐 수녀와 사랑에 빠지면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에 조소했습니다.
음악분수가 15분 나온 후에 바닥분수가 10분 나오고 5분을 쉬는 형식이었습니다.
음악은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사이에 두어곡 바뀌었는데, 피아노 소나타였지만 곡목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음악분수의 모습이구요.
바닥분수.
그리고 휴식타임이 5분.
거북선과 판옥선.
섬그늘을 돌아 동백숲으로 들어갑니다.
어디선가 이미자님의 동백아가씨가 확성기를 통해 들리고 있었고,
저도 그녀를 벤취에 앉히고 장사익의 버전으로 동백아가씨를 불러줬답니다.
그 행복한 표정속에서 저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또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 시간이었죠.
그녀를 계단참에 세워두고 혼자 아슬 아슬한 바위를 기어내려 용굴까지 왔습니다.
그냥 바위틈에 생긴 틈바구니 일 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해장죽(일반 대나무 보다는 작고 시누대 보다는 큰 대나무) 이 무리를 지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 팔손이 야스대가 열매를 맺고 있어 한컷.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그리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이 노래가 계속 흥얼거려 지는 것 이었습니다.
등대입니다. 내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아래의 사진인 등대사진들이 주욱 걸려있고,
옆으로 통로를 따라 해저 탐험실인가 뭔가가 있는데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주욱 그려놨고 따라 내려오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오동도의 전설 두개중 1개이고 하나는 고려말에 오동나무가 많은 이섬에 봉황이 날아들었는데
이를 상서로운 일로 여긴 신돈이 섬에있는 모든 오동나무를 베어냈다는군요.
이곳에서 새로운 왕재가 태어 난다든가 하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죠. 믿거나 말거납니다.
여수 팔경인데, 다른 건 몰라도 오늘 죽도청풍은 한번 맞고 있습니다.
거문도와 백도가 원래 목표였으나, 사실은 뚜렸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시간을 서로 잘 못 맞춘 바람에
그만 여수에서 얼쩡거리게 됐는데, 그래도 마냥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저도 함께 즐거웠습니다.
불타버린 향일암이나 해양박물관등은 다음을 기약했는데, 왜냐면 어느날 우리는 거문도 백도를 가야하기 때문이죠.
방파제를 손잡고 걸어나오며 그녀는 절 보고 옛날에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고 했고,
장군보다는 저는 쫄병이 어울린다며 (예. 장군님) 대답하는 흉내도 내보고 함께 웃었습니다.
저는 지금만 같다면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것만 같지만, 사실은 제 가슴속에서 사랑은 죽었습니다.
신이 절 버린 그 순간에, 내가 그녀를 떠나 보낸 그 순간에, 제 사랑도 같이 죽어버렸기에
이제 꺼져버린 불씨를 되 살려낼 정열이 남아있지 않거니와 그냥 포기하는것이 편 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거죠.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이 그냥 있듯이, 강물이 흘러가는 강이 그냥 있듯이,
저 또한 그냥 이자리에 무심하게 서서 지나가는 무념의 세월을 느끼고 바라보는거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작은 바램은,
저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슴에 아주 작게라도 제가 남겨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냥 몽땅 잊혀지는 그런 사람은 아니기를 소망하는 것이죠.
제가 여행지에서의 감회를 가슴속에 조그맣데 접어넣어 보관해 뒀다가
나중에 하나씩 끄집어내어 미소 짓듯이 말이죠.
바람부는 방파제에서 여자의 입술은 뜨거웠고, 바람은 시원했고,
갈매기는 끼룩거리며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이 여자의 가슴에도 저는 언제나 간직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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