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세 신사천(辛斯蕆-曲江)
제11세 신사천(辛斯蕆-曲江) 전공판서와 열효 신씨지려 비석
신사천 : 곡강 봉익대부 전공판서/ 중정공(=상장군)파
여계정한퇴휴 곡강1382년 우왕임술 오관침 본현계녀효의 동시피해
사재 여사급 삼강록명릉임오향도천서원창설권두경찬양송 좌랑곽수
구찬상향문 1869년인서원
慶南 昌寧郡 辛斯蕆과 烈孝辛氏之閭 碑石
第11世 辛斯蕆 : 曲江, 奉翊大夫(종_2품)典工判書(정_3품)
麗季政襄退休 曲江1382年 遇王壬戌 島寇侵 本縣季女孝義 同時被害
事載 麗史及 三綱錄明陵 壬午享道泉書院蒼雪權斗經撰樑頌 佐郞郭
壽龜撰常享文 1869년因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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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해설
신사천 호 곡강 1382년생 고려말 공민왕1351년~1374년)때 봉익대부(종_2품) 전공판서(정_3품)로써 귀향하여 낙동강역의 곡강(현길곡면 오호리)에 은거하다 여러차례 왜침에서 분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1382년 멸포(현 길곡면 오호리)강변에서 순절하였다. 그의 큰 딸도 랑장 김우현의 처로서 남편과 함께 왜적과 싸우다전사하였고, 그의 적은 딸도 16세의 처녀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으로써 3부녀가 충.효.열부의 도리를 다 하였다. 이리한 사실이 고려사 절요에 기록되어 있으며, 전법판서 조준이 경상도 체복사로 왔다가 3부녀의 절의와 충효를 왕에게
상소하여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삼강정려비석을 세우고 포상한 기록이 삼강행실록에 있다. 현비석은 1982년 발굴하여 도천제실에 보관하다가 1994년 비각 및 사당을 복원하고 안치하게 된 것이다. 비각은 정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이며 익공계의 공포를 시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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