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 그 여백의 아름다움
드디어
회사 기숙사에 입실하게 되어
책상 위에 놓아둘 난분 하나를 만들었다
지난봄에
난 가게에서 은은한 향을 내던
분에 가득하게 자란 난을 샀었는데
철골소심이란 그 춘란을 분갈이한 것이다
나는 난잎 사이의 여백이 있는 난분을 좋아한다
그 여백은 보면 볼수록 난을 더 아름답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여유롭게 만든다
눈 내린 겨울 산이 아름다운 것은
숲의 여백이 눈을 받아준 덕분일 것이고
우리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둔 여백이 있기 때문이 아니든가
'말하지 않는 슬픔이....'(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 시집 중에서)
말하지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으냐
말하지 않은 분노는 얼마나 많으냐
들리지 않는 한숨은 또 얼마나 많으냐
그런 걸 자세히 헤아릴 수 있다면
지껄이는 모든 말들
지껄이는 입들은
한결 견딜 만하리 (전문)
여백은 글자 그대로 쓰고 남은 자투리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주변이나 인간의 마음속에
'비어 있음'으로써 그 주체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참된 공간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를 잘 표현했다는
백자 달항아리의 꽉 찬 아름다움도 있지만
난잎 사이의 허허로움을 채워주는 난분의 여백도
그에 못지않으리라 생각한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감수해야 할 불편이 많이 있겠지만
그 난분처럼 내 마음도 아름다워지기를 꿈꿔 본다
이상원이레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