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2월 원균의 모함을 받은 이순신이 서울로 잡혀왔을 때 선조임금의 이순신에대한 편견과 극한 감정에 재상들은 이순신이 무고한 줄 알면서도 변호하지 못하고 6,7차에 걸친 중신회의에서 이순신을 비호하던 중신들마저 반대파의 집요한 모함을 두려워해 입을 다물었을 때 정탁(약포)이 혼자 끝까지 이순신의 출중한 무예와 인격을 논해 다시 종군시키라고 역설해 처형 직전에 목숨을 구하여 백의종군케 하고 명량대첩의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했으니 이것이 저 유명한 신구차(伸球箚)다.
<정탁의신구차 전문 >
엎드려 아룁니다. 이모(李某:이순신)는 몸소 큰 죄를 지어 죄명조차 무겁건마는 성상(聖上)께서는 얼른 극형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두남두어 문초하시다가 그 뒤에야 엄격히 추궁하도록 허락하시니, 이는 다만 감옥 일을 다스리는 체모와 순서만으로 그러심이 아니라 실상은 성상께서 인(仁)을 베푸시는 한 가닥 생각으로 기어이 그 진상을 밝힘으로써 혹시나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으시고자 바라심에서 하심이라, 성상의 호생(好生)하시는 뜻이 자못 죄를 짓고 죽을 자리에 놓인 자에게까지 미치시므로 신은 이에 감격함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신이 일찍 벼슬을 받아 죄수를 문초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얼추 죄인들이 한번 심문을 거치고는 그대로 상하여 쓰러져 버리고마는 자가 많아 설사 좀 더 밝혀 줄만한 마음을 가진 경우가 있더라도 이미 목숨이 끊어진 뒤라 어찌할 길이 없으므로 신은 적이 이를 늘 민망스레 여겨왔습니다. 이제 이모가 이미 한번 형벌을 겪었는데, 만일 또 형벌을 하게되면, 무서운 문초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여 혹시 성상의 호생하시는 본의를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바입니다. 저 임진년에 왜적선이 바다를 덮어 적세가 하늘을 찌르던 그 날에 국토를 지키던 신하들로서 성을 버린 자가 많고, 국방을 맡은 장수들도 군사를 그대로 보전한 자가 적었으며, 또 조정의 명령조차 사방에 거의 미치지 못할 적에 이모는 일어나 수군을 거느리고 원균과 더불어 적의 예봉을 꺾음으로써 나라 안 민심이 겨우 얼마쯤 생기를 얻게 되고, 의사(義士)들도 기운을 돋우고 적에게 붙었던 자들도 마음을 돌렸으니, 그의 공로야말로 참으로 컸습니다. 조정에서는 이를 아름다히 여기고 높은 작위를 주면서 통제사의 이름까지 내렸던 것이 실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을 무찌르던 첫 무렵에 뛰쳐나가 앞장서는 용기로는 원균에게 미치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이 더러 의심하기도 한 바는 그렇다고 하겠으나, 원균이 거느린 배들은 마침 그 때에 조정의 지휘를 그릇되이 받들어 많이 침몰된 것이니만큼, 만일 이모의 온전한 군사가 없었더라면 장한 형세를 갖추어 공로를 세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모는 대장이라 나갈만함을 보고서야 비로소 시기를 잃지 않고 수군의 이름을 크게 떨쳤던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에 임하여 피하지 않은 용기는 원균이 가진 바라 하겠지만, 끝내 적세를 꺾어버린 공로로는 원균에게 양보할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때에 원균에게도 그만한 큰 공로가 없지 않았는데, 조정의 은전은 온통 이모에게만 미치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원균은 수군을 다루는 재주에 장점이 있고, 천성이 충실하며, 일에 달아나 피하지 않고, 마구 찌르기를 잘하는만큼, 두 장군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적을 물리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 신이 매양 어전에서 이런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두 장군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원균을 다시 쓰지 않고, 오로지 이모만 머물러 두어 수군을 맡아보게 하였습니다. 이모는 과연 적을 방어하는 일에 능란하여 휘하 용사들이 모두 즐겁게 쓰이므로 군사들을 잃지 않고 그 당당한 위세가 옛날과 같으므로, 왜적들이 우리 수군을 겁내는 까닭도 혹시 거기에 있지 않나 하거니와, 그가 변방을 진압함에 공로가 있음이 대강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이는 이모가 한번 공로를 세운 뒤에 다시는 내세울만한 공로가 별로 없다고 하여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이도 있으나, 신은 적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댓해 안에 명나라 장수들은 화친을 주장하고, 일본을 신하국으로 봉하려는 일까지 생기어 우리나라 장수들은 그 틈에서 어찌할 길이 없으므로 이모가 다시 더 힘쓰지 못한 것도 실상은 그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요즘 왜적들이 또 다시 쳐들어 옴에 있어 이모가 미처 손쓰지 못한 것도 무슨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대개 변방의 장수들이 한번 움직이려고 하면 반드시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야 되고, 장군 스스로선 제 마음대로 못하는 바, 왜적들이 바다를 건너오기 전에 조정에서 비밀히 내린 분부가 그 때 전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를 일이며, 또 바다의 풍세가 좋았는지 아닌지, 뱃길도 편했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수군들이 각기 담당한 구역이 있어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은 이미 도체찰사의 장계에도 밝혀진 바도 있거니와 군사들이 힘을 쓰지 못했던 것도 사정이 또한 그랬던 것인 만큼 모든 책임을 이모에게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지난 장계 가운데 쓰인 사실이 허망함에 가까우므로 괴상하기는 하지만, 아마 그것은 아랫사람들의 과장한 말을 얻어들은 것 같으며, 그 속에 정확하지 못한 것들이 들어있지나 않은가 여기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모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감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신은 자못 풀어 볼 길이 없습니다. 만약에 난리가 일어났던 첫 무렵에 공로를 적어 올린 장계가 낱낱이 사실대로 쓰지 않고 남의 공로를 탐내서 제 공로로 만들어 속였기 때문에 그로써 죄를 다스린다 하면 이모인들 또한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을 빼고는 저와 남이 상대할 적에 남보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자가 적고, 어름어름하는 동안에 잘못되는 일이 많으므로, 윗 사람이 그 저지른 일의 크고 작음을 자세히 살펴서 경중을 따져 처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개 장수된 자는 군사와 백성들의 운명을 맡은 이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된 사람이라, 그들의 소중함이 이와 같으므로 예로부터 제왕들이 국방 책임을 맡기고 은전과 성의를 특별히 보여 큰 무엇이 있지 않으면 간곡히 보호하고 안전케하여 그 임무를 다하게 하니, 큰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무릇 인재란 것은 나라의 보배이므로 비록 저 통역관이나 주판질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라도 재주와 기술이 있기만 하면 모두 다 마땅히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하물며 장수의 재질을 가진 자로서 적을 막아내는 것과 가장 관계가 깊은 사람을 오직 법률에만 맡기고 조금도 용서못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모는 참으로 장수의 재질이 있으며, 수륙전에도 못하는 일이 없으므로 이런 인물은 과연 쉽게 얻지 못할 뿐더러, 이는 변방 백성들의 촉망하는 바요, 왜적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만일 죄명이 엄중하다는 이유로 조금도 용서해 줄 수가 없다 하고, 공로와 죄를 비겨볼 것도 묻지도 않고, 또 능력이 있고 없음도 생각지 않고, 게다가 사리를 살펴 줄 겨를도 없이 끝내 큰 벌을 내리기까지 한다면 공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내키지 않을 것이요, 능력이 있는 자도 스스로 더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저 감정을 품은 원균 같은 사람까지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며, 안팎의 인심이 이로 말미암아 해이해질까 봐 그게 실상 걱정스럽고 위태한 일이며, 부질없이 적들만 다행스럽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일개 이모의 죽음은 실로 아깝지 않으나, 나라에 관계되는 것은 가볍지 않은 만큼 어찌 걱정할만한 중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날에도 장수는 갈지 않고 마침내 큰 공을 세우게 했던 바, 진나라 목공(穆公)이 맹명장군에게 한 일과 같은 것이 실로 한둘이 아니거니와, 신은 구태여 먼데 사실을 따오고자 아니하고 다만 성상께서 하신 가까운 사실로써 말할지라도, 박명실이 한때의 명장인데 일찍 국법에 위촉되었으나 조정에서 특별히 그 죄를 용서해 주었더니, 얼마 안되어 충청도에 사변이 일어나 기축년 때보다 더한 바 있었는데, 명실이 나가 큰 변을 평정시켜 나라에 공로를 세운 것이야말로 허물을 용서하고 일을 할 수 있게 한 보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이모는 사형을 받을 중죄를 지었으므로 죄명조차 극히 엄중함은 진실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모도 또한 공론이 지극히 엄중하고 형벌 또한 무서워 생명을 보전할 가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써 문초를 덜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갚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저 명실 장군만 못지 않을 것입니다. 성상앞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공신각에 초상이 걸릴만한 일을 하는 신하들이 어찌 죄수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상께서 장수를 거느리고 인재를 쓰는 길과 공로와 재능을 헤아려보는 법제와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심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면, 성상의 난리를 평정하는 정치에 도움됨이 어찌 옅다고만 하겠습니까.
<신구차 원문>
伸救箚右議政鄭琢 伏以李某身犯 大罪. 律名甚嚴. 而聖明不卽加誅原招之後。又許嚴推。非但按獄體段爲然。抑豈非聖上體仁一念。期於究得其實。冀有以或示可生之道也。我聖上好生之德。亦及於有罪必死之地。臣不勝感激之至。臣嘗承乏命官。推鞫按囚。固非一再。凡罪人一次經訊。或多傷斃。其間雖或有可論之情。徑自隕命。已無所及。臣嘗竊憫焉。今某旣經一次刑訊。若又加刑。則嚴鞫之下。難保其必生。恐或傷聖上好生之本意也。當壬辰倭艘蔽海。賊勢滔天之日。守土之臣。棄城者多。專閫之將。全師者少。朝廷命令。幾乎不及於四方。某倡率舟師。乃與元均。頓挫兇鋒。國內人心。稍有生意。倡義者增氣。附賊者回心。厥功鉅萬。朝廷嘉甚。至加崇秩。賜以統制使之號。非不宜也。當進兵討賊之初。突戰先登之勇。不及元均。人或致疑。是固然矣。元均所領船隻。適於其時。謬承朝廷指揮。多數燒沈。不有某之全師。則無以做出形勢。克辦奇功矣。某爲大將。見可以進。不失時機。能擧舟師。大振聲勢。則臨亂不避之勇。元均固有之。而畢竟摧陷之功。某亦不多讓於元均矣。但於其時。元均不無如許大功。而朝廷恩典。全及於某。於元均則還以大損。中外至今稱寃。此則最可惜也。元均於舟師之事。才有偏長。天性忠實。當事不避。善於衝突。兩將協心勠力。則賊不難退。臣每於榻前。啓達此事。朝廷以兩將不相能故。不復用元均。而獨留某以專舟師之事。某諳鍊備禦。手下才勇。咸樂爲用。未嘗喪師。威聲如舊。倭奴之最怕舟師者。未或不在於此。其有功於鎭壓邊陲。大段如此。或者以爲某一度建功之後。更無可記之功。以此少之。臣則竊以爲不然。四五年來。天將主和。皇朝東封之事又起。我國大小將士。不許措手於其間。某不復宣力者。非其罪也。近日倭奴之再擧入寇也。某之不及周旋者。其間情勢亦或有可論。盖凡當今邊將之一番動作。必待朝廷之成命。無復有將軍專閫之事。倭奴未過海之前。朝廷秘密下敎。登時傳致與否。未可知也。海上風勢之順逆。舵之便否。亦未可知也。而舟師分番。不得已之事。昭載於都體察使自劾狀啓中。則舟師之臨急不得致力者。事勢亦然。似不可以此全歸於某也。往日馳啓之中。其所陳之事。涉於虛妄。極可怪駭。而此說如或得於下輩之誇張。則恐亦容有中間不察之理。不然。某亦非病風之人。敢爲如是。臣竊未解。若夫亂初軍功馳啓之中。不爲一一從實。貪人之功。以爲己功。委涉誣罔。以此而問罪。則某亦何辭焉。然而除非全德之人。則於物我相形之際。能無欲上人之心者盖寡。因循苟且之間。鮮不做錯。特上之人。察其所犯之大小而有所輕重之耳。夫將臣者軍民之司命。國家安危之所係。其重如此。故古之帝王。委任閫寄。別示恩信。非有大何。則曲護而全安之。以盡其用。厥意有在。大抵人才國家之利器。雖至於譯官筭士之類。苟有才藝。則皆當愛惜。况如將臣之有才者。最關於敵愾禦侮之用。其可一任用法而不爲之饒貸耶 某實有將才。才兼水陸。無或不可。如此之人。未易可得。邊民之所屬望。敵人之所嚴憚。若以律名之甚嚴而不暇容貸。不問功罪之相準。不念功能之有無。不爲徐究其情勢。而終致大譴之地。則有功者無以自勸。有能者無以自勵。雖至挾憾如元均者。恐亦未能自安。中外人心。一㨾解體。此實憂危之象。而徒爲敵人之幸。一某之死。固不足惜。於國家所關非輕。豈不重可爲之慮乎。古者。不遞將臣。終收大功。秦穆之於孟明者。固非一二。臣不暇遠引。只以聖上近日之事啓之。朴名賢亦一時之猛將也。嘗觸邦憲。朝廷特原其罪。未幾。有湖右之變。變過己丑。而名賢一擧戡定。功在宗祊。其棄瑕責效之意至矣。今某罪陷大辟。幾犯十惡。律名甚嚴。誠如聖敎。某亦知公論之至嚴。常刑之可畏。無望自全。乞以恩命特减訊次。使之立功自效。其感戴聖恩。如天地父母。隕首圖報之志。必不居名賢之下。而我聖主中興圖閣之勳。臣安知不起於今日胥靡乎。然則聖主禦將用才之道。議功議能之典。許人改過自新之路。一擧而俱得。其有補於聖主撥亂之政。豈淺淺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