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6월, 1977년 6월, 12월 / 독일 라디오 브레멘 / 564분 / 한글자막>
알프레드 브렌델이 해설하고 직접 연주하는 슈베르트 후기 피아노 작품집
2008년 은퇴를 공식 발표한 우리 시대의 슈베르티안(Schubertian), 알프레드 브렌델은
1970년대 중반에 독일의 브레멘에서 무려 열세 편에 달하는 TV영상물을 제작하는데 참여했다. 이들 방송기록은 슈베르트 피아노 작품의 정수인 아홉 개의 후기 소나타와 <방랑자 환상곡>, <즉흥곡> 전곡, <악흥의 순간>. 세 곡으로 이루어진 유작 <피아노 소품>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방대한 소개는 전례 없는 것인데, 특히 알프레드 브렌델 본인의 상세한 곡 해설과 더불어 본인의 슈베르트에 대한 생각, 곡의 조사와 분석, 폭넓은 개관으로 그의 끝없는 슈베르트에 대한 탐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기념비적인 방송기록이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18세에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전문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전세계를 무대로 연주하며 뉴욕, 런던, 파리, 빈, 베를린, 암스테르담, 유럽과 미국의 주요 페스티벌에 단골 출연했다. 1983년 옥스퍼드 대학교를 비롯. 명예학위도 여럿 갖고 있다. 1989년에 영국에서 명예기사 작위를 받았고, 1993년 3월에는 로열 필하모니 협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알프레드 브렌델은 1931년 비젠베르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자그레브와 그라츠음악원을 거쳐 에드윈 피셔에게 사사하였고 1948년(17세) 첫 리사이틀에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다. 다음 해인 1949년에 부조니상을 받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하여 빈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1963년에는 미국에서도 성공적으로 데뷔하였고 매년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극동 등을 들러 연주 여행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뛰어난 기교와 아름다운 음색의 소유자로 슈베르트, 리스트, 쇤베르크, 베베른 등의 작품연주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이며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망한 연주 활동 사이에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런던과 빈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가르쳤다. 2008년에 피아니스트로서 은퇴한 후 현재는 런던에 살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에세이와 시를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로는 『바로 나』(마르틴 마이어와의 대담, 2001), 『거울에 비친 상과 검은 유령』(2003), 『마지막 화음이 끝난 뒤』(질의와 응답, 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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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델과 슈베르트
<영상물 내지 해설 / 제레미 시프먼 Jeremy Siepmann / 황진규 번역>
알프레드 브렌델은 자신의 경력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매우 유명한 레이블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녹음함으로써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되었다. 그 자신이 이를 좋아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베토벤은 이후로도 계속 이 피아니스트의 경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나, 브렌델은 이 작곡가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경력 초기에는 프로코피예프(그의 첫 녹음은 이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이었다)와 무소르크스키의〈전람회의 그림>,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모음곡>,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쇤베르크의 <피아노 협주곡>, 쇼팽의 <폴로네이즈> 등을 녹음했으며, 그 이후에는 점점 더 위대한 독일-오스트리아 레퍼토리에 집중했다.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을 몇 차례에 걸쳐 녹음한 베토벤은 물론이고 모차르트, 하이든, 슈만, 슈베르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슈베르트는 브렌델이 전 경력에 걸쳐 피아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저술가로서도 옹호한 작곡가이다.
브렌델이 보기에 슈베르트는 모든 작곡가 가운데서도 듣는 이의 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훗날 자신이 고백한 바에 따르면, 초기에 연주자로서 그가 슈베르트의 세계에 대해 취했던 접근방식은 진부하고도 소심한 것이었다. 즉흥곡이나 <방랑자 환상곡>, <악흥의 순간> 같은 곡은 대단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아는 곡이기도 하다. 브렌델이 진정한 슈베르티안으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그가 빈의 브람스 홀(Brahms-Saal)에서 슈베르트 독주회를 열어 <소나타 c단조>나 <B장조> 등 당시만 해도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던 작품들을 소개했을 때였다. 이어 1970년대 중반에는 열세 편에 달하는 TV 영상물을 브레멘에서 제작하는데 참여했다. 이들 영상물은 아홉 개의 소나타와 <방랑자 환상곡>, <즉흥곡> 전곡, <악흥의 순간>, 세 곡으로 이루어진 유작 <피아노 소품>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방대한 소개는 전례 없는 것이었다.
이 레퍼토리에서 명연을 남긴 다른 위대한 피아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브렌델 역시 독주 피아노곡에만 매달리지 않고 슈베르트의 비할데 없는 가곡(그는 헤르만 프라이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마티아스 괴르네 등을 반주했다)과 실내악곡, 교향곡에도 심오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실제로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그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서법(브렌델은 이 작곡가 특유의 복잡한 피아노 서법을 지칠 줄 모르고 옹호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 상당수는 성악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슈베르트의 독특하고도 대담한 구성이 보여주는 교향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의 피아노 텍스처가 보여주는 명백하게 관현악적인 성격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여러 차례에 걸쳐 '음악의 알파와 오메가'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브렌델은 정력적이고도 엄격한 사색가였다. 또한 그만큼 의미를 중시하는 인물이자 그만큼 지적인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학구적'이거나 교육자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또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역사적 정확성을 기하겠노라 서약한 무미건조한 음악학자도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작곡가의 악보에 적힌 지시보다는 악상 그 자체나 감정을 더 중시했으며, 슈베르트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가 추측했듯이 슈베르트는 아마도 다른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작곡에서 불가결한 실제적 관점을 어느 정도는 결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고본이나 스케치 등에 기초한 브렌델의 꼼꼼한 연구는 '학구적'인 수준은 아니며 단순히(때로는 그저 단순하지만은 않다) 작곡가를 좀 더 잘 알기 위한, 즉 슈베르트의 의도가 어떤 식으로 작용했으며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다듬어졌는가를 알기 위한 수단이었다. 모든 음표에 대한 브렌델의 조사와 분석, 폭넓은 개관은 지나칠 정도로 세부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위대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의 탐구는 끝이 없었다. 그의 해석은 결코 기념비적인 '진실'로 고착되는 일이 없었으며, 어디까지나 고무적이고 헌신적인 가설로 남았다.
그 누구도 브렌델만큼 복잡하고도 극적인 강렬함을 지닌 슈베르트의 음악적 혹은 심리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거나 이 작곡가를 특징짓는 독창성과 매력적인 논리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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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후기 피아노 작품
<내지 해설 / 제레미 시프먼 Jeremy Siepmann / 황진규 번역>
DVD 1 <방랑자 환상곡, D760> <소나타 a단조, D784> <소나타 C장조, D840>
<방랑자 환상곡>은 많은 슈베르트 애호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가운데 최후의 대작이다. 처음 들어보면 이 작품은 '너무 베토벤적'이거나, '너무 리스트적' 혹은 '너무 웅대', '너무 기교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여기서 '너무'만 지우고 보면 확실히 다 맞는 표현들이다. 비록 이 곡이 작곡된 1822년은 리스트가 불과 열한 살이었고 막 빈으로 옮겨와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에게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베토벤은 일종의 일반화된 유형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이와 유사한 작품을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웅대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화려한 기교가 동원되기는 했으나, 이 곡은 일종의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단일 주제를 놓고 작업한 작곡가가 슈베르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곡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단일한 악상(슈베르트의 가곡 '방랑자'에서 끌어온 것으로, 이때문에 이와 같은 별명이 붙었다)에 기초한 최초의 다악장 작품이다. 그러나 가곡의 경우와는 달리, 여기서는 리듬이 시종일관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요소가 된다. 휴지 없이 연달아 연주되는 이 작품의 네 섹션은 빈틈없이 통제된 대규모 형식(진정으로 기념비적인 구조라 할 만하다)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시도이자, 이전에는 피아노라는 악기로 시도된 바 없는 음향과 다양한 색채를 총망라하는 일대 축전이라 할 수 있다. 리스트가 이 곡을 사랑했으며 강한 영향을 받았던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방랑자 환상곡>이 가장 공식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의 슈베르트를 제시한다면, <소나타 a단조, D784>는 가장 솔직하고도 거리낌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비록 즐거움과 극도의 부드러움이 어느 정도 상쇄하고는 있으나, 거친 악상은 너무나 직접적으로 다가와 거의 육체적인 고통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방랑자 환상곡>보다 몇 달 뒤에 작곡된 이 곡 역시 양식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스트가 아니라 후기 낭만파 가운데 가장 슈베르트적인 인물이었던 말러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말러의 작품처럼 길지는 않으며, 오히려 눈에 뛸 정도로 간결하다. 그러나 이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는 관현악적인, 심지어 교향악적인 측면이 있다. 미친 듯이 돌진하는 피날레(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이 악장의 마지막 옥타브 진행을 두려워한다)에 이르기 전에는 그리 기교적인 모습을 과시하지 않으나, 극도로 정제된 음조와 정밀한 짜임새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연주하기 까다롭다. 그리고 그게 옳다.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안단테 악장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 작품에는 편안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가감 없는 솔직한 표현에서는 무자비함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 곡으로 인해 우리는 슈베르트의 내면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소나타 C장조, D840>은 1825년에 착수되었으며, 같은 조성으로 작곡된 <교향곡 9번>과 작곡시기가 어느 정도 겹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 곡에서 '교향악적인' 인상을 쉽사리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웅장함과 집중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1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같은 C장조로 되어 있는 <방랑자 환상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슈베르트는 단일주제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주제는 비상할 정도의 미묘함으로 다양하게 변모한다. 지극히 슈베르트적이며 미증유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이 두 악장짜리 소나타는 슈베르트의 초인적인 마지막 시기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DVD 2 <소나타 a단조, D845> <소나타 D장조, D850>
이 DVD에는 슈베르트 생전에 출판된 세 개의 소나타 가운데 두 편이 실려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영적 세계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곡은 많은 공통점을 보여준다. 둘 다 1825년에 작곡되었으며 대규모의 4악장제를 취하고 있다. 당대의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도 같다(슈베르트는 사후 100여년에 걸쳐 학자인 척하는 인물들로부터 대규모의 형식, 특히 '소나타' 형식을 다루는데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또 두 곡 모두 작곡가가 극도로 큰 규모에서도 하이든마저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최소한의 것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률의 대가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서사의 대가라는 사실도 증명한다. 이 곡을 듣노라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일어날지까지 알고 싶어진다(슈베르트의 주제는 모차르트의 경우만큼이나 대단히 '성격적'이다). 그리고 이런 면은 화성적인 연관성에서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그의 주제는 오로지 혹은 주로 (일반적인 구성 요소인) 선율과 화성, 리듬만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소나타 a단조> 첫머리를 여는 (그리고 지배하는) 주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순수한 선율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선율을 뒷받침하는 짜임새나 (희미하게 암시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화성의 징후 같은 것도 없으며, 최소한의 선율을 수반하는 견고한 화성 진행이 있을 뿐이다. 단순한 악상에서 이끌어낸, 엄청난 길이의 이 놀라운 악장은 매번 음을 다르게 배치하고 (화성적, 구조적, 심리적, 감정적인 면에서) 다른 맥락 속에 둠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슈베르트의 '지루한 반복'을 트집잡는 이들은 주제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를 의식하지 않고 듣는 것이다. 슈베르트의 곡에서는 문맥이 내용을 규정하는데도 말이다. 그의 소나타는 확실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구조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악장에서 비정통적인 재현부는, (극의 발전이 이 지점에 이르면 전통적인 재현을 취할 경우 재앙으로 화하게 된다는) 필연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어 현학가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적절한 예가 되고 있다. 이어지는 안단테 악장은 꿈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교묘하고도 감동적인 일군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슈베르트의 모든 소나타 가운데 유일한 변주곡 악장이기도 하다. 상쾌한 스케르초는 진통적인 미뉴에트에 (거의) 작별을 고하는 그의 첫번째 스케르초이며, 무궁동 풍으로 진행하는 피날레는 이 위대하고도 일관되게 독창적인 소나타에 숨 막힐 정도로 흥분되는 대미를 장식한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나 그 밖의 면에서는 판이한 <소나타 D장조>는 슈베르트의 작품 가운데 유일무이한 곡이다. 화려한 기교의 대향연과 활달함, 즐거움, 유머가 두드러지는 반면 서정적인 면은 다소 덜하며, 우울한 느낌이나 단조 악구는 거의 찾을 수 없는 대신 이따금 화려한 색채가 재빨리 만개했다 사라지곤 한다. 이 곡은 작곡가에 대한 모든 통상적인 이미지와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시종일관 슈베르트답다.
DVD 3 <소나타 G장조, D894> <네 개의 즉흥곡, D899> <네 개의 즉흥곡, D935>
1826년에 작곡된 <소나타 G장조>는 슈베르트의 생전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출판된 소나타였다. (그는 모든 위대한 작곡가 가운데 작품이 가장 드물게 연주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교향곡이 상업적으로 공연되는 것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지막 두 교향곡의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도 연주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그 가운데 가장 여유롭고 광대하며, 일부 연주에서는 가장 긴 곡이기도 한 이 작품은 슈만이 만들어낸 '천국적인 길이'라는 표현에 대한 완벽한 예시이기도 하다. 쉽지는 않으나 기교에만 치우치지도 않는 이 작품은 평온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심오한 서정정과 (장조와 단조 사이에 생겨나는 긴장감을 시적으로 탐구하는) 풍부한 화성 대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타오르는 번민을 격정적으로 분출함으로써 이따금 활기를 띠기도 한다. 모두 모데라토 템포로 지정되어 있는 네 악장은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 줌으로써 설득력 있고 대단히 만족스러운 총체를 이룬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래는 한 편의 소나타가 아니라 네 개의 분리된 작품으로 출판되었으며, 각 악장에는 '환상곡', '안단테', '미뉴에트', '알레그레토'라는 제목이 붙었다. 상당히 부적절한 '환상 소나타'라는 별명은 바로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비록 슈베르트가 지어낸 제목은 아니었으나, 그는 이 명칭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이름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제목 문제로 시시콜콜히 다투는 것보다는 팔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서(그 당시 '소나타'라는 용어는 가정용 수요를 유인하는데 적당치 않았다) 출판할 수 있게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D899>로 묶인 네 개의 놀라운 작품을 '즉흥곡'으로 이름 지은 것 역시 작곡가의 의도가 아니었으나, 두 번째 연작을 출판업자에게 건넬 때는 그 스스로 같은 명칭을 제안했으며, 각 곡에 '5번'부터 '8번'까지 번호를 매겨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따로 연주하는 데 부적절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각 곡을 성격뿐만 아니라 특히 조성 관계를 감안해 배열한 슈베르트의 조치는 이들 작품이 한 묶음의 잡동사니 살롱용 소품이 아니라 영감에 차 있고 대가다운 것임을 말해준다. 주의 깊게 구성된 세트의 일부임을 감안하고 들으면, 각 곡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아울러 이어서 들을 경우 '즉흥곡'이란 용어가 처음부터 무의미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이 용어는 형식도, 성격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리 대단치는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10분 안팎 정도 길이에 연주하는 데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지는 않는 소품이라는 사실 정도만 짐작케 할 뿐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변주곡에서 미뉴에트(혹은 스케르초)-트리오 형식, 코다가 딸린 3부 형식, 론도와 소나타 형식의 혼합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기는 하나 역시 자유로운 즉흥연주와는 거리가 멀다. 역설적이게도, 전 즉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하며 숭고한 서정이 돋보이는 <즉흥곡 G♭장조, D899>은 한 세기도 더 전에 출판되었을 당시에는 'G장조'로 표기되었다. 이 편이 더 쉽고 따라서 아마도 더 잘 팔리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읽기는 더 쉬우나 연주하기는 더 어렵다. 그리고 이 조성을 취할 경우, 총체적인 고려 아래 구성된 슈베르트의 영감에 찬 화성 세계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곡의 성격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고 만다.
DVD 4 <소나타 c단조, D958> <악흥의 순간 D780> <피아노 소품, D946>
<소나타 c단조>에 이르러 우리는 피아노 작곡가로서 슈베르트가 성취한 위업의 절정을 이루는 동시에 그가 서른한 살의 나이로 죽기 직전의 몇 주로 되돌아가게 하는 소나타 삼부작에 도달하게 된다. 진정한 위대성의 영역에 속하는 이들 세 소나타는 서로 너무나도 판이하다. <소나타 c단조>는 셋 가운데 가장 짧고 간결하면서 단연 극적이다. 또한 이 곡은 슈베르트가 쓴 것 가운데 가장 어두운 부류에 속하는, 무시무시한 비극적 힘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이 비극은 곡 전반에 걸쳐 있는 폭풍 속에서 몇 번이고 등장하는, 외견상의 휴식에 불과한 부드러우면서도 신랄한 순간에 의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된다. 이 곡에서 투쟁은 베토벤의 <소나타 c단조>에서만큼이나 처절한 양상을 띠면서도, 베토벤의 의도가 승리 혹은 초월로 끝마치려는 것임에 반해 여기서는 운명의 손길이 슈베르트의 편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타란텔라 풍의 피날레는 죽음의 무도를 연상케 하며, 종결부 화음은 관에 가하는 마지막 못질과도 같다. 그러나 이는 그저 하나의 극이 끝난 것에 불과하다. 작곡가 슈베르트는 이후로도 두 개의 소나타와 위대한 <현악 오중주 C장조>에서 건재함을 과시하게 된다.
비록 슈베르트의 소나타는 19세기의 대부분에 걸쳐 어둠 속에 묻혀 있었으나(최후의 세 편은 작곡가가 죽은지 11년 뒤인 1839년까지도 출판되지 않았다), 더 짧은 소품 혹은 적어도 즉흥곡이나 여섯 개의 <악흥의 순간> 등 연작으로 묶여 출판된 소품은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악흥의 순간>은 실제로는 연작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1823년에서 1828년에 걸쳐 띄엄띄엄 씌어졌다. 그러나 조성(과 성격) 구성에서 미루어 보면, 이들은 한 묶음으로 했을 때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으로 묶인 것이다. '1번'은 일종의 목가로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요들이며, '2번'은 고민에 찬 폭발을 수반하는 매우 통렬한 독백이다. '3번'은 <로자문데>를 회고하는 간결한 곡으로, 어쩌면 슈베르트가 쓴 모든 피아노 소품 가운데 가장 친숙하게 들릴 수도 있다. 강력한 추진력과 대위법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4번'은 바흐에 대한 슈베르트의 사랑을 반영하며, '5번'은 두터운 구름 사이로 여기저기서 번개가 번뜩이는 폭풍우처럼 휘몰아친다. 마지막 '6번'은 일종의 무언가이자 부드러우면서도 대단히 사무치는 느낌을 주는 춤곡이다. 유토피아적이지도 않고 천국적인 느낌도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듣는 이에게 천상의 평화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피아노 소품, D946>은 아마도 1828년에 전곡이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쓴 것 가운데서도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매혹적인 악상을 담고 있음에도 작곡가의 위대한 작품 가운데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로 이 곡은 1868년에 브람스가 편집할 때까지 출판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비록 세 곡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작품은 대단히 다양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가운데 가장 황홀한 한 순간을 제공한다.
DVD 5 <소나타 A장조, D959> <소나타 B♭장조, D960>
A장조라는 조성은 전통적으로 밝은 햇살이나 듣기 좋은 가락, 따뜻함, 풍부한 짜임새, (야하지는 않은) 색채감, 기운을 돋우면서도 그리 심하지는 않은 장난기, 무르익은 풍요로움 등과 관련되어 있다(영국에서는 안개와도 관련이 있지만 말이다). 슈베르트가 쓴 마지막 소나타는 이 모든 요소를 아우르고 있다. 인상적이며 거의 호전적으로까지 들리는 첫머리는 엄격한 울림과 딱딱하고 공격적인 리듬, 작살처럼 내리꽂히는 하강 도약 등이 지배하고 있어 이런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으나, 팡파르가 아직 듣는 이의 귀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거의 무게감 없이 떨어지는 (그럼에도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나뭇잎처럼 셋잇단음표의 부드러운 소나기가 온 몸을 적시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풍요로운 대비가 이 악장, 나아가 이 소나타를 이룬다. 상호 인용과 미묘한 변화로 점철된 이 곡은 지금까지 작곡된 모든 소나타의 세계에서도 가장 정밀하게 (그리고 가장 까다롭게) 구성된 작품에 속한다. 전통적인 고전파 양식을 폭넓게 수용(이점에서 그는 자신이 존경했던 베토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했으면서도, 슈베르트는 거의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발전이라는 놀라운 체험을 선사한다(이는 작곡가 자신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소나타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작품의 핵심도 느린 악장에 있다. 이 경우는 그렇게 느리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이보다 더 가슴을 쥐어짜는 슬픈 악장은 그 뒤로 작곡된 적이 없다. 잉그리드 버그만(스웨덴 출신의 영화배우 - 옮긴이)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좋은 건강과 나쁜 추억에서 비롯된다." 슈베르트 역시 끔찍했던 추억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그도 결국 회복되었지만, 이후로도 그(그리고 우리모두)의 눈앞에는 심연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즐겁고 경쾌한 스케르초와 서정적이고 대담하며 여유로운 피날레는 안단티노 악장에서의 체험에 어느 정도, 그러나 심하지는 않을 만큼 영향을 받고 있다.
위대한 <소나타 B♭장조>가 슈베르트 소나타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대단히 광대하면서도 극도로 단순하다. 작곡가는 이 곡의 어느 대목에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어디서도 악상이 서로 부대끼는 일이 없다. 모든 대목에서 슈베르트는 모든 것을 (영적인 면에서건, 감정적, 음악적, 혹은 표현 면에서건) 그 정수에 이르기까지 다듬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가 쓴 다른 어떤 곡만큼이나 순수하게 슈베르트적이기는 하나, 이 곡은 어떻게 보면 광활한 폭과 경제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서사시적인 규모로 확장된 모차르트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는 모순이 아니다. 슈베르트의 어법 가운데 일부는 광활함으로 특징지어진다. 풍요로움과 초시간성이야말로 이 걸작의 전체적인 정신과 구조 그리고 미적 관점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작곡가는 탁월한 판단력으로 광대한 두 악장(그러나 1악장만큼 광대하지는 않다) 사이에 낀 스케르초 악장을 간결하게 처리했다. 만약에 이 3악장마저도 길었다면 분명히 전체적인 짜임새가 망가졌을 것이다. 피날레는 두 번의 폭발(악상의 반복 때문에 두 번째는 효과가 덜하다)을 거친 뒤 당당하고 낙관적인 코다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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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브렌델 해설 대본 ===
DVD 1 <방랑자 환상곡, D760>
프란츠 슈베르트는1828년 31살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는 가수 미하엘 포글의 도움으로 가곡 작곡가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공무원, 화가, 문학가들 이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춤출 때 연주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기악작품들에 대해서 거의 몰랐거나 심지어 그 중요성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2중주를 제외하고는 이들 기악곡 대부분은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동안에 그 작품들은 점차적으로 전집의 형태로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지닌 슈베르트에 대한 이미지는 루돌프 한스 바르트쉬의 'Schwammerl'(스펀지)처럼 통통하고, 쾌활하고 다소 취한 모습의 슈베르트였으며 가끔 생각에 잠기지만 항상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르테의 오페라 '라일락 핀 시절'에서는 슈베르트와 세 명의 누이가 등장해 그가 쓴 선율이 편곡된 형태로 즐겁게 연주된 가운데 슈베르트가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리처드 타우버는 발성영화에 이런 이미지를 담았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슈베르트의 복잡한 성격을 더 잘 알 수 있었고, 그가 위대한 기악 작곡가들 중 한 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토 에리히 도이취가 작성한 작품 목록 덕분에 우리는 각 작품들의 창작 순서와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의 발전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슈베르트의 작품번호는 혼란스럽습니다. 작품번호는 작곡된 순서가 아니라 출판된 순서를 나타냅니다.
슈베르트의 기악음악은 두 시기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첫 시기는 1819년까지입니다. 이 시기는 15개의 소나타와 6개의 교향곡을 포함하고 그 중에서 11개의 작품은 미완성입니다. 슈베르트는 봇물처럼 가곡을 작곡하는 와중에 징슈필 분야에 관심을 돌려 활발하지만 실익없는 활동을 하느라 3년의 공백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는 교향곡 e단조의 스케치를 제외하면 c단조 현악사중주가 그가 쓴 유일한 기악작품입니다. 이미 이 작품들은 슈베르트의 성숙기 스타일을 예견케 합니다. 그 시기는 1822년에 시작해 슈베르트의 죽음과 함께 끝나게 됩니다.
저는 이 두 번째 시기의 건반 작품을 연주합니다. 이 시기는 연주회를 위해 준비했던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위한 기교적인 곡처럼 예외적인 몇몇 작품과 더불어 슈베르트가 초기 시기에는 도달할 수 없었을 정도로 숙달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악 작품을 포함합니다.
저는 초기 교향곡들, 피아노5중주 '송어', 그리고 A장조 소나타를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을 제외하고는 이에 필적할 만한 중요한 작품을 그토록 젊은 나이에 만들어낸 작곡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의 슈베르트는 대규모 형식을 아주 편안한 방식으로 작곡하는 사람이라는 친숙한 인상을 여전히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1822년 가을에 작곡된 미완성 교향곡과 '방랑자 환상곡'을 살펴보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가 매독을 자각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일련의 편견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병의 충격 때문에 슈베르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은 듯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온 힘을 모았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끔 슈베르트의 피아노 기법은 베토벤에서 나아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을 접하곤 합니다. 그러나 '방랑자 환상곡'과 그 후의 소나타들을 잠시만 봐도 우리는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방랑자 환상곡'에서 피아노는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로 변형됩니다. 특정악기들과 그룹의 음색뿐아니라 전체 연주의 힘도 역시 암시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점차 증가하는 현악 트레몰로가, 그 다음에는 모든 관악기가 들려옵니다.
이 시기의 피아노로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하려고 시도하는 누구라도 슈베르트가 얼마나 더 미래의 피아노에 의존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방랑자 환상곡'과 같은 작품에 확장된 다이내믹 폭 때문에 더욱 튼튼한 피아노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방랑자 환상곡'은 기교가 중시되는 피아노곡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피아노에서 보면 그것은 가능성의 한계에 이르게 하고 슈베르트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 작품을 들려줄 때 "이 작품을 연주하는 이는 악마일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환상곡이 그의 장조 피아노곡 가운데 처음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엄청나게 화려한 기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며, 이 곡은 아마도 리스트가 자신의 모든 편곡 가운데 원곡보다 연주하기 더 쉽게 만들었던 유일한 작품일 것입니다.
또한 이 곡의 명성은 자유로운 형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때 베토벤은 소나타 형식을 단호히 거부했다고 여겨집니다. '방랑자 환상곡'이 환상곡이라 불리는 것은 즉흥적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격하게 창작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형식 범주 가운데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이루는 네 부분 - 즉 제시부와 전개부, 재현부, 코다와 더불어 소나타를 구성하는 네 악장은 30년뒤에 리스트가 b단조 소나타에서 그랬듯이 악상에 끼워 맞춰진 것입니다. 전개부 가운데 가곡 '방랑자'에서 주제를 따온 아다지오가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뤼벡의 시인 슈미트가 쓴 아름다운 시는 말합니다.
"여기 태양은 너무나도 차가운 듯 보입니다. 꽃은 시들었고 인생은 늙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허무한 말들일 뿐, 나는 어디서나 낯선 사람입니다."
재현부 대신 스케르초가 있고 종결부엔 푸가의 걸작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단일 주제 형식은 리스트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사실 '단일 주제'라는 말은 과장된 것입니다.
'하나의 동기로 이루어진 환상곡'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엄격히 말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짧은 동기 즉, 모든 주요 주제를 한데 묶는 세 번 반복된 화음 또는 음표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화음은 리드미컬하게 연장되어 있습니다. 느린 악장에서 등장하는 '방랑자' 주제의 첫머리에서 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곡의 맨 첫머리와 스케르초의 시작 부분, 그리고 피날레 첫머리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작품의 전형적 특징은 서로 멀리 떨어진 조성의 혼재와 주요 주제가 아주 먼 거리에서 서로를 대면한다는 인상입니다. 이들의 성격 역시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다지오의 침울한 테마는 다른 악장들의 기쁨의 열정으로부터 가능한 한 동떨어져 있습니다. 주 악장에서 C장조를, 그리고 아다지오에서 c#단조를 배열한 것 역시 슈베르트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슈베르트는 반음으로 인접한 조성을 선호했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 슈만이 '천국적인 길이'(교향곡 '그레이트'를 두고 한 말)라고 부른 요소가 없는 것은 전형적인 슈베르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역시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집중할 줄도 알았습니다. 만약 슈베르트의 후기 기악 작품에서 간략화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 점이 좋은 이유가 될 것입니다.
DVD 4 <소나타 c단조, D958>
소나타 c단조, A장조, 그리고 B플랫장조는 슈베르트가 죽기 몇 주 전인 1828년 9월 작곡되었습니다.
이 3개의 작품을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은, 악보에는 이들 작품이 슈베르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소나타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는 당대 피아노의 거장인 훔멜에게 그 소나타들을 헌정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에 훔멜의 죽음으로 인해 슈만에게 그 소나타들을 헌정했고 디아벨리에 의해 10년 뒤에야 이 작품들은 출판되어 졌습니다. 그러나 슈만은 이들 소나타에 a단조 op.42나 D장조, G장조로 된 다른 초기작보다 덜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이 마지막 소나타들이 극단적으로 단순화되었으며 슈베르트가 여기저기에 새로운 선율들을 덧붙임으로써 누구에게나 뻔한 악상이 터무니없는 길이로 늘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슈만의 말이, 이들 마지막 소나타가 동기나 소재를 다루는 데 더 큰 집중력을 보여준다는 뜻이라면 다시 말해, 단순함이 통일성으로 해석된다면 우린 슈만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슈만은 슈베르트가 이전에는 엄청난 수준으로 스스로에게 요구했던 화려한 신기함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다음의 문장만큼이나 심오하게 들립니다. "마치 끝도 없고 다음에 올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북함도 없는 듯하다. 항상 음악적이고 선율적이며 끊임없이 너울거리며 번져나간다. 갑작스런 충격이 여기저기서 이 물결을 방해하곤 하지만 이내 가라앉고 만다." 슈만은 분명히 이 작품들을 단지 피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이 세 소나타 그룹은 오직 베토벤의 마지막 세 소나타나 모차르트의 마지막 세 교향곡과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서, 이들 작품은 같은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한데 묶여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op.109, 110 그리고 111의 경우엔 이 점이 형식적 통일성뿐만 아니라 특정한 기본 음악 요소를 공유한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소나타는 이런 종류의 기초 원칙에 의해 상호 관련되어져 있습니다. 7도-1도 음정이나 6도-5도 음정, 장조와 단조, 혹은 경과음으로서 결합된 경우나, 마지막으로 주제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각 페달 포인트의 형식으로 반복되는 음에 의해서 입니다. 게다가 이 주제의 대부분은 그 음계의 첫 여섯 음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3도 음정이나 여섯 음 위로 펼쳐진 형태로 어떻게 듣는 이에게 반복만 계속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동기적으로 연관된 몇 개의 작품을 쓸 수 있을까요? 이는 공통되는 소재를 충분히 숨김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예컨대 리스트의 교향시에서는 공통 요소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전체 주제의 음들은 분명히 똑같이 남아 있습니다. 음악적 성격은 변할지라도 말입니다.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동기 연결은 좀 더 직접적인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들 동기의 조각들은 극도로 다채로운 결합과 변형 속에서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습니다.
슈베르트의 c단조 소나타는 신기할 정도로 간결한 울림을 지닙니다. 이 점은 몇몇 사람들이 이 작품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이 때문에 이 곡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곡은 슈베르트가 쓴 것 가운데 베토벤과 가장 많이 비교된 소나타 중 하나일 겁니다. 굳은 결의의 성격을 지닌 c단조라는 조성, 안단테 대신에 느린 악장에 온 A플랫 장조의 아다지오, 그리고 소나타 형식의 요소를 지닌 론도-피날레, 이 모든 것은 전형적인 베토벤의 특징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베토벤은 c단조로 된 일련의 중요한 작품을 썼지만 모차르트는 c단조 소나타와 c단조 피아노 협주곡으로 베토벤을 앞질렀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이든이 c단조 소나타의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베토벤의 op.111 작품 이후로 또 다른 c단조 소나타를 쓰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젊은 작곡가 입장에서는 전례 없는 대담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심지어 베토벤의 열렬한 찬양자들조차도 그의 op.111이 지닌 독특하고 궁극적인 중요성을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슈베르트의 c단조 소나타는 오히려 초기나 중기의 베토벤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로서, 소나타의 첫머리와 베토벤의 c단조 변주곡의 주제 사이의 유사성이 종종 지적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 두 주제의 유사성은 이들을 갈라놓는 특징들보다는 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베토벤은 주제의 처음 몇 마디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이 기대감은 단축 기술 덕분에 이어지는 마디들에서 충분히 만족됩니다. 슈베르트도 첫머리 주제에서 비슷한 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단지 여섯번 째 마디에서 그 기대를 실망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계속됩니다. 기대와 실망으로 이어지는 일 없이 베토벤의 주제와 관련될 때 슈베르트의 주제는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악상이 슈베르트만의 방식으로 다뤄지는 후반부 발전에서는 이 주제는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단축이 정말 계속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아니면 그 실패가 악장 전체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 하는 것입니다. 그 악장의 연속되는 과정은 단지 그 도입부에 의해 전달된 절망감을 확인합니다. 그 테마들의 구조는 소급해서 정당화되어집니다. 성격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영웅적인 장엄함보다 갑작스런 공황의 표현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되고 탈출구를 헛되이 찾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슈베르트에 필적하는 공포를 전달하는 '비창'에서 단축이 가져오는 귀결을 결코 회피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극심한 혼란의 순간에도 베토벤은 질서의 위안감을 제공합니다. 슈베르트는 우리에게서 이 확신을 앗아갑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일어나는 것은 가끔 붕괴 직전까지 가는 음악 형식만큼이나 뻔할 정도로 이상해 보입니다.
1악장의 돌연한 공포는 피날레에서 더욱 강렬해집니다. 1악장이 춤이 곁들여진 의식이나 악마적인 심리 사냥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건 아니건 그것의 휴식은 단지 겉으로 드러날 뿐인 절망적인 억압의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악장 중간에 등장하는 B장조 주제는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이고 막연하며 성취할 수 없는 듯이 보입니다. 특히 이 특징은 ...그 악구의 막연함을 표현합니다. 그것은 물처럼 손 사이로 흘러버립니다. 반음으로 인접한 조성에 대한 슈베르트의 유명한 선호는 이 악장에서 특히 대담하게 표현되었습니다.
C장조 작품에서 두 번째 주제 그룹이 c샤프 단조와 B장조라는 사실은 전례가 없습니다. 심지어 아다지오 악장의 엄숙한 고요함에도 앞뒤 악장이 지닌 모종의 흥분이 베어 있습니다. 이 악장의 에피소드들은 이 작품을 이루는 음의 기초를 열에 들뜬 듯이, 그리고 반음계적으로 뒤흔듭니다. 베이스 성부의 피치카토 반주가 딸린 형태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이 주제는, 1828년작인 현악5중주의 음향 세계가 마지막 세 소나타에 얼마나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코다는 반음계 음정들을 탐구하는 데서 위대한 통찰력을 드러냅니다. 슈베르트는 이 아다지오에서 새로운 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 악장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남게 했습니다.
DVD 5 <소나타 A장조, D959>
슈베르트는 음악에서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c단조 소나타나 B플랫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슈베르트가 죽기 전에 썼던 웅대한 A장조 소나타의 두 번째 악장에서 이 음악적 열정의 가장 놀라운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베토벤의 초기 론도에서처럼 듣는 이에게 퍼부어지는 폭풍우나 우박, 분노의 표출은 아닙니다. 슈베르트의 경우엔 그것은 짙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이 아니고 자각하고 있는 의식입니다. 공포에 대한 환상은 우리를 광기 바로 직전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 환상들은 화가 고야가 슈베르트와 같은 해에 죽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음악은 여기서 혼란을 주지는 않지만 안단테의 중간부에서 기능 화성이 허용하는 범위까지는 외관상으로 혼란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혼란은 쇤베르크가 쓴 피아노 소품 op.11의 세 번째 곡 이전에는 다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슈베르트가 쓴 A장조 소나타의 첫 번째 두 악장은 너무나 기괴하고 자유분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적 분석의 세계를 잠시 탐험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이 소나타는 베토벤과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이 소나타의 전 악장이 같은 기초 악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방랑자 환상곡'에서도 각 악장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3개의 소나타에서 이 연결고리는 덜 분명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더 논리적이고 필연적입니다. 베토벤의 경우에는 모든 악장의 주제가 같은 성격을 보여줍니다. 반면 '방랑자 환상곡'에서는 부 주제 그룹이 주 주제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다루어집니다. 소나타나 교향곡은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각 악장은 서로 바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걸작은 음악 소재만으로도 이러한 통일성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A장조 소나타에서 주제부 주변에 F샤프-E 혹은 F-E 아니면 G샤프-A 등의 음이 서로 인접해 한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음이 반대로 배열된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또는...제가 첫 악장의 시작 부분을 연주해 보겠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E-F샤프 혹은 F샤프-E가 세 번 등장합니다. 이 연주의 마지막에는 A-G샤프가 나옵니다.
이제 2주제가 재현부에서 a단조로 등장하는 대목을 연주하겠습니다. 이 주제에서 멜로디 라인은 맨 처음에 두 개의 2도 음정을 보여줍니다. A-G샤프와 F샤프-E, 나중에 다시 F샤프-E가 나옵니다. 반면 중간 성부는 오직 A-G샤프만 연주합니다. 단지 그 테마들에만 이 똑같은몇 개의 음들이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전위형에서도 볼 수 있고 무심코 흐트려 놓은 듯한 경과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첫머리 주제를 잇는 악상에서는 앞서 말한 2도 음정 두 개가 함께 등장합니다. G샤프-A와 E-F 음정 말이지요. 두 번째 주제 그룹의 도입부 소절은 이 두 개의 기본 동기 없이는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제가 다시 연주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이 음정들을 강조하면서 이 소나타의 여러 대목에서, 제가 보기에 슈베르트는 흥미로운 방법들을 처음으로 구사합니다. 두 개의 2도 음정을 결합함으로써 모순된 상황을 조화롭게 만듭니다. 마치 두 조성이 한번에 울리는 듯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1악장 중 한소절을 연주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명쾌함이 드러나는 전개부의 또 다른 소절도 연주해드리겠습니다. 마치 겹쳐진 것처럼 들리지요. 우리는 왜 이런 종류의 기술적 세부사항에 감명 받지 않고 단지 관심만 가지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세부사항들을 알 때만 이것을들 들을 수 있다고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들 세부사항에 관한 지식은 이들의 감정적 영향력을 줄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제가 항상 품어 온 의문, 즉 시시한 작곡가의 작품과 대가의 걸작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가 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척도를 얻습니다. 특히 슈베르트라는 인물은 작곡가란 다른 세계에서 온 착상에 압도당한 수동적인 도구와도 같은 존재라는 오해를 부채질해 왔습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이 사실을 매우 잘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슈베르트와 대화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깃든 마법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재능을 거의 잊게 됩니다."
베토벤의 이름과 이 소나타가 연관있다는 또 다른 설도 있습니다. 이 작품의 훌륭한 피날레는 베토벤 소나타 op.31 no.1 의 론도를 모델로 하고 있었습니다. 찰스 로젠과 에드워드 코헨이 언급해왔듯이 슈베르트는 자신의작품에 베토벤의 기초적인 형식만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다른 개인의 특징들도 또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분위기는 너무나 다르고 그것의 감정적 범위는 훨씬 폭 넓습니다. 그리고 각 부분 사이의 비례 관계가 너무도 과감히 바뀌어 우리가 그 미지의 결과를 거의 추측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만약 이전에 op.31 no.1 론도를 몰랐다면 슈베르트의 론도를 듣는 이는 베토벤의 형식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신, 그 청중은 그것을 슈베르트의 기악작품이 지닌 서정성의 순수한 예로 묘사할 겁니다. 반대로, 베토벤의 론도를 슈베르트의 론도나 그 작곡 시기를 모른 채 듣는 이는 이 악장을 베토벤이 쓴 것 가운데 가장 슈베르트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1828년에 슈베르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은 채 베토벤에게 충분히 배웠음이 틀립없습니다.
DVD 5 <소나타 B♭장조, D960>
B플랫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완성되었습니다.
1828년 슈베르트는 그의 마지막 세 소나타뿐 아니라 현악6중주, 피아노2중주를 위한 f단조 환상곡, 백조의 노래, E플랫장조의 미사곡, 또한 유작으로 출판된 '세 개의 소품'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는 C장조 교향곡을 개정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주요 작품들만입니다.
이 엄청난 작업량은 이미 그의 연약한 체력을 악화시켰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적어도 B플랫장조 소나타의 첫 번째 두 악장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두 눈을 뜬 채 작별인사를 고하는 듯이 들립니다. 그렇더라도 이미 장티푸스로 인해 열에 시달리고 있던 슈베르트가 자신이 너무 일찍 죽는다고 생각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죽음과 오랫동안 친숙해왔습니다.
그의 후기 형식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B플랫장조 소나타가 다른 작곡가들의 후기 작품들을 연상시킨다면 이것은 거의 확실한 우연입니다.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들로 B플랫 4중주 op.130의 일부분으로 작곡되었으며, 그리고 '대푸가'를 대체하는 론도피날레는 슈베르트의 B플랫장조 소나타와 닮아있습니다. 두 악장 모두 이질적인 조성으로 시작하는 듯 보입니다. 두 악장은 우리를 현실로 되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역시 B플랫장조로 되어 있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은 평온함과 일종의 체념 그리고 노래하는 듯한 성격으로 슈베르트를 예견케 합니다. 슈베르트는 B플랫장조부터 b단조라는 먼 조성에 이르기까지 조옮김하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전개부의 시작에서 그랫듯이 B플랫장조 소나타 도입부 악장에서 슈베르트는 매우 다른 종류의 장엄한 조화의 계획을 성취합니다. 그는 전개부가 끝나기 직전에 주 주제를 기본 조성인 B플랫장조로 등장시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먼 d단조의 세계에 속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도입부 테마가 몇 줄을 그것의 기본 형태로 나중에 되돌아 갈 때 우리의 관점은 완벽하게 변하게 됩니다. 그 테마는 다시 찬송가 같은 고상함으로 매우 가깝게 다가옵니다. 이 주제를 이해하는 것은 이 악장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작곡가 디터 슈네벨과는 달리 저는 이 트릴을 파괴적인 외부 물체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우구스트 할름과 달리 저는 그것을 주제의 고정적인 성격과 비교해 이동 축제일로 보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트릴이 주제의 일부이자 주제와 동등한 것으로 3차원적인 깊이를 지녔다고 봅니다. 나머지 부분에서 음은 무한을 향해 사라집니다.이는 연속성을 방해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음악과 침묵 사이의 관계를 확립합니다.
엄숙한 슬픔을 보여주는 개시부에서 트릴을 흐리는 단조 조성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네 번째 마디와 다음 마디들에서 G-F음정의 어두운 반영입니다. 1828년에 작곡된 세 개의 소나타 모두 그것들의 주요 동기로서 장6도음정으로서(연주), 단8도음정으로서(연주), 또는 세 음표로 된 보조음으로서 이 음정을 공유합니다. B플랫장조 소나타에서 베이스성부의 F-G플랫-F 음정은 전 제시부를 지배합니다. 그 1주제는 G플랫장조로 바로 다시~, 첫번 째 2주제 그룹은~, 전개부는 c샤프단조에서 F샤프의 5도 음정으로 시작합니다.
두번 째 악장 역시 c샤프단조입니다. 이것은 피아노를 위한 모든 애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스케르쵸는 유사하게 변동됩니다. C샤프와 F샤프는 D플랫과 G플랫장조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 음정은 호른에서의 강세처럼 론도 전체에 걸쳐 코믹하게 강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G플랫은 여기서 단지 보조음으로서만 중요합니다. 단6도음정은 마침내 우리가 마지막 스트레타에 도달하기도 전에 극복됩니다. 그 소품은 즐겁고 대부분 태평스런 음표로 끝을 맺습니다. 저는 이 악장이 유머와 쾌활한 힘보다는 연약함으로 차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악장은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그 후 그가 죽기 전에 '반석 위의 목자'라는 노래를 썼습니다. 이 곡의 양식화된 우아함은 표현주의자 슈베르트를 암시하는 그 어떤 것도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릴파르처가 슈베르트를 위해 쓴 묘비명 "음악은 여기 풍부한 업적과 더불어 훨씬 더 큰 희망을 얻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슈베르트의 지칠 줄 모르는 음악적 상상력은 많은 놀라움을 감추게 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가 그가 B플랫장조 소나타보다 더욱 아름다운 어떤 것을 작곡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미결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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