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과학전쟁의 논쟁점에 대한 분석적, 비판적 평가
4-1. 들어가는 말 ― 세 가지 문제
과학전쟁의 논쟁점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세 가지 정도 간략히 언급할 것이 있다. 첫 번째는 필자 자신이 이 논쟁에 대해 엄격한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과학기술사를 전공 하고 있으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과 함께 과학학(Science Studies)의 일부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 문적인 과학사회학자는 아니지만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과학사를 공부한 사람으로 당시 과학사학에 큰 영향을 미치던 SSK 과학사회학의 주장이나 개념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고, 이를 필자의 역사적 연구에 간접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필자는 필자가 재직하는 토론토대학 과학기술사철학과에서 주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 학생들에게 과학사회학의 기초적인 얘기들을 편견 없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해 긴 논문 ("A Historian Confronts Constructivism: The History of Science and Social Constructivism in the 1980s")을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필자가 SSK 과학사회학의 모든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는 SSK 과학사회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반실재론, 극단적인 상대주의, 본질주의(essentialism ― 예를 들어 현대과학에서 남성적인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페미니스트 과학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처럼 과학의 근본에 변치 않는 어떤 본질이 있다는 생각), 과학을 단지 상징, 텍스트, 또는 심벌로만 이해하는 극단적 인 기호학, 문학비평, 문화인류학의 접근방법에 대해서는 무척 비판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분석에 관련된 필자 의 입장이 완벽하게 "객관적"일 순 없어도 과학전쟁에서의 다양한 논쟁점을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정도의 제3자로서의 시각 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제는 과학전쟁을 그것의 적절한 역사적 배경 속에 위 치 지우는 문제이다. 즉 SSK 과학사회학에 대한 몇몇 과학자들의 대응이 우연히 199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1984년에 출판된 피커링의 {쿼크의 구성}에 대해 8년이 나 무심했던 와인버그가 갑자기 이를 자신의 1993년 저서인 {최종 이론의 꿈}에서 강력하게 비판을 한데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라투어를 비롯한 과학사학자들은 "별들의 전쟁"(Star Wars, SDI) 계획이 무산되고 냉전체계가 무너진 1990년대 초엽부터 소위 과학에 대한 냉전 특수(特需)가 사라졌고, 과학에 대한 사회 의 대접이 예전처럼 따듯하지만은 않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과학자들이 과학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에 훨씬 예민해지 고 공격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소칼은 자신의 동기가 과학을 방어하는 것이었다기보다는 맑스주의를 상대주의 과학관에서 보호하는 것이었다고 주장 하고 있다), 루이스 월퍼트, 와인버그, 그로스와 레빗 모두 상대주 의와 SSK 과학사회학이 과학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지라도 일 반 대중에게, 학생들에게, 과학정책을 수행하는 정치인, 국회의원 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와인버그의 경우 1980년대를 통해서 110억 불이 소요되는 엄청난 규모의 입자가속기 초전도수퍼콜라이더(Superconducting Supercollider, SSC)의 건설의 가장 강력한 주창자였고, 지난 30년 간 강력한 입자가속기의 건설이 미국과 소련의 냉전의 한 형태로 지원되고 건설되었다는 역사학자나 사회학자의 주장에 매우 민감했다.(주35) 그의 {최종이론의 꿈}이 출판된 1993년 미국 의회는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전도 수퍼콜라이더의 지원 을 철회했고, 이는 냉전시기동안 무제한적으로 지원되던 거대과학 이 과거에 누리던 특권을 잃어버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과학전쟁의 여러 논객들이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공평하고 학자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월퍼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SSK 과학사회학자들을 "혐오한다"고 했고 이들을 "과학의 진짜 적"으로 규정했다. 그로스와 레빗이 비판자들 을 "강단좌익"으로 규정한 것도 학문적인 이론과 성과를 "좌익의 음모"의 수준으로 보는 수준 낮은 차원의 비판이었다. SSK 과학사 회학자들이 소칼의 날조에 속아 넘어 간 "소샬텍스트"와 앤드류 로스 를 수준 낮은 학술지와 학자로 평가절하한 것도 정당하지 못한 태 도였다. 필자는 로스의 {이상한 날씨}의 몇 개의 장(chapter)이 ―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부분과 컴퓨터 해커에 대한 부분 ― 현대사 회 속의 과학에 대한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분석이라고 (그가 이런 문제에 대한 자신의 윤리적 입장을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간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SSK 과학사회학의 정당한 학문적 성과와 학문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은 극단 적인 주장들을 같은 평면에 놓고 동시에 비판함으로써 현대사회의 과학을 객관적, 학문적, 비판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모든 성과를 말 도 안되는 난센스로 간주하는 것은 과학전쟁에 있어서 가장 정당하지 못했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필자가 분석한 세 가지 쟁점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4-2. 첫 번째 쟁점: 과학과 사회 문화
과학전쟁에서 양 집단의 의견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던 첫 번 째 문제는 사회나 문화가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문제 이다. 과학자 사회도 사람의 집단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독특한 규범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로버트 머튼 (Robert Merton)과 같은 과학사회학자는 1930-40년대에 이미 과학 자사회의 규범을 보편주의, 공평주의, 집합주의, 조직된 회의주의 로 규정하면서, 과학자 사회에서의 권위와 위계는 철저히 누가 더 좋은 연구를 더 많이 출판했는가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이외에도 머튼은 과학과 민주주의의 상보적 관계처럼 과학과 사회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튼은 사회가 과학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 결과는 오류를 만들뿐이라고 강조했다. 지식사회학자 칼 만하임도 사회는 사회 과학의 내용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자연과학의 내용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강조했다.(주36)
앞에서 언급했듯이 스트롱프로그램, SSK 과학사회학은 머튼의 과학사회학,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을 비판하고 사회 문화가 과학의 내 용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출범했다. 사회의 영향은 꼭 오류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출발점이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엽 통계학자들 사이에선 변환 상수(coefficients of variation)를 계산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한 도날드 맥캔지의 초기 연구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맥캔지는 당 시 통계학자인 피어슨과 율이 이 상수를 계산하는 서로 다른 방법 을 각각 제시했고 논쟁 끝에 피어슨의 방법이 율의 방법을 누르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음을 보인 뒤, 그 이유를 피어슨의 방법이 연속적인 변수를 잘 분석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 방법이 당시 "우생학"(eugenics)의 프로그램을 뒷받침하는데 사용될 수 있었고 이러한 특성이 우생학의 열열한 지지자인 피어슨과 그의 제자 로 하여금 율의 방법을 배격하게 했던 이유였음을 주장했다. 비슷한 예로, 독일 나찌 물리학자 조단(P. Jordan)에 대한 연구에서 노 턴 와이즈는 나찌즘에 대한 조단의 믿음이 조단의 양자 물리학의 "변환이론"이라는 중요한 업적을 낳았던 요소 중 하나였음을 강조하기도 했다.(주37)
맥캔지와 와이즈의 연구 이외에도 많이 언급되는 연구로 폴 포먼 (Paul Forman)이라는 과학사학자의 연구가 있다.(주38) 포먼은 비 인과적인 양자물리학이 정치 사회적으로 몹시 불안정한 바이마르 공화정에서 등장했다는 점에 착안해서, 당시 물리학자들이 기계론 적인 세계관을 비판하던 인문학자들의 공격에 둘러싸여 있었고 이 들은 이런 공격을 벗어나고 물리학의 유용성을 제시하기 위해 물리학이 뉴턴 식의 기계론과 거리가 있음을 강조했고 이런 강조가 물리학자들로 하여금 물리학의 기본적 법칙중 하나인 고전물리학의 인과율(causality)을 버리고 비인과적인 양자물리학을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끌어안게 했다고 주장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고체물리학 과 양자 전자학(quantum electronics)의 출현에 대한 또 다른 연구 에서 포먼은 군부가 고체물리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한 것이 고체물리학을 외형적으로 키웠고, 이의 연구 방향 목적을 결정했을 뿐 만 아니라, 과학자들로 하여금 쉽게 눈에 보이고 기술에 응용되는 연 구로 더 많은 관심을 돌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군부에 의해 무제한 적으로 지원을 받는 이러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고체 물리학자들은 근본적인 질문과 연구보다는 테크닉과 기술에의 응용이란 방향으로 고체 물리학을 발전시켜 갔다는 것이다. 포먼의 두 번째 연구는 산드라 하딩과 같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에 의해 2차 대전 이후의 물리학이 군사적, 파괴적이고 남성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원용되었고 하딩의 이러한 주장은 와인버그, 그로스와 레빗, 소칼의 공격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사회 문화가 과학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은 과학사회학 내부에서도 제기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 브루노 라투어도 이러한 스트롱 프로그램의 주장에 대한 비판자중 한 명이다. 라투어는 사회가 과학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 사회와 과학의 유사성, 공통점을 찾아 ― 예를 들어 사회의 남성성의 이데올로기가 공격적이고 현대과학의 실험의 방법이 공격적 이라는 식의 ― 이 공통점을 매개로 과학이 사회의 영향을 받았음 을 강조하는데 이는, 라투어에 따르면, 부질없는 시도라는 것이다. 라투어는 이 과정에서 연구자의 주관과 해석이 개입할 소지가 많음 을 지적한다. 위의 예에서도 남성성을 공격적이고 여성성을 평화적으로 보는 것은 극히 주관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스트롱프로그램의 시도가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왜 인식론적으로, 물질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 라투어의 지적이다. 라투어는 과학사회학이 "사회가 어떻게 과학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서 "과학이 어떻게 사회를 만드는가" 또는 "과학과 사회가 어떻게 동시에 형성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함을 역설했다. 1980년대를 통해 라투어는 소위 "사회구성주의"와 결별하고 프랑스 의 미셸 칼롱(Michel Callon)등과 함께 "행위자 연결망 이 론"(Actor-Network Theory)라는 새로운 과학사회학의 프로그램을 발족시켰다.(주39)
과학전쟁에서 SSK 과학사회학을 비판했던 과학자들도 과학자의 과학활동이 사회적 활동이고, 이는 제반 사회적 영향 하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이 비판한 것은 "과학의 내용, 진리"가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이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어렵게 "발견"하는 것이라면, 또는 과학의 방법이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과학자의 주관, 편견, 믿음을 하나씩 제 거해서 순수하게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라면, 이 과정에 사회 문화적 요소가 중요한 변수로 개입할 수 있다 곤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조금 철학적인 문제로서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이 "자연"에 "존재"하는 무엇을 발견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먼저 지적할 것은 "법칙"과 "실재"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조금 극단적인 비유로 이는 야구공과 야구의 룰이 존재하는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과학의 법칙과 이론은 어디까지 순수한 자연을 대상으로 하 고 있는 가라는 문제이다. 이를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현대 전자기학의 기본인 맥스웰의 방정식은 전류와 이 주변에 자기장의 관계를 그 일부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전류는 언제부터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는가? 전류는 19세기 초엽 볼타가 전지를 발명한 이후 과학자들의 도구(tool)이자 연구의 대 상으로 등장했다. 18세기 동안 전기를 연구한 수많은 과학자에게 전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19세기 전반부를 통해서 과학자들은 전류를 구성하는 실재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했지만 이것이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밝혀내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서 맥스웰을 비롯한 영국의 몇몇 과학자들은 전류라고 부르는 것은 에테르(공간을 메우고 있는 가상적인 실재)의 전자기 장(場)이 만들어낸 하나의 "효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다. 맥스웰의 방정식은 이러한 가상적인 실재인 에테르의 특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방정식의 조합으로부터 "전자기파"라는 새로운 종류의 파동이 존재한다는 결론이 유도되었다. 맥스웰은 살아있는 동안 전자기파를 검출하는데 실패했지만, 이는 영국과 독일의 전통을 결합시킨 독일 과학자 헤르츠에 의해 그의 실험실에서 1888년 처음 만들어지고 검출되었다. 1888년 이후 전자기파는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자 다른 연구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주40)
필자는 전류나 전자기파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임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번개는 자연에 존재하는 전류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이로부터 강력한 전자기파가 발생한 다. 그렇지만 번개를 전류와 전자기파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 한 것은 과학자들이 인공적으로 전류와 전자기파를 만들고 나서이다. 인공과 자연이라는 것은 실험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과학자들의 실천과 기구를 매개로 복잡하게 얽혀서 발전하는 형태를 보인다. (주41) 바로 여기에 과학자들의 실천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만일 과학자들의 실천이 자연에 존재하는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내서 궁극적인 실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점에 서 가능한 이론적, 실험적, 기술적인 제반 요소를 취사선택해서 그 시점에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공적인 자연을 가장 잘 기술하는 이론, 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이 과정에 사회 문화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허셸이 1800년 적외선 을 발견한 이후 독일의 물리학자 리터는 조금은 신비적인 독일 자연철학의 "극성"(polarity) 이론에 근거해서 붉은 색의 밖에 적외선이 있다면 보라색의 밖에는 자외선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결국 눈 에 안 보이는 자외선의 화학반응을 검출함으로써 이 존재를 확인했다. 리터는 허셸이 적외선, 자신이 알고 있던 빛의 다양한 화학반응, 독일의 독특한 자연철학을 결합시킴으로써 스펙트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 사이의 간극은 상당히 좁아짐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과학의 제도, 방법, 목적, 내용의 경계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 가라는 문제이다. 고체물리학에 대한 군부의 한정 없는 지원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고체물리학을 키우는 결정적인 견인차였다. 또 물리학자들은 군부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군사 적, 기술적으로 응용가능성이 높은 연구주제를 선택해서 연구비 신청을 하고, 그 결과도 비밀문서로 취급해서 학술지에 출판하기보다 는 군사기관에 제출하곤 했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의 내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을까? 소칼은 군부의 지원과 고체물리의 내 용, 법칙은 전혀 무관한 것임을 역설한다. 역으로 군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이를 지원했다고 해도 고체물리학의 법칙엔 아무런 차이 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1950년대 고체 물리학자들이 "군 부의 연구비나 대학의 연구비나 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 장하면서 군사연구를 경쟁적으로 받아서 수행했을 때 스스로를 정 당화시키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복잡한 수학으로 표현되어 있는 물리학의 법칙에서 "군사적 이해관계"를 발견하는 것은 허블 망원경으로 관찰한 은하계에서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발견하는 것만 큼이나 의미 없는 시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만일 군사적 지원이 없었다면 고체 물리학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즉 기술적인 응용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론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 만약 미-소의 냉전이 없었고 이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입자물리학은 조금 다른 모습을 띄고 있지는 않을까?(주42)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얻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런 질문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정적인 질문이고,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만드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SSK 과학 사회학자들은 자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런 질문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답을 암암리에, 혹은 때로는 드러내놓고, 선호한다. 군부의 지원과 같은 중요한 외적 변수는 과학이 걸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한 길 중 과학자로 하여금 한 가지를 선호하게 함으로써 과학의 발전을 특정한 각도로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과학의 발전이 자연에 존재하는 절대적 진리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연구비의 지원 과 같은 외적 요인은 이를 촉진시키거나 늦추거나 하는 것이지 이 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와인버그는 조금 극단적으로 외계인이 존재해도 우리와 같은 과학을 가지고 있을 것 이라고 믿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와인버그 가 믿는 과학 발전의 필연성에 모든 과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 라는 것이다. 와인버그의 동료물리학자 펜로스의 다음의 논평은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왜 입자 물리학자들은 거의 보편적으로 대칭(symmetry)이 근 본적이라는 견해를 고집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많은 경우 역사적이고 아마도 또 한편으로는 문화적이라고 믿는다. 역사적인 점은 대칭을 근본적이라고 함으로써 와인버그, 글래쇼, 살람과 다른 물리학자들은 필요한 정합적인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는 약-전기 이론 (electro-weak theory)에 도달하는 값진 루트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이론 ― 대칭을 근본적이라고 보지 않고 단지 피상 적으로만 보는 이론 ― 에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었던 다양한 루트가 존재했음을 알고 있다. 문화적인 점은 대칭이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따라서 자연의 신비에 더 잘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 우리의 차이는 이론의 어떠 한 점이 아름다운 가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와인버그에겐 표준 모델의 대칭적인 측면이 아름다움의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대칭에 대해서 이렇게 느끼지 않음을 고백해야겠다. 어 떤 측면에서 대칭은 단순하고 우아하다기보다는 이론의 지저 분하게 복잡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내겐 표준모델에 결정 되지 않은 열 일곱 개의 변수가 있다는 사실이 대칭에서 나 오는 어떤 아름다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주43)
4.3. 두 번째 쟁점: 과학은 사회 문화적 함의(implications)를 가 지는가?
과학전쟁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제 중 하나는 "카오스 이론이 포 스트모던주의를 지지하는가"라는 문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연 과학의 사회 문화적 함의에 대한 것이었다. "버터플라이 효과"에서 볼 수 있는 카오스 이론의 상호연관성, 비선형성, 무질서 속의 질 서의 추구와 같은 특성이 거대 담론을 해체하고, 분절된 개체간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고, 복잡한 경험을 단순화시키는 것에 반대하 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철학과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리오타드 (Lyotard)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가에 의해 지적되었고 이 후 캐서린 헤일즈에 의해 자세히 분석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차이 는 특히 소칼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소칼은 앤드류 로스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린 이유가 양자중력 과 같은 첨단 과학이론이 해방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을 지지한다는 자신의 날조된 입발림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연 과학과 사회 문화이론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강조했다. 더 나아 가 소칼은 이러한 연관을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론적 근거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사회이론에 대해서도 비판의 메스를 가했다. 그로스와 레빗 역시 자신들의 {고등종교}에서 과학에서 사회 문화 적 함의를 찾으려고 하는 대부분의 시도를 과학에 대한 무지에서 기원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문제를 분석하기에 앞서 과학에서, 아니 자연현상에 대한 해 석에서 사회적 함의를 찾으려했던 시도는 단지 20세기말의 카오스 이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 시기부터 일식이나 월식 같은 천체의 현상은 인간사에 나타나는 어 떤 종류의 변화를 상징한다고 간주되었다. 17세기 기계적 철학은 불경한 무신론과 동일시되었으며, 뉴튼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에 대한 논의는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로 뉴턴과 그의 후계자에 의해 널리 언급되었다. 보일의 실험 과학은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 의 모태가 되었고, 볼테르에게 뉴턴 과학은 프랑스 사회를 계몽시 키고 독단과 싸우는 중요한 무기였다. 19세기 후반 엔트로피가 증 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은 우주의 비관론적인 종말과 신의 존재 를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졌다. 다윈의 생존경쟁은 스펜서의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에 이용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 론은,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대주의 철학을 뒷받침하는 과학 이론으로 자주 언급되었으며,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은 결정론을 파 괴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했다고 얘기되 어지곤 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자연과학의 사회 문화적 함의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소칼이 지적했듯이, 10^-33cm범위에서 작용 하는 양자중력이 인간의 경험이나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이다. 역시 미시 세계에서 적용되는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이 거시세계의 자유의지 와 인과적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도 문제가 많다. 이런 확대해석은 어떤 경우 득보다는 해악의 근원이 되었다. 1930년대 독일 물리학 자들은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상보성을 인간의 의식의 차원, 사 회의 차원까지 확장, 멋대로 해석해서 사람의 의식에는 항상 채워 지지 않은 부분이 있고 이는 위대한 리더(히틀러)의 정신적 통제가 독일 인민에 작용할 과학적 근거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 문제 역시 "과학은 과학이고 사회는 사회다"라는 식으로 간단하게만 결 론지을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확대해석이 가질 수 있는 잠정적인 위험을 염두에 두고 다음 두 가지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먼저 언급할 것은 어떤 사람이 그의 철학, 사회이론에서 자연과 학의 해석에 대해 잘못이나 실수를 범했다고 해서, 그 철학, 사회 이론이 전부 틀렸다고 비난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아인슈타인에 대한 해석이 과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고 그의 모든 철학체계가 전부 엉터리인 양 몰아붙이는 것은 올바 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볼테르가 뉴튼 과학에 무지했다고 사상가로 서의 그를 경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역으로 상보성이론에 입각한 닐스 보어의 원자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너무 단순했다는 사 실에서 그의 상보성 이론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나 비슷하 다. "자연"에 대한 추상적인 과학이 "사회"의 규범이나 윤리, 사람 이 사는 방식에 대해 직접적인 함의를 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약 100여년전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이것이 4차원의 연속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았지만, 우리가 경험하 고 사는 세계는 3차원의 공간과 이것과 무관한 시간의 흐름으로 구 성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이 인간과 사회 에 대해서도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지상주의"의 근원이 된다. 과학으로부터 얻어진 함의는 제한적인 함의로서 받아 들여야지 그것이 과학에서 얻어졌다고 무조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과학은 과학이고 사회는 사회이기 때문에 무조건 잘못되었다 던지 하는 것은 잘못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것은 소칼이나 그로스와 레빗은 주로 인문학 자, 특히 포스트모던 인문학자들이 과학의 의미를 자신들의 철학, 사회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왜곡했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음에 반해 불확정성 원리의 철학적 의미를 설파한 하이젠버그나, 상보성 이론의 사회적, 역사적 중요성을 주장했던 닐스 보어, 비평형 상태 의 화학의 철학적, 인식론적, 사회적 의미를 대중을 상대로 홍보한 프리고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이러한 관대한 태도는 "과 학에 대해선 과학자들이 가장 많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암암 리에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에는 잠정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런 생각을 조금 확장하면 "과학의 사회적 이용, 그 결과, 책임에 대해서도 과학자가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지만 최근 캐서린 칼슨의 흥미로운 연구는 "포스트모던 과학" 이라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생각은 {춤추는 물리}, {물리학이 찾 은 신}과 같이 현대물리학의 이론적 성과를 철학적, 신비적, 동양 적으로 해석했던 1970~80년대 일군의 저서에 바탕하고 있으며, 이 런 신비적 해석의 근원에는 현대 양자물리학의 혁명적인 성격을 그 것의 급진적인 철학적, 사회적 함의를 지적함으로서 보이려 했던 물리학자들의 자서전, 회고록 등이 존재했음을 보이고 있다.(주44) 즉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의 포스트모던 과학이라는 생각과 결정론, 인과론, 주체-객체의 구분을 허물었다고 회자된 양자물리학의 성과 사이에는 명백한 경계선보다는 복잡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4.4. 상대주의와 반성적 사고(reflexivity)가 내포한 문제
과학전쟁을 통해서 논란과 혼동을 가중시킨 이슈 중 하나는 상대주의와 관련된 것이다. 상대주의와 실재론은 종종 동일시되었고, 그 예로 와인버그, 소칼은 SSK 과학사회학자들이 자연에 실재가 존 재하지 않고 따라서 자연에 대한 어떤 설명도 다 참이라고 간주하 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필자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상대주의와 실재론의 혼동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주장이 SSK과학사회학의 몇몇 극단적인 주장을 SSK 과학사회학의 전부, 또 는 대표적인 주장이라고 간주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SK 과학사회학자 가운데 객관적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자연과 학의 진리가 단순히 과학자들 사이의 합의에 불과하며 따라서 현대 과학이나 고대의 신화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라고 주장한 사람 은, 필자가 아는 바로는, 아무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SSK 과 학사회학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주장이 쉽게 제기되고 받아 들여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많은 경우 이들은 말하 고자 했던 것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진리, 법칙, 새로운 존재자 (entity)들이 많은 경우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며 이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합의"가 개입될 수도 있다는 (또 종종 개입 되었다는) 것이다.
라투어의 반실재론은 반대자들의 비판의 표적이었고, 이를 근거 로 많은 사람들이 SSK 사회학자들은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인 외부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유래했다. 라투 어가 {실험실 생활}에서 연구한 예는 사크 연구소의 과학자들에 의 해 이루어진 TRF(thyrotropin releasing factor)라는 호르몬의 발 견이었는데, 이는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생명체에서 만들어지는 유 기물이고 따라서 전체 우주를 통해 극소수의 분량만이 존재하는 물 질이다. 사크 연구소가 이의 극소량을 발견하기까지 돼지 머리 500 톤을 소모했다는 사실은 이의 검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잘 보여 준다. 여기서 라투어가 던진 문제는, 사크연구소의 과학자들이 한 번도 검출된 적이 없었던 TRF라는 물질을 언제, 어떤 방법을 통해 발견했음을 알게 되었고, 왜 다른 과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 들였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라투어는 당시에 사크 연구소의 과학자 들이 다른 그룹의 과학자들과 같은 주제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었음 을 발견했고, 이 두 그룹사이에서 서로의 데이터를 놓고 그 데이터 의 정당성에 대해 논쟁이 있었으며, 이런 과정에서 어느 순간 두 그룹이 어떤 특별한 종류의 데이터가 TRF의 존재를 보여준다고 동 의했음을 알아냈다. 라투어의 분석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과학적 "발견"이라는 것은 종종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어렵게 과학자 사회 속에서 인정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과학에서 진리라고 말하 는 것은 종종 이런 복잡한 사회학적 과정의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을 한 측면에서 보면 "실험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기기의 캘리 브레이션(calibration)에 대한 두 팀의 합의는 TRF라는 호르몬을 존재하게 했다"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라투어는 이를 "TRF가 이 두 그룹의 합의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는 극단적인 구성주의의 명제로 표현했고, 이는 과학자들의 공격 이전에 SSK 과학사회학, 과학철학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 다.(주45)
분명한 것은 반실재론을 신봉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많은 SSK 과학사회학자들이 스스로를 상대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스트롱프로그램의 전통에 서있는 해리 콜린스는 스 스로의 방법론을 "상대주의의 경험 프로그램"(Empirical Program of Relativism)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주46) 이들 상대주의 과학 사회학자들과 대다수 과학자들과의 차이는 아마도 과학자들이 "과 학은 진리이다"는 명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반면, 과학사회학자들 은 이에 대해 매우 유보적인,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역사는 우리에게 한 시대에 과학적 진리라고 생각되던 것이 시대가 바뀌면 서 오류로 판정되고 잊혀지는 예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17세기 과 학혁명 이후에도 데카르트의 역학, 플로지스턴 이론, 뉴튼의 빛의 입자설, 칼로릭 열이론,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힘의 보존 법칙, 에 테르 이론 등 수 많은 과학이론, 법칙이 이후 잘못된 것으로 판명 이 났다. 이러한 예를 보면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있는 이론 중 50 년 뒤에도 살아남을 이론이 무엇일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도 과학자와 SSK 과학사회학자의 입장의 차이는 "과학은 진리이다" 는 명제를 "과학은 한 시기에 자연현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 득력 있는 설명이다"로 바꾼다면 상당히 좁혀질 것이다.
이 마지막 명제에 동의할 지라도 더 미묘한 차이는 계속 존재한 다. 와인버그와 같은 과학자는 갈릴레오에서 뉴튼의 역학, 맥스웰 의 장론,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양자역학, 양자장론, QED (quantum electrodynamics)를 거쳐 입자물리학의 "표준모델"에 이르는 물리 학의 발전이 단순히 그 각각의 시기에 가능한 최상의 설명만이 아 니라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대한 발전 의 중간단계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와인버그에 의하면 이 각각의 발전은 궁극적 진리를 향해서 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필연성" ― 외계인이 과학을 발전시켜도 같은 순서를 밟을 것이라 는 ― 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상대론자들은 이런 필연성을 상정하는 것이 무의미함 을 주장한다. 과학의 발전은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지만 이 이해는 과학자인 인간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의 활동은 기존의 과학이라는 토양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 의해 조건 지워지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생각이 하나일수 없듯 이 상대론자들은 어떤 시기에 발전 가능한 과학이 하나 이상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1920년대를 통해 양자물리학은 파동함수를 확 률로 보고 미시세계의 불확정성과 미시존재의 상보성을 주장하는 소위 코펜하겐 학파와 허수가 개입된 파동함수를 미시존재의 실재 로 보고 비결정론을 배격하는 드브로이-슈레딩어-아인슈타인 연합 의 두 학파가 있었고, 이들은 화해하기 힘든 두 양자물리 체계를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상대론자들은 이 두 가지 발전가능 성이 비슷한 상태로 존재했고 이중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데는 이론의 설득력보다는 다른 외부적인 요소가 작용했을 여지가 있음을 상정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상대주 의자들은 만일 어떤 특별한 상황하에서 코펜하겐 해석이 아닌 드브 로이-슈레딩어-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면, 이 이 론은 코펜하겐 이론만큼이나 여러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시점에서 과학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다양하게 열려있음은 과학의 "해석적 유연성"(interpretative flexibility)이라고 명명되었다.
그렇지만 상대주의 SSK 과학사회학자들과 객관주의에 바탕한 과 학자들 사이에 공통점도 있다. 과학자들이 "우리는 과학을 통해 자 연의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듯이 SSK 과학사회학자들도 "우리는 과 학사회학의 분석을 통해 과학이 '해석적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얘기해서 상대주의 자들은 "과학은 상대적이다"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상대 주의의 인식론적인 근거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과학자들의 객관주 의에 맞먹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주의의 프 로그램이 자연과학적 방법과 비슷한 사회과학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해리 콜린스의 "상대주의 경험 프로그램"은 (1) 과학에서 (주로 논쟁의 해부를 통해) 해석적 유연성을 찾아내고, (2) 이 해석적 유연성이 종료(closure)되는 메 커니즘을 발견하고, (3) 이 메커니즘을 사회적 배경과 연관시킨다는 방법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각각의 방법은 인과적 고리로 연결 되어 있고, 콜린스와 같은 상대주의자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과학의 상대성을 "확실히" 밝힐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1976 년 데이빗 블루어가 "스트롱프로그램"을 처음 주창했을 때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과학사회학의 주장도 역시 사회적으로 구 성되었다는 점을 항상 고려해야한다"는 "반성 명제" (reflexivity thesis)를 스트롱프로그램의 일부로 포함시켰었는데, 이 반성명제 는 그간 스트롱프로그램의 네 가지 명제 중 가장 덜 심각하게 받아 들여졌고 가장 덜 논의되었었다.
자신의 이론을 분석하는 대상의 이론에 비해 더 엄밀하고, 확실 하며, "과학적이다"라고 가정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약자나 억압받 는 자가 강자나 지배자를 분석, 비판할 때 종종 사용되는 방법이 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거대하고 강력한 자본주의의 체제를 비판 할 때도 자신의 이론은 과학이고 자본주의 학자의 이론은 이데올로 기라는 주장을 폈고, 페미니스트가 가부장제를 비판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억압받는 여성이 가부장제의 모순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주47) 과학사회학이라는 작은 지적 분야가 인 식론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대과학이라 는 거대한 학문을 비판할 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은 자신들의 인식 이 확실하고, 객관적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객관성이 그들이 허구라고 오래 전에 비판한 과학의 객관성과 무척 닮아있었 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그들의 과학 비판 자체가 과학이 객관적 이며 확실한 것임을 지적하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 상대주의 과학 비판의 문제는, 필자의 생각으론, 그것의 인식론적인 급진성, 무정 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은 곳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형태의 보수적인, 과학주의적인 성격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