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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Statue of Zeus at Olympia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북쪽의 엘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신전에 세계 최고의 조각가라고 하는 페이디아스가 8년여의 작업 끝에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후 사람들 사이에선 제우스의 신성함과 위엄을 완벽하게 그려냈다는 평이 수천 년 동안 회자되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비바람과 천둥과 벼락을 만드는 신이라고 믿었다. 벼락은 하늘에서 내린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기에 제우스의 노여움을 피하려고 도시마다 제우스를 모시는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그리스의 엘리스 올림피아(올림피아는 도시가 아니고 신전과 경기장이 세워진 장소임)에 안치된 제우스 신상이었다. 이 신상은 그리스의 천재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기원전 457년경부터 8년여에 걸쳐 만든 것이다. 올림픽은 종교 · 예술 · 스포츠의 혼합이었다. 도시국가마다 각각의 신을 섬기던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이 개최될 때면 각지에서 몰려들어 신전을 참배하고 제사를 지냈고 예술문화행사도 함께 치렀다. 올림픽이 열리기 3개월 전에는 그리스 전역에 휴전이 선포되었고 이를 어긴 도시국가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도 올림픽은 열렸다. 올림픽 기간에는 어떤 논쟁이나 충돌도 금지되었고 재판도 중지되었으며 사형도 연기되었다. 올림픽은 7~9월에 5일 동안 개최되었다. 첫째 날에 근대 올림픽처럼 개막식을 거행했고 이튿날부터 나흘째 되는 날까지 모든 경기를 마쳤으며 마지막 날에는 우승한 선수들을 모아 시상식을 한 다음 축제를 열었다. 선수들은 나체로 경기를 가졌으며 신발도 신지 않았다. 선수들이 나체로 경기하는 관행은 매우 일찍부터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720년 올림픽 때 메가라의 오립포스가 알몸으로 달리기에 출전해 우승했는데 심판관들이 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학자들은 선수들이 알몸으로 출전하는 관행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우승에 대한 보상은 경기마다 달랐다. 올림피아와 델피에서 열린 경기의 승자에게는 제우스신전 근처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 가지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주었지만 이스트미아에서는 솔잎관, 네미아에서는 파슬리관을 주었다. 초기에는 우승자들에게 별도의 상금을 주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특전이 있었다. 우승자의 도시에서는 기념 조각상을 세워주었고 어느 도시에서는 성벽에 구멍을 뚫은 다음 그곳을 통과해 도시로 들어오는 우승자에게 환호하기도 했다. 공적인 행사 때 우승자를 최상석에 앉히기도 했고 세금을 면제해주거나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젊은이들이 열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상금을 주는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 벼락을 내리는 제우스 올림픽 첫날 선수 · 심판 등 모든 참가자들은 제우스신전의 제우스 신상 앞에서 공정한 경기를 하겠다고 선서를 했다. 그들은 선서를 어기고 부정을 저지르면 제우스가 벼락을 내린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에겐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제우스 신상은 신전이 건설된 후 40년이 지나서야 페이디아스에게 주문되었다. 페이디아스는 기원전 447년 파르테논신전의 아테나 여신상을 크리세레판티노스 방식(인체는 상아로 만들고 옷은 금으로 입힌 인체 조각의 한 유형)으로 제작한 조각가이다. 올림피아는 파르테논신전의 아테나 여신상과 비견되는 조각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신상을 조각하는데 필요한 모든 예산을 무제한적으로 지원하겠지만 제작 장소와 형태를 아테나 여신상과 다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제우스 신상을 신전 안에서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제우스신전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신상을 제작할 경우 신전 안에 거상을 안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페이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신상을 완성했는데 파르테논신전의 아테나 여신상과 함께 페이디아스의 2대 걸작으로 꼽힌다. 제우스 신상도 아테나 여신상과 마찬가지로 크리셀레판티노스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13미터나 되는 제우스 신상은 높이 90센티미터, 길이 10미터, 폭이 6.65미터 크기의 받침대 위에 놓인 옥좌에 앉아 있는데 거의 천장에 맞닿을 정도였다. 제우스를 서 있는 형태로 조각했다면 거의 18미터에 달했을 것이다. 페이디아스는 제우스의 신성한 위엄과 너그러움을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포사니아스는 재료 사용방법도 서술했다. 딱딱한 상아를 연하게 만들고 원하는 형태로 성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불 · 맥주 · 식초 등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페이디아스 시대에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법이다. 신발 · 옷 · 오른손 · 왕관의 일부를 황금으로 장식했다고도 한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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