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acobite rising of 1745 ("The Year of Charles")
was the attempt by Charles Edward Stuart
to regain the British throne for the exiled House of Stuart.
The rising occurred during the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when most of the British Army was
on the European continent.
Charles Edward Stuart, commonly known as "Bonnie Prince Charlie" or "the Young Pretender",
sailed to Scotland and raised the Jacobite standard at Glenfinnan in the Scottish Highlands,
where he was supported by a gathering of Highland clansmen.
Continent and the Jacobite army retreated north to Inverness where the last battle on Scottish soil
took place on a nearby moor at Culloden.
The Battle of Culloden ended with the final defeat of the Jacobite cause,
and with Charles Edward Stuart fleeing with a price on his head, before finally sailing to France.
1688년 영국 명예혁명으로 왕위에서 축출된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라틴어로 Jacobus) 2세 및 그 후손의 추종자.
명예혁명 후 60년 동안 망명한 스튜어트 왕가의 왕정복고를 꾀하는 시도가 5차례 있었다.
재커바이트 운동은 1688~1745년에 정치적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및 아일랜드에서 강력했는데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의 지지기반은 주로 왕조적인 것이었으며 아일랜드에서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했다.
가톨릭 세력과 국교회를 신봉하던 토리당은 당연히 재커바이트였다.
토리당에 속한 국교도들은 1688~89년의 사건(명예혁명)에 대한 정통성에 회의를 품고 있었으며,
한편으로 가톨릭 세력은 제임스 2세와 '늙은 왕위요구자' 제임스 에드워드,
그리고 '젊은 왕위요구자' 찰스 에드워드에게 더욱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45년(1745) 반란'으로 일컬어지는 5번째 시도는 가장 낭만적인 성격의 반란이었으며 가장 위력적인 봉기였다.
그해에 앞서 마련된 프랑스의 또다른 침공계획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으며 이제 프랑스 측으로부터는
별다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었으나, 젊은 왕자 찰스 에드워드의 매력과 대담함, 그리고 정부군의
부재 (당시 유럽 대륙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음)라는 상황은 좀더 위협적인 봉기를 발생시켰다.
찰스는 수주일 만에 스코틀랜드의 주인이 되었으며 프레스턴팬스 전투(9. 21)의 승리자가 되었다.
잉글랜드에서 반란 기운이 없는 데 대해 매우 실망했지만 찰스는 12월 4일 남쪽으로 잉글랜드 더비까지
진군했으며 스코틀랜드 고지대로 퇴각하기 전 1746년 1월 17일 폴커크 전투에서 한 차례 더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4월 16일 컴벌런드 공작 윌리엄 오거스터스가 인버네스 근처 컬로든 전투에서 재커바이트를
격파함으로써 사태는 끝난다.
80여 명의 반란 가담자가 처형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적당한 끝에 무자비하게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수개월 동안 정부군 수색대에 의해 추적을 받아오던 찰스는 9월 20일 가까스로 유럽으로 탈출했다.
이후 위협적인 정치 세력으로서의 재커바이트 운동은 쇠퇴했으며 다만 감상적 차원에서 존속되었다.
영국 스튜어트 왕가 출신으로 영국 왕위계승권을 주장한 마지막 인물.
정식 이름은 Charles Edward Louis Philip Casimir Stuart.
별칭은 Bonnie Prince Charlie, the Young Pretender, Young Chevalier
1745~46년 재커바이트 반란을 주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가톨릭교도로 영국 왕위에서 축출당해 국외로 망명한 제임스 2세(1685~88 재위)였으며
부친인 늙은 왕위요구자 제임스 에드워드는 망명생활중 제임스 3세로 자처했다.
찰스는 가톨릭식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병법을 배웠다.
1744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48)중 프랑스 함대에 합류했으나
이 함대는 영국 침공을 앞두고 폭풍우로 큰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측으로부터 더이상 원조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독자적으로 왕권회복에 나서기로 작정했다.
1745년 7월 10여 명에 불과한 소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에 상륙한 그는
하일랜드(스코틀랜드 북부 고지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9월 17일에는 약 2,400명의 추종세력을 이끌고 에든버러에 입성했으며
4일 후에는 에든버러 근처 프레스턴팬스에서 존 코프 경이 이끄는 군대를 무찔렀다.
11월초에는 5,500명의 반란군을 이끌고 잉글랜드 국경을 넘어 런던을 향해 진군했으나
사기 저하 등의 원인으로 퇴각하다가 1746년 4월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찰스는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했으나 방탕한 생활로 신뢰를 얻지 못했다.
소박한 서정시와 전설에 '보니 프린스 찰리'로 낭만적으로 그려진 찰스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에 관한 책으로 데이비드 다이치스의<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Charles Edward Stuart〉(197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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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nnie Banks O'Loch Lomond
아름다운 모래톱(백사장) 호수 로우몬드
* loch [lɔk] Lake(스코틀랜드) 호, 호수 단어장 저장 완료
로우몬드 호수의 모래톱은 정녕 아름답다.
호수에는 간조시 약 60개, 만조시에는 약 20개의 섬들이 있다.
A song from a true story from the *Jacobite Uprising of 1745 from a Scottish soldier caught by
the English, who had written a letter to his partner......
Before being caught in Loch Lomond where they used to go and meet up ..
So the song is a story of how after being caught they will never meet there again.
1745년 재커바이트 봉기에서 잉글랜드군에 붙잡힌 어느 스코틀랜드 군인이
그의 연인에게 쓴 편지의 실제 이야기를 노래함
포로가 되기전에 연인과 같이 만나던 로우몬드 호수,...
스코틀랜드 군인이 포로가 된 후 그와 그의 연인이
로우몬드 호수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는 애절한 사연을 노래
사랑하는 연인과 로우몬드 호수변 모래톱을 거닐 수 있는 내일을
지켜내려 했건만.........
작은새 노래하고
야생화 만발하던 날, 그대는 높은 길로~ 나는 낮은 길로......
*영어, 스코틀랜드 고어(古語)의 노랫말 ...
The Bonnie Banks O' Loch Lomond - ...
로우몬드 호수의 아름다운 모래톱(백사장)
1.
By yon bonnie banks an' by yon bonnie braes
저쪽 아름다운 모래톱과 아름다운 산비탈 따라
Whaur the sun shines bright on Loch Lomond
태양은 로우몬드호수 위 밝게 비추네.
Whaur me an' my true love were ever wont to gae
나와 내 참 사랑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
On the bonnie, bonnie banks o' Loch Lomon'.
로우몬드호수의 아름다운, 아름다운 모래톱에서
CHORUS
O ye'll tak' the high road, and Ah'll tak' the low (road)
당신은 고갯길을 , 나는 내리막 길
And Ah'll be in Scotlan' afore ye
내가 먼저 스코틀랜드에 이를 거요
Fir me an' my true love will never meet again
나와 내 진실한 사랑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
On the bonnie, bonnie banks o' Loch Lomon'.
로우몬드호수의 아름다운, 아름다운 모래톱에서
2.
T'was there that we parted in yon shady glen
우리 둘은 그늘진 계곡에서 헤어졌었지.
On the steep, steep sides o' Ben Lomon'
벤 로우몬드의 가파른, 가파른 비탈 위
Whaur in purple hue, the hielan hills we view
자줏빛(색조)속에서 바라본 고원의 언덕들
An' the moon comin' oot in the gloamin'.
그리고 황혼이 지나고 달이 떴었지.
CHORUS
O ye'll tak' the high road, and Ah'll tak' the low (road)
And Ah'll be in Scotlan' afore ye
Fir me an' my true love will never meet again
On the bonnie, bonnie banks o' Loch Lomon'.
3.
The wee birdies sing an' the wild flouers spring
작은 새들 노래하고 야생화 피었지.
An' in sunshine the waters are sleeping
햇빛속에 호수는 고요히 잠들었고
But the broken heart, it kens nae second spring again
하지만, 무너진 가슴에 두번째 봄은 오지 않으리
Tho' the waeful may cease frae their greetin'.
그대 떠난 봄날 비통한 내 가슴 어이 견디랴.
(슬픈 마음 안부도 전할 수 없도다)
*ken [ken] 알고 있다 시야 은신처
*nae [nei] no not
*woeful [wóuf
*frae [frei] from
CHORUS
O ye'll tak' the high road, and Ah'll tak' the low (road)
And Ah'll be in Scotlan' afore ye
Fir me an' my true love will never meet again
On the bonnie, bonnie banks o' Loch 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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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nnie Banks o' Loch Lomond", or simply "Loch Lomond" for short,
is a well-known traditional Scottish song first published in 1841 in Vocal Melodies of Scotland.
The song prominently features Loch Lomond, the largest Scottish loch, located between
the counties of Dunbartonshire and Stirlingshire.
In Scotland, the song is often the final piece of music played during an evening of revelry
(a dance party or dinner, etc.).
revelry [rév
스코틀랜드 전통 민요 "호수 로우몬드(Loch Lomond)"는
던바턴셔주와 스트링셔주 사이에 있는 스코틀랜드 제일 큰 호수,
로우몬드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을 찬양하고
멀리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
스코틀랜드판 아리랑같은~
이 노래는 스코트랜드 사람들이 각종 경기나 음악회 등 모임에서
국가처럼 함께 부르는 노래.
단순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嗣)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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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nnie Banks O' Loch Lomond
There are many theories about the meaning of the song,
most of which are connected to the Jacobite Uprising of 1745.
One interpretation based on the lyrics is
that the song is sung by the lover of a captured Jacobite rebel set to be executed in London
following a show trial.
The heads of the executed rebels were then set upon pikes and exhibited in all of the towns
between London and Edinburgh in a procession along the "high road" (the most important road),
while the relatives of the rebels walked back along the "low road" (the ordinary road travelled by
peasants and commoners).
Another interpretation of the "Low Road" is that it refers to the traditional underground route
taken by the "fairies" or "little people" who were reputed to transport the soul of a dead Scot
who died in a foreign land—in this case, England—back to his homeland to rest in peace.
A related interpretation holds that a professional soldier and a volunteer were captured by the English
in one of the small wars between the countries in the couple of hundred years prior to 1746.
Volunteers could accept parole, a release contingent on the volunteer's refusal to rejoin the fighting,
but regulars could not and so could face execution.
The volunteer would take the high road that linked London and Edinburgh
while the soul of the executed regular would return along the "low road"
and would get back to Scotland first.
"높은 길"과 "낮은 길"은
프린스 찰리(Bonnnie Prince Charlie)의 1745년 봉기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먼저 하나~,
1745년 스코트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왕권을 요구한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보니 프린스 찰리와 함께 싸웠던 스코트랜드 병사 두명이 포로가 되어 카알라일로 압송된다.
그곳에서
한명은 살아서 스코트랜드로 돌아가고
죽게된 나머지 한명이 이 노래를 지은 것이다.
"너"는 살아서 높은 길로 험준한 고지를 넘어 스코트랜드로 ...
"나"는 죽어서 낮은 길로 요정(페어리)들에 의해 지하 세계로 영혼은 먼저 스코트랜드로 가는 것이다.
죽음과 동시에 영혼은 고향으로 돌아 가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병사의 애절한 심금을 노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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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고 끔찍한 다른 이야기.
왕권 탈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보니 프린스 찰리는 프랑스로 도주하고,
그를 지지했던 스코트랜드 주모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굴비처럼 엮여 런던으로 호송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들의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가족들과 연인들도 스코트랜드에서 런던으로 모여들고,
이들 반란 주모자들은 사형선고를 받아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그들의 목은 긴 막대기에 꽃혀
런던에서 시작하여 도시마다 전시되면서 스코트랜드의 글라스고우까지 옮겨진다.
그래서 이들은 잘 닦인 길, 높은 길을 따라 도시를 전전하며 글라스고우로 가고,
이들의 재판과 죽음을 지켜본 가족, 친지, 연인들은 시골 마을들을 전전하면서
낮은 길을 따라 스코트랜드로 돌아가는 것이다.
"높은 길을 가는 너"는 목잘린 주모자들이고,
"낮은 길을 가는 나"는 가슴에 슬픔과 고통과 한을 품고
스코트랜드로 돌아가는 연인,유가족.친지들이다.
Loch Lomond
스코틀랜드 산악지방 남쪽 가장자리를 가로질러 놓여 있다.
주위 경관은
북쪽의 ~높이가 900m 이상되는 암석 투성이의 빙하산맥으로부터
남쪽의 ~보다 완만하고 숲이 우거진 구릉과 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호수 길이는 약 39㎞로, 남쪽에서는 3각형 꼴로 폭이 넓어진다.
비록 수면은 해발 7m 정도에 불과하나 빙하작용에 의해 팬 호수 바닥은 깊이가 189m에 이른다.
짧은 레벤 강에 의해 이 호수물은 덤바턴에 있는 클라이드 하구로 흘러 들어간다
첫댓글 로몬드호수 . 잉글랜드에서 가장큰 담수호로 소개되어 있네요.
찾아보았습니다.
브리톤의 가장 큰 淡水湖(a freshwater lake)이니
당연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ㅎ 잉글랜드 지방이라 함은 오해라 생각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롤랜드 지방 서부와 하일랜드 지방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글라스고우(Glasgo 영국 사람들이 글라스고우 라고 함ㅎ~))에서 북서쪽으로 20km로 떨어진 지점...
무척 기다란 호수.
권력이라는게 뭔지. 참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가 어쩌면 땅따먹기~!
원시 부족국가 시대 부터 왕조시대,근세까지 온통 영토 확장의 역사였지요.
잉글랜드 왕국이 통일한다고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를...통합하여 UK가 되기 까지ㅎ
특히 강국 스코틀랜드와는 (물론 역사도 종족도 다르니) 피터지게 싸우더니
지금도 그 흐름은 그대로 살아 남아서...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우리의 노래도 있죠
" 당신은 철사줄로 꽁꽁 묶여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졀며 넘던 미아리 고개....."
전쟁은 참 비참하지요 특히 패한 쪽엔 엄청난 대가가 가해지고
그 고통은 차마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야 되는데...
인간에게서 욕망, 특히 정치적 욕망을 제거하지 않는한
전쟁은 언제나 잠재되어 있겠지요.
남북관계도 지는 쪽이 우선, 상당기간 먹힘을 당히는 것이겠지요. 그게 사리니까요.잘 지내십시오.
로몬드호수~
얼마나 큰호수인지 가보고싶어지네요~~ㅎ
언젠가 그 날...
내일은 없다!!!
마음 내키실 때, 지금 ㅎ떠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