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은동에 있는 '포방터'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아서
▲ 서울도성 창의문을 벗어나 홍제천(모래내)를 따라 세검정과 한북문(홍지문)을 지나고 보도각 백불을 거쳐 약간 더 하류로 내려오면 홍은초등학교가 나타나고 그 보다 약간 북쪽에 해당하는 지점에 '포방교'과 '포방터시장'이 이어진다. 이 포방터(砲放터)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포를 놓는 곳' 즉, 사격장(射擊場)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이다.
▲ 이곳은 원래 홍제외리(弘濟外里, 홍제원외리)에 속하던 구역이었으나 해방 직후인 1949년에 서울시 서대문구로 편입되면서 ‘홍은동(弘恩洞; 홍제외리+은평면)으로 이름을 고쳤다.
▲ 이 포방터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명이 분분하지만, 명쾌한 자료를 근거로 놓고 판단하건대 '대한제국 시기'의 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한국지명총람 1(서울편)』 (한글학회, 1966), 87쪽
[수마동(水麻洞)] 홍지문 밖 일대를 일컫는 마을
[신흥동(新興洞)] 포방터 아래쪽에 있는 마을
[포방터(砲放-)] 홍은동시장의 옛 이름. 전에 총쏘기를 연습하던 터가 있으므로 포방터라 함.
▲ 『독립신문』과 『황성신문』 등에는 '창의문밖 수마동', '홍제원 수마동(弘濟院 水磨洞)'에서 포를 시험하거나 총을 쏘았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곳이 곧 지금의 흥은동 포방터를 말한다.
▲ 『독립신문』 1899년 5월 12일자에 수록된 '포방터 관련 기사'의 내용이다. 여기에는 "[대포시험] 포병대 참령 이민섭씨가 칙령을 봉승하여 재작일에 회선포 이문(二門)과 극로백(克魯伯) 이문을 가지고 창의문밖 수마동에 나가서 시험차로 방포하였다더라."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위의 기사 가운데 나오는 '극로백(克魯伯)'은 '크루프(Krupp) 야포'를 가리키며, 수마동이 곧 지금의 홍제동 포방터 일대를 말하는 옛 지명이다.
무관시사(武官試射)
『황성신문』 1899년 5월 13일자
일작(日昨)에 무관학도(武官學徒)들이 홍제원(弘濟院)에서 인물표(人物標)를 이백보(二百步)에 입(立)하고 사격(射擊)을 시(試)하는데 황태자(皇太子)께서 은 일백원(銀 一百元)을 하사(下賜)하샤 사격(射擊)의 등수(等數)로 상여(償與)를 반(頒)할새 주항라 일필씩(紬亢羅 一疋式)이오 기차(其次)는 백저 일필씩(白苧 一疋式)이라더라.
▲ 특히, 1907년에는 일본육군대신 테라우치가 방한했을 때 경운궁 돈덕전 앞에서 기관포를 헌납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 대포를 시험발사하는 일이 ‘신문외 소마동(新門外 小磨洞, 소마동은 수마동의 착오)에서 거행된다는 내용이 『황성신문』 1907년 6월 24일자에 수록된 바도 있어서 이 포방터의 존재는 여실히 확인된다고 하겠다.
대포시험(大砲試驗)
『황성신문』 1907년 6월 24일자
일본 사내육군대신(日本 寺內陸軍大臣)이 황상폐하(皇上陛下)께 봉납(奉納)한 신대포(新大砲)를 시험차(試驗次)로 금일(今日) 하오(下午) 7시(時)에 신문외 소마동(新門外 小磨洞)에서 포방(砲放)할 터인데 각부친칙주임관(各部親勅奏任官)과 환산고문(丸山顧問)까지 일제(一齊)히 참관(參觀)하라고 내각(內閣)에서 각부부(各府部)에 윤첩(輪牒)하였다더라.
양지삽표(兩地揷標)
『황성신문』 1907년 7월 5일자
홍제원 수마동(弘濟院 水磨洞)과 혜화문외 삼선평(惠化門外 三仙坪) 양처지단(兩處地段)이 군대(軍隊)를 교련(敎鍊) 사격장(射擊場)에 적당(適當)하다 하여 자군부(自軍部)로서 삽표정계(揷標定界)하였다더라.
▲ 그리고 『매일신보』 1921년 8월 22일자에는 “고양군 은평면 홍제원에 있는 육군사적장에 대해 현지 주민의 탄원서가 제출된 바 그 사격장은 구한국시대에 건설한 것”이라는 내용이 분명히 서술된 것이 눈에 띈다. 이것으로 보면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이후에도 사격장의 용도는 한동안 그대로 유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정확하게 어느 시기까지 이러한 형태가 유지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한편, 『동아일보』 1921년 10월 27일자에는 "[서서원 사격연습(西署員 射擊練習), 금일 홍제원에서] 서대문경찰서원 일백 이십여 명은 금일 오전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홍제원(弘濟院) 조선보병대사격장(朝鮮步兵隊射擊塲)에서 실탄사격의 연습이 있을 터이라더라"는 내용의 보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보면 일본 육군이라고 한 것은 그 실제 주체가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 광화문 앞 옛 삼군부 자리에 주둔)'로 판명된다고 하겠다.
[관련자료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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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일제강점기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의 사격장으로 사용된 홍은동 '포방터'
▲ 지금은 이처럼 포방터시장, 포방교 다리, 새도로주소에 포방터길이라는 식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정리 : 이순우, 2013.11.25, http://cafe.daum.net/distorted)
첫댓글 흔적만 남아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