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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를 펴놓고 아프리카를 찾아보면 북동쪽 근방에 뾰족한 뿔 모양을 한 나라 에티오피아가 보인다. 에리트레아, 지부티, 수단, 남수단, 케냐, 소말리아가 에티오피아의 이웃 나라들이다. 과거에는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소말리아,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일부까지 에티오피아 영토인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내륙국이 되어 밖에서 들여오는 물건들은 모두 이웃나라들의 항구를 통해야 한다.
에티오피아의 정식 국명은 에티오피아 연방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으로, 대한민국의 5배 정도 되는 땅덩어리에 현재 1억 명이 살고 있다. 사계절이 있지만 눈이 오지는 않는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영국이나 프랑스 등 강대국의 오랜 식민지 경험이 있는 데 반해 에티오피아는 그런 경험이 없어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유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암하릭어(Amharic, 현지어로 ‘아마릉냐’)로 간판 등에 영어와 암하릭을 병기하고 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는 에티오피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평균 해발고도가 2,300~2,500m 정도의 고지대이다. 말라리아에 대한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고지대이다 보니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안내가 나오자마자 바로 땅을 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디스아바바’의 ‘아디스’는 암하릭어로 ‘새로운’, ‘아바바’는 ‘꽃’을 의미한다. 아디스아바바에는 약 34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암하라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3대 종족은 암하라족, 오로모족, 티그레이족이다. 암하라족 인구는 전체의 27% 정도이며, 인구 규모로 보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지만, 국가의 중심 민족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이 크다.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의 제네바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뉴욕, 브뤼셀, 제네바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외교공관이 많다. 한국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나라를 비롯해 100여 개가 넘는 대사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AU(African Union), UNECA(UN Economic Commission for Africa) 등 주요 국제기구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커피 하면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이나 콜롬비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커피의 발상지는 에티오피아다. 커피콩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한데 상업적으로 중요하게 분류되는 커피는 두 가지로, 아라비카 커피와 로부스타 커피다.
아라비카 커피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생산되고 냉해에 약하며, 손이 많이 가는 커피다. 그러나 같은 양의 로부스타에 비해 카페인이 적고, 향이며 맛이 우수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이에 비해 로부스타 커피는 저지대에서 생산되고, 사람 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1 로부스타 커피나무 <출처: (cc) Okkisafire at Wikimedia.org> 2 아라비카 커피나무 <출처: (cc) FCRebelo at Wikimedia.org> |
로부스타 커피는 가격이 싼 덕분에 주로 인스턴트 커피에 많이 사용된다. 커피 생산국들 중에는 아라비카 커피 혹은 로부스타 커피만 생산하는 나라가 있고, 두 가지 모두를 생산하는 나라가 있다. 에티오피아는 로부스타 커피를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커피 중 아라비카 커피의 고향으로, 서남부의 커피 산지 ‘카파(Kaffa)’는 커피가 처음 발견된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커피(Coffee)의 어원이 카파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카파 근처의 짐마(Jimma)를 커피의 고향으로 소개하는 자료들이 많은데 카파에는 ‘카피노노’, 혹은 ‘카피초’1)를 말하는 카파인들이 살고 있고, 짐마에는 ‘오로믹야’ 혹은 ‘오로미파’2)를 쓰는 오로모 사람들이 다수를 이룬다.
커피를 마시는 풍경도 두 지역이 많이 다른데 커피를 마신 역사가 오래된 카파 쪽이 훨씬 다양한 커피 문화를 가지고 있다. 2010년 6월 카파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되는데, 한국의 광릉수목원도 같은 해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카파가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카파 지역을 5,000종이 넘는 야생 식물종 유전자의 보고(寶庫)로 세계에 알렸다. 실제로 카파에 가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야생 커피를 볼 수 있다. 에티오피아 현지에서는 커피를 ‘분나’라고 하는데 카파에서는 특히 ‘부노’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 중에 ‘모카(Mocha)’라는 것이 있는데 모카커피로 유명한 곳이 에티오피아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는 ‘모카’라는 지명이 없다. 이는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예멘의 항구도시인 모카 항을 통해 유럽 각지로 수출되면서 유럽 사람들이 항구 이름을 따 모카커피라고 부른 데서 기인한다. 커피벨트에 모카커피 생산지역으로 에티오피아와 예멘을 동시에 표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커피는 적도를 기준으로 남북회귀선 25도 사이에서 주로 자라는데 이를 ‘커피벨트’라고 부른다. 에티오피아와 예멘, 두 지역의 커피는 모카라는 말 뒤에 ‘하라르’, ‘김비’ 등의 커피 산지명을 붙여 구분한다. 참고로, 예멘은 아프리카 대륙이 아니라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아라비아 반도에 있다.
우리는 차를 마실 때 특별한 격식을 차리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의 본고장 사람들답게 커피를 마실 때 독특한 의식을 치른다. 일본 사람들이 다실을 꾸미고 다도구를 준비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전체 의식 과정을 ‘다도(茶道)’라고 부르듯이 에티오피아 현지에서는 이를 ‘커피 세리머니(암하릭어로 ‘분나 마프라트’)’라고 부른다.
커피콩을 씻고, 볶고, 가루를 내고, ‘제베나’라고 하는 토기 주전자에 끓여내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한 우리에게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에티오피아의 커피 세리머니는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 세리머니 한 번에 석 잔까지 커피를 마시며, 하루에 세 번 커피 세리머니를 즐긴다.
전 세계 60개국 이상이 상업적으로 커피를 생산하는데 대부분의 커피생산국에는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없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커피 세리머니 덕분에 커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소비하고 있다. 커피를 생산하지 않는 대도시 사람들, 특히 아디스아바바에 사는 사람들은 ‘마르카토’라고 부르는 곳에서 커피를 구매한다.
우리가 커피나무의 부산물 중 생두(볶지 않은 커피콩은 ‘생두’, 볶은 커피콩은 ‘원두’라고 부름)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 반해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생두는 물론 커피 잎, 줄기, 커피 껍질(‘허스크'라고도 함)까지 음용하고 실제로 마르카토에서는 이런 커피 부산물들이 거래된다.
국제공항이 현재의 볼레(Bole)로 이전하기 전까지 아디스아바바의 다운타운은 ‘피아사(Piaza)’였다.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호텔 ‘따이투’, 1960년대에 오픈한 에티오피아 최초의 커피숍 ‘토모카’, 종로 3가를 방불케 하는 보석상들이 아직도 성업 중이다.
피아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르카토’라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오픈 마켓이 있다. 에티오피아 대도시에 가면 다양한 ‘마르카토’를 구경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이 ‘아디스 마르카토’라고 부르는 아디스아바바의 ‘마르카토’와는 규모와 취급 품목에서 비교가 안 된다.
마르카토는 이탈리아어로 ‘시장’을 의미한다. 에티오피아는 1936년부터 1941년까지 이탈리아에 점령을 당한 기간이 있었는데 이때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참 많은 것을 남겨놓는다. 일례로 수도에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에서도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아디스아바바에는 시장이 많은데 현지인들은 유독 이곳만을 ‘마르카토’라고 부른다. 참고로 르완다 대사관 근처에 작은 규모의 청과물 시장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차이니스 마르카토’가 아닌 ‘차이니스 마켓’이라고 부른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패니즈 마켓’으로 불렀다).
아디스아바바의 마르카토는 품목별로 구획이 잘 나누어져 있다. 향신료를 파는 곳에 가면 향신료만, 생활용품을 파는 곳에 가면 생활용품만 모아져 있다. 그리고 품목은 다르지만 각 민족별로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 전국 각지에서 몰려 온 오로모족, 암하라족, 티그레이족, 구라게족 등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전체에 중국산이 홍수를 이루는 것은 에티오피아도 예외가 아니다. 질이 낮아 선진국에는 수출할 꿈도 못 꾸는 물건들이 중국 노동자들의 손에 들려 에티오피아로 들어오고 있다. 상인들은 신발이 냄새가 나서 신을 수가 없고, 전자제품도 한 번 쓰면 더 이상 사용하기가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마르카토에는 양치를 하는 작은 나무조각에서부터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정말 없는 게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마르카토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이곳에 없으면 어느 곳에도 없다’는 말을 주저 없이 하곤 한다.
마르카토의 형성 배경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 옛날 이곳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그린 삽화에 소개된 마르카토는 지금과 외관이나 규모가 많이 다르다. 현지인에 따르면 태국인지 대만인지 정확히 기억은 못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와서 재래시장으로 이용되던 마르카토를 개발해 대형 몰을 지으려 했었다고 한다. 개발자는 터 잡는 공사를 위해 이곳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보상을 받고 떠나라고 했단다.
일부 보상을 받고 떠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아 결국 그 나라 사람들은 몰 건설 작업을 포기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거지역과 상가지역이 혼재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의 마르카토가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카토의 형성 배경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위의 내용과 조금 다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든 지금의 ‘피아사’ 지역 주변이 커지면서 인근 상인들에 의해 마르카토가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취급 품목이나 인접성 등을 고려하면 후자가 좀 더 설득력 있다.
마르카토에는 현대식 건물도 많이 올라가는 중인데 건물 안은 한국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과 별 차이가 없다. 실내보다 바깥에 볼거리가 많지만 사람과 자동차, 노새까지 뒤엉켜 미로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정신이 없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한다. 한국도 재래시장을 다닐 때는 주머니 관리를 잘해야 하듯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마르카토에 갈 때 외국인들은 관광가이드나 현지를 잘 아는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가는 게 안전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을 먹으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마르카토에 대한 악성 루머가 많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차창으로 시장을 구경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갑과 카메라를 주의하고 혹시 악수를 청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반 슈퍼마켓이나 백화점보다 마르카토가 물건 값은 몇 배나 싸다. 그러나 흥정을 아주 오래 해야 한다. 재래시장에서의 흥정은 게임이다. 게임에서 이기면 돈을 따지만, 지면 잃어야 한다. 이는 만고불변의 게임의 법칙이다.
마르카토에서 가장 큰 규모로 거래되는 품목은 단연 커피다. 마르카토에 가면 커피의 발상지답게 전국의 산지에서 올라 온 커피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가격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현지인들도 흥정을 해야 한다. 수출 등급에 미치지 못하는 커피들은 주로 국내시장에서 거래되는데 마르카토의 커피들이 대표적이다.
스페셜티 커피를 비롯해 1,2등급 커피는 에티오피아 국내에 풀리지 않고 전량 수출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수입된 에티오피아산 생두만 봐온 사람들은 커피의 본고장에서 접하는 커피 맛에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비록 수출에는 실패했다고 하지만 현지 시장에서 구매한 커피에서 결점두(Defect Beans)를 골라내면 맛이 결코 나쁘지는 않다.
커피 생산지 주변에 가면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노천시장이나 ‘수크’라고 부르는 가게들에서도 쉽게 생두를 구입할 수 있는데 상인들에게 아무리 품질 좋은 커피를 부탁해도 결국은 수출 등급에 못 미치는 커피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름만 들었던 이르가체프, 하라르, 시다모 지역의 노천시장에서 커피를 만나면 결점두 투성이의 생두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다.
요즘은 커피를 마실 때 세리머니를 생략하고 마시는 가정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시장에서 커피 분말을 사다 제베나에 끓여 마시기도 한다. 아디스 마르카토에서 멀지 않은 피아사 주변에는 커피숍도 많고, 커피를 직접 로스팅해서 판매하는 곳도 있어 생두가 아닌 원두나 커피 분말은 이런 곳에서 구매를 하기도 한다.
지방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가게 앞에 커피 세리머니 세트를 놓고 ‘스니’라고 부르는 작은 잔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가격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서비스 형태는 대개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에티오피아의 지방에 가면 ‘커피를 사고 싶다’와 ‘커피를 마시고 싶다’를 구분해서 표현해야 한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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