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는 비파형 동검을 5단계로 나누었다. 비파형 동검의 전반적인 형태변화를 보면 초기에는 검신(칼날)의 길이가 짧은 편이고 돌기가 상부에 치우쳐 있다가 후기로 가면서 검신이 길어지고 돌기가 점점 하부로 내려오며 칼끝이 날카로워진다.
우선 가장 이른 시기의 1단계는 검신의 길이가 20cm대이고 돌기가 검날 길이의 1/2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상부에 있는 비파형 동검이다.
이러한 동검은 요동 청원현 문검, 무순 대갑방, 요양 이도하자 등 6곳의 비파형 동검으로 요동지역이 5곳이고 길림지역이 성성초 1곳이다.
출토지는 모두 석관묘이며 미송리 토기가 함께 출토된다. 성성초 유적 인골에 대한 C14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1105+_100 ~ 기원전1305+_16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1단계 비파형 동검 시기는 박진욱의 주장처럼 기원전 2천년 말기에서 기원전 1천년 말기 이전으로 설정해야 한다. 북한 학자들은 쌍방 유적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자료를 근거로 기원전 12-13기까지 연대를 올려 보고 있다.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비파형 동검은 요동지역에서 처음 출현한 것이다. 나아가 요동지역의 청동기문화 개시가 기원전 2천년대 중반이며 비파형 동검 시기를 요녕 청동기문화의 후기로 보는 견해도 나타난다.
다음으로 2단계는 검신이 25-35cm에 이르고 검신의 돌기가 하부로 내려오며 칼끝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러한 2단계 비파형 동검은 요동과 요서, 길림 등 14곳에 고르게 분포하는데 미송리형 토기는 보이지 않는 반면 미송리형 토기처럼 입 부위가 넓어진 광구호(廣口壺)와 미송리형 토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각형 토기, 장경호가 함께 출토된다. 이 2단계에 속하는 남산근 유적은 중국 서주 시기의 창과 같은 유물이 동반되므로 기원전 9-8세기, 요서지역 조양 십이영자 유적은 기원전 8-7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3단계는 검신이 30cm 이상 되는 것이 보통이고 돌기부가 등날이 검신의 1/2 지점을 넘어 하부까지 내려오고 칼끝이 현저하게 발달하며 검날 폭도 3cm로 좁아진다. 또 정(丁)자형 동검병(동 칼자루)이 요서지역에 등장한다. 이 3단계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 11곳에서 출토되었다. 이 시기의 동검은 석곽묘 뿐만 아니라 토광묘(움무덤), 목곽묘(나무곽무덤) 등의 다양한 묘제에서 출토된다. 이 시기는 요양 정가와자 6512호 목곽묘를 기준으로 기원전 6-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시기 동검은 중국과 북방문화의 영향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4단계는 돌기부가 완전히 사라져 세형동검과 같은 형태를 보여준다. 즉 다른 학자들이 말하는 초기 세형동검을 가리킨다. 이 4단계 동검은 요동과 요서 등 12곳에 이르는데 요서 건평과 하북성 계현, 신성현 등 3곳을 제외하면 모두 요동과 길림 지역이다. 이 시기는 길림성 서황산둔 6호 석묘에서 나온 목탄 절대연대 측정에 의거해 기원전 5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6호묘에서는 비파형 동검과 더불어 철가루와 쇠칼 등 철기도 동반하고 있어 기원전 5세기경 길림지역에 철기가 보급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5단계 비파형 동검은 검날 폭이 일정하고 하부와 기부가 직각으로 바뀌는 초기 세형동검이다. 이 시기의 동검으로는 길림지역 3곳과 단동 1곳에서 출토된 동검이다.
위와 같은 분류를 보면 비파형 동검은 기원전 12세기경 요동지역에서 처음 출현해 기원전 8세기경 요동과 요서, 길림지역으로 확산되며 기원전 6-5세기경엔 중국과 북방문화를 수용하고 기원전 5세기경엔 초기 세형동검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이러한 비파형 동검의 형태에 따른 분류와 달리 오강원은 청동 화살촉을 비롯한 공반 유물의 기종과 재질 등으로 요령지역 청동기를 5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요서지역 능원과 건평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으로 기원전 10세기-9세기,
2단계는 요서지역 조양, 건평, 객좌, 금서, 북풍, 의현 등에서 출토된 동검으로 남산근 유적과 소흑석구 유적을 근거로 기원전 9세기 후반-8세기 중반,
3단계는 요서지역과 요동 요양, 무순, 보란점, 대련 등의 동검으로 기원전 8세기 중반-7세기,
4단계도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출토되는 동검으로 기원전 6-5세기,
5단계는 비파형 동검 출토지역이 30여 곳에 이르지만 요서지역 객좌와 조양, 건평 등 3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요동과 길림지역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식 유물과 철기유물이 공반되는 점을 근거로 기원전 4-3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오강원의 분류에 의하면 비파형 동검은 기원전 10세기경 요서지역에서 처음 출현해 기원전 8세기에 요동지역으로 확산되며 기원전 4세기에 연나라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병태는 요서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고조선의 문화로 보고 그 중심지를 조양으로 보았으며 북한 박진욱은 비파형 동검의 연대를 기원전 2000년대 말까지 올려보면서 중심지는 요동지역이지만 그 창조자는 고대 조선족 중 예족으로 후에 고조선을 창조한 것으로 보고 있고, 근풍의와 윤무병은 요서지방 동검이 요동보다 앞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박진욱은 비파형 동검을 세 부류로 나누었는데, 미송리형 토기를 동반하는 것들을 첫째 부류로, 동검에 가중기가 나타나고 미송리형 토기를 동반하지 않는 것들을 둘째 부류로, 청동 칼자루를 부착한 것들을 셋째 부류로 분류하고 동반유물을 참고해 분석했는데 미송리형 토기와 비파형 창이 요동지역과 길장지역의 특징임을 들어 비파형 동검과 청동문화가 요동지역에서 발원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학자인 곽덕방도 요동지역을 비파형 동검의 기원지로 인정하고 요동지역과 북방지역 동검이 융합해 요서지역 하가점 상층문화 동검이 창출되었으며 요동지역 문화는 예맥.진번.조선족의 선조들이 공유한 청동문화라고 주장했다. 주영강 역시 비파형 동검이 요동지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파형 동검에 대한 분류나 편년은 학자들마다 다소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비파형 동검이 기원전 10세기경에 이미 요동이나 요서지역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또 비파형 동검은 요서, 요동, 만주, 한반도에서 출토되지만 북경지역에서는 극소수에 그쳐 대체로 난하 유역을 경계로 하고 있다. 이는 비파형 동검이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열국과는 관련이 없으며 나아가 요서와 요동, 만주, 한반도가 비파형 동검 문화를 공유한 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