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월 15일 |
출애굽(라암셋에서 발행) |
1년 3월 |
시내산에 도착 |
1년 3월 3일 |
시내산에 오름 |
2년 1월 1일 |
성막의 완성, 제사장의 위임식 시작, 족장들의 봉헌시작 |
2년 1월 8일 |
위임식 마침, 나답과 아비후 죽음 |
2년 1월 12일 |
족장들의 봉헌마침 |
2년 1월 14일 |
두번째 유월절 |
2년 2월 1일 |
인구계수 |
2년 2월 14일 |
작은 유월절 |
2년 2월 20일 |
시내산을 떠나 가데스로 올라감 |
애굽에서 수에즈만의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를 횡단하여 아카바만의 홍해가 에시온게벨에 도착하게 되면
여기에서 가나안땅으로 올라가는 길이 왕의대로와 홍해길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차적으로 시내산을 가야했기 때문에 왕의대로가 아닌 홍해길을 선택하여 시내산까지 갔고 이후에도 홍해길과 아모리 족속들의 산지길을 따라서 아라바광야를 통과해서 가데스로 올라갔습니다. (신 1:19)
홍해길은 세일산악을 따라서 나 있는 험한 길이었기 때문에 길이 험하고 물과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크고 두려운 길~이었습니다. (신 1:19)
시내산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레위기) 60만명의 장정들이 진을 치고 (민수기)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앞세우고 시내산을 떠나 가데스로 올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거룩하고 웅장해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험한 노정이 시작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먹을 것을 가지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이 다베랴와 메추라기를 먹다가 탐욕으로 인하여 많이 사람이 죽은 기브론핫다아와 그리고 미리암과 아론이 불순종하여 모세를 대적하였던 하세롯~입니다. (민 11~12장)
그러니까 다베라와 기브롯핫다아와와 하세롯은 시내산과 가데스 사이 그중에서 시내산을 얼마 벗어나지 않은 세일산악 위에 있는 지명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내산(=호렙산)에서 가데스까지는 열하룻길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 1:2)
현재 상황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만큼 가나안땅에 빨리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가데스를 향해 2년 3월 1일경 가데스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로 들어간 이유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그 땅을 정탐하기 위해서 입니다.
정탐을 하기 위해서는 가나안땅의 가장 남단인 진광야(Zin)에서부터 가장 북단인 하맛어귀 르홉까지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루트이기 때문에 가나안의 가장 남단 네게브의 가데스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은 가데스를 출발하여 하맛 르홉까지 정탐하고 40일만에 헤브론 에스골골짜기의 포도송이를 가지고 가데스로 돌아왔습니다. (2년 4월 10일 경)
정탐꾼들이 돌아온 다음에 그들은 그 땅 거민인 거인족 아낙자손을 이기고 그 땅을 차지할수 있는 가능성은 없고 다 죽게 될 것이라고 낙담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싫어하여 40년 1월까지 약 38년을 광야를 헤매어 다니다가 모두다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광야에서 죽는 것이 두려웠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으면서도 말리는 모세를 뿌리치고 가나안땅을 치러 들어갔다가 아말렉족속과 가나안 족속에게 패하여 호르마~까지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호르마는 가데스에서 세일산악으로 들어가는 자락에 위치한 도시로 모세롯(=모세라) 인근이고 호르산 근처입니다.
그러니까 가데스에서 아말렉과 가나안 족속에게 패하여 밀려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경선인 세일산악까지 쫒겨서 다시 세일산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땅 거민들이 너무나 강한 자들인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안에서는 큰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세에게 속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얻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 아낙자손이 버티고 있는 가나안땅을 싸워서 취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었고 결국 모세가 자신들을 속여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본 것입니다.
장자인 르우벤과 갓지파를 중심으로 애굽으로 되돌아가자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250명의 족장들을 규합하고 제사장 아론을 끌어내리고 레위지파 고핫자손 고라를 제사장으로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한 반역을 일어켰고
결국 그들은 불과 땅에 삼키워 죽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민 16장)
민수기 17~19장의 내용은 그들의 시체를 진밖에 치우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38년동안 (출애굽이후 40년) 광야를 헤매고 다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다녔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민수기 33장 19~35절까지에 지명만 언급되고 있을 뿐입니다.
민수기 33장 19~35절에 나오는 지명들은 대부분 다른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유일하게 민수기 33장에서만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어디라고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10장 6~7절에 출애굽한지 40년째 되는 해, 아론이 죽을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를 떠나 모압평지로 이동하는 경로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순서가 브네야아간-->모세라-->욧바다~의 순입니다.
신명기 10장 6절에는 모세라에서 아론이 죽었다~고 했는데 민수기 33장 37절에서는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었다~고 하고 있으니 결국 모세라와 호르산은 같은 곳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세라에 있는 산이 호르산~이 되겠습니다. 대구에 있는 팔공산~과 같이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또 원어상으로 보면 신명기 10장 6절의 모세라와 민수기 33장 30절의 모세롯은 같은 곳입니다. 원어표기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민수기 33장 30~39절은 모세라-->브네야아간-->욧바다-->에시온게벨-->가데스-->모세라(호르산)의 순서로 이동했고 신명기 10장 6~7절의 내용을 연결해서 이동경로를 그리면 모세라-->브네야아간-->욧바다-->에시온게벨-->가데스-->브네야아간-->호르산(아론이 죽음)-->욧바다-->에시온게벨로 이동했다는 것을 유추할수 있습니다.
즉 브네야아간과 욧바다는 호르산을 중심으로 브네야아간은 가데스쪽에 있는 도시이고 욧바다는 에시온게벨쪽에 있는 도시인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브네야아간과 에시온게벨 사이를 적어도 2번이상 왔다갔다 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여기저기를 두루 다녔다기 보다는 세일산맥을 따라서 국경지대를 왔다갔다 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만약에 300만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인구가 자기마음대로 다녔다고 하면 다른 민족들이 보고 가만두었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2장 1절에도 홍해길로 해서 세일산 일대를 두루 다녔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게 계십니다.
38년 동안 세일산 일대를 왔다갔다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1월경 에시온게벨을 떠나 다시 가데스로 올라갔습니다.
(민 20:1, 민 33:36)
북으로 올라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취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 2:3)
40년 1월 가데스에서 미리암이 죽었습니다. (민 20:1)
민수기 20장 1절에서 연도를 언급하지 않고 정월~이라고 한 것은 모세가 민수기를 쓴 것이 바로 자신이 죽기직전 40년경이기 때문에 그해 정월을 구지 40년 정월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정월~이라고 하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즉 민수기 19장과 민수기 20장 사이에는 38년의 시간공백이 있는 것입니다.
미리암이 죽고 40년 1월 모세는 가데스에서 에돔왕에게 가데스에서 염해아래 싯딤골짜기를 통과하여 모압평지로 올라가는 에돔땅의 왕의대로를 열어달라고 요청하지만 에돔왕이 거절합니다. (민 20:14~21)
왕의대로는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시날, 엘라살, 고임왕과 연합하여 소돔, 고모라, 스보임, 아드마, 소알왕을 치러 올때에 아스다롯 가르나임(다메섹)에서부터서 남하하면서 르바임, 수스, 에임, 호리족을 치고 엘바란(=에시온게벨)을 돌아 가데스로 가면서 아말렉땅과 아모리족속을 치고 다시 가데스에서 염해아래 싯딤골짜기로 길을 돌려 소돔과 고모라 연합군을 치기 위해서 지나갔던 도로입니다.
흔히 창세기 14장의 전쟁을 아브라함 개인의 소규모 전쟁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이 당시는 국가가 형성되지 않은 고대부족국가 시대로 엘람왕 그돌라오멜은 여러부족을 통합한 고대제국의 왕이라고 볼수 있고 엘람왕 그돌라오멜의 전쟁은 고대제국주의의 전쟁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엘람왕 그돌라오멜은 다메섹-->엘바란, 엘바란-->가데스, 가데스-->싯딤골짜기까지의 크게 3구간의 대로를 닦았는데 그것이 바로 왕의대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각 민족들이 나뉘어서 이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왕의대로 역시 에돔족과 모압, 아모리족, 바산을 통과하는 도로가 된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도 에돔땅을 통과할때에는 에돔왕에게 왕의대로를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아모리땅을 통과할때에는 아모리왕 시혼에게 왕의대로를 열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민 21:21~31)
에돔왕이 왕의대로를 열어주지 않음으로 가데스에서 모압평지로 바로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홍해길로 내려가서 세일산을 거쳐 엘랏(=에시온게벨)을 돌아 모압평지로 올라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에돔은 이스라엘에게 비록 왕의대로를 열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데스를 떠나 홍해길로 해서 에시온게벨로 내려오는 도중에 호르산 (=모세라)에서 아론이 죽었습니다.
이때가 40년 5월 1일이었습니다. (민 33:38)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30일동안 모세라에서 아론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후 이스라엘을 치러온 아랏왕과 전쟁하여 이깁니다. (40년 6월경, 민 21:1~3)
가데스에서 호르산까지는 광야와 평지, 그리고 세일산으로 올라가는 낮은 구릉지대입니다.
그러나 호르산을 지나게 되면 세일산의 험악한 길이 시작됩니다.
아랏왕과의 전쟁이 끝난후 다시 에시온게벨로 내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험악한 세일산악의 길을 지나면서 불평하기 시작했고 이때에 불뱀에게 물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민 21:4~9)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을 통해 가나안땅으로 들어갈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모압평지까지 이동하면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갈려면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아모리족속의 땅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는 요단동편을 차지하고 있는 민족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렛강에서 아르논골짜기 사이는 모압이 장악하고 있고
아르논골짜기에서 얍복강까지 모압평지는 원래 모압의 땅인데 아모리족속이 빼앗아 장악하고 있었고 얍복강 위 길르앗땅은 바산왕 옥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힘이 약해져 있는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길을 열어주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여 주었지만 (신 2:28~29)
모압평지를 장악하고 교만해져있는 아모리왕 시혼은 스스로 이스라엘에게 위협을 느끼고 야하스까지 이스라엘을 치러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모리왕 시혼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심으로 그들을 쳐서 아모리족속의 수도 헤스본과 르논강에서 얍복강까지의 모압평지 온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모리가 이스라엘에게 패하자 바산왕 옥이 스스로 위협을 느끼고 이스라엘을 치러 아드레아까지 내려왔지만 역시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심으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길르앗 온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모리족속의 땅과 바산의 땅은 원래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을 르우벤지파와 갓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지파에게 주셔서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가 다른 지파 형제들이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때까지 함께 끝까지 싸운다는 조건으로 그 땅을 그들의 기업이 되게 하셨고 이땅은 언약의 땅안에 편입되게 됩니다.
사실 모압의 계산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을 그냥 보내주어도 아모리족이나 바산족이 이스라엘을 쳐서 멸할 것이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이스라엘이 아모리족속과 바산을 차례로 쳐서 이기고 모압평지와 길르앗 모든 땅을 장악하자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계략을 찾기 위해 거짓선지자 발람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꾀를 얻어 모압여자들과 미디안 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을 저지르게 하고 바알에게 부속되게 해버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안에 염병이 일어났고 24,000명이 염병으로 인해 죽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염병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내산에서 계수받았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민수기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명기는 40년 11월 1일~로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아론이 죽은 40년 5월 1일이후 30일을 호르산에서 아론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러니까 40년 6월에서 40년 10월사이에
아랏과의 전쟁, 아모리와의 전쟁, 바산과의 전쟁, 그리고 발락과 발람에 의한 바알브올의 사건등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2년 3월 1일 |
가데스에 도착, 12정탐꾼 보냄 (40일) |
2년 4월 10일 |
정땀꾼 돌아옴, 38년동안 광야를 방황함 |
40년 1월 |
가데스로 돌아옴, 미리암 죽음 |
40년 5월 1일 |
호르산에서 아론 죽음, 30일동안 애도 |
40년 6월 |
호르마에서 아랏왕과 전쟁하여 이김 |
40년 6~10월 |
아모리 시혼과 전쟁, 바산 옥과 전쟁, 바알브올의 사건 |
40년 11월 1일 |
모압광야에 도착, 신명기 설교 |
40년 11월~12월 |
모세의 죽음 |
41년 1월 10일 |
가나안땅 길갈에 상륙 |
신명기는 40년 11월 1일 모세가 지난 40년간의 행적을 회상하며 이제 곧 하나님의 언약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가난안 땅을 기업으로 취할 것을 격려하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켜 그대로 행할 것을 신신당부하면서 적은 모세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글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41년 1월 10일에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 동편 길갈에 입성하게 됩니다. (수 4:19)
그러니까 모세는 요단을 건너기전 40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모압평지 느보산에서 죽은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해서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경로와 주요사건들을 시간순서대로 지도와 함께 다시 요약정리해보았습니다.
전체의 흐름을 이해한 다음에 세부적인 성경구절구절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던 일들인지를 숙지하시게 되면 생각보다 쉽게 정리가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