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2일, 목요일
<본문> 여호수아 2장 1-14절
오늘 본문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첫 과정 중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떠난 두 명의 정탐꾼과 한 여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1절-7절)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위해 두 명의 정탐꾼을 선별하여 그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아주 오래된 성읍인 여리고는 요단 건너편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요충지여서 마치 문빗장과 같은 곳입니다. 그 여리고에 라합이라는 여인이 운영하는 기생집이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 집에서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기생의 집은 낯선 사람들이 공공연히 드나들 수 있는 집입니다. 두 명의 이스라엘 정탐꾼도 정탐을 목적으로 들어왔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이지 않기 위해 성벽에 위치하고 있던 라합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명의 정탐꾼의 가나안 입성 의도를 눈치 챈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곧이어 라합의 집은 탐문을 받게 되었고, 라합은 신속히 두 명의 정탐꾼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인 지붕에 숨겨 주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의 지붕은 뽀족하지 않고 평평하게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붕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기도 하고, 기도를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이 되었습니다. 라합은 그 공간에 삼대를 널어 말리고 있었는데 그 곳은 정탐꾼의 은닉처로 매우 적절했습니다. 정탐꾼을 숨긴 후 라합은 곧 이어 왕이 보낸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유도하였습니다.
(8절-14절) 라합도 여리고 왕처럼 이스라엘 정탐꾼들의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여리고 왕이 알고 있던 사실, 그 이상의 사실,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다는 소문에 가나안 주민들은 심히 두려워하고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을 주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9절). 이 사실에서 라합은 위로는 하늘에 계시며, 아래로는 땅에 계신 하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라합의 행동을 결정하였고,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을 죽음에서 건져내었습니다. 라합의 생명을 건 용기있는 믿음(히 11:31)과 행함(약 2:25)은 믿음에 따라 행동한 사람의 본보기로 신약의 말씀에서 인용이 되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1:5)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가운데 들어가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라합과 약속을 합니다. 끝까지 정탐의 사실을 누설치 않고 약속을 지킬 경우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인자하고 진실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앞에 행해진 약속은 6장에서 성실하게 이행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생각해 볼 것은 라합의 거짓말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민족에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십계명의 아홉 번째 명령인 네 이웃에 대하여 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라합의 거짓 증거에 대해 책망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오히려 용기있는 믿음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족보의 선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거짓말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걸립니다. 잠언 19장은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라합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 거짓말은 라합 한 개인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차원의 문제였기에 성경은 라합을 용기있는 믿음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간혹 나의 유익을 위해 이웃에게 거짓증거하게 되는 경우와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단호히 거짓증거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차원에서 바라보게 될 때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연일 뉴스에서는 북핵문제에 대한 방송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인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개인의 이기적인 이익이나 한 국가의 유익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온 마음을 다해 주님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올려 드려야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 우리 민족을 인도해 주옵시고,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영혼과 생명 구원의 차원에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6년 10월 13일, 금요일
<본문> 여호수아 2장 15-24절
하늘과 땅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한 라합에게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 그녀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맹세를 하는 정탐꾼들에 대한 내용과 여호수아에게 정탐한 내용을 보고하는 장면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15절-21절) 라합이 정탐꾼들을 밧줄로 달아 내리기에 앞서 정탐꾼들은 자기들이 약속한 바를 지킬 수 있게 하는 조건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자신들이 타고 내린 붉은 줄을 라합의 집 창문에 달아매어 놓음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줄이 달아내려진 집 안에 누구든지 들어온 자는 그들의 생명을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정탐 사실을 절대 누설하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붉은 줄은 서로 간에 알아볼 수 있는 사인입니다. 그 붉은 색은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하는 자로부터 지켜 주었던 피를 상기하게 해 줍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집 문설주에 묻어 있는 집안의 장자를 구원해 주셨듯이 붉은 줄이 드리워진 라합의 집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집을 떠나는 자는 그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약속된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자기 탓이므로 그 피 흘린 죄는 자신에게 돌아가게 될 것임을 정탐꾼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요 3:16). 유월절 어린 양의 피와 라합 집의 붉은 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증표입니다. 정탐꾼들의 약속은 여호수아 6장 22-23절에서 모두 이루어졌음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약속해 주신 구원은 오늘도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지켜야 할 자리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약속된 자리를 스스로 떠났을 때는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 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나 한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 민족과 인류를 함께 구원해 가는 도구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지켜야 할 자리를 잘 지켜나가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22절-24절) 정탐꾼들은 돌아가서 정탐 결과로 보고하기를 기생 라합의 말로 요약을 합니다. 9절입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24절입니다.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간담이 녹는다는 표현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자포 자기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히브리 특유의 표현 방법입니다. 이방 여인이 믿음으로 한 고백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던 것입니다. 민수기 13-14장에도 가나안 정탐 보고 내용이 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간 후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할 두려움의 땅으로 악평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정탐꾼, 갈렙과 여호수아는 신앙적인 시각으로 그 땅을 능히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불신앙적인 정탐 보고로 인해 백성들의 반란이 있었던 민수기의 내용과는 다르게 두 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의 확신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믿음의 눈과 믿음의 언어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더욱 성장시켜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평과 안일한 판단과 두려움은 우리를 성숙치 못하게 하는 걸림돌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시선과 어떤 언어로 하루를 채워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복된 아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두 정탐꾼들과 같이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수많은 영혼들을 더욱 강건하게 세워가는 밑 걸음이 될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속함을 받은 자녀답게 오늘도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6년 10월 14일, 토요일
<본문> 여호수아 3장 1-17절
돌아온 정탐꾼들로부터 긍정적인 보고를 들은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넘으로 하나님 백성으로의 역사에 새 장을 여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절-6절)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1절). 하나님께서 몸소 길을 보이시고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라가기 위해 새벽을 깨웠습니다. 중대한 일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먼저 영적으로 무장했음을 알게 됩니다. 하루 중 온 백성이 움직이기 좋은 낮 시간이 아니라 새벽 시간을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가장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헌신입니다. 쓰고 남은 나머지 시간이 아니라 대 역사를 앞에 두고 가장 귀한 시간을 드릴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를 더 크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새벽을 깨우는 우리 속에 습관적이고 반복된 모습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같은 새벽이지만 전혀 똑같은 새벽이 아니라 우리의 생 가운데 오늘이 가장 중요한 아침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새로운 길로 지도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 두 돌판을 보관해 둔 궤입니다. 법궤라고 부르기도 하고, 증거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장소요,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와 백성의 사이에 일정 간격을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4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되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른 구별을 훈련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구별된 자리를 지켜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호흡하게 될 것입니다.
(7절-17절)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 앞에 지도자임이 증명될 것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7절). 광야 학교를 지나왔지만 요단 건너편은 모세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사건은 오로지 여호수아의 이름과 결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맨 앞에서 요단 물가에 발을 담그고 서도록 하심으로 흐르던 요단 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는 동안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마른 땅을 굳게 딛고 서서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말씀의 능력으로 물을 막고 서 있는 동안 백성들은 무사히 요단을 건너게 됩니다. 그들이 백성보다 먼저 그 자리를 떠나면 백성들은 요단 물결에 휩싸여 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능력으로 죄와 유혹의 물결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며, 가정과 사회를 지키며, 이 땅을 주님의 나라로 가꾸어 가는 제사장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짊어진 가장은 그 가정을 말씀으로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짊어진 상사는 직장을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는 일터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짊어진 어른은 젊은이들을 향해 주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가자고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짊어지되 자신의 역할을 다 감당하기 원치 않는 그리스도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까지도 세상 물결에 휩싸이게 할 것입니다. 강바닥을 건너는 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가슴 벅차올랐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들은 일평생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앞서 행하며, 요단 가운데 서서 마른 땅을 유지시켰던 제사장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은 우리는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기까지 든든히 두 발로 서야 합니다.
< 오늘의 기도>
말씀대로 행하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